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대사상 세미나 8. 29. 전원배 선생님 발제 동영상과 발제문입니다.
신좌파는 무엇을 해체하였는가?
−신좌파의 탄생과 확산, 그리고 퇴조−
전 원 배(노동당)
서론: 사상은 진공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상 체계의 탄생과 쇠퇴를 추적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사상은 철학자의 머릿속에서 독립적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특정한 생산양식, 계급관계, 정치적 패배와 승리, 국가형태, 국제질서, 그리고 당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변화를 토양으로 삼는다.
신좌파(New Left)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대학 강의실에서 발명된 것이 아니라,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이 겪은 구체적인 역사적 파산과 물질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이 글은 그 필연성을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신좌파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 제공자인 구좌파—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와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를 비판하되, 후자에 대해서는 단순한 '이념적 결함론'을 넘어 고립된 일국혁명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압력 속에서 겪은 구조적 질식의 과정으로 재해석한다.
나아가 신좌파의 철학적 동반자였던 포스트모더니즘 삼총사(데리다·리오타르·푸코)의 실질적 공헌과 그것이 공허한 추상으로 전락한 지점을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2026년 현재의 세계정세—미국 패권의 구조적 위기와 AI가 제기하는 새로운 계급문제—속에서 혁명적 사상이 어떻게 자기혁신하며 신좌파의 긍정적 요소를 지양(止揚)하는 동시에, 일국 사회주의라는 낡은 성채 모델을 넘어 세계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라는 국제주의적 전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서술한다.
Ⅰ. 신좌파 등장의 역사적 필연성
1. 1956년 — 공산주의 세계의 도덕적 단층
신좌파를 이해하려면 1968년보다 먼저 1956년을 보아야 한다. 1956년 2월 25일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의 비공개회의에서 니키타 흐루쇼프는 「개인숭배와 그 결과에 대하여」라는 이른바 '비밀연설'을 통해 스탈린의 대숙청과 개인숭배, 당내 테러를 폭로했다. 연설 자체보다 더 파괴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였다. 1930년대 이후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상당 부분은 소련을 노동자국가의 중심이자 파시즘을 패배시킨 국가로 인식해왔는데, 바로 그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이전 지도부의 범죄를 스스로 폭로한 것이다.
같은 해 10월 23일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된 학생시위는 전국적 봉기로 확대되었고, 11월 4일 소련군의 대규모 군사개입으로 진압되었다. 약 20만 명의 헝가리인이 국외로 탈출했다.
이 두 사건은 서유럽 공산주의자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강요했다—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는 같은 것인가? 영국공산당과 프랑스공산당 내부에서 상당한 이탈이 발생했고, 바로 이 균열 속에서 '소련도 싫고 자본주의도 싫다'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이것이 1950년대 후반 영국의 New Left Review 계열과 이후 미국·프랑스 신좌파 사상으로 연결되는 결정적 배경이다.
2. 포드주의 황금기와 진지전으로의 전환
1945년 이후 서구 자본주의는 전혀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영국은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궁핍·질병·무지·불결·나태라는 '다섯 거인'을 제거할 복지 청사진을 제시했고, 1948년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출범시켰다. 프랑스는 1945년 사회보장제도를, 독일은 전후 사회적 시장경제를 구축했다. 프랑스에서는 이 1945~1975년의 시기를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이라 부른다.
존 러기가 1982년 '내재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라 명명한 이 체제 속에서, 서유럽 노동계급의 상당 부분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이전보다 훨씬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게 되었다. 혁명의 조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혁명의 형태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면 '기동전'보다 '진지전'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신좌파는 바로 이 새로운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3. 1962년 포트휴런에서 1968년 파리로
미국 신좌파의 상징적 문서는 1962년의 「포트휴런 선언」이다. SDS(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연합)는 당·규율·중앙위원회·전위·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구좌파의 어휘 대신, 참여·소외·자기실현·인간적 관계·일상생활이라는 전혀 새로운 어휘를 중심에 놓았다.
