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넘어서 영광으로
2024. 4. 14(주일낮예배) 고린도전서 8:1-13
코비 퍼신이라는 한 남자가 흥미로운 실험을 하였다. 코비 퍼신은 자신의 몸에 돈을 붙이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세요 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돈을 얼마나 떼어 가겠는가? 조깅을 하던 한 남자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정말 가져가도 되느냐?고 묻고 몇 장을 가져 갔다. 뒤따라 마주친 고급양복을 입은 사람은 몇 십장의 지폐를 가지고 갔다. 그리고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가진 여자는 아주 많은 지폐를 떼고 있었다. 그래서 코비 퍼신은 당신도 돈이 필요하냐? 하고 물었다. 그때 그 여자는 네일 아트를 받아야 한다고 대답하고 떠나갔다. 이제 이 남자는 장소를 바꾸어 노숙자들이 있는 공원으로 갔다. 그리고 노숙자들에게 자기 몸에 붙어 있는 돈을 떼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랬더니 거의 대부분이 1, 2장을 떼어갔다. 따뜻한 커피 한자, 간단한 식사 한끼 할 정도의 돈만 가지고 간 것이다. 남자는 그러한 노숙자들에게 돈을 더 가져가도 된다고 했지만, 그들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직 못받은 분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인사를 하고 떠났다.
여러분은 이 코비의 실험을 통하여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우리는 돈이 많으면 돈에서 자유할 줄 안다. 그런데 코비의 실험을 보면 돈이 많을수록 오히려 돈에 더 얽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실험을 한 코비도 똑같은 말을 한다.
돈이 많고 좋은 옷을 입고 명품을 지닌 사람들보다 오히려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남을 배려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이 돈을 가지고도 돈에 얽매여 살고 있지 않는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가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는 것이었다. 이렇게 교제하고 떡을 떼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서로 물건을 통용하였다. 그래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소유을 팔아 사도들에게 맡긴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예루살렘 교회에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에 두었다. 바나바는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고 또 식사의 떡을 떼는 것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밭을 팔아서 헌신한 것이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자신의 소유였던 땅을 팔았다. 그리고 사도의 발 앞에 소유를 판 값을 내어 놓았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죽임을 당한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죽었다는 것이다.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죽었겠는가? 사도행전 5장 4-5절을 읽기 바란다.
(행 5:3-4)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없더냐?하고 책망한다. 하나님이 아나니아에게 땅을 주었다. 그러므로 아나니아는 그 땅을 팔 수도 있고, 계속 소유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땅을 주었기 때문에 그 땅에 대한 자유와 권리를 아나니아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탄이 마음이 가득했던 아나니아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권리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속임으로 아나니는 죽임을 당한 것이다.
얼마나 바보같은 모습인가? 대동백화점 맡은 편에 있는 창원센트럴파크아파트에 제가 아파트 2채 분양을 받았다. 한 채는 1층이고, 한 채는 35층인데 여러분에게 만약 한 채를 거저 준다면 여러분은 어느 층의 아파트를 받고 싶은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다 35층을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35층이 더 비싸고, 또 조망권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홍익대 교수이고, 건축가인 유현준 교수님은 1층에 살면 나는 다른 사람의 집을 볼 수 없고, 다른 사람은 우리 집을 볼 수 있다. 그런데 35층은 다른 사람은 우리 집을 볼 수 없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집을 볼 수 있기 때문에 35층을 선택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래서 모든 팬트하우스는 꼭대기층에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것 같은가? 유현준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친구 중에 소위 성공한 친구가 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대단한 친구가 아니었는데, 사회생활을 잘하여 성공한 친구를 만나 도곡동 타워팰릭스 팬트하우스에 가게 되었다. 그때 주차장에서 경비 아저씨가 막고, 엘리베이트에서 인터폰으로 막는다. 그리고 엘리베이트를 탔는데 1층에서 멈추었다. 그래서 로비에서 다시 체크를 하고 친구 집으로 올라갔다. 그때 교수님은 이 녀석 성공했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세상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높은 집에 살고, 또 자신을 만나기 위한 절차가 복잡한 사람은 성공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공한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이 땅을 주어서 그 땅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또 팔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밭을 팔았으면 그 판 값을 은행에 저금할 수도 있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권리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사탄이 마음에 가득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였던 것이다.
얼마나 안타까운가? 고린도교회는 할례문제, 우상숭배한 음식문제, 결혼과 재혼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한구절 묵상 나눔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할례문제는 그 당시에 제한된 것이었다면 음식의 문제와 음행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술을 마셔도 되는가? 마시면 안되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한다.
그리고 결혼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남녀 청춘이 결혼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별이나 이혼을 한 분이 재혼을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가진 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제일 많이 본다.
이것이 옳은 모습인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우상숭배한 음식에 관한 논쟁이다.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국가적인 행사나 축제가 되면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함께 먹으면서 축제를 베풀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위는 죄악이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모든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자유롭게 먹을 수 있고, 또 사회적 신분이 있는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우상숭배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먹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뭐라고 대답하는가? 고린도전서 8장 8절-9절을 읽기 바란다.
(고전 8:8-9)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바울은 우상숭배한 음식은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음식이므로 내 자유와 권리로 내가 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약한 자가 걸려 넘어지게 된다면 먹지 말라고 말한다. 아니 바울은 만일 내 형제가 실족하게 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겠다(13절)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에 대하여 나는 내 임의대로 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권리를 자신이 아니라, 이웃과 형제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웃과 형제의 신앙에 유익이 되는 것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가?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임의대로 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능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에 빠진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서 우리를 구원하는데, 그 자유와 권리를 다 사용하였다.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능력으로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 한번도 자신을 위하여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40일 금식으로 기도한 예수님은 마귀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이 떡덩이 되게 하라는 말을 듣고도 떡덩이가 되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억지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지어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백성된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을 임의대로 쓸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제 그 자유와 권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최초의 사람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로 무너진 것과 다르게, 하나님이 주신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쓸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억하기 바란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도전을 주고 있다. 바울이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읽기 바란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