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나무 숲 매미 떼 ----- 남진원 시 전집 4 - 1
바느질
남진원
이불을 당겨
잠든 아기 꿈을
돋우어 놓고
한올 한올
아기의 헤진 옷을
깁는 어머니
닳아서 구멍이 뚫린
무릎을 보고
어머닌
아기 크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요한
밤은
숨결처럼 녹아가고
한 뜸 한 뜸
바늘구멍에 매달리는
아기의 웃음을 깁으며
어머니 마음은
어둔 밤
파란 불씨로 피어납니다.
첫 시집 (동시집), 『싸리울』, 1982. 12. 10. 아동믄에사)
**** 바다 문학 축시
일어서는 바다
남진원
바다를 긴 띠처럼 두른
동해안
용의 비늘로 번뜩인다
날마다 붉은 햇덩이를
하늘로 밀어올려놓는
우리 바다, 바다여
저 힘찬, 오
함성의 상징성
푸른 원형은
신명난 예술의 몸짓이고
수많은 물결은 생명의 시어들이어라
뭍에서 둘러보면
일어서는 바다, 산 하늘 …
넘실대는 바다의 문법들이여
동짓날,
오늘
붉은 기운이 움트듯
동해의 힘찬 기상을 보라
이제
문인들의 붓끝은 바다를 찍어
위대한 언어로 살아나리
웅장한 문학으로 피어나리
가장 아름다운 이름, 바다
남 진 원
방터골 골짜기에 내려가 발에 물을 담가본다.
대단하구나!
이 물은 산의 이름을 바꾸어놓았다
물이 있어야 불려지는
명산
물은 흙의 이름도 바꾸었다.
물이 있을 때 불려지는
옥토
물은 집의 터도 이름 지었다
배산임수
물이 있었을 때에야 그 빛을 발하는
明堂
비, 구름, 안개는 다 떠도는 물 방랑자들의 다른 이름
물이 가장 낮은 곳을 찾았을 때
물은
가장 큰 이름을 얻었다.
‘받아들인다’, ‘받다’ 라는 ‘바다’
바다!
이런 개념 정립이 된 후에 다시 강릉 바다에 가 보았다.
바다의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본다.
가장 낮은 곳에서
혼탁한 것들을 모두 받아들여
정화하는
受用의 정점,
물의 가장 아름다운 이름 ‘바다’,
들쭉날쭉 수없이 치솟아 있는 거대한 산들이
威容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도
한없이 가볍고 적은 이 물방울이 모여든
바다
바다에 기댄 덕택이었구나.
낮은 곳에 모여든
바다의 물방울
물방울의 바다
그곳에 의지해서야
에베레스트 산도 해발 8848m 라는
세계 최고의 봉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산들은 그때서야
제각각 자신의 높이를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나를 들여다본다.
우주에 떠돌던 맑은 물방울들이 내 몸속에 들어와
붉은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물
나는 물을 담갔던 발에서 나와
슬며시 손바닥에 물을 담았다.
맑음,
끝없는 삶의 여정에서
내 안에 잠시 머물고 있는
순례자 같은
물
나는 이 때에야
색바래고 볼품없는 나의 높이를 알아챌 수 있었다.
( 2016. 강릉문학 p.187.)
바다
남진원
기분이 어때?
너무 좋아
바다는 흐뭇해한다.
거센 파도가 출렁출렁
기분이 어때?
멀미 날 것 같아.
바다는 괴로워한다.
바다는 좋은 날도 있지만
싫은 날도 많구나.
바 다
남진원
졸음 겨운 고동 소리
넘나드는 수평 너머
흰물결 갈아엎으며
봄을 푸는 돛단배
갈매기 두서너 마리
그림처럼 나부껴.
( 제2회 어린이문학상 당선작. 계몽사, 1983. 5. )
( 1992. 5. 6. 제7시집.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바다
남진원
前生의 緣 있어
만나는
사모친 원쑤
미친
병이 도져
여름은 그곳에
날 던졌다.
뜨거울수록
별미라서
쾌청한 상처
출렁이며 넘실대는
네 시퍼런 배를 가르며
푸른 핏물을 삼키고 삼키다가
지난 한 해 동안
말라비틀어지고 돌돌 몽쳐진 방구를
콰르르 싸댔다.
( 1987. 10. 1. 제3시집『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바다
남진원
가을 햇살이 남실남실
고요한 세상 하나가
머물고 있었다.
아우성으로 끓던 바다는
진득거리는 소금끼를 풀던 바다는
잡석에 섞여 히히덕거리던 바다는
다시
맑은 하늘을 벗해
갈매기들을 받으며 던지며
바다는
가을 바다는
투명한 세상 하나에
머물고 있었다.
( 1987. 10. 1. 제3시집『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바다
남진원
풀잎에 닿을 때는 이슬 하나 이름 붙지만
그리움 한가운데 쌓이고 쌓인 물빛
갈매기 소리도 뜨고 싯 붉은 해도 뜨고
하늘과 구름이 마구 구역질한다
묻힐 것 다 묻히고 익힐 것 다 익힌 자리
죽어도 퍼렇게 사는 푸성귀 푸성귀 떼
( 1990. 7. 30. 『강원시조문학』 5집 )
바다에서
남진원
배를 타고
달리면
나는 바다의 왕자
고기들이 무서워 도망가는 것 좀 봐.
옛날 신라 시대에 장보고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해상왕’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지요. 위대한 장보고 장군이 생각납니다. 배가 파도를 헤쳐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아도 즐겁습니다. 씩씩한 힘이 넘쳐납니다. 고기들도 아마 무서워 도망가겠죠.
바다와 바위
남진원
바다는 바위에게 속삭입니다.
네가 있어서 정말 아름다워.
바위가 바다에게 말합니다.
나를 알아주어 정말 고마워.
바다는 바위가 있어서 막막함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바위가 있어서 바다는 멋진 풍경도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바위는 바다 속에 있는 자신이 미안했습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바다를 위하여 더 도울 일이 무엇인지 지금도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답니다.
(2009. 5. 19)
바다와 섬
남진원
내 속에 바다가 있고 떠도는 섬도 있다
삶이 더 진할수록 눈 맑은 허공 바다
무량겁 바다에 드니 우주도 섬, 섬 일레라
바다 律
남진원
땀띠며 바람끼며 우울마저 깊이 닿아
잠잠히 손을 들어 소금 치는 바다 바다는
죽어서 퍼렇게 산다 푸성귀로 눈 뜬 채
살찐 입 무성한 혀 절이며 마구 썰며
재울 것 다 묻혀놓고 익힐 것 다 익힌 자리
이따금 뼈 채 드러낸 힘줄 두엇 보인다
( 1990. 11. 30. 『아라리문학』 9집 )
바다 일출
남진원
저 바다 어디 쯤에 온전히 계시던 임
새벽을 흔들면서 함성으로 치솟았네
우주의 빛으로 오신, 아 노래여 춤이여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바다 일출
남진원
저 바다 어디쯤에 온전히 숨었었나
새벽을 흔들면서 말의 함성 치솟아라
우주의 빛으로 오신 불의 노래여 춤이여.
바닷가에
남진원
쏴 -
시원하다
마음도 시원하다.
넘실넘실
넘어간다
마음도 넘어간다
바닷가에 나와 앉으면
바다처럼 넓어지는 마음
바닷가에 나와 앉으면
바다처럼 시원해지는 마음
누구라도
한 번
나와 앉아 보렴
파도물 튕기는
바다의 새큼한 내음새
누구라도 맡아 보렴
순이와 말다툼도
싸악
잊어버리고야 마는
바다, 바닷가에 나와 앉아 보렴.
(『 소년중앙』10월호. 1976년)
바람
남진원
바람이
숲으로 간대
왜냐구?
나무를
간지럽히고 싶대.
개구쟁이들은 친구들과 장난 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바람도 무척 개구쟁이네요. 나무를 간질이고 싶어 숲속으로 찾아가니까요. 개구쟁이들이 하는 짓은 밉지 않아요. 웃음이 나오니까요. 웃음은, 슬픔을 치료하는 행복 바이러스!
( [강원아동문학] 25집. 2000)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바 람
남진원
천하를 욕심내어 취하고자 한 영웅들
죽어서 가져간 게 과연 무엇 이었던가
욕망의 비수에 꽂혀 뿜어내던 비린내
바람
남진원
강릉시 월드컵 다리 밑에
바람이 뱀 모가지처럼 들여민다.
자리를 펴놓은 젊은 부부는
구겨놓은 양말처럼 누워있다.
그들을 눕히게 한 그늘이
피로한 얼굴이다.
한낮이 되자,
무중력 상태가 되었다.
잠자리가 둥- 둥-
떠다니고
잠이 동굴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눈부시다.
(시집『장자의 하늘』, 태원출판사, 2004. 6. 30.)
바람과 나무
남진원
나무들은 바람만 불면
몸을 흔들흔들
저들의 즐거움은
나무들만 안다
( 1984. 조약돌12집 )
바람도 꽃이 된다
남진원
바람도 꽃이 된다
아름다운 이가 생겨
서로 눈 맞추면
이때부터 바람은
꽃이 된다
그들은
꽃을 피우듯
서로 바람을 피운다
(2025. 7. 5)
바람들은
남진원
마을 밖에서 달려오는
저 눈물의 깊이 나는 몰라
어디쯤서 태고의 바람이 부는지
측량할 수 없는 은밀한 불안으로
나는 밤마다 잠들다 놀라 깨고
어둠으로 부푼 벽에
죽음처럼 널려있는 우리들의 옷
오늘 밤 탈출의 의미를
나는 저 방황하는 속에서 듣는다.