1968년 프랑스에서 이 변화는 폭발했다. 학생시위는 노동자 총파업과 결합했고, 약 700만~1천만 명의 임금노동자가 참여한 20세기 프랑스 최대 총파업이 벌어졌다. 그러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이 역설—구좌파적 조직 형태로는 더 이상 대중을 동원할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체제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은 실재했다는 역설—이 신좌파가 필연적으로 채워야 했던 공백이었다.
Ⅱ. 구좌파 비판 (1):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 '순치된 반란'의 함정
구좌파의 첫 번째 계보인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는 전후 프랑스·독일·영국 등에서 복지국가로 구현되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전복을 포기하고 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통합하는 계급 타협을 선택했다. 노동조합은 합법화되었지만 동시에 관료화되었고, 임금노동자는 '동반자'가 되었지만 생산수단의 소유관계 자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경우 이미 1899년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논쟁—운동 자체가 전부이며 최종 목적은 부차적이라는 주장—에서 그 이론적 항복의 씨앗이 뿌려졌으며, 이는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계급정당의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폐기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프랑스 공산당(PCF)조차 1970~90년대를 거치며 혁명적 강령을 사실상 포기하고 선거주의적 개혁정당으로 순치되었다. 복지국가는 '자본의 선의'가 아니라 노동계급 투쟁과 소련이라는 대안 체제의 존재가 만들어낸 전리품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혁명적 에너지를 국가 관료기구와 협상 테이블 속으로 흡수해버리는 강력한 진정제로 기능했다. 신좌파는 이 '순치된 반란'—체제 안에서 안락하게 길들여진 노동운동—에 대한 정당한 반란이었다.
Ⅲ. 구좌파 비판 (2): 고립된 혁명의 구조적 질식 —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의 재해석
4. 『자본론』의 추상 모델과 세계체제의 현실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를 단순히 '이념 자체의 내재적 불가능성'으로 설명하는 통속적 '사회주의 실패론'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닫힌 사회, 자본가·노동자 두 계급만의 존재, 상품의 완전한 실현이라는 방법론적 추상 위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내재적 법칙을 해명한 저작이다. 이 추상은 자본주의의 내적 구조를 해명하는 데 필수적이었지만, 후대의 일부 마르크스주의 해석은 이 논리적 모델을 자본주의의 실제 역사적 형성 과정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 자신은 이미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가 세계적 교류와 생산력의 보편적 발전을 전제하지 않고 지역적 현상으로 고립된다면 그 지역적 공산주의는 세계적 교류의 확대 자체에 의해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세계사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듯, 공산주의라는 그들의 실천 역시 세계사적 규모로만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통찰은 훗날 러시아혁명의 운명을 이해하는 결정적 이론적 단서가 된다.
현실의 자본주의는 평화로운 시장 교환의 자연스러운 축적이 아니라 원거리 무역·금융 혁신·해상 전쟁·식민 통치·노예제·공공 부채와 함께 탄생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축적론』에서, 자본주의가 내부 시장만으로는 지속적 확대재생산을 할 수 없으며 식민지·변경·전쟁·부채 체계라는 비자본주의적 외부 공간을 끊임없이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재생산 이론 자체는 논쟁적이지만, 자본주의가 처음부터 폐쇄 체계가 아니라 세계체제적 운동이었다는 그녀의 역사적 직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월러스틴의 중심-반주변-주변 이론과 아리기가 『장기 20세기』에서 제시한 베네치아-제네바-네덜란드-영국-미국으로 이어지는 패권 순환론 역시 이 문제의식을 계승한다.
5. 러시아혁명의 고립 — 내전·전시공산주의·관료화
1917년 러시아혁명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노동계급의 이름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계사적 사건이었지만, 선진 자본주의의 중심부가 아니라 노동자가 전체 인구의 약 3%에 불과했던 낙후된 농업국가에서 일어났다. 혁명 지도부가 독일혁명과 유럽혁명을 간절히 기다린 것은 냉철한 현실 판단이었다—고립된 러시아 단독으로는 사회주의 건설을 완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혁명은 좌절했고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는 학살되었다. 세계혁명은 오지 않았고, 러시아혁명은 처절한 고립에 빠졌다.
