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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8일 오늘의 역사
2024년 필리핀 후손섬 한 달 사이 6개 태풍으로 160명 이상 사망
필리핀에 한달 사이 6개의 태풍이 지나가며 마을 전체가 전멸 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번 슈퍼 태풍 '만이'가 필리핀 북부를 강타하면서 최소 8명이 숨졌고 여러 명이 실종됐다 순간 최대풍속 시속 240km의 강풍을 동반한 폭우에, 곳곳이 물에 잠기고 주택들이 무너졌다. 태풍 '만이'는 최근 4주간 필리핀을 강타한 여섯 개의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한때 공항 20여 곳이 폐쇄됐고, 75만 명이 긴급 대피했다. 이미 필리핀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루손섬은 지난 3주 사이 잇단 태풍으로 160명 이상이 숨지고 900만 명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2022년 에코도르 교도소 유혈폭동 9명 사망
2021년 다섯 쌍둥이 출생
우리나라에서 34년 만에 '다섯 쌍둥이'가 건강하게 태어났다. 이번 다섯 쌍둥이 출산은 육군 17사단 수색대대에 근무 중인 김진수 대위, 정보대대 서혜정 대위 군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번 다섯 쌍둥이 출산에는 서울대병원 의료진 30여명이 급히 동원됐다.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진두지휘하는 전종관 교수를 포함해 수술인력 4명, 신생아 출생시 필요샘플담당과 지원인력 4명, 마취과의사 2명과 소아과의사는 한 아기당 2명씩 10명, 간호시 인력은 수술실간호사 2명, 신생아간호담당 5명, 신생아소생실 지원간호사 3명 등 총 30여명의 의료인력이 총출동했다.
수술을 집도한 전종관 교수는 "딸 4명이 차례로 나오고 막내로 아들이 출생했다"라며 "1명은 850g 정도이고 나머지 아가들은 모두 1kg이 넘어 건강한 상태이다"라고 밝혔다. 전 교수는 또 "지금까지 네쌍동이는 수차례 받아봤지만 다섯 쌍동이는 저도 처음"이라고했다
다섯 쌍둥이 출산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휘귀한 사례이며 국내에서는 1987년 다섯 쌍둥이 출산기록이 현재 남아있는 마지막 기록이다.
2021년 이스라엘 국방장관 가사도우미 간첩혐의로 체포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로날드 트럼프 당선
2013년 박인비 한국인 최초 LPGA '올해의 선수' 확정
2008년 판돈 1조원대 인터넷 도박조직 검거
해외에 서버를 관리하는 직원들을 두고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 1000억원대의 수수료를 챙긴 도박조직이 경찰에 검거됐다.
충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008년 11월 18일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수수료(속칭 딜비 또는 커팅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김모(36)씨 등 4명을 구속하고, 김씨 등과 함께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10명, 이 도박사이트에 가입해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혐의로 박모(50)씨 등 2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 등은 2007년 10월 중국에서 서버를 관리하는 '빌리진'이라는 도박 사이트를 구축한 뒤 180여 개의 부(副)본사·총판·가맹점 등을 두고 5000여 명의 회원을 모집, 최근까지 1년여 동안 속칭 '바둑이' '맞고' '포커' 등의 도박게임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 등은 이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수수료 명목으로 판돈의 10.5%에 해당하는 1034억원을 챙긴 뒤, 이 가운데 10%가량을 김씨가 관리하는 본사가 차지하고 나머지는 부본사, 총판, 가맹점 등에 피라미드 방식으로 분배했다.
경찰은 이들이 챙긴 수수료 규모와 도박횟수 등을 감안할 때 전체 누적 판돈 규모가 985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4년 1300만년전 유인원 화석 일명 인류진화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스페인서 발굴
2004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고향에 ‘대통령 도서관’ 개관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을 기념하는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이 고향인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개관했다.
1만3935㎡ 규모인 이 도서관에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모형과 클린턴 정부 관련 사진 200만장, 문서 8000만부, 이메일 2100만통 등이 전시된다. 특히 클린턴이 재임 중 중동 평화를 위해 노력한 측면을 부각시켰으며,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을 다루는 데도 그 절반가량의 공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이 도서관은 스캔들 관련 전시장을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는 이름 하에 ‘박해의 정치’와 ‘새로운 대항의 문화’ 등의 섹션으로 구분, 스캔들의 배경에는 클린턴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공화당측의 노력이 깔려 있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2003년 알 카에다 미국과 이라크 파병에 동조하는 나라에 대한 테러 선언
2002년 한국기자협회 주최 제1회 재외동포기자대회 개막
1998년 금강산관광 1호선 ‘현대금강호’ 첫 출항
동해시 여객터미널. 실향민들의 꿈을 실은 금강호가 북한 금강산을 향해 출행했다. 금강산 관광 1호선인 현대금강호가 1998년 11월 18일 오후 5시43분 동해항을 출발, 4박5일의 일정으로 역사적인 첫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
현대금강호에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총지휘한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을 비롯한 현대 임직원과 관광객 8백89명, 승무원과 관광안내원 4백66명 등 모두 1천3백65명이 승선했다.