뜨락에 지는 오동잎, 거기
불행이 될 수 없는
조용히 기울이는 바람의 눈동자
비오는 동구 밖 떠나는 것들이
네 것이 된다 해도
허전하게 고이는 빛깔들
그렇게 사랑하는 바람들은
아픈 것을 나란히 눕혀놓고
밤마다 꿈을 꾸며
들을 수 없던
어둠의 음성까지
파란 속잎을 틔우게 하고
저 깊은 나무들의 뿌리
맑고 깨끗한 신경을 퍼 올리는
밤 내내 눈을 뜬 채
걸어가는 소리.
( 미래시 3집 , 1983. 5 ).
(1985. 11. 7. 제2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바람의 꿈
남진원
별과 이슬과 풀벌레 사는
숲 마을
소리 내지 않고 가아만히
손짓처럼 흔들리는
풀꽃을 보았다
네게 주고 싶은
순한 눈빛 하나
갖고 싶었지
밤 되면
어슴프레
물그림자 너울지는
수초처럼
네 곁에 나도 흔들리고 만다.
( 1990. 5. 1. 열린시 낭송시첨)
( 1991. 10. 30. 『아라리문학』 10집 )
바람이 불어오니
남진원
늘어진 잎사귀들
생동감 드러내고
기쁜 소식 있으려나
쫑긋대는 나팔꽃
농부는 이마의 땀을
미소 속에 닦는다
바람이 일 때
남진원
나무가 움직일 때
바람의 냄새가 난다.
풋풋한 나뭇잎 냄새
깊은 골물이 움직일 때에도
냄새가 난다.
청청한 댓잎
냄새
사람이 지나칠 때에도
바람이 인다.
그래서 말인데,
햇빛을 반쯤 열어놓고
벗을 맞이하는 날
갈꽃 사각이는
그런 바람 하나
친구 옷섶에 떨구어 줄까보다.
( 99. 10. 11. )
(시집, 『어초(語草)』, 붓다가야, 2002. 8. 1.)
바랭이 풀
남진원
바랭이는 참 잘도 큰다. 곡식을 길러보면, 가물 땐 물주고 비온 후엔 약치고, 늘 신경 써 가꾸어도 병들 때가 많다. 바랭이는 비오지 않으면 흙속에 뿌리를 단단히 박고 가뭄을 이겨낸다. 비온 후면 잎과 줄기를 뻗어 밭을 온통 풀밭으로 만들어놓는다. 바랭이는 좀체 병에 걸리지도 않고 무서움도 없다.
그러나 바랭이가 젤 무서워 할 때가 있다.
성큼성큼
내가 호미 들고 다가갈 때.
(강원아동문학 43집. 2018년)
바랭이 풀
남진원
바랭이가 젤 무서워할 때는?
성큼성큼
내가 호미 들고 다가올 때.
바로 지금
남진원
스스로 세상에 나오고 싶어
스스로 나온 사람은 없어도
기왕에 사는
삶
후회로 살았다면
고통으로 살았다면
지금
행복하다며 살아봐요
어제는 지나간 시간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
현재는 한순간도 머물지 않기에
지금 불행하게 살면 늘 불행의 시간
지금 행복하게 살면
늘 행복의 시간
나의 화두는
바로, 지금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바 위
남진원
눈, 비의 釘에 쪼여 철마다 금 간 자리
그것도 모자라서 바람에 또 벼리더니
이번엔 적막을 부어 無心이란 윤을 낸다
( 시조문학 2023. 가을호)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바위
남진원
입이 없다고
뜻도 없으랴
진정한 귀
열린 자는
들어라
온몸으로
말하는
침묵의
언어
( 2024. 5. 28 . 2024. 9. [모던포엠 ] ))
바위와 소나무
남진원
험한 벼랑 용케 앉아 든든히 뿌리 튼 너
흔하게 쉽게 자리잡은 지천에 널린 나무보다
그래서 더 우뚝하던가 살아도 값나는가.
비와 천둥 손자국에 패이고 깎이던 일
귀대면 隱逸하게 들려줄 법 하건마는
조용히 머금은 침묵, 이 천년의 祕文들
(2020, 전자책 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한국문학방송)
( 1991. 9. 1. 제6시집,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
바위와 소나무
남진원
험한 벼랑 용케 앉아 든든히 뿌리 튼 너
흔하게 쉽게 자리잡은 지천에 널린 나무보다
그래서 더 우뚝하던가 살아도 값나는가.
비와 천둥 손자국에 깎이고 닦인 바위
투명한 거울 하나 품었음직한 얼굴인데
천 마디 입을 다문 채 노송만이 푸르르다.
바위와 소나무 그대들 성은 달라도
뜨거운 마음 빛 섞고 이기고 뭉개어
어느 날 청청한 한 몸 울려 퍼질 빛과 소리.
(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삼환인쇄사. 1991)
바위와 소나무
남진원
험한 벼랑 용케 앉아 든든히 뿌리 튼 너
편하게 자리 잡은 지천에 널린 나무보다
그래서 더 우뚝 하던가 살아도 값나는 가
비와 천둥 손자국에 패이고 깎이던 일
귀대면 隱逸하게 들려줄 법 하건마는
조용히 머금은 침묵, 이 천년의 秘文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 시집속의 시조집 「나를 놓다」-
바지랑대
남진원
늘어져 있는 빨래를
바지랑대로
쑤욱
올려 놓으니
쳐져 있던 빨래들이
위풍당당하다
마당에서
빨래를 받쳐 올린
바지랑대
우리 집
솟대다
( 2024. 4. 8 )
솟대
남진원
여기저기 이곳저곳
축 쳐져 있는 빨래를
바지랑대로
쑤욱 올려놓으니
힘없이 쳐져 있던 빨래들이
팽팽해졌다.
빨래를 받쳐 올린 바지랑대의
위풍당당한 위용
바지랑대는‘
빨래들의 솟대다.
이처럼
강릉 바다를 중심으로
명사십리 모래와 작은 바윗돌들, 푸른 파도 소리를
사랑의 바지랑대로 번쩍! 들어 올리고
온몸으로 연구하는 이들이 있으니,
동해안 바다연구회!
바다의 바지랑대 같은
동해안 바다 연구회, 회원들
한 분, 한 분들의
열정에 찬 모습을 보시라!
뜨거운 박수로 찬사를 드리오니
이!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동해안 바다의 솟대, 솟대올시다.
- 2025. 12. 21. 동해안바다연구회 축시-
박꽃
남진원
살그머니 피던 자태 두어 송이 참 곱더니
그 옛날 「초가지붕」 꿈속처럼 아득하다
이제는 마음속에서 등잔불로 밝히는 꽃
- 『강릉문학』27집. 2019년 12. 2. -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박 수 량
남진원
참으로 곧은 마음 청렴으로 빛나셨네
선함을 실천하여 만세의 거울 되고
덕으로 베푼 선정은 청사 속에 우뚝하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남진원의 문단 50년사, 제1권 , p. 11.
박쥐
남진원
등겨를 피운 모깃불이 솔솔 타오르고
자리 펴 논 마당 상머리에
식구들이 모여 앉으면
그 때 즘,
박쥐야,
너는 어둠 속에 날개를 펴고
우리들 머리맡을 맴돌았지
삶은 옥수수와 호박 감자떡
거기에 박쥐, 너가 함께 하는 저녁이라야
맛났지.
휙 - 휙 -
너를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녔지
너는 밤이면
내 부러움의 주인
용감한 흑기사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반디 각시
남진원
옥수수 익어가는 시골 마을에
박꽃이 탐스럽게 피어나고
들꽃처럼 떠다니는 반디 각시님
예쁘지 예쁘지 이리로 오세요
맛있는 걸 드릴 테니
이리로 오세요
흙냄새 물씬 피는 고향 마을에
박쥐가 후룩 후룩 날아다니고
별이 되어 떠다니는 반디 각시님
착하지 착하지 이리로 오세요
맛있는 것 드릴 테니
이리로 오세요
( 1992. 『솔바람』 제3집 )
반딧불
남진원
맑은 별은
고요한
부끄러움이다
앳된 소녀의 그리움처럼
가만히 다가오는 미소 띤 맨발…
반딧불은 별의 하얀 눈물이 되어 날아다닌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빈 걸음 한평생
남진원
한 평생
이리도 분주했지만
가도 가도 제자리
와도와도 그 자리
이별과 사랑, 눈물과 기쁨, 고통과 행복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끝없이 이어지던
인생이란 발걸음
돌아보니
부산하기만 했구나
가도 가도 제자리 건만
와도와도 그 자리 건만.
(2021. 1. 12.)
발자국
남진원
아빠 발자국엔
사랑이 고여 있고
엄마 발자국엔
알뜰함이 고여 있고
내 발자국엔
무엇이 고여 있을까
아빠께
물었더니
생글생글 웃음이
고여있대요.
( 1989년 7월호 『아동문학』 ‘이달의 동시 특집’ )
( 1992. 5. 6. 제7시집. 동시집 『선생님의 구망난 양말』 )
발자국
남진원
눈 위에 난 발자국
누구 것일까
발자국 따라
멀리 멀리 가면
봄 나라도 만나고 노랑나비도 만나고
빨강 꽃도 찾을 수 있겠지.
