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동시집. 1]을 뒤적이다가 …
남진원
1985년 11월 김종상 선생님이 한국 동시작가들의 작품을 엮은 책이 예림당에서 나왔다 [한국대표동시집]으로 챙명은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이다.
당시 대표적인 동시작가들이 총 망라되었다. <강아지풀>의 작가 김구연을 비롯하여 윤석중, 김원석, 정원석, 김영일, 박용열, 김종두, 강소천, 김종상, 임인수, 박경종, 문삼석, 김삼진, 신현득, 어효선, 박화목, 김동극, 이종택, 김원기, 조규영, 엄기원, 이원수, 김요섭, 방원조, 최계락, 오순택, 김재수, 장수철, 박종현, 유성윤, 최만조, 송명호, 정혜진, 전원범, 유경환, 윤부현, 남진원, 박유석, 최일환, 윤이현, 권오삼, 김한룡, 제해만, 희모래, 김완성, 심우천, 이준관, 박인술, 윤갑철, 이연승, 박경용, 권영세, 이상현, 김신철 등이다.
그 작품들을 보면 매우 동심의 표현이 잘 된 작품들이 많았다.
오요요
오요요
불러볼까요
보송보송
털 세우고
몸을 흔드는
강아지풀
강아지풀
불러볼까요.
김구연의 ‘강아지풀’ 내용이다. 의성어 ‘오요요’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친근감을 더하고 있다. 어린이가 강아지풀을 친구처럼 귀엽게 부르는 정겨움을 시적 언어로 표현하였다. 묻는 방법을 사용하여 동시의 효과를 극대화하였다고 보겠다.
달밤
달이 밝아서
연잎 위에
청개구리
“퐁당”
달 따러 가네.
- 박용열 ‘달밤’ -
박용열의 동시 ‘달밤’이다. 연잎 위에 앉은 청개구리가 연못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그렸다. 그 한 순간의 소리가 고요를 깨뜨린다. 우주의 한 순간을 청각적으로 그린 직관적인 작품이다. 연못 속에 내려앉은 달을 따러 청개구리가 뛰어들었다. 달과 연못 청개구리와 연못이 그림처럼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연잎 위에 앉은 청개구리가 연못 속으로 뒤어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그 당연한 돌발적인 행동이 기적과도 같은 고요를 흔드는 우주의 한 소식 임에랴.
우리가 책을 펴고 공부를 하면
등불도 눈을 뜨고 책을 읽어요
우리가 책을 덮고 잠자리 들면
등불도 눈을 감고 함께 자지요
- 김종상 ‘등불’ -
우리들이 살면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님을 이 동시로 밝혀주고 있다. 등불을 켜고 책을 읽으면 등불도 함께 책을 읽고 잠자리에 들면 함께 등불도 잠이 든다는 생각은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깨달음의 내용이다. 등불이 함게 책을 읽듯이 우리가 하는 일들은 누군가 함께 옆에서 돕는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
이밖에 임인수의 ‘봄이 오는 길’ 중에서도 좋은 구절이 있다.
고개 넘어 가는 길
봄이 오는 길
봄길 쪼르르르
눈이 녹는다
- 이하 줄임 -
봄이 오는 고갯길을 오를 때면 기분이 좋다. 언덕에 쌓인 눈이 소르르 녹고 있는 모습을 보면 봄이 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승용차가 있어서 고갯길을 걸어서 오르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전에는 모두들 걸어서 다녔다. 특히 고갯길을 오를 때면 남다른 생각도 들었다. 마을과 마을의 경계가 되는 고갯길이었다. 그 고갯길에 봄이 오는 모습을 느끼면 정말 마음이 기쁘고 상쾌해진다.
임인수의 ‘봄이 오는 길’의 두 연은 읽을수록 재미나고 느낌이 좋다. 그래서 자꾸 낭랑히 읽고 싶은 구절이다.
‘ 고개 넘어 가는 길 봄이 오는 길 봄길 쪼르르르 눈이 녹는다 …’
김동극의 동시 ‘고 또래 고만큼’은 매우 깊이 있는 사회적인 대표 동시이다.
여울의 아기 붕어
다 커서 어디론지
가고 없어도
고 또래 고만큼
그때 그 여울
골목의 아이들
다 커서 어디론지
가고 없어도
고 또래 고만큼
그때 그 골목
- 김동극 ‘고 또래 고만큼’-
아이들이 노는 골목은 어른이 되어 가는 통과의례의 골목이다. 그 골목에서 노는 건 언제 봐ㅏ도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때 그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었고 다른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떠나가면 또 다른 고또래 아이들이 그 골목을 채울 것이다. 골목은 아이들을 키워내는 스승과 같은 모습이기도하다. 김동극의 ‘고 또래 고만큼’은 동시 중에 명작 동시이다.
장수철의 동시는 늘 생화 어린이의 모습과 서정성이 은은하게 갈려 있어서 읽기에 매우 공감이 가는 작품들이다. 동시 ‘가을 밤’ 역시 이런 서정성이 은은히 스며 있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가을 밤
장수철
멀리서 들려 오는
기적 소리에
나도 모르게 창문을 열어보았다
영이네 지붕위엔
호박이 서너개
달빛에 둥글둥글 살이 쩌있다
꽃밭 구것에서
벌써 우는 귀뚜라미 소리
올 가을도
참 빠르다
귀뚜라미 소리와 지붕위에 익어가는 호박을 보면서 가을 의 서정을 느끼는 작품이다. 기적 소리에 창문을 여는 사람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기적 소리 덕분에 지붕위에서 익어가는 호박을 보게 된 건 시적 소리가 준 선물이다. 그런데 어디 그뿐이랴. 눈에 들어오는 꽃밭에서는 한쪽에 숨어 귀뚜라미가 운다. 가을 저녁의 아름다움이 잘 짜여진 작품이다. 읽을수록 은은한 고향집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장수철 선생님은 주걱턱을 한 둥글 넓적한 얼굴을 하셨다. 듬직한 믿음이 가는 분이셨다. 가끔 뵈었을 때 과묵한 모습이 떠오른다. 이 분의 시들은 모두 생활시들이어서 읽으면 재미가 있고 공감을 많이 얻는 작품들이다. 주로 소년 소설을 많이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김종상 선생님이 엮은 동시집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중에 몇 편의 동시를 읽어 보았다. 여기에 수록된 분들이 모두 그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중에는 이미 작고하신 분들도 만이 계신다.
역시 추억을 떠올리며 사는 게 인생인가 보다.
( 2024. 8.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