한반도 분단 이후 한국에 거주하는 일반인들이 관광 목적으로 북한지역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해항을 떠난 금강호는 19일 새벽 3시쯤 북방어로한계선을 통과, 출항후 10여시간이 지난 오전 4시쯤 북한 장전항에 도착해 구룡폭포, 만물상, 해금강 등 3개 코스로 나누어 관광한 후 22일 새벽 무사히 동해항에 도착했다. 이번 관광은 남북간 경제협력과 인적교류를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됐다.
1997년 우수 DB 대상 신설
1994년 한국-짐바브웨 국교 수립
1993년 駐호치민 한국총영사관 개설
1992년 유명우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다시 획득
1992년 한국-크로아티아 국교 수립
1992년 국립극장 대극장 가설무대 붕괴 연습단원 29명 부상.
1992년 한국-슬로베니아 국교 수립
1992년 옐친 러시아 대통령 방한
옐친 러시아 대통령 부부가 1992년 11월18일 사흘간의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했다.
옐친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두 나라 사이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우호관계를 강화해 나가자고 말했다.
두 나라 정상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두 나라간의 우호협력관계를 규정하는 한·러 조약에 서명했다.
옐친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한국전쟁과 KAL기 격추사건 등 불행했던 과거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사과의 뜻을 표시했다.
옐친 대통령은 또 한반도의 비핵화와 남북상호사찰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옐친 대통령 부인 라이나 여사는 별도 일정으로 서울 잠실 롯데월드와 경기도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 등을 둘러봤다.
1991년 평양에서 제5차 북한-일본 국교정상화 회담 열림
1991년 전 체코대통령 구스타프 후사크 사망
1988년 광주특위 청문회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를 위한 광주특위 청문회가 열렸다. 광주특위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약칭으로 1988년 7월 13일 구성된 바 있다.
청문회에서는 5.17비상계엄 확대조치가 일부 정치 군인들에 의한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취해졌을 가능성이 드러났으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조작여부, 광주사태에서의 미국의 역할, 공수부대의 지휘책임 등이 중점적으로 추궁됐다. 핵심적인 발포문제는 피해자측과 계엄군측 증인들 간에 주장이 엇갈려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의 과잉진압이 실제로 있었고 이것이 사태악화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여러 증인들에 의해 드러나기도 했다.
1987년 전국우표전시회 개최
1987년 일본 소니사, 미국의 CBS레코드사 인수
1982년 권투선수 김득구 사망
1982년 11월 1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데저트 스프링스 병원. 김득구(23살) 선수가 사망했다. 챔피언 레이 맨시니의 주먹에 의식을 잃은 지 99시간만이었다.
김 선수는 지난 11월 14일 미국의 라스베이가스 시저스팰리스호텔 특설링에서 벌어진 프로복싱 WBA(세계권투협회) 라이트급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인 미국의 레이 붐붐 맨시니(21)에게 14회 KO패 당한 후 의식을 잃고 데저트스프링스병원에서 긴급뇌수술을 받았다. 김선수는 수술 후 5일간의 처절한 생존투쟁과 갖가지의 의학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입원한지 99시간15분만인 이날 사망했다.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그는 14살 때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구두닦이, 껌팔이를 거쳐 서울 구로공단 보세공장에서 생존의 문제와 처절히 싸웠다. 16살에 시작한 권투는 지겨운 바닥생활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1982년 한국형 해군경비함 첫 진수
1978년 남미 가이아나서 사이비 종교단체 ‘인민사원’ 집단자살, 914명 사망
남미 가이아나의 밀림에 본부를 둔 사이비 종교단체 ‘인민사원(People‘s Temple)’ 신도 9백14명이 교주 짐 존스(James Warren "Jim" Jones)의 “이제 우리는 딴 세상에서 만날 순간이 왔다”는 ‘영생’ 선언과 함께 1978년 11월 18일 집단 자살 및 학살극을 빚었다.
이 집단촌은 원래 사회개혁이라는 좋은 목적으로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시작되었으나 남미의 가이아나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점차 교주를 중심으로 개인화와 우상화가 시작됐다. 존스는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자신이 구세주임을 자처하며 가이아나에 존스타운을 건설했다.