눈이 내린 위로 걸어가면 작은 발자국이 생깁니다. 사람은 안 보이고 발자국만 보이지요.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겨울이 지나는 곳에, 나비 떼가 날고 봄꽃이 만발한 봄 동산을 만날 것 같네요.
발자국
남진원
비가 온 후에야
보았다
무수히 찍힌 발자국들을
길 따라
방향 따라
먹은 마음 따라
한치 어긋남 없이
찍히는 발자국이었는데
비올 때에만 조심스럽게 발 디뎠구나
내 발자국
( 1992. 5. 6. 제7시집.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
밤
남진원
밤은 소리없이 떠나가는 배
재잘거림과 웃음소리를
요 위에 깔고
밤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꿈의 항해길에 오르는 아이들
새근새근
어둠의 닻을 올리고
아이는 병정을 거느린
왕자가 되어
마법의 요술나라를 항해한다
인어 공주가 살고
별들이 신비한 노래가 들리는
아이의 길고 긴 항해 길
얼마나
지났을까
쏟아지는 달빛을 싣고
한 배 가득
풀벌레 소리를 싣고
아이는
환한 태양이 기다리는
아침의 부두에
닻을 내린다.
( 1992. 5. 6. 제7시집.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
밤 길
남진원
친구와 늦게 놀다
집으로 가는 길
옥수수 밭속에서
우우우 – 우우우 -
머리 푼 처녀 귀신
울음소리가 들렸지
그해 약 먹고 죽은
형자 누나 목소리
뒤에서 쫓아오는 듯
머리 끝이 곤두서고
말로만 듣던 도깨비 불
휙휙 날고 있었지.
( 1991. 4. 『소년문학』)
( 제8시집, 동시집. 『할아버지 이뽑기』, 1997. 9. 25. 대교출판 )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밤길
남진원
캄캄한 밤
고갯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어흠, 거 누구요!
아랫 마을 찬수 아비요, 댁은 뉘시오?
양짓말 사는 쇠북이 아범 올시다.
어둠 속에서 얼굴을 못 봐도
사람을 만나니 반가워서
성황당 마루턱에 돌 하나 씩 얹어놓고
담배를 한대 씩 피워 물며
오랜 친구처럼 이야기하다 헤어졌다.
인적 드문 곳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반가웠다.
사람이 참 귀한 세상이었지.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밤꽃 피는 날
남진원
옥천동 집 뒤에도 큰 밤나무 있었지
방터골엔 석교 건너 무리 지어 서서 있네
밤꽃 향 너무 진하여 지나기에 무안타
밤꽃 피는 6월
남진원
방터골 석교 건너 밤나무들 무리졌네
다투어 꽃피우는 그 속내를 나는 몰라
6월 향 너무 진하여 지나기에 무안하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밤나무 숲 매미 떼
남진원
녹색 짙은 밭둑으로 둘러선 밤나무들
짙은 그늘 드리운 채 매미 떼를 등에 업고
온종일 고샅길에다 여름 노래 퍼뜨렸지
희영이네 큰 기와집 비켜 앉은 우리 초가집
내 잠을 깨워대던 숲속 요정 난쟁이들아
청아한 금속성 언어 지금까지 눈부셔
밤 똥
남진원
밤 똥 누는 것은 제일 싫었는데
그 시간 그때 쯤엔 꼭꼭 배가 아려오고
고 싫은 밤 똥 누려고문을 열고 나왔지
똥 마려울 때 쯤이면 달도 안 뜬 캄캄한 밤
변소엔 무서워 못 가고 거름 더미 앞에 앉아
가래떡, 그래 가래떡 같은 똥을 뽑고 있었지
어무이가 댓돌 아래 내려선 채 물으신다
니 아직도 멀었나 얼른 얼른 누거라이
그 말에 별을 세다가 다시 낑낑대었지
방 옆에 변소가 붙은 창욱인 얼매 좋노
밤 똥 눌 때마다 창욱이가 부러웠재
이 담에 나도 크며는 그런 집에 살끼다
잠결에 깨어나서 화장실로 들어간다
불켜진 화장실 변기통에 앉았으면
기억에 되살아나는 거름 냄새 밤 똥 냄새
( 1992. 91 아동문학 우수작 선집, 『달달달달 콤콤콤콤 외』계몽사 )
밤 뜰에 나와
남진원
밤중에
홀연히
눈 감고 앉았으니
눈 속에
한 마안년, 그대로 있었을 법한
얼굴로
벗한다
달이.
( 2000년 7월 19일 새벽 3시에)
(시집, 『어초(語草), 붓다가야, 2002. 8. 1.)
밤 바다
남진원
달빛에 쓰러져
나뒹구는 바람의 이
앓다가 죽은 아이
푸른 옷만 널려 있고
탄 물 밴 상어 떼들이
번들번들 익는 밤
팽팽한 뱃고동 소리
어둠이 무성한 땅
빈 언어 물이 젖는
칠흑의 하늘 아래
허무 그 영혼의 늪을
파닥이는 새 한 마리
(1982)
밤 새
남진원
그리도
애닲은
혼만 살아
달빛 푸른
숲
숲에 고인 새야
울다가
지치거든
고운
고운 잠 자라.
( 1985. 11. 7. 제2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
밤송이
남진원
파란색 고슴도치가
나무에 대롱대롱
한 밤 자고
두 밤 자고
많이 많이 자고 나니
빨간 알밤을 입에 물고
웃는다.
파란 밤송이를 고슴도치에 견주었습니다. 그렇군요, 밤송이가 고슴도치를 닮았네요. 밤송이가 익어서 알이 벌어질 때, 고슴도치가 입에 물고 있다고 생각하네요. 너무 재미있어요. 알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동생들의 모습도 생각나고요….
밤에
남진원
물소리에 기댄 채
별이 흐릅니다
끌어매도 자꾸만 흐르는
이것
너무도 키 큰 외로움
목이 아픈 밤입니다.
( 1991. 10. 30. 아라리문학 10집 )
밤 11시의 차 맛은
남진원
밤 11시의 차 맛은
동굴이다
기쁨과 슬픔은
말라붙어
휴먼 상태
떠도는 건
無虛
어디에도
흠집이 없다
약초 냄새처럼
지긋이
지~긋이 맛보는 …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밤 11시의 차 맛은
남진원
밤 11시의 차 맛은
동굴이다
기쁨과 슬픔은
휴면 상태
어디에도
흠집이 없다
無虛의 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밤의 숲
남진원
어둠 갈피 갈피 고요를 접어 넣고
잎새들 설핏한 머리칼 잘라 먹는 바람 한 떼
짓푸른 피냄새 맡으며 바람 뒤에 내가 섰다.
갈기갈기 펄렁이는 개구리 울음처럼
목 말라 목이 말라 갈증을 펄렁이는 풀벌레
갈색 잠 연한 개울가에서 물소리를 씹는다.
별들이 산에 안겨 무성하게 자라는 밤
하늘은 달을 떼다 산마루에 매어 놓고
외로움 짙은 눈빛을 풀어 잠든 산을 태운다.
( 「월간문학」제31회 신인작품상 당선작. 1980.8)
(「한국시조큰사전」,한춘섭. 박병순. 이태극. 1985. 3. 23. pp249-250)
- 남진원의 사진과 약력, 시조 작품을 수록 -
(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삼환인쇄사. 1991. )
밤 정거장 대합실
남진원
<1>
어둠들이
희미한 대합실 여기 저기
웅크리고 있다
시각을 알리는 벽시계가
썰렁하게
울리고
창
밖엔
너무
외로운
불빛
하나
<2>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제각기 가는 다른 길
한 차에 올라타고
같이 같이 가지만
끝내는 다
제각기 가는 다른 길
이곳 손님에게
“여보세요”
물어보기도 머뭇거려
아니 물어볼 말조차
내키지 않는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제각기 가는 다른 길
이따금
기적소리만
대합실 안
휘돌다 가네.
( 1979. 5. 『아동문예』)
밤 한톨
남진원
영희가 내게 준
밤 한톨
만져 본다
껍질마다 매끌매끌
흐르는 윤기
그걸 들여다보면
호수처럼
맑은
내 눈빛
아롱아롱 떠오르고
손톱에 꽃물들인
노을처럼
고운 손
생각이 나서
창가에 기대
자꾸만
만져보다
내 가슴에
따뜻하게 고이는
밤 한톨
( 1982. 12. 16. 어린이강원)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 1997. 9. 25. 제8시집 . 동시집『 할아버지 이뽑기』 )
밥
남진원
‘밥’은 늘 곁에 함께 하며
건강을 지켜주었다는 걸 알았다.
든든히 속을 채우고 나면
부러울 게 없지
더러 외로우면
어떠랴
먹을 게 없으면
외로움도 사랑도 사치일 뿐이다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
충성스러운
伴侶이다.
(2022. 12. 24.)
밥
남진원
귀한 손님이 오셔서
엄마는 하얀 쌀밥을 지으셨다
생일날이나 제삿날에야
맛볼 수 있는
군침이 도는 하얀 쌀밥
손님이 상을 물릴 때까지
멀찍이 앉아서 지켜보다가 …
밥이 줄어들고
밥그릇이 깨끗이 비워졌다
나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
밥
남진원
밥먹고
걸어가니
땅도 배부르고
하늘도 배부르고
(1996. 파인프라자 시화전 작품 )
밥
남진원
고통은 기쁨이야.
