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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삼매
2)오지여래
(1)오지여래 상전(上轉)법문
오지여래(五智如來, pañca-jñānāni-tathāgata)는 금강계 밀교에서 설하는 다섯 부처이며, 중앙의 대일(Vairocana)여래, 동방에 아촉(Akṣobhya)여래, 남방에 보생(Ratnasaṁ bhava)여래, 서방에 미타(Lokeśvararāja)여래, 북방에 불공성취(Amoghasiddhi)여래를 나타낸다. 이는 일체제법을 모아서 오불신을 이루므로, 오여래는 제불의 본신이며 일체법의 근원이므로 일체여래이다. 또 지혜의 성격을 나타내는 지신(智身)이므로 오지로 나타내는 것이다.
벽산은 1943년에 제1편 「보리방편문」[일인전일인도(一人傳一人度)]을 통해 오지여래를 설하는 데, 중생이 깨달음의 불위(佛位)로 향해 올라가는 구조의 상전(上轉)법문이다. 하전(下轉)법문은 대일여래가 중생구제를 목적으로 하여 아래로 향하는 법문이다. 금강계 만다라에서는 16대보살의 향상문적(向上門的) 입장은 수행자가 보살행으로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고, 향하문적(向下門的) 입장은 비로자나불이 중생구제를 위해 열여섯 가지 모습으로 시현한 것이다. 이때 향하문적 방편의 16대보살은 인위(因位)의 보살이 아니라, 이타행(利他行)으로 불과(佛果)가 성취되는 자리이다. 또한 상전법문은 수행에서 오는 깨달음의 자리행(自利行)이므로,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깨달음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자리이타와 상하전의 법문은 하나로 귀결되며, 상전법문은 수행자의 분상에서 깨달음을 추구한 것이다. 벽산의 오지여래 법문을 다음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그 본체의 성품이 장애와 걸림이 없으므로, 첫 번째 지혜의 이름을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라 한다. 그 걸림 없는 광명이 해와 같이 두루 비추므로, 불타의 명호를 대일여래 곧 비로자나불이라 한다. … 바람 성품의 한 기운이 평등하고 원만함으로, 두 번째 지혜의 이름을 평등성지(平等性智)라 하고 불타의 명호를 불공(不空)여래라 한다. … 사바세계의 차별 모습을 통하여, 진여가 인연을 따르되 변치 않는 성품을 관찰한다. 세 번째 지혜의 이름을 묘관찰지(妙觀察智)라 하고, 불타의 명호를 미타(彌陀)여래라 한다. 끝없고 한량없는 허공 같은 마음의 세계에, 해와 달을 초월하는 금색광명을 두른, 물의 성품의 마음에 청정함이 가득하다. 이를 네 번째 지혜 이름 대원경지(大圓鏡智)라 이르고, 불타의 명호를 아촉(阿閦)여래라 한다.. … 한낮의 밝은 빛의 마니보주가 휘황찬란하여, 수 없는 보배의 빛이 한없이 붉게 타오름과 같다. 이를 다섯 번째 지혜 이름 성소작지(成所作智)라 하고, 불타의 명호를 보생(寶生)여래라 한다.
위와 같이 오지여래의 첫 번째는 법계체성지로, 허공과 같은 마음의 성품이 장애와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걸림 없이 널리 비추는 광명을 해에 비유하여 대일여래라고 한다. 두 번째는 평등하고 원만한 성품의 평등성지로 불공여래라고 한다. 이 부분은 금강계 경전에서 설하는 것과 다르다. 즉, 하전법문에 의하면 평등성지를 보생여래로 설한다. 세 번째는 사바세계의 차별 모습과 진여의 변하지 않는 성품을 관찰하는 묘관찰지의 미타여래이다. 네 번째는 금색광명의 물의 성품 마음이 청정하고 원만한 대원경지의 아촉여래이다. 다섯 번째는 마니보주처럼 많은 보배의 빛이 붉게 타오름과 같은 성소작지의 보생여래이다.
