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대본]
시그널
Bgm start
조선의 심장, 경복궁을 걷다
안녕하세요, 청취자 여러분. <박선영의 라디오 시간여행> 박선영입니다.
5월의 싱그러운 바람을 따라 걷다 보면, 문득 세월이 멈춘 듯한 고요한
공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죠. 오늘은 시간 여행자가 되어, 우리 역사의
숨결이 가장 깊게 살아 숨 쉬는 곳으로 함께 떠나보려고 합니다."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 '경복궁'이 오늘 우리 답사의 목적지입니다.
편안하게 차 한 잔 옆에 두고, 600년전 한양의 거리를 상상하며 저와 함께
걸어가 보시죠.
Bgm end
오늘은 색다르게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음악을 먼저 듣고 제1부로
가겠습니다. 토토의 Africa ( 3분 20초 )
제1부: 좌묘우사와 경복궁의 탄생
새로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새로운 도읍지로 정하면서
가장 먼저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이때 기준이 된 것이
바로 '군주남면', 즉 '왕은 항상 남쪽을 바라본다'는 풍수지리 원칙이었습니다.
이 원칙에 따라 남쪽을 바라보는 왕의 왼쪽, 즉 동쪽에는 왕의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묘'를 지었고, 왕의 오른쪽인 서쪽에는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이라 하여 '좌묘우사'라고 부릅니다.
종묘와 사직은 단순히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넘어, 백성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고 나라의 근본을 지탱한다는 거대한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극을 보면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옵소서!"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때 종묘사직은 나라 그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답니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일 년에 다섯 차례 제사를 올리는 유교적 효의 상징이었고 , 농업을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사직단은
땅과 곡식의 신성함을 기리는 가장 거룩한 제단이었습니다.
rockwell 이 부릅니다. 나이프 ( 5분 9초) /큐
제2부: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과 동십자각
이제 본격적으로 궁궐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한양의 한복판, 남산과
인왕산, 백악산에 둘러싸인 아늑한 길을 걷다 보면 장엄하게 솟아오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을 만나게 됩니다.
경복궁은 완공된 지 며칠 후, 개국공신 정도전이 태조의 명을 받아
문들과 전과 각의 이름을 지었는데요.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다'라는 축복의 뜻을 담아 '경복(景福)'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궁궐의 문인 광화문에는 참 눈물겨운 수난의 역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1395년 태조 때 처음 세워진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겨우 재건되었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강제로
철거되어 옆으로 옮겨졌다가, 설상가상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또다시
소실되고 맙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당당한 광화문의 모습은
1968년에 이르러서야 제 모습을 찾은 아픈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광화문을 보실 때 궐의 끝자락을 보시면, 길 한가운데 홀로 외롭게
서 있는 돌탑 같은 건물을 보실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동십자각'입니다. 원래 경복궁은 전면 담장 양끝 모퉁이에 망루인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세워 궐의 위엄을 갖추었던 유일한 궁궐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십자각은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고, 동십자각은 도로가 확장되면서 담장이 안으로
밀려나는 바람에 지금은 슬프게도 외로운 섬처럼 도로 한가운데 갇혀
있게 되었답니다. 지나치기 쉬운 작은 건물이지만, 그 안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괜스레 마음이 아려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음악 듣고 3부로 가겠습니다.
스팅이 부릅니다. shape of my heart ( 4분 39초 )
제3부: 정치를 하던 곳, 그리고 왕과 왕비의 침전
이제 문을 지나 임금님이 계시는 궁궐의 심장부로 들어가 봅니다.
가장 먼저 마당에 거칠고 울퉁불퉁한 돌들이 깔린 '근정전'이 나타납니다. 근정전은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절을 맞이하던 최고 으뜸 전각인데요. 바닥에 깔린 이 못생긴 돌들을 '박석'이라고 부릅니다. 왜 매끄러운 돌을 쓰지 않고 울퉁불퉁한 돌을 썼을까요? 여러 설이 있지만, 한여름 떵떵거리는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는 것을 막고, 장마철에 물이 자연스럽게
.틈새로 흘러가도록 만든 조상들의 놀라운 지혜가 숨어 있답니다.