아픈 상처가 내 살이지.
이걸 알아차렸으면
밥을 많이 먹고 기운 내야지.
( 시집, 『어초(語草), 2002. 8. 1. )
밥
남진원
잠도 때로는
맛있는 밥이다
몸이 아프니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잠을 먹는 것이었다
몸이 아프니
잠을 먹고나도 개운하지가 않다
입으로 씹어먹는 것만 밥이 아니란 걸 알았다
제일 좋은 밥은
산소였다
요즘은 공기도 밥처럼 먹고 있다.
( 2022. 6. 8.)
밥
남진원
잠도 때로는
맛있는 밥이다
몸이 아프니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잠을 먹는 것이었다.
몸이 아프니
잠을 먹고 나도 개운하지 않다.
입으로 씹어 먹는 것만 밥이 아니란 걸 알았다.
제일 좋은 밥은 산소였다.
요즘은 공기도 밥처럼 먹고 있다.
( 2022. 6. 8.)
밥
남진원
체력을 높이기 위해
나는 밥을 먹는다.
땅도 밥을 먹어야 힘이 솟는다.
땅의 밥은
거름.
거름을 듬뿍 주었다.
(2021.4)
밥
남진원
젊어서는
힘 쓸려고
밥 먹었는데
늙어,
힘쓸 데도 없는 데
연신
연신
밥을 먹는다
혼자 사는 삶,
외로워서
외로워서
밥만 먹는다.
( 2025. 12. 23. )
법 또는 물에 대한 생각
남진원
무단횡단, 안돼요
싸움하면 안돼요
늘 우리보고는 이런 말 하는 어른들
체포영장, 서로 법을 앞세우고는
한쪽은 들어가려 하고
다른 한쪽은 막아내려 하며
서로 법을 지키지 않아요
법을 지켜야 하는 국가단체에서
몸싸움까지 한대
그러다가 정말 큰 싸움 날까!
걱정된다
어른들이, 우리들이 장난할 때 하는
몸싸움까지 하다니 …
이상하다,
이상해
그러고 보니, 사람 마구 죽이는 전쟁도
어른들이 하는구나.
연일 말 할 때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먼저 앞세우는 사람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데
저분 어른들 때문에
아, 어른과 어린이들 먹을 물까지도
그래서 날마다 흙탕물이 되는 건가.
(2025. 1. 3.)
밥 먹을 때
남진원
밥 먹을 때, 반찬이 없는 데도
밥 맛이 좋다
그게
왜인지 아냐?
밥 먹은 후
믹스 커피 한 잔 조용히 마신다는
생각 때문이지
밥을 맛있게 해주는
커피 한 잔,
요술쟁이
( 2024. 9. 22 )
밥 먹이기
남진원
"밥 들어왔어요."
겨우 일어나 앉힌다.
숟가락을 쥐어 주니 밥을 떠서 입에 갔다대다가 만다.
세 숟갈 먹이고 나니 못 먹겠다고 자리에 눕는다.
반찬도 없는 밥
'기약 없다' 말만 듣다가 내가 지금 기약 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
( 2013. 시집, <하늘에 기댄 아내>, 태원 )
밥 한 번 같이 하지
남진원
‘밥 한번 같이 하지?’
부담 없이 하는 가벼운 말이지만,
‘밥 한번 같이 하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따끈한 밥 사이로 주고받는 마음이 있지.
먼 먼 석기시대부터
우리의 된장 같은
정의 끈이 이어져 있지.
반려동물보고 “밥 한 번 같이 먹자”
인공지능보고 “밥 같이 먹을까.”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홀로 가는
인생길,
사람이 그리운 시대에
얼마나 더 고마운 말인가.
‘밥 한 번 같이 하지!’
( 2018 『후조문학』)
밥상 차리기
남진원
아내가 세상 뜬 지 10년의 세월이다
주방에 들어가면 낯설기는 매 한가지
시간이 더해질수록 더 윤나는 아내 손맛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방귀
남진원
아빠 방귀 빵-
엄마 방귀 뿡-
내 방귀 뽕-
하하하
(크게 웃으며. 하하하 대신 호호호 해해해 등을 넣어 읽어도 좋겠죠.)
재밌다!
재미있다.
여러분, 방귀에 불을 붙이면 붙을까요? 실험을 해 보면 방귀에 불이 붙는답니다. 놀랐지요? 방귀에는 무려 400여종의 성분이 들어있대요. 주로 질소, 이산화탄소, 메탄, 수소, 산소로 이루어졌답니다. 이중에는 메탄과 수소는 폭발의 위험성이 있는 가스입니다. 우리 장 속에 있는 세균들이 만들어낸답니다. 가스가 폭발하기 위해선 방귀가스와 산소, 불이 필요해요. 하지만 불 옆에서 방귀를 뀌었다고 해서 불이 날 염려는 없어요. 방귀 속의 메탄과 수소는 공기 중으로 금방 흩어져서 쉽게 폭발하지 않는답니다.
이 동시도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 좋겠죠!
방랑의 집
남진원
1.
산과 달빛과 바람과 물소리가
서로 섞이는 밤을
그대는 모르리
밤은 깊어가고
떠돌다 지친 것들이 눈을 감으면
홀로 산마루에 일어서는 달빛의 노래
외로운 영혼의 술잔을 들고
취한 바람들의 옷 벗는 소리
물과 살이 넘쳐 흐르는 숲속에
꽃잎이 되어 떠나는 이여
한낮의 우리들의 옷 속에 감춰진 것도
하나 둘 어둠 속에 묻어나오면
그대들 머리맡에 숨어 있던
꿈의 수많은 나비 떼도 날아올라
별이 되는 줄을
2.
우리 어머니 샘물이 거기
별을 키우고 있었네
작은 눈을 반짝이는 별
은색의 날개를 달고
풀잎들의 잠속을 날아 다니며
영혼의 담요를 깔아놓는 밤
풀잎들은 서로의 가슴에
촛불을 켜고
우리의 발 닿지 않는
먼 나라를 항해하고 있었네
그때 나는 보았다
촛불 속에
우리 어머니의 뼈가 녹고 있는 것을
3.
아직도 징징 울려오는 것이 있어
귀를 막아도
내몸을 흔들며 일어서는 소리
아슬한 수 억년의 밀림 속에서
북채 두드리며
푸른 하늘 벽을 울리다
벼락맞은
어머니 가슴 속에
살아 박힌 못자국
오늘 내 가슴에 박으며
달과 바람과 꽃이 집을 짓는다
우리 모두가 잠깨 있을
방랑의 집을 짓는다.
( 미래시 3집 , 1983. 5 ).
방안에서
남진원
둘러봐도 온 방안이 책으로 그득 하다.
이 많은 책의 지식 다 알면 그 얼마랴
그러나 다 안다 한들 무슨 소용 이겠나
재물이 넉넉하고 지식 또한 높다 해도
불편한 생각이라면 없는 것만 못하다지
마음이 편한 것 말고 어느 부귀 또 있겠나
(2021. 8. 18.)
방터골
남진원
비가 쏟아지면서
방터골을 흔들어놓았다.
비가 기(氣)를 펴 주었다.
불어난
물만큼
방터골이 파릇파릇
낭랑해졌다.
방터골
남진원
방터골에는 돌이 많다. 모두 흙속에 박혀 얼굴이 제멋대로다. 뾰족한 게 옆으로 툭 불거져 나오기도 하고 둥근 돌은 눈만 내밀 듯 머리를 내밀었다. 길쭉한 돌은 툭 튀어나와 걸려 넘어지기에 딱 좋다. 어떤 넓적한 돌은 털썩 땅바닥에 그냥 주저앉아 있기도 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의 느린 걸음걸이도 그렇게 자유롭고 싱거운 표정이다. 누가 봐도 엄청 웃겼다. 구름덩이가 뭉게뭉게 모여들 듯, 시내버스가 오자 엉거주춤해서 오르는 모습은 더 푸근한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그럴 때면 감자 꽃 하양 색이 방터골 아침햇살 대신 은은하게 소리없이 떠들었다. 오늘은 방터골이, 사람 머리라면 분명 환해졌겠다.
방터골 梅花草屋圖
( 2020년 3월 15일의 눈이, 학처럼 춤을 추고 …)
남진원
나무를 패놓고 나니 자욱하게 날리는 눈발.
눈발이 날리는 걸 보고서야, ‘눈이 오는구나!’하며 감탄을 자아냈다. 방터골에 활짝 매화가 핀 날, 잿빛 하늘 아래에서 눈발은 학의 무리가 되어 춤을 추다가 내려앉고, 내려앉으니 모처럼 천지가 하얀 눈 덮인 산이 되었건만, 코로나19로 아들은 일이 더욱 힘들어질 터인데, 제 어미가 있었으면 어찌했을까를 생각해봤다. ‘돈이 대수랴!’ 전화를 하여 내일 만나려 내려간다고 하니 나도 편하고 저승에서의 아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아 모처럼의 눈발이 선물 같았다. 산속의 草屋에서 피리 부는 선비여, 네 음률은 활짝 열어놓은 문을 넘어 저 눈송이처럼 날아다니는구나. 누가 또 거문고를 등에 메고 방터골 다리를 건너오시는가.
방터골, 매화초옥도 흰 음률에 덮이다.