미 정부는 교주가 1천5백만달러나 소유하고 있고, 인민사원이 신앙을 빙자해 신도들에게 잔학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레오 라이언(Ryan) 연방 하원의원을 단장으로 한 조사단을 이곳에 파견했다. 조사차 파견된 라이언 하원의원과 NBC방송 기자 등 5명은 총에 맞아 숨졌다.
미 정부의 추궁이 두렵고, 또 한편으론 자신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고 믿었던 짐 존즈는 신도들과 함께 자살을 결심했다. 쿨 에이드(Kool-Aid) 오렌지 주스에 독약을 탄 다음, 신도들에게 마시게 했고, 어린이들과 개들한테는 주사로 독약을 주입했다. 이들의 자살은 단순한 자살이 아닌 무장한 경비원들에 의해 강요된 살인이라 볼 수 있다. 이 순간에도 스피커에서는 교주의 연설이 흘러나왔는데,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세상에 대항하는 개혁혁명이라는 내용이었다.
1977년 전 외무장관 최덕신 미국에 망명
1976년 문양자, 종별사격대회서 스탠다드권총부문 세계신기록 수립
197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전신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결성
민족문학작가회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약칭 자실)가 1974년 11월 18일 결성됐다.
자실은 처음 고은, 백낙천 등이 주축이 되어 김지하 시인 석방운동을 위한 모임을 몇차례 갖던 중 문인전체의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문인의 자발적 결사체가 필요해 탄생됐다.
창설 이후 1980년까지는 반유신 반독재 운동을 주로 했고 이후 1983년까지는 강제해산조치로 인해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중 1984년 학원자율화조치로 학생운동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재창립, 결성모임을 가지고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1972년 퀸 엘리자베스호 침몰
세계에서 가장 큰 호화 여객선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호 !
홍콩항에 머물던 중 갑자기 일어난 화재로 침몰위기에 놓인다.
일본 선박구조 전문가들이 엄청난 양의 퀸 엘리자베스호 연료를 뽑아낸다.
다행히 불길은 잡혔지만 퀸 엘리자베스호는 바다로 침몰하고 말았다
1970년 서독, 폴란드 국교정상화 가조인
1967년 영국, 파운드화 평가절하. 세계적 통화위기 촉발
1961년 문교부, 사립대 정비 일환으로 전국 12개교 폐지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증수회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정
1959년 서울 남산의 팔각정 준공
1958년 국가보안법 신안 국회에 제출-보안법파동의 시작
이승만 정권은 1958년 들어 진보당사건(1.20)과 KNA여객기납북사건(2.16) 등이 잇달아 터지자 간첩 색출과 반공체제 강화를 명분으로 국가보안법을 대폭 강화하는 개정안을 8월 11일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11월 18일에는 이 개정안에 언론규제조항까지 추가 삽입하는 2차개정안을 다시 제출했다.
간첩개념 확대, 불고지죄 엄벌, 변호사 접견 금지, 2심제 폐지, 언론보도 규제 등을 골자로 한 보안법은 헌법이 정하는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 요소가 많아 논란이 많았다.
민주당 소속 81명, 무소속 10명 등 야당의원 91명은 `보안법개악반대투위`를 구성하고 공청회와 옥외집회를 준비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집회자체가 불가능했다. 신문편집인협회도 연일 모임을 갖고 반대성명을 발표했으나 자유당은 요지부동이었다.
자유당은 마침내 12월 19일 오후 3시 국회 법사위에서 자당 국회의원만으로 법안을 3분 만에 날치기로 가결시켰고, 12월 24일 한희석 국회 부의장은 전격적으로 경호권을 발동, 무술경위 3백여명을 국회 본회의장에 투입한 후 보안법 개정안과 1959년도 예산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1957년 상용한자 1300자 채택
1957년 북한적십자사, 납북인사 337명의 명단 통고
1957년 캄보디아 영세중립국 선언
1955년 소련수뇌 일행, 인도 방문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 발효
1952년 작가 프루스트 사망
1952년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 작고
1952년 국어학자 일사 방종현 사망
1951년 여객선 남해호 진도앞바다서 침몰. 70명 사망
1943년 일본의 자연주의 소설가 도쿠다 슈세이 사망
1936년 독일-이탈리아, 스페인의 프랑코정권 승인
1934년 이탈리아의 추기경 가스파리 사망 - `교회법전`을 편찬
1928년 미키 마우스의 ‘증기선 윌리’ 개봉
20세기 만화영화와 캐릭터 산업을 이끌어온 ‘미키 마우스’가 탄생한 곳은 기차 속이었다. 1928년 아내 릴리와 함께 기차여행 중이었던 월트 디즈니는 문득 창고 속에서 궁핍하게 생활하던 시절, 그가 주는 빵부스러기를 받아먹어 친구처럼 지내던 쥐 ‘몰티마’를 떠올렸다. 몰티마의 모습에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채플린의 이미지를 덧씌우면 어떨까. 디즈니는 쥐의 이름을 ‘몰티마 마우스’로 지었다. 그러나 아내는 몰티마 대신 ‘미키’를 제안했고 그 순간 ‘미키 마우스’는 20세기 최고의 스타 자리를 예약했다.