또 오지를 오대의 성품과 배대 하는데 즉, 법계체성지는 공성(空性), 평등성지는 풍성(風性), 묘관찰지는 화성(化性), 대원경지는 수성(水性), 성소작지는 지성(地性)과 상응한다. 아울러 제일지(第一智)는 법신의 총지(總智)이고 나머지는 별지(別智)라고 하며, 둘째‧셋째‧넷째의 삼지는 보신(報身)의 능지(能智)이고, 제오지는 화신의 소지(所智)라고 한다. 그리고 오지(五智)의 총칭이 아미타불이라 하며, 본래 삼신을 구족한 아미타불에 모두 갖춰져 있는 것이다.
(2)오지여래 상‧하전법문
벽산은 1946년에 제3편 「수능엄삼매도결 상」에서 오지여래의 상‧하전법문을 함께 설한다. 다음에서 유식(唯識, vijñapti-mātratā)의 네 가지 지혜와 밀교의 다섯 가지 지혜를 비교하여 설하고 있다.
"현교는 팔식을 전변하여 네 가지 지혜를 이룬 구경의 보신여래(報身如來)를 세우고, 밀교는 네 가지 지혜에 제구식을 전변한 법계체성지를 더해, 다섯 가지 지혜로 하고 금강계 지법신(智法身)의 대일여래를 세운다."
위의 인용문에는 유식에서 팔식을 돌이켜 네 가지 지혜를 이룬 것에 더해, 구식(九識, nava-vijñāna)을 돌이켜 전변한 법계체성지로 오지여래가 됨을 설하고 있다.
오불사상은 초기 대승에서 중기 대승으로 발전하며 사방‧사불 사상이 성립한다. 즉, 반야부 경전에서 유가계 경전으로 옮겨가며 사불 사상이 완성된다. 7세기 중반에 『대일경』이 성립되고 대일여래가 새로운 신앙의 대상으로 사불의 중앙에 배치되고, 사불은 대일여래의 화현으로 밀교의 오불 사상이 성립하게 된다.
또 불교의 최고 이상인 즉신성불(卽身成佛)에 맞춘 대일여래사상으로 발전하며, 이 같은 사상이 불타관의 종합귀결이라 볼 수 있다. 진리나 우주를 형이상학적인 추상원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 내지 불격체(佛格體)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물론 현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진리의 현현이며 대일여래의 인격을 시현함이 되는 것이다. 무주도 오지여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한다.
우리가 물리적인 상징으로서 표현할 때는 지‧수‧화‧풍‧공 오대라고 하는 것이고, 물질이 그대로 물질인 것이 아니라 바로 불성이요, 성품으로서는 바로 생명이니까 오지여래라고 말한다. 또 오지여래에 따른 각기 지혜가 있어서 오지라고 한다. 그러나 오지나 오대가 각기 뿔뿔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원융무애한 일미평등(一味平等)의 불성인데 그 별덕(別德)을 오지‧오대‧오여래라고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오지(五智)는 다시 기세간(bhājana-loka)의 오대와 연결되며, 물질이 성품으로 생명이므로 오지여래가 된다고 말한다. 또한 오지‧오대‧오여래가 모두 일미평등한 불성으로 공덕을 나누어 말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것을 참고로 『금강심론』에서 설하는 오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법계체성지(dharmadhātu svabhāva-jñāna)는 암마라식(菴摩羅識, amala-vijñāna)이 전변한 것이며 법계는 정식(淨識) 차별의 뜻이다. 모든 법의 차별이 무량한 법계의 체성이 곧 육대(六大, ṣaḍ bhūta)이다. 육대 법계의 삼매에 머무름이 법계체성지이고 방편구경의 덕을 위주로 한다. 즉, 대일여래의 방편이 구경이 되는 총체의 지혜이다.
