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장 ·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59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연구기관이다. 자원도 없고 전쟁 끝에 폐허만 남아 있던 이 땅에서 선진국만의 소유물이었던 미래 에너지, 원자력을 꿈꿨다. 초창기부터 연구원의 목표는 선진국의 기술인 원자력 기술을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 첫 사례가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다. 설립 초기에는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인 ‘TRIGA MARK-Ⅱ’를 공급받았다. 이후 약 30년이 흘러 1995년에 드디어 연구원은 자력으로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설계·건설한다. 14년 후인 2009년에는 요르단에 JRTR 연구로를 1억 6,100만 달러에 수출하며 우리나라 최초 원자력 시스템 일괄 수출에 성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1988년 원전에서 사용하는 핵연료를 국산화한 데에 이어 1996년에는 한국표준형원전을 국내 기술로 설계해 훗날 이를 개량한 APR1400이 한국수력원자력(주)에 의해 UAE에 수출되기에 이른다. 이제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기술이 ‘자립’ 단계를 넘어 ‘세계화’ 수준으로 도약한 것이다. 2012년에는 세계 최초로 한국형 SMR인 ‘SMART’를 독자 개발하고 표준설계 인허가까지 받았다. ‘SMART’는 기존 대형 원전보다 경제성과 안전성을 대폭 높인 소형 원전이다. 최근에는 ‘SMART’를 개발한 기술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된 형태의 SMR인 혁신형 SMR(i-SMR)을 개발하며 미래 시장을 선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기술 도입 약 60년 만에 미국, 프랑스 등 원자력 선도국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원자력 기술로 국민과 세계가 지지하는 연구원으로 나가기 위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있을까?
1. 국민 안심 원자력발전을 향한 ‘원자력 안전 연구 개발’
연구원에는 국내 최고 안전 전문가들과 국내 최다 원자력 안전 연구시설이 있다. 대표적인 시설로는 가압경수로 열수력종합효과실험장치 ‘아틀라스(ATLAS)’가 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와 고장을 실제 압력과 온도 조건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장치다. 가동 및 개발 중인 원전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효과적인 운전 절차와 사고관리 절차를 수립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원자력 사고 사전 예방부터 사고 시의 환경 방호까지 원자력 안전과 관련한 모든 연구를 종합적으로 수행한다. 또한 첨단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하여, 인공지능 기반 원전 자율 운전 기술, 중대 사고 대처 로봇, 3D 프린팅 이용 부품 생산기술 등 첨단 안전 기술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2. 미래 과학기술을 이끄는 ‘연구용 원자로 이용 연구 개발’
세계 10위권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로서 중성자 공장인 ‘하나로’와 자체 기술로 개발한 양성자가속기, 사이클로트론 등 대형 연구시설을 구축·이용해 대한민국 기초과학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 수준의 높은 중성자속을 자랑하는 ‘하나로’는 냉중성자 연구시설을 이용한 나노 및 바이오 구조 분석 등 중성자를 이용한 기초과학연구와 다양한 산업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첨단 신소재, 의료·산업용 방사성 동위원소, 중성자 도핑을 통한 고품질 반도체 등은 모두 하나로를 이용해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다. 작년에는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장 수출용신형연구로를 착공해 국내 의료용 동위원소 자급률을 높이고, 연구용 원자로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3. 국가와 인류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선진 원자로 및 후행핵주기 기술 연구’
세계 최초로 개발한 ‘SMART’, 최근 개발에 착수한 혁신형 SMR 등 우리나라가 소형 원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술력의 핵심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다. 원자력을 이용해 수소를 대량 생산하는 초고온가스로, 원자력 추진 선박에 활용할 수 있는 용융염 원자로 등 선진 원자로 기술 개발에도 힘쓰며 국가와 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향해 순항 중이다. 아울러, 사용후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의 발생부터 최종 처분까지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안전관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지하 깊은 곳에 방사성폐기물을 영구히 격리해 사람과 환경을 보호하는 기술,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기술, 원자력 시설을 안전하게 해체해 본래의 자연 환경으로 되돌리는 기술 등 안전하고 깨끗한 새로운 내일을 연구하고 있다.
4.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는 ‘첨단 방사선 기술 개발’
연구원은 세계 최고의 방사선 연구개발 성과 창출과 국가 방사선 신산업 육성이라는 목표 아래 2006년 첨단방사선연구소를 설립했다. 방사선 종합 연구개발기관인 첨단방사선연구소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창출하며 우리나라 방사선 기술 산업 육성과 발전을 선도해왔다. 특히, 방사선 기술을 이용한 고부가가치 신소재 개발, 환경오염 물질 처리, 유전자원 개발 및 유용 물질 생산, 국민의 건강과 삶을 증진하기 위한 방사선 기술개발에 힘쓰고 있다. 또한, 차세대 핵심 연구 분야인 방사선기기 분야를 집중 육성 지원하여 국가 방사선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소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미국 원자력학회 석학회원(Fellow),
Purdue 대학교 원자핵공학 박사(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