그림은 동료 만화가 어브 아이워크가 형상화했다. 눈이 왕방울만하고 손에 장갑을 끼지 않은 미키 마우스는 먼저 단편영화 ‘미친 비행기’와 ‘갤러핀 가우초’에 등장했으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한 해 전 성공을 거둔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를 떠올린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에게 제 목소리를 찾아 주기로 하고 자신이 직접 미키의 목소리를 맡았다.
1928년 11월 18일, 미키 마우스가 등장한 최초의 유성 만화영화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가 뉴욕 콜로니 극장에서 개봉됐다. 영화는 개봉되자마자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 몰아닥친 세계대공황에도 미키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파산 직전에 있던 한 회사는 미키를 그려넣은 시계를 2년간 250만개나 팔아 디즈니에게 사례금을 지급했다. 미키 마우스는 캐릭터가 돈이 된 최초의 사례였다.
1922년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 세상 떠남
1905년 시민들 대한문 앞에 모여 을사늑약 파기 주장, 상가 철시
1903년 미국-파나마, 파나마운하 조약체결. 건설-운영-관리-보호에 대한 모든 권리를 획득
1901년 미국의 여론조사통계가 조지 갤럽 출생
1884년 우정총국, 우정업무 개시
조선 후기인 1884년(고종 21년) 11월 18일, 우리나라도 역참제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통신제도로 우체업무를 관장하는 관청인 우정총국을 개국했다.
이에앞서 개화기 선각자 홍영식은 일본과 미국 등을 둘러본 후 근대 우정제도 도입이 절실함을 느끼고 고종에게 건의하여 1884년 4월 22일 우정총국직제를 공포했다.
우정총국 청사는 견평방(堅平坊)에 있던 전의감(典醫監)을 고쳐 사용하였고, 병조참판 홍영식을 우정총판으로 임명했고, 박영효 등 15명이 사사(司事)가 되어 사무를 분담했다. 우정총국과 인천분국이 먼저 개국하여, 최초의 근대우표 5문, 10문의 2종이 발행됨으로써 한국최초의 근대식 우편업무가 시작되었다. 이는 비록 일본보다는 10년 뒤쳐졌지만 청국보다는 앞선 것이었다.
조선정부는 일본, 영국, 홍콩 등과 우편물교환약정을 맺고 우정업무를 개시했으나 12월 4일 우정총국 청사개업 축하연날 갑신정변이 발발하여 12월 9일 문을 닫았다. 1895년 우체사가 개국할때까지 조선은 역참제를 다시 이용했어야 했다.
1884년 국내 최초 우표 발행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세계 최초의 우표가 탄생된 지 44년 후인 1884년 11월 18일 홍영식 선생에 의해 5문과 10문(문(文):당시 화폐단위) 2종의 우표가 발행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행정 기관인 우정총국884년 오늘 문을 열었다. 이전까지는 일정한 지역마다 기관을 두고 사람과 말을 배치해, 전령(명령을 전하는 사람)이 전달한 문서를 릴레이식으로 전달하는 역참제(驛站制)였다. 조선은 처음으로 일본·영국·홍콩 등 외국과 우편물 교환 협정을 맺었다. 5문·10문(문은 당시의 화폐단위) 2종의 우표도 발행했다.
문위우표는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서 인쇄도었다
그러나 12월 4일 청사 개업 축하연에서 벌어진 갑신정변으로 최초의 우편행정기관은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12월 9일 문을 닫아야만 했다. 이후 1895년 우체사가 설치될 때까지 조선은 다시 옛 방식인 역참제를 운영했다
1895년에는 미국에서 인쇄된 태극우표
1897년 가쇄우표
1900년〜2001년은 이화소형우표 등이 발행되었다
1946년 이후 1992년 12월말까지 발행된 우표는 모두 1,707종이며, 현재 정보통신부에서 발행한다
1727년 이란 타브리즈에 지진 사망 77,000명
1626년 로마, 베드로 대성당 봉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