구까이(空海)도 육대를 법계의 체성이라 설하며, 우주 전체 그대로 진리 당체이고 불타의 참 모습이라 하였다. 즉, 육대 모두가 법신 대일여래의 표식이요 상징이고, 객관적 실재로 오대는 그대로 이법신(理法身)의 표상이며, 주관적 실재로 식대는 그대로 지법신(智法身)의 표식이다.
둘째, 대원경지(大圓鏡智, ādarśa-jñāna)는 아뢰야식(ālaya-vijñāna)이 전변한 것이며, 법계의 만상이 크고 원만히 비추는 거울 같은 지혜이다. 금색광명의 수성(水性) 에너지가 청정하고 충만하여, 모든 것을 원만하게 비추는 지혜며 불호(佛號)는 아촉여래다.
셋째, 평등성지(平等性智, samatā-jñāna)는 말나식(manas-vijñāna)이 전변함이고, 모든 법이 평등한 작용을 이룬 지혜이다.
넷째, 묘관찰지(妙觀察智,pratyavekṣaṇā-jñāna)는 의식(mano-vijñāna)이 전변함이며, 모든 법을 잘 분별하여 온갖 근기를 관찰하고, 의심을 끊는 법을 설하는 지혜이다.
다섯째, 성소작지(成所作智, kṛtyânuṣṭhāna-jñāna)는 안식(眼識) 등의 오식이 전변함이고, 자리이타의 훌륭한 행을 성취한 지혜이다.
다섯 지혜는 한 몸에 갖춘 지혜의 덕이지만, 중생을 거둬들이고자 본체에서 사방의 사지(四智)‧사불(四佛)을 낸 것이다. 즉, 대일여래가 세상의 무량한 차별의 일체중생을 위해, 중생의 근기와 상황에 맞게 차별의 모습으로 현현한 것이다. 경전에 일체제법이 모두 비로자나의 차별지인(差別智印) 아님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유식의 사지에 법계체성지를 더해 오지(五智)가 성립되어, 밀교는 대승불교의 장점을 토대로 교리를 발전시킨 것이다.
지금까지 벽산이 설한 오지는 하전법문이며 금강계 경전에서 설하는 순서이다. 계속해서 『금강심론』에는 오지와 오불에 대한 위치와 별덕(別德)을 아래에서 설한다.
법계체성지는 본위에 머문 중앙의 대일여래라 하고, 대원경지로 인한 동방의 아촉여래는 보리심을 발하는 덕을 위주로 한다. 평등성지로 인한 남방의 보생여래는 수행의 덕을 주로 하며, 묘관찰지로 인한 서방의 아미타여래는 보리를 성취하는 덕을 위주로 하고, 성소작지로 인한 북방의 불공성취여래는 열반에 들어가는 덕을 주로 한다. 이는 일종의 아래로 향하는 법문에 속한다.
위의 인용문은 앞의 상전법문에서 설한 오지여래의 순서와 위치가 다르다. 즉, 상전법문의 두 번째 평등성지의 불공성취여래가 위의 하전법문에서는 세 번째 평등성지의 보생여래로 바뀐 것이다. 남북의 보생여래와 불공성취여래만 다르다.
이어서 별덕으로 설하는 부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동방 아촉불은 보리심을 발하게 하고, 남방 보생불은 수행을 하게 하며, 서방 아미타불은 보리를 성취하게 하고, 북방 불공성취불은 열반에 들어가게 한다. 이러한 모습은 시계가 도는 방향과 태양의 일출과 일몰과 같은 방향이다. 다시 말해 밀교 만다라는 동쪽은 발심, 남쪽은 수행, 서쪽은 보리, 북쪽은 열반의 위치이다. 이는 태양의 운행으로 만물이 생성하고 활동하는 일상 현실에 적응하는 구제적 법문이다. 또 태양이 동쪽에서 뜰 때 일어나고, 남쪽에 있을 때 활발히 활동하며, 서쪽에 이른 때에 집으로 돌아가고, 북쪽에 이른 때는 집에서 편히 쉼과 같다. 이처럼 중생구제를 위한 하전법문은 각 부분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계속해서 오지여래의 상전법문을 들어보기로 한다.