근정전을 지나 뒤로 가면 왕이 평소에 신하들과 공부를 하고 정사를 보던 편전인 '사정전'이 나옵니다. 정도전은 이 이름을 지으며 '천하의 이치를 깊이 생각하고 세밀히 살피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임금이라는 자리는 잠시도 생각을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는 무거운 경고였던 셈이죠.
사정전을 돌아 더 깊숙이 들어가면, 향오문이라는 문을 지나 드디어
궁궐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침전 영역'이 나옵니다. 왕의 침전인 '강녕전', 그리고 그 뒤편으로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두 건물은 구조가 거의 똑같지만 아주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붕 꼭대기에 하얀 '용마루'가 없다는 점입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민간에서는 흔히 '왕 스스로가 용(龍)인데, 지붕 위에 또 다른 용을 얹을 수 없다' 하여 용마루를 만들지 않았다는 아주 낭만적인 설이 전해져 내려온답니다.
그리고 왕비의 거처인 교태전 뒤편에는 아주 특별한 정원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산의 이름을 딴 인공 언덕, '아미산'입니다.
평생 구중궁궐 밖을 나가지 못하고 갇혀 지내야 했던 외로운 왕비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화초를 심고 호수를 상징하는 석함을 두어 작은
자연을 선물한 것이지요. 온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빠져나가는 길조차
아름다운 십장생 문양의 굴뚝으로 꾸며놓은 것을 보면, 당시 왕비를 향한 섬세한 배려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음악듣고 4부로 가겠습니다
ELO가부릅니다. ticket to the moon ( 4분 08초)
제4부: 연회의 공간 경회루, 그리고 아픈 역사 건청궁
이제 분위기를 바꾸어 넓은 연못가로 가보겠습니다. 경복궁의 건축 미학의 절정이라 불리는 '경회루'입니다. 신하들과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을 대접하던 웅장한 누각이죠.
우리가 일상에서 돈을 마구 쓰거나 흥에 겨워 노는 모습을 보고 '흥청망청'이라는 말을 쓰지요? 이 말의 유래가 바로 이 경회루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연산군 시절, 전국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뽑아 '운평'이라 부르고 그중 궁궐로 뽑혀 온 기생을 '흥청(興淸)'이라 불렀는데요. 연산군이 이곳 경회루에서 흥청들과 함께 국고를 탕진하며 유흥을 즐기다 보니, 결국 '맑음을 일으킨다'는 뜻의 흥청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청'이 되었다는 씁쓸한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경치만큼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지만,
권력의 덧없음을 경고하는 역사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경회루를 지나 경복궁의 가장 한적한 북쪽 끝으로 올라가면, 고종이
거처하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은 '건청궁'이 나옵니다. 다른 전각들과
달리 단청을 칠하지 않아 여느 사대부 집처럼 소박하고 단아한 멋이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조선 말기 비극적인 잔혹사가 일어난 장소이기도 합니다. 1895년, 일본인들이 궁궐을 습격하여 명성황후를 무참히 시해한 '을미사변'이 바로 이 건청궁 안의 곤녕합 옥호루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한가로운 휴식을 꿈꾸며 지은 공간이 나라의 가장 큰 슬픔을 목격한
장소가 되었다는 점이 참 역사의 아이러니이지요. 오랜 시간 철거되어
방치되었다가 2006년에 와서야 다시 복원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보이조지의 the crying game (3분 24초)
을 들으며 이번 방송은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저와 함께 걸어본 경복궁 답사, 어떠셨나요? 화려한 왕실의 번영을
꿈꾸며 출발했지만, 불타오르고 허물어지면서도 끝내 기어이 제 자리를
지켜낸 우리 문화유산들의 단단한 자아가 느껴지진 않으셨는지요.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는 만큼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다음에 경복궁을 걸으실 때는, 오늘 나눈 이야기들을 주머니 속에 쏙 넣어 가셔서 댓돌 하나, 박석 하나에 담긴 숨결을 온전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박선영의 라디오 시간여행>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창덕궁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평온하고 고요한 저녁 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