혁명 직후 러시아는 독일과의 전쟁, 이어 영국·프랑스·미국·일본 등 열강의 무력간섭과 봉쇄에 직면했다. 빅토르 세르주가 목격한 혁명 직후의 페트로그라드는 혁명적 열정의 도시라기보다 추위와 기근에 시달리는 도시였다. 전시공산주의는 포위된 혁명국가의 생존전략이었으나, 비상수단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일상적 통치방식으로 제도화되었다. 혁명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국가를 강화했고, 강화된 국가는 점차 혁명 대중의 자치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관료기구로 전화했다.
1921년 크론슈타트 수병 봉기는 자본주의 복귀가 아니라 소비에트의 재선거와 언론·집회의 자유, 정치범 석방을 요구한 것이었다—혁명 이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관료화된 국가 속에서 왜곡된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같은 시기 탐보프 농민봉기는 강제 곡물징발에 대한 광범위한 반발이었고, 신경제정책(NEP)은 이 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후퇴이자 조정이었다. 1920년대 말 이후 스탈린 체제의 강제 산업화와 농업 집단화는 국제적 사회주의 분업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내 농민에 대한 강제적 수탈을 통해 이루어졌고, 1930~33년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등지의 대기근이라는 비극적 결과를 낳았다. 소련의 산업화는 사회주의적 풍요의 실현이 아니라, 고립된 국가가 세계 자본주의와 경쟁하기 위해 강행한 기형적 산업화의 길이었다.
빅토르 세르주는 스탈린주의라는 하나의 결과만으로 러시아혁명 전체를 판단하는 태도를 강하게 경계했다—볼셰비즘 안에는 스탈린주의로 귀결될 씨앗도 있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여러 가능성의 씨앗들도 함께 존재했다는 것이다.
러시아혁명의 비극은 볼셰비즘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내전·국제적 고립·경제적 낙후·세계혁명의 실패·국가기구의 무한팽창이 함께 작용한 역사적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요컨대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착취를 국가적 착취로 대체했을 뿐 노동자의 실질적 해방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그 근본 원인은 이념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봉쇄·고립된 일국혁명이 세계시장·제국주의 포위·군사경쟁·기술낙후라는 조건에서 겪은 구조적 질식이었다. 신좌파가 이 체제에 등을 돌린 것은 배신이 아니라 정당한 역사적 통찰이었다.
6.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해체 — 중소분열과 진보도 사건
고립된 혁명이 관료 국가로 굳어지는 과정의 논리적 귀결은, 혁명 국가들 사이의 관계 자체가 계급적 연대에서 민족국가 간 세력균형 논리로 퇴화하는 것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은 '일변도' 노선으로 소련 진영에 합류했지만,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과 '평화공존' 노선을 계기로 양국의 갈등은 이론 논쟁을 넘어 국가안보와 국제노선의 전면적 충돌로 발전했다.
1958년 소련의 장파 방송국·연합함대 제안은 중국에서 주권 침해로 받아들여졌고, 1960년 7월 소련은 주중 전문가 약 1,390명을 소환하고 343건의 기술원조 계약과 257건의 과학기술 협력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이후 '자력갱생'은 중국의 핵심 국가노선이 되었지만, 그것은 세계사회주의 분업 속의 공동건설이 아니라 고립된 국가의 방어적 동원이었다.
1969년 3월 우수리강의 진보도(다만스키 섬)에서, 이어 같은 해 8월 서쪽 국경 철레케티 지역에서 중소 양국 군대는 실제로 무력 충돌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 소련은 중국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 가능성까지 검토했다.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두 대국이 서로를 잠재적 핵 타격 대상으로 간주했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주의 원칙이 국가안보 논리에 완전히 굴복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웅변한다.
이후 중국이 1972년 닉슨 방중과 상하이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에 접근하고 소련을 견제하는 길을 선택한 것은, 고립된 혁명국가가 결국 지정학적 현실주의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논리적 종착점이었다. 진보도의 포성은 20세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민족국가 안보논리·대국주의·군사경쟁 속에서 스스로 해체되어간 역사의 상징이다.
1978년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은 소련식 경직과 붕괴는 피했지만, 세계은행 통계로 약 8억 명이 빈곤에서 벗어난 성과의 이면에서 시장화·불평등 확대·주거와 의료의 상품화·노동관계의 자본화라는 대가를 치렀다.