방터골 물소리
남진원
물소리가 물소리를 한가하게 내어 놓는다
늘 물소리는 그렇게 물소리를 내어놓았을 거다
나는 매일 듣는 물소리였지만 오늘에야 저 한가한 물소리를 만난다
더운 여름에 만나지 못했던 좋은 사람들과 점심을 하고 몇 몇 분에게 추석 선물도 보내고 나서야, 할 일 다 한 농한기 농부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풀벌레도 한가로운가 보다 내게 붙어봐야 큰 이득을 볼 일이 없을 것이란 것을 알 것 같은데도 내 발자국을 따라 온다
차 세 잔 마실 정도의 시간 속에서 물소리와 풀벌레와 함께 참한 인생이 흘러갔다
(2019. 9. 3.)
방터골 생활
남진원
매미가 소란 떨어 더 짙은 녹색의 숲
때 아닌 소나기가 無爲를 씻어냈다
앞 냇가 맑은 물소리 경전보다 더 맑다
길섶에 도라지꽃 고향의 품안 같다
털 고운 강아지는 졸음에 들었는가
사방이 평화로우니 여기가 곧, 華嚴藏
해 뜨고 해가 지니 날마다 고마운 날
어둠 속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노라면
榮華는 한낱 襤褸라, 누구라도 알겠다.
방터골 신화
남진원
내가 마당에 나가면
마당은 변화를 꿈꾼다
늘 어떤 변화의 신이 나를 부추기는 걸 마당은 나보다 먼저 일고 있다
4352년 개천절인 오늘은 물줄기를 밭머리에 가져다놓았다.
커다란 돌 몇 개도 식솔처럼 옆에 놓였다. (돌은 느낀다 아무도 모르는 설렘이 있는 걸 …)
끝없이 이어지는 삶처럼, 방터골 동우재 문학관은 지금도 변화의 현재진행형이다
방터골 아리랑,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는
2018.3.16. 남진원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는
아리랑 아리랑∼ ∼
아리 아리랑 … …
한 잔의 술에 취해 창밖을 향해 턱을 고이고 위대한 철학자의 흉내를 내고 바라본다.
아리링 아리랑 아라리요 ∼
갑자기 흔한 대중가사의 한 소절을 흥얼거리기도 하며 대중가요의 위대성에도 취해, 내리는 눈속에 내 마음도 함박눈이 되어 함박 함박 날리게 내버려둔다.
아리랑, 아리랑 어화 둥둥 내 사랑아 ∼ ∼
어깨를맞대고앉았던그녀의낮은어깨검고짙은머리카락냄새아름다운눈동자에어리던매화꽃잎꽃잎향기깉은,
그 숨결의 절정에서,
아리랑아리랑아리랑아리랑아리랑아리랑…
기어이, 뿜어내며 피워내던
하얀 금속성의 꽃잎, 꽃잎들
아리랑 아리랑 산을 넘어가며 꽃잎 툭툭 걸어놓는다
아리랑 아리랑 강을 건너가며 꽃잎 둥둥 흩날린다
아리 - 랑 아리 - 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며 넘어가며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
아리 - 랑 ∼∼
눈이 내리면 홀연히 억만년 눈 떠 있던 고요가 잠들고
고요 속에서 깨어나는 태초의 의미를 본다 그리고 한 잔의 소주와 부침개를 먹고 조용히 읊조린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이면 시를 쓰지 않고는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설명할 수가 없지, 설명할 수가 없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
방터골 여름밤
남진원
모기장이 쳐진 안으로 들어가
몸을 누이면
평화로움이 함께 옆에 눕는다
잠들기 전
방문을 반 쯤 열어놓았다
잠결에도
풀벌레 소리들이
찾아들 것 같고
별들이
반짝이며
지켜줄 거야
방터골 여름밤이 깊어 갔다
( 2024. 7. 27 )
방터골 왕 거미줄
남진원
외갓집의 오래된 배나무와 사과나무 옆, 검은 서까래 밑에 꼭 그 저녁 시간이면 거미가 슬슬 기어 나와 거미줄을 쳤다.
아침나절 ‘왕 거미줄’에는 이슬방울이 걸려 찰랑거리고 있었다.
오래된 배나무와 사과나무 옆 외갓집 검은 서까래 밑 검정 굴뚝 옆에서 거미줄이 출렁이고 푸른 이끼 덮인 샘물 옆에서는 외할머니가 감자를 썩였다.
나는 ‘왕 거미줄’ 생각에 감자 썩는 냄새도 잊고 키 큰 옥수수 밭 사이에서 오이가 익어가는 줄도 몰랐다.
그 ‘왕 거미줄’이 지금 방터골 오두막 지붕 끝 모서리에 하얗고도 눈부신 은빛 그물로 매달렸다. 곤충들은 보이지 않고 내 마음만 홀딱 걸려 출렁이고 있다.
방터골의 봄
남진원
텃밭 주위에 냉이가 올라왔다
만져보니 싱싱함이 스며든다
냉이를 캤다
뿌리를 터니 눈 맑은 아이들이 술래잡기 할 때처럼 뛰쳐나온다
바구니 든 아내도 옆에 서 있다
방터골에서, 신혼시절 아내의 봄날과 어린 시절의 향기를 모두 캤다
( 2013. 시집, <하늘에 기댄 아내>, 태원 )
방터골의 봄
남진원
복사꽃, 봄 품으니 여기가 무릉도원
찰나에 생명의 촉 발그레 꺼내드네
무색계 색계가 모두 장엄함에 들었다
( 시조문학 2019.여름호 )
방터골의 여름
남진원
매미가 소란 떨어 더 짙은 녹색의 숲
때 아닌 소나기가 무위(無爲)를 씻어내니
앞 냇가 맑은 물소리 경전보다 더 희다
길섶에 도라지꽃 고향의 품안 같다
털 고운 강아지는 졸음에 들었는지
사방이 평화로워라 여기가 곧, 화엄장
한여름 방터골이 다들 졸고 있을 무렵
서녘의 하늘색은 저리 붉게 물들었구나
좋아라, 마음까지도 온통 꽃물 드누나
해와 달 피고 지니 날마다 고마운 날
어둠 속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榮華)도 한낱 남루(襤褸)인 걸 누구라도 알겠다
( 2025. 강릉문학 33집)
방터골의 여름
남진원
매미가 소란 떨어 더 짙은 녹색의 숲
때 아닌 소나기가 무위(無爲)를 씻어내니
앞 냇가 맑은 물소리 경전보다 더 희다
길섶에 도라지꽃 고향의 품 안 같다
털 고운 강아지는 졸음에 들었는지
사방이 평화로워라 여기가 곧, 화엄장
한 여름 방터골이 다들 졸고 있을 무렵
서녘의 하늘 색은 저리 붉게 물들었구나
좋아라, 마음까지도 온통 꽃물 드누나
해와 달 피고 지니 날마다 고마운 날
어둠 속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榮華)도 한낱 남루(襤褸)인 걸 누구라도 알겠다
방터골의 저녁
남진원
저녁 무렵 하늘은
너무 맑아서
푸른색 온통
눈 시려라
산 위에 걸터앉은
저녁 해
은은히 비추니
진녹색의 저
청청함
청결함
5월 산이 보내는
녹색
빛의 선물
삶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화사한 신비로움이다
기이함이다
방터골 이야기
남진원
방터골은 방씨와 방짜가 터 잡고 사는 골짜기였다지. 방정환 선생님같이 어린이를 위하는 방씨와 방짜 그릇을 만드는 장인처럼, 방터골은 모두가 방짜이지. 방짜 나무, 방짜 꽃, 방짜 돌, 방짜 물, 방짜 쑥, 방짜 질경이, 방짜 나무꾼, 방짜 농부처럼.
그럼, 그럼! 이곳에서는 새, 바람, 구름, 하늘 모두 방짜이지.
누구든지 여기와 살다 보면 방터골 닮아 방짜 어린이, 방짜 엄마, 방짜 아부지, 방짜 할머니, 방짜 할아버지, 방짜 시인이 될 지도 몰라. 그래그래, 세계적인 방짜 문학가가 나올지도 몰라.
방터골 현관 마루의자에 앉아서
남진원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시내로 내려가면 방에서 나와 시멘트 마룻바닥의 의자에 앉으셨다. 건너편 산을 망연히 내다보고 계셨다. 그러다 집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면 반가와 두 손을 활짝 들고 좋아하셨다.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선한 모습인 줄을 그땐 몰랐다.
나는 자주 부모님처럼 마룻바닥의 의자 위에 부모님 모습처럼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지만 편안하지 못하다. 내 마음이 부모님처럼 평화스러운 곳에 닿으려면 아직 멀었나보다.
방터골 정류장에서 내리면
남진원
방터골 정류장에서 내리면
즐겁다
먼저 반기는 건
삽당령 계곡에서 내려오는 정겨운 물소리들
집으로 들어가는 길옆으로 나란히 선 갖가지 꽃들
미소로 반긴다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반정의 거리에서 기다리는 우람한 소나무 두 그루
푸르고 짙은 향기로
내 삶에 응원을 보내고
한 걸은 두 걸음
내딛는 발걸음 따라 걷다 보면
얌전한 신부 같은 모습으로
산 밑에 아담한 녹색 지붕의 우리 집
반갑다
기쁘다
( 2025. 6. 3 )
방터골 주차장에서
남진원
시내버스 달리다가 방터골에 정차한다
열린 문 내려서면 고향처럼 진한 편안함
집으로 가는 발걸음 마냥 기쁨 솟는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녹색 지붕을 한 양철집
남진원
방터골 정류장에서 내리면 돌멩이도 꽃이 되어 웃는다 계곡에는 맑은 하늫이 내려앉고 큰 다리를 건널 때면 작은 음악회를 여는 물들의 너래에 절로 귀가 모아진다
한참을 걸어 올라오다가 두 그루 거대한 금강송 나무를 마주하고 걸음을 잠시 멈춘다. 여기서부터는 집에 다 온 듯 편안하다. 모두 내 집 같아 바다 거북이처럼 느릿하게 걷는다.