위로 향하는 법문일 때는 중앙이 열반자리이고 북방이 보리자리이며, 서방이 수행자리이고 동방이 발심자리이며 남방이 방편자리이다. …동승신주(東勝身洲)에서 발심하고 서우화주(西牛貨洲)에서 수행하며, 북단월주(北單越洲)에서 보리를 성취하고 중앙의 열반자리에 머물러, 남섬부주(南贍部洲)의 중생을 방편으로 구제한다. 법계체성지의 대일여래는 중앙에 위치하여 앞과 같되 사방의 배당은 다르다. 평등성지의 불공여래는 북상(北上)에, 성소작지의 보생여래는 남하(南下)에, 대원경지의 아촉여래는 우동(右東)에, 묘관찰지의 아미타여래는 좌서(左西)에 위치한다.
이처럼 상전법문은 지혜와 별덕에서 차이가 난다. 동방은 지혜와 별덕이 하전과 같고, 남방은 평등성지의 수행자리에서 성소작지의 방편자리로, 서방은 지혜는 같고 보리자리에서 수행자리로, 북방은 성소작지의 열반자리에서 평등성지의 보리자리로, 중앙은 지혜는 같고 방편자리에서 열반자리로 각각 바뀐다. 이는 중생구제의 입장에서 깨달음을 향하는 수행자의 입장으로, 오지‧오여래가 사대주와 배대가 되면서 바뀌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하전에서의 대일여래는 중생구제의 방편자리지만, 상전에서는 깨달음을 완성하는 열반자리가 된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자리가 되며, 지혜는 평등성지에서 성소작지로 바뀐다.
벽산은 끝으로, "오지는 곧 땅‧물‧불‧바람‧공의 오륜관(五輪觀)으로 먼저 자재를 얻고, 앞의 사대 색온(色蘊)이 본래 공(空)한 실상에 입각하며, 색온에 근거한 수(受)‧상(想)‧행(行)‧식(識)의 오염도 역시 공한 실상지(實相智)인, 청정한 마음의 식대(識大)와 아울러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육대로써 법계체성지를 성취하고, 범부의 팔식을 돌이켜 보살의 사지를 이룬다."고 강조한다. 말하자면 오대가 진공의 측면이면 식대는 묘유의 측면이고, 이는 태장계의 오대와 금강계의 식대가 결합한 것이 된다. 또한 육대는 상주불변의 우주 본체이고 법계의 체성이며, 연기의 주체가 되는 육대연기사상으로 밀교의 연기론이다. 현상을 떠나 별도의 본체가 있는 것이 아니며, 본체 밖에 따로 현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육대 그대로 우주의 본체이자 현상의 모습이며, 현상과 실제가 둘이 아님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구카이도 육대를 추가하여 설하기를, "나의 깨달음은 식대이다. 인위(因位)를 식(識)이라 하고 과위(果位)를 지(智)라 한다. 지(智)는 곧 각(覺)이기 때문이다." 중생의 육신과 의식을 통해 불지(佛智)를 실현하는 즉신성불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무주도 말하기를 "불교는 본래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 현상이 현상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여불성의 화현(化現)이기 때문에 진여불성이 그대로 현상이 되었다. 진여불성이 연기적으로 나무가 되고 풀이 되면, 나무나 풀로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나 풀 그대로 바로 진여불성인 것이다."
이와 같이 벽산은 밀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하여, 오온이 공(空)한 실상지(實相智)의 육대법계로 오지여래를 성취하기를 설하고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 다음 절의 오륜관과 오상관의 통합이 오지여래를 성취하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
<『금강심론』 수행론 연구/ 박기남(普圓)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