소련은 경직 속에서 붕괴했고 중국은 세계시장 통합으로 생존했지만, 어느 쪽도 일국 사회주의의 역사적 한계를 진정으로 돌파하지는 못했다. 이는 일국 사회주의 딜레마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다른 표현일 뿐이다.
Ⅳ. 포스트모더니즘 삼총사: 데리다·리오타르·푸코의 공과
7. 데리다 — 해체의 공헌과 정치적 주체의 증발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1967)가 남긴 실질적 공헌은 구좌파의 경직된 목적론적 역사철학—단일한 진보 서사가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로 귀결된다는 믿음—을 해체했다는 데 있다.
"il n'y a pas de hors-texte"(텍스트 밖은 없다)는 명제는 흔히 오해되듯 '객관적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는 과정이 언제나 맥락과 기호체계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가깝다. 이는 스탈린주의적 정통 교리의 절대적 확실성을 무너뜨리는 유효한 무기였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데리다적 해체는 공허한 추상으로 전락할 위험을 내장하고 있었다. 의미·주체·보편성이 끊임없이 유예되고 해체된다면, 어떤 통일된 정치적 주체가 자본에 대항하여 조직될 수 있는가?
계급/자본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이항대립조차 '본질주의'로 낙인찍혀 해체의 대상이 될 때, 정치적 결단과 조직적 행동은 언제나 '더 많은 해체'를 요구받으며 무한히 유예된다. 데리다의 후계자들의 손에서 해체는 혁명적 실천을 마비시키는 철학적 알리바이로 굳어졌다.
8. 리오타르 — 거대서사 비판의 통찰과 시장 정당화로의 미끄러짐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1979)에서 제기한 '메타서사에 대한 불신'은, 소련식 국가사회주의가 '역사의 필연적 법칙'을 참칭하며 저지른 폭력을 목격한 세대에게 충분히 정당한 지적 방어기제였다.
그러나 리오타르는 진리의 정당화 기준을 시장적 효율성 기준인 '수행성'으로 대체함으로써, 의도와 무관하게 매우 위험한 문을 열어놓았다. 1979년은 대처가 영국 총리가 된 해이며 이듬해 레이건이 당선되었다.
진리·정의·해방이라는 비판적 보편성이 모두 해체된 자리에 결국 단 하나의 보편성—시장—만이 남게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9. 푸코 — 미시권력의 위대한 발견과 계급 분석의 실종
푸코의 위대함은 권력을 국가나 자본가의 명령 하나로 환원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감옥·병원·학교·성·지식이라는 일상적 제도 속에서도 권력이 작동한다는 통찰은 구좌파의 조야한 경제결정론이 포착하지 못했던 억압의 영역을 전면에 드러냈다.
그러나 권력이 모든 곳에 존재한다면 중심적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국가권력과 금융자본, 소유관계의 문제가 수많은 미시적 권력관계 가운데 하나로 내려앉을 위험이 발생했다.
푸코의 1978~79년 강의 『생명정치의 탄생』이 독일 질서자유주의와 미국 신자유주의를 결코 완전히 적대적이지 않은 어조로 분석한 대목, 그리고 1983년 인터뷰에서 개인의 '책임화'를 긍정한 대목은, 다니엘 자모라 등의 연구자들에 의해 그의 후기 사상이 신자유주의와 일정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는 논쟁의 근거가 되어왔다. 미시권력 분석이 계급과 국가권력의 총체적 분석을 대체하는 이론으로 오용될 때, 그것은 위대한 발견에서 공허한 추상으로 전락한다.
Ⅴ. 2026년의 세계정세: 미국 패권 위기, AI, 그리고 혁명사상의 자기혁신
10. 자본은 비판을 먹고 자란다 — 신좌파 언어의 상품화
볼탕스키와 시아펠로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1999)에서 보여주었듯, 1968년 세대가 요구했던 자율성·창조성·수평적 네트워크는 1980~90년대 신자유주의적 경영관리에 의해 고스란히 흡수되었다.
1981년 미국 PATCO 파업 진압(11,345명 해고)으로 상징되는 노동운동의 조직적 패배와, 거의 같은 시기 미국 대학에서 확산된 프렌치 시어리의 문화적 승리가 겹치는 지점에서, 계급투쟁의 사회적 기반이 후퇴하는 동안 문화투쟁의 언어가 팽창하는 역설이 완성되었다.