금강소나무를 지나 낮은 어덕길을 오ㅗ르면 아, 멀리 개울 건넛산 밑에 정이 들대로 든 녹색의 집 한 채가 기다린다. 언제 봐도 믿음직하고 멋진 자태, 누가 세상을 다 가졌다고 말했나.
함부로 말하지 마라, 숲이 노래하는 녹색 지붕을 한 양철집이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자란다. 이곳에서 꿈을 꾸고 밥을 먹고 풀을 뽑고 시 농사를 짓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나이
이런 나를 보고 긍정주의와 낭만주의라 하는 자들, 그들은 고된 땀방울과 진실한 눈물을 흘려 봤는지 … ….
( 2021. 8. 31 )
방터골 진달래
남진원
방터골 벼랑으로 진달래 피었어라
질박해진 꽃의 숨결 산 물소리 순해지고
수줍어 밝혀든 花心 어질어서 눈 감소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 시집속의 시조집 「나를 놓다」
방터 길
남진원
차에서 내려서니 방터길이 다가선다
마중 나온 엄마처럼 늘 이리 맞았건만
십 년을 지내고서야 뒤늦게 안 깊은 속정
布行
남진원
나를 기다리는 건 책 속의 언어들 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방에서 뒹굴다가
문을 나서고
골짜기로 내려서면
느슨해지는
걸음 또 한 걸음
나지막한 풀벌레 소리들이 길을 열고
그 길 따라 낯설지 않게
도란거리는 물소리들
발걸음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2022. 1. 14.)
방터골 풍경
남진원
폭우가 지나고 나니
극한의 호우가 왔다
앞 개울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천하장사 울부짖음
콩 포기는
끄떡 없는 데
허우대 멀쩡하던 코스모스와 들깨 포기
모두 드러누웠다
방터골 풍경
한순간
구겨졌다
얼마 전 2백만원 이나 들여 수리한 주방 지붕은
빗물이 또 새고 있다
뚝 뚝 뚝 …
( 2024. 9. 22 )
방터골 집, 현관 마루의자에 앉아서
남진원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시내로 내려가면 방에서 나와 시멘트 마룻바닥의 의자에 앉으셨다. 건너편 산을 망연히 내다보고 계셨다. 그러다 집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면 반가와 두 손을 활짝 들고 좋아하셨다.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선한 모습인 줄을 그땐 몰랐다.
나는 자주 부모님처럼 마룻바닥의 의자 위에 부모님 모습처럼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지만 편안하지 못하다. 내 마음이 부모님처럼 평화스러운 곳에 닿으려면 아직 멀었나보다.
언제쯤 나도 건너편 산을 편히 바라보며 앉아 있을까
방터교 다리 건너
남진원
방터교 다리 건너 신작로를 걷노라니
고개 숙인 벼 이삭들 무진장 익는 냄새
가을이 오는가 보다 오늘 공기 더 맑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방터 길
남진원
차에서 내려서니 방터길이 다가선다
마중 나온 엄마처럼 늘 이리 맞았건만
십 년을 지내고서야 뒤늦게 안 깊은 속정
放學
남진원
배움을 놓으니
편하다
살아가는 규격도 아는 것도
모두 벗어나니
초등학교 때
여름, 겨울에 하던
그 방학의 재미스러움을 더하고
나무 돌 새 벌레들 있는 곳으로
내달리던
그때처럼,
친근함도 더하고
배움에서
멀리
방학하여,
자유로운 길
(2023. 8. 22)
放學
남진원
맴맴
매미 우는 소리
내 귀로 들어봐야지
얼마나 신날까
들판에 천진스럽게 웃는
꽃 향기도 맡아보고
사그락 사그락
조약돌들의 귓속말하는 시냇물에
간질간질 발을 담궈 볼 거야
시멘트 집에서 벗어나
새처럼 훨훨‘
마음에 풍선을 달고
시골로 가는 거야
말로만 듣던 시골에 가 보는 거야.
放學하는 날
남진원
소풍날, 생일날처럼 무한히 설레었지
방학 책 옆에 끼고 교문을 나서던 날
아이들 얼굴마다 마다 웃음꽃이 만발했다
반 바지 런닝 셔츠 자유의 걸음걸이
산제골 앞 개울도 노래처럼 들뜨고
매미는 함성지르며 나와 한편 되었지.
( 2022. 7. 20.)
밭 가운데 목련
남진원
오봉 저수지 돌아가는 길 아래 쪽 강물 옆에 두어 그루 목련이 피었다
‘지난해에는 왜 눈에 띄지 않았을까.’
작은 밭 가운데 서서
자주색과 흰색이 조화롭다
토로나 19가 사람들의 눈빛까지는
막지 못했다
이 봄날 잠깐 동안이라도
아름다움을 지키고 선 모습이,
예쁘구나
( 2021. 심하당 문집 수록 )
밭갈이
남진원
초록
물바람이
흘러가는
이
랑
이
랑
뿌려논
거름 속에
묻힌 봄
뒤적이며
볕 조각
담는 할머니
봄을 송송
맵니다.
(1979. 8. 20. 물레방아 제2호)
밭머리 햇빛 한 소쿰
남진원
심어놓은 채소 하며 곡식이 싱그럽다
평화로운 호미질에 트이는 이랑이랑
흐늘은 햇볕 한소쿰 씩 총총이도 뿌린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밭에서
남진원
밭일을 하다 보니 왜일까 편치 않다
장갑을 끼지 않고 장화도 안 신었네
앞서면 ‘안 되는 마음’ 흙의 철학 배웠네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밭 일구기
남진원
떠날 것 다 떠나고 남루로 남은 땅에
땀띠 돋아 겉말 성한 나무들을 불지른다
익어서 거름도 못 될 소리마저 태운다
바람과 물에 젖어 소금 치는 언어의 밭
아린 잠을 깨워 새벽으로 세워놓고
파아란 서정의 씨를 이랑이랑 뿌린다
돌아올 몫이 없어도 내일은 윤나는 거름
어둠을 모아놓고 살속 깊이 섞다 보면
아침은 한 生을 넘어 밭을 갈고 있느니.
( 1985. 1. 21. 한국방송통신대학보)
( 1991. 9. 1. 제6시집.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배경(背景)
남진원
병실 문 안으로
우는 소리가 들어온다
이내 소리가 쏟아진다
나는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조용한 공기를 타고 61병동 간호사를 부르는 소리
긴장으로 병동이 흔들린다
내 옆에 환자는 잠든 듯 일부러 가만히 있다
지금 이 순간
모두 배경이 되어 있다
영혼의 숲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문이 열리고 있었다
( 문학관, 도서관에 문학작가 파견 사업 작품집, 2010년 2월 5일)
( 2013. 시집, <하늘에 기댄 dso>, 태원 )
배 꽃
남진원
새봄이 오시면
환히 뵈는 길
등댓불 깜박이듯
눈뜨는 곳에
물동이 이고 가는
고향집 처녀
버드나무 파란
까치가 울면
고향은 가슴부터
물빛에 젖어
나도야 꿈꾸는
배꽃이 된다
자꾸 자꾸 피고 싶은
배꽃이 된다.
( 1989년 9월호. 『해안』 6집 )
배꽃
남진원
어릴 때 나를
찾아보고 싶어
어릴 때 살던 집을
찾았습니다.
시간은
흘러갔어도
민들레, 냉이, 달래 …
고향집 풀포기는
그대롭니다.
배나무 집 순희는
시집을 가고
없어도
배나무엔 올해도
하얀 배꽃이
피었습니다
관준네 배나무
남진원
관준네 집 뒤 울안 우람히 선 배나무
배꽃이 4월이면 기막히듯 눈부셨지
엄마 손 잡고 지날 때 유난히도 마음 갔지
( 2020. 6. 14. )
배 려
남진원
혹독한 바이러스 한동안 앓고나면
몸 안에 생겨나는 고마운 항체처럼
인간의 최고 항체는 남에 대한 배려지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배불뚝이
남진원
배불뚝이
이웃집 아저씨들
집들도
아저씨 닮아
배불뚝이입니다
배불뚝이 아저씨
배불뚝이 집속에
우리 집은 꽁꽁 갇혔습니다
전에는 눈감고도
찾아오신 해님이 어떻게 찾아오실까
걱정이 됩니다.
( 1989년 7월호 『아동문학』 ‘이달의 동시 특집’ )
백년의 벗
남진원
말 건네면 말찍이 강만 보고 앉았더니
외로워서 이제는 산이 먼저 다가오네
내 옆에 숨쉬고 있는 백년의 벗, 깊은 도반
미소를 보내어도 언제나 묵묵부답
그 적막 외려 좋아 마음으로 듣는 언어
오늘은 산 옆에 또 하나 고요가 와 벗 했네.