11. 21세기 미국 패권의 구조적 위기
룩셈부르크의 문제의식을 오늘에 적용하면,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지구 전체를 포괄하여 외부 공간이 소진될수록 위기는 중심부 내부로 역류한다. 미국은 기축통화 달러체제, 군산복합체, 플랫폼 자본주의, 디지털 감시체제의 중심으로서 21세기에 제조업 쇠퇴·부채 팽창·사회 양극화·정치적 분열·국제적 정당성 하락이라는 다중 위기에 직면해 있다.
월러스틴의 중심-반주변-주변 이론과 아리기가 『장기 20세기』에서 제시한 금융확장-산업이전-패권쇠퇴의 장기순환론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의 금융화·산업 공동화·부채팽창·달러패권 위기는 서로 무관한 현상이 아니라 세계체제 중심국가가 쇠퇴 주기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종합적 표현이다. 미국의 위기는 일국의 쇠퇴가 아니라 세계체제 자체의 위기다.
12. AI 시대의 새로운 계급문제
여기에 전혀 새로운 변수가 겹친다—인공지능이다.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기계에 관한 단편'에서 예견했던 문제, 즉 과학과 사회적 지식이 생산의 직접적 힘이 될 때 노동시간을 가치의 유일한 척도로 삼는 체제와 실제 생산력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이 AI에 의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재점화되고 있다.
다만 자동화가 곧바로 자본주의 붕괴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결정적 문제는 자동화의 속도 자체가 아니라 소유관계—누가 AI 모델을, 데이터센터를, 반도체를, 데이터와 로봇과 에너지를 통제하는가—라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폴라니가 말한 세 가지 허구적 상품(토지·노동·화폐)에 이제 데이터와 인간의 인지활동이라는 새로운 대상이 추가되고 있으며, 이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이후 또 하나의 거대한 전환일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21세기 자본주의는 지구 전체를 생산·금융·데이터·물류·군사 네트워크 안에 편입시켰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이상 일국 범주로만 이해될 수 없는 세계사적 계급이 되었다.
100년 전과 비교해 오늘날 '일국 이탈'과 '일국 사회주의 건설'의 난이도는 훨씬 높아졌지만, 세계혁명의 객관적 연계망은 오히려 더 촘촘하게 현실화되었다. 이 역설이야말로 21세기 사회주의 전략이 반드시 세계적 수준에서 재구상되어야 하는 이유다.
13. 신좌파의 지양(止揚) — 해체를 넘어 재구축으로
신좌파를 단순히 실패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구좌파가 보지 못했던 여성 억압·인종주의·식민주의·성적 억압·일상의 권력이라는 문제들을 정치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신좌파는 억압의 형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 모든 형태를 하나로 결합시킬 구조적 중심축—생산관계와 계급—을 점차 잃어버렸다.
필요한 것은 구좌파로의 단순한 회귀도 신좌파의 전면적 폐기도 아닌 변증법적 지양이다. 여성해방을 말한다면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면 주택·임금·실업의 구조를, 성소수자 해방을 말한다면 의료·노동권·주거권을 함께 말해야 한다. 즉 정체성의 폐기가 아니라 정체성의 물질화(materialization)다.
낸시 프레이저가 지적했듯, 재분배의 정치가 인정의 정치로 대체될 때 좌파 정치는 '진보적 신자유주의'라는 함정에 빠진다. 2026년 현재 세계는 AI로 인한 노동 대체, 미국 패권의 구조적 위기, 기후위기, 금융자본의 팽창, 지정학적 블록화라는 중첩된 위기 속에 있다.
혁명사상이 자기혁신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계급을 여성·이주노동자·플랫폼노동자·인지노동자까지 포함하는 확장된 개념으로, 보편성을 차이를 내부에 포함하는 보편성으로, 진리를 권위주의적 교리가 아니라 과학과 토론에 열려 있는 진리로 재구축하는 것이다.