( 2019. 12. 31. 남진원 산문집 ,
『달빛에 싼 청산 한 채』‘산의 풍미에 들다’ 중에서. )
백발에 움 돋는 사랑
남진원
나이 육십이 넘어 사랑이 움트고 있다
어리석은 아픔, 어리석은 떨림이라 여겼는데……,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이더냐
아픈 것도 떨리는 것도 즐거움이니 움돋는 대로 시드는 대로 두어 볼 일…
무감각하게 늙어가는 것보다 낫지 않는가
백발에 움 돋는 사랑,
첫눈처럼 희다
- 남진원 시집 [무소유의 냄새 ] -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백자
남진원
오백 년 밤을 지펴 빚어놓은 항아리
휘어질 듯 이어지는 선과 힘 그 무늬마다
그 옛날 우리 하늘이 줄기줄기 쳐든다.
( 『보험뉴스』, 1976.)
백자
남진원
구름을 가져와 빚어놓았다.
천둥과 바람소리
물소리
숯 냄새가 난다.
풀뿌리 같은 숨결
조선의 혼이 스며있구나.
오늘 다시
들여다본다.
어머니 같은
조선의 백자
저, 흙 속에서
살아나는
,
혼불을 듣는다.
白鍾
남진원
내 손이 종메이면 내 머리는 白鍾이지
아침에 서른세 번 머리를 살짝 치니
허공을 진동하다가 되울려 날 허문다
( 2020, 전자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 한국문학방송)
백혈구
남진원
잠을 깨면 밤이 우두커니
간병인처럼 앉아있다
“잠이 안 와?”
거실을 서성이던 아내가 들여다보고 있다
“많이 아파?”
암 덩어리가 온 몸에 번진 아내에게 묻는다
허긴 우리네 삶속에서 어디 아프지 않은 날 있었던가
흔들리면서도, 수렁에 빠지면서도, 고단함을 묻은 채 여기까지 용케 흘러왔구나
잠이 안 와?
많이 아파?
평범한 대화가 오늘 밤,
서로를 지탱해주는 백혈구가 된다
( 2013. 시집, <하늘에 기댄 아내>, 태원 )
버들강아지
남진원
작년에도
버들강아지
먼저
찾아오더니
올해도
호호호
손을 불며
먼저 와서
봄 먹고
어린애처럼
붙여 놓은
밥풀들
(1979. 8. 20. 물레방아 2호)
버스가 들어오던 그때
남진원
어둑어둑 할 때면
요정처럼 나타났지
빨강 노랑 등을 켠
옛날 그 시골버스
촌놈인 우리들 눈은
화등잔만 해졌지.
앞머리에서 뒷 꽁지까지
샅샅이 훑어보고
신기하고 희한해서
또 다시 둘러보고
누런 코 질질 흘리며
가슴이 울렁 댔지.
또 있다, 또 있어
말쑥한 차장 누나
우리 동네 순데기 보다
몇 십배 더 예뻐 보이던
살결이 뽀얀 누나를
슬금슬금 훔쳐봤지.
오라잇! 신나는 차장 누나 목소리
그래서 우리 또래
말광량이 계집애들은
큰 꿈이, 제일 큰 꿈이
차장 누나 그거였지.
버스가 잠을 자고
다음 날 떠날 때면
머리를 빡빡 깎은
촌놈인 우리들은
손에다 침을 뱉어가며
뒤를 따라 달렸지.
벌써 60년도 더 된 일이구나.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출판사.)
버스에서 총총히 내려
남진원
11월, 12월의 어둑한 저녁, 버스에서 총총히 내려 바지런 떨며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선다. 따뜻한 온기가 추위를 가시게 한다.
“여보, 자아?”
누워있는 아내 곁으로 다가가면 음성만 듣고도 반가워서 ‘아-!’ 하고 팔 벌리며 반기던 아내
아내의 즐거움, 아내의 기다림이 다 들어있던 짧은 한마디
옷을 갈아입고 간이 의자를 끌어당긴다.
나는 아내 옆에 마음 링거를 꽂고 앉는다.
( 2013. 시집, 하늘에 기댄 아내. 태원 )
번뇌
남진원
번뇌를 얻고 나니
깨달음, 그도
잡을 게 아니네.
벌초를 하면서
남진원
예초기를 돌리다가 문득 생각이 든다. 이렇게 벌초를 하면 조상이 아나, 술을 부으면 아나,
묵묵부답이다. 내 죽고 나면 이 산소도 금방 산이 되고 말 것 같다.
어릴 때처럼,
그 많던 어린 아이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유년의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어 마을 회관이 되었고 운동장엔 을씨년스런 트럭 몇 대가 침묵을 삼키며 앉았다.
만국기 펄럭이며 가을 운동회를 하던 그때의 추억은 생각 속에서 아련하구나.
56년 전만 해도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들 내 동생들 모두 이곳에서 이웃과 어울려 땀 흘리며 일하고 하하 호호 웃으며 지냈는데 …,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진용이 동생은 모두 한 줌의 흙이 되었네. 어릴 때 소년이던 나는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되고 …
인생은 뜬 구름 같은 것. 다 일장춘몽이구나.
( 2018. 9. 13. )
벌침
남진원
밭일 끝내고 호미를 걸다가
아버지가 그만 벌집을 건드렸다.
웬 놈들이야?
쌍살벌이 앵앵거리며 일시에 달려들었다.
겁나서 못 맞던 벌침
아버지는 한꺼번에 맞았다.
대박이다!
퉁퉁 부었지만…
( 2015. 9. 17. 제14시집 『 산골에서 보내온 동시』, 좋은 꿈 ),
범려
남진원
선생은 어디 계신가?
시종 드는 아이가 고개 흔드네
약초 캐러 가시면 기약이 없으시죠
오호, 통재라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제나라 임금이 돌아간 후에
망태 메고 내려오는 노인이 있네
형형한 눈빛, 수염이 다섯자
얘야, 찻물을 끓여라
시종 아이 찻물을 끓이느라 분주하네
그윽한 차 향기
산막 주위를 떠도네
( 2025. 4. 7. * 나의 삶 나의 문학, 남진원문학전집 2권 ‘설화속의 도주공’ 에 수록 ])
법 또는 물에 대한 생각
남진원
무단횡단, 안돼요
싸움하면 안돼요
늘 우리보고는 이런 말 하는 어른들
체포영장, 서로 법을 앞세우고는
한쪽은 들어가려 하고
다른 한쪽은 막아내려 하며
서로 법을 지키지 않아요
법을 지켜야 하는 국가단체에서
몸싸움까지 한대
그러다가 정말 큰 싸움 날까!
걱정된다
어른들이, 우리들이 장난할 때 하는
몸싸움까지 하다니 …
이상하다,
이상해
그러고 보니, 사람 마구 죽이는 전쟁도
어른들이 하는구나.
연일 말 할 때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먼저 앞세우는 사람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데
저분 어른들 때문에
아, 어른과 어린이들 먹을 물까지도
그래서 날마다 흙탕물이 되는 건가.
(2025. 1. 3.)
벗
남진원
소나무 벗 삼아
떠돌다 보면
채이는 돌부리도
내 친구이고
물길을 벗 삼아
흐르다 보면
떠도는 물소리도
내 친구이고.
(2001년 6월 3일)
( 시집, 『어초(語草), 붓다가야, 2002. 8. 1.)
벗
남진원
아침마다
새소리와 벗하는 날
2003년 2월 5일, 오늘은
천지가
하얀
눈 뿐이다.
친구가
더 늘었다.
얌전히 앉아 있는 눈과
따뜻한
커피 한 잔
반 쯤 열어놓은
문(門)도…
그래, 너도 내 벗이다.
(2003년 하반기 「강원문학」 시 작품 발표)
벗
남진원
2003년 2월 5일
천지가
하얀 눈이다.
새소리가 슬며시 찾아온다.
얌전히 앉아 있는 눈과
따뜻한
커피 한 잔
반쯤 열어놓은
문(門)
모두
벗이다.
( 2004. 6. 30.. 제10시집 『 장자의 하늘』, 태원. )
벗
남진원
풀울 벗 삼으면
풀 향기 절로 따라오고
나무를 벗 삼으면
새소리 절로 동무하고
좋은 사람 벗 삼으니
따뜻한 정이 덤으로 곁에 오네
( 2012. 10. 13. 제11시집 『톨스토이태교동시』,처음주니어,)
벗
남진원
나무가 움직일 때
냄새가 난다
풋풋한 나뭇잎 같은
깊은 골물이 내려올 때에도
냄새가 난다
이끼 덮인 바위 같은
벗이 올 때에는
향기가 난다
따뜻한 고향 같은 ……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벗
남진원
말 건네면 멀찍이 강만 보고 앉았더니
외로워서 이제는 산이 먼저 다가오네
내 옆에 숨 쉬고 있는 넓고도 깊은 도반
미소를 보내도 언제나 묵묵부답
그 고요, 외려 좋아 마음으로 듣는 언어
오늘은 산 옆에 또 하나 침묵이 와, 벗 하네 -
벗
남진원
나이 들어 권세 없으니
이따금 찾는 이웃
주위의 무심한 분들
진실로 가까워진다
늙는 게,
다 복이구나
( 현대시조 2023년 봄호. 2023. 4. 30.)
어떤 벗
남진원
고향집 뒤란에서 자라던 대추나무
여름날 심심했나 매미를 데려와서
낮잠에 들려던 나를 거침없이 불러냈지
벗에게
남진원
밭에서 몇 포기 해바라기 꽃이 피어
서로서로 둥근 해처럼 환한 웃음 짓고 있다
‘날마다 요렇게 지내세요!’ 사진 찍어 보냈지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벗을 만나다
남진원
길에서 또 우연히 벗을 만났다
반가움에 성큼 다가서는 발걸음
이리 가끔 만나는 벗,
‘ 우연히’가 아닌 것도 같다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벗한 세월 …, 얼마였나
半 百年이 되었구나
요즘,
사람들이 사소한 말이나 행동 하나에도 서운해하며 돌아선, 오래 벗한 친구들이 얼마더냐
이제 이 친구를 보니,
독설도 문드러지고 시건방 떨던 모습도 온 데 간 데 없다. 高潭峻嶺의 패기에 차던 淸談도 어디에다 팔아 먹은지 오래인 듯…
그저 반 쯤 멍한 채, 草露의 늙은이가 되어 서 있는 사람,
해탈이나 한 듯, 바람 속에서 허연 머리카락이 반기는 듯 흩날린다.
중앙시장 통 부산식당에서 닭국밥 국물에 소주 한 잔 나누다가 불현 듯 벗이 목소리를 높인다.
“人生七十古來稀라더니, 벌써 칠십을 바라보는 예순아홉이구나.”
“오, 태음수와 태양수가 만난 나이가 아니랴!”
허 허 허 허 허 …
반백의 두 늙은이가 웃었다. 읏음은 세월에 낡았어도 오랜 벗이 있어야 맛볼 수 있는 웃음이었다.
(2020. 1. 9. 친구와 함께 한 부산식당의 저녁 일을 적다)
벗이여, 지나다가…
남진원
내가 사는
옥천동 옛집은
목조 단층 건물
담장은 시멘트 블록담이지요
그러나 흥부네 박처럼
주렁주렁
박이 열려요
대문은 늘상
열려 있으니
벗이여 지나다가
들려주시게나
국화꽃 몇 송이
새소리 두어 줄
선물하겠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벚꽃
남진원
내 허기 타 들어가던 두 팔로 안아 보니
아린 숨결 마디마디 봄빛으로 되살아나
삭혀 온 잿빛 눈물이 꽃잎으로 다가온다
검버섯 돋아나는 투박함 속에는
휘어진 가지처럼 삶도 이리 무겁지만
저 속에 피운 환희로움 눈 못 뜨게 아리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 시집속의 시조집 「나를 놓다」
벚꽃
남진원
검버섯 돋아나는 투박한 情人이다
휘어진 꽃가지에 매달린 너, 그리움
흰 불로 지지며 뜬다 아린 속말 환한 귀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벚꽃
남진원
검버섯 돋아나는 투박한 가지마다
휘어진 눈물처럼 그렁그렁 매달린 꽃
흰 불로 지지며 뜬다 아린 속말 환한 귀
( 문학관, 도서관의 문학작가 파견사업 작품집, 2010. ‘자장면 먹는 노인’ )
벚꽃의 미모
남진원
화사한 미모에 잊을 번 하였지만
꽃잎인가 눈물인가 그렁한 목숨의 꽃
아, 4월 흰 불로 지핀 아픈 속말 환한 귀
(2020. 전자책 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한국문학방송)
벚나무를 보며
남진원
내 허기 타 들어가던 두 팔로 안아 보니
아린 숨결 마디마디 봄빛으로 되살아나
삭혀 온 잿빛 눈물도 꽃잎 되어 다가온다
검버섯 돋아나는 투박함 속에는
휘어진 가지처럼 삶도 이리 무겁지만
저 속에 피운 환희로움 눈 못 뜨게 아려라
(2020. 전자책 시조집 『꽃물 들어 아픈 날』,한국문학방송)
벼
남진원
시골길
지나는 데
벼 익는
냄새
둘러보니
벼가 패고 있다.
벌써?
벌써!
( 2015. 9. 17. 제14시집 『 산골에서 보내온 동시』, 좋은 꿈 ),
별
남진원
머나 먼
그
하늘 밭
터질 듯
외로운
몸짓으로
밤에만 피어나는
들꽃
내 작은
들꽃
( 1985. 11. 7. 제2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
별
남진원
눈빛이 고아
눈빛이 맑아
가슴에 훈장처럼
너를 달고 싶은
밤
( 1985. 11. 7. 제2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
별
남진원
별들은 추위에도
용감하다
추울수록 빛을 내고
어두울수록 더 눈부시다
힘들 때
하늘을 보면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이 있어서
나는 네게로 가는
사다리를 놓는다
땅에서 하늘로 오르는
내 마음 사다리
( [일송정에 뜬 달 경포호에 잠들고] 문집, 2007. 9. 6)
별
남진원
풀꽃이
웃는
그런 모습이라서
닿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머얼리서
이름만
불러 본다
별 --
( 1987. 10. 1. 제3시집『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 1992. 5. 6. 제7시집.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별
남진원
풀꽃이 여리게 웃는 그런 모습이구나
닿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가만히 마음속으로 불러 본다 별 별 -
.
( 제16시집 『쇠장수 강영감님』, 태원, 2021. 11. 22 )
- 시조작품집 좋은 작품상 수상 (시조문학사) -
별
남진원
여름 밤
별들이 모두
하늘에 나타났어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아요.
어두운 곳에서
내려다 보아요.
별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나 봐요.
■ 높은 곳에 있으면 무섭지 않나? 나무 꼭대기에만 있어도 어지러울 것만 같은데… . 별들은 깜깜한 밤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어요. 참 대단해요. 나쁜 짓 하는 사람이 누굴까, 누굴까? 하고 살피는 것 같아요.
별
남진원
오늘은
별들이
창문을 곡꼭 닫았습니다
비가
옵니다
하늘나라에서 내려오는
저 빗방울들은
별들의 눈물이라오
때가 붇은
지구 마을을 보고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들을 보고
별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깨끗한 마음은
아름다운 마음과
만나냐 한다며
별들이 눈물로
지금
지구 마을의 먼지 낀 곳 더러운 곳을
닦아주고 있는 거라오
나는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나를 내려다보던
별 하나를 생각하고 있어요.
( 1990년 10월호 『소년』)
( 1992. 5. 6. 제7시집.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난 양말』 )
별
남진원
비와 바람과 구름에서
거문고 소리 들리고
별이 돋는다
별은 이끼 덮인
靑玉 빛
물너울처럼 너울 너울
어둠의 벽을 흔든다
흰옷 입은
사람아 사람아
풀잎 냄새 나는 사람아
(을유년 섣달)
별
남진원
밝은 날엔
별이 빛을 내며
쏟아지는 줄 몰랐다
늘
별은 빛나고 있었는데 …
그대도
그랬다
오늘 같이
어둠이 깊은 밤에야
알 수 있었다
그대가
가장 아름다운 별이었던 것을.
(2023. 5. 7)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별 1
남진원
비와 바람과 구름에서 거문고 소리 들리고
별이 돋는다.
별은 이끼 덮인 청옥 빛
물너울처럼 너울너울
어둠의 벽을 흔든다.
흰 옷 입은
사람아 사람아
풀잎 냄새 나는 사람아.
( 시집, 『장자의 하늘』, 태원출판사, 2004. 6. 30)
Star 1
In rain, wind and cloud,
The sound of a Korean harp is heard,
And stars appear in the sky.
Stars with the light of mossy sapphire,
Dancing like water waves,
Swing the wall of darkness.
Man with white clothes!
Man with the smell of grass!
( 訳:원병관 )
별 2
남진원
밤마다 메밀꽃처럼 마늘과 쑥 냄새가 난다
맑고 곧은 잠이 흐른다.
( 시집, 『장자의 하늘』, 태원출판사, 2004. 6. 30)
Star 2
Every night,
Like a buckwheat flower,
It smell of garlic and mugwort.
Clear and honest sleep flows.
( 訳:원병관 )
별 3
남진원
황토 빛 눈부신 함성
( 시집, 『장자의 하늘』, 태원출판사, 2004. 6. 30)
Star 3
Radiant outcry in the light of ocher.
( 訳:원병관 )
별 4
남진원
뜨거운 기운을 흩뿌려놓고
은은하게만 보라고
아득하게
쏘아보내는
뽀얀 금속성
울림
( 시집, 『장자의 하늘』, 태원출판사, 2004. 6. 30)
Star 4
The hot energy was spreaded
To be seen only dimly,
Shooting in the remote distance,
Booming of misty metallic sound
( 訳:원병관 )
별
남진원
7월 한 달 누워 보낸
2인용 병실 안
고적한 밤 초록별이
속삭이듯 찾아왔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친구처럼 정겨웠다.
( 2024. 6. 26 )
별
남진원
잎사귀에 매달린 물방울
둥지 속에서 꿈꾸던 아기새
풀잎 속에 숨어
가만히 울던 풀벌레
그들이
내가 그려놓은
초록색
작은 별을 보여 달라고 졸라요.
내가 사랑하는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고 싶대요.
나는 부끄러워 대답을 못 했지만
그들이 잠든 틈에
살그머니
그들 곁에 놓아두기로 했어요.
물방울과 아기새와 풀벌레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거든요.
( 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화술. 1989. )
( 동시집 『선생님의 구멍 난 양말』, 계몽사. 1992. 이 시집에서는 제목이 ‘별 이야기’임. )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