결론: 일국 사회주의를 넘어 세계사회주의연방공화국으로
신좌파는 스탈린주의의 권위, 경제결정론, 전위당의 절대성, 유럽중심주의를 해체했다. 그 해체는 상당 부분 필요했고 정당했다. 그러나 해체 이후 무엇을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신좌파는 개인·정체성·담론·차이라는 파편들만을 남겼고, 이 개인화된 인간—자기 자신의 기업가—이야말로 신자유주의가 가장 필요로 하는 주체상이었다는 역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동시에 20세기 사회주의혁명사는 또 다른 층위의 깊은 교훈을 남겼다. 러시아혁명은 세계혁명을 기다렸으나 고립되어 관료 국가화와 강제 산업화의 길로 나아갔다.
중국혁명은 다른 길을 걸었지만 중소분열 이후 마찬가지로 민족국가 안보 논리로 전환되었고, 진보도의 포성은 국제주의가 국가 안보 논리에 완전히 굴복했을 때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대국들조차 서로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소련의 붕괴는 사회주의 원칙 자체의 불가능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경선에 의해 폐쇄된 사회주의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장기적 압력 속에서 질식하고 경직되고 변형될 수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21세기 혁명정치의 과제는 이중적이다. 첫째, 신좌파를 넘어선다는 것은 신좌파 이전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신좌파가 발견했던 모든 억압의 형태를 보존하면서 그것을 다시 자본과 계급이라는 전체적 구조 속에 결합시키는 것이다. 둘째, 일국 사회주의라는 고립된 요새 모델을 극복한다는 것은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이 감당해야 했던 대가—관료화·기근·강제산업화·국제주의의 해체·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은 대국 간 충돌—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미래 사회주의의 현실적 형태는 국제적 민주협력에 기초한 세계사회주의연방공화국일 수밖에 없다. 이 연방은 옛 제국과 같은 위계적 체제가 아니라, 세계적 범위의 민주적 계획경제·자원의 공동관리·부의 사회화된 재분배·과학기술의 공공화·생태위기의 공동대응·민족들의 평등에 기초해야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생애 마지막 글에서, 혁명의 특수한 생명 법칙은 거듭되는 패배 속에서도 결국 승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썼다.
21세기의 과제는 추락하는 낡은 질서의 좌석을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종간 자체를 인류 해방의 항로로 돌려놓는 일이다.
계급 대 정체성, 보편 대 차이, 일국 대 세계라는 잘못된 양자택일을 넘어서는 지점—바로 거기에서 21세기의 새로운 혁명정치는 출발할 수 있다. 세계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주요 참고 문헌
1. Karl Marx &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1845–46).
2. Karl Marx, Das Kapital (1867); Grundrisse — "Fragment on Machines."
3. Rosa Luxemburg, Die Akkumulation des Kapitals (1913); "Die Ordnung herrscht in Berlin" (1919).
4. Victor Serge, Mémoires d'un révolutionnaire (빅토르 세르주 평전 관련 자료 포함).
5. Immanue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System; Giovanni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ury.
6. Antonio Gramsci, Prison Notebooks (1929–1935).
7. Eduard Bernstein, Evolutionary Socialism (1899); 1959년 독일 SPD 고데스베르크 강령.
8. 흐루쇼프 비밀연설(1956.2.25) 및 1956년 헝가리 혁명.
9. 중소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1950); 1969년 진보도(다만스키 섬) 및 철레케티 국경 충돌 관련 자료.
10. 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 The Port Huron Statement (1962).
11. William Beveridge, 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 (1942); John Ruggie, "Embedded Liberalism" (1982).
12. Jacques Derrida, De la grammatologie (1967).
13. Jean-François Lyotard, La Condition postmoderne (1979).
14. Michel Foucault, Naissance de la biopolitique (1978–79); Daniel Zamora, "Foucault's Responsibility," Jacobin (2014).
15. Luc Boltanski &Ève Chiapello, Le Nouvel Esprit du capitalisme (1999).
16. Nancy Fraser, "From Redistribution to Recognition?" (1995); The Old Is Dying and the New Cannot Be Born.
17. World Bank, 중국 빈곤 감소 관련 통계 자료.
18. ILO–NASK, Generative AI and Jobs (2025); IMF, Gen-AI: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Future of Work (202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