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지면서 19대 대선이 치러지고 정권교체가 실현되어 문재인 정부가 국민 절대다수의 희망 속에서 출범했고 5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열망은 많은 국민들에게 냉소 혹은 환멸로 돌아가 있는 상태로, 기대는 컸으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2월 10일 전국 영화상영관에서 동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촛불(감독 김의성·주진우)'은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한 국정농단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2016년 전 세계가 주목한 그 시작의 날.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정치인들이 그날의 비화를 증언하며, 새 시대의 희망을 걸었던 국민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6년 10월 29일 5만 명이 처음 모인 ‘박근혜 하야 촛불 집회’는 매주 규모가 커져, 11월 12일에는 106만 명에 달했고, 12월 3일에는 최다 규모인 232만 명이 광화문광장에 운집했고, 2016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총 23차례에 걸쳐 1,600만 명이 이어진 비폭력 평화집회였습니다.
"모두가 불가능 할 것이라 했던 변화를 이끈 건 광화문에서 밝힌 국민들의 촛불이었다." 는바, 부정부패와 국정농단으로 국민들을 우롱했던 날들, 전 세계가 주목한 가장 위대했던 대한민국의 1,600만 명이 한 목소리로 세상을 바꿨던 그때를 기억합니다.
촛불혁명 후 5년. 한 손에는 ‘촛불’을, 한 손에는 ‘박근혜 탄핵이라 적힌 푯말’을 들고 광화문으로 향했던 시민들의 생생한 증언들은 다시 한 번 그 날의 광장으로 데려간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은 “2016년 전 세계가 주목한 그 시작의 날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정치인들이 그날의 비화를 증언한다!” 라고 소개합니다.
마침 영화 개봉에 맞춰 더불어민주당 서초갑지역위원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라서 2월 12일에는 김안숙 서초구의회의장 님의 “서초사랑 나의 꿈” 출판기념회를 축하드리려 참석하였고, 2월 13일에는 이정근 더불어민주당 서초(갑) 국회의원후보 선거대책위원회 ZOOM 발대식에도 참석하면서 관람했습니다.
“영화 <나의 촛불>은 다른 세대의 시민들과 다른 정파의 정계 인사들, 국정농단 사건의 증인이 되었던 이의 목소리를 세세히 기록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던 기반과 정치적 행보와 탄핵되는 2017년 3월 10일까지의 사태를 전 방위적으로 기록한 깔끔한 보고서와 같은 다큐멘터리이고, 간명한 보고서 안에서 정치와 사회의 구조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예리한 영화다.”라는 2020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홍은미의 말에 저 한 상석도 공감합니다.
영화 <나의 촛불> 내용
“박근혜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영화 <나의 촛불>에서 언론인 손석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통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명민하고도 날카로운 대답을 하는데, 그 통상적인 생각이 수백만의 손에 촛불을 쥐게 했고, 어긋난 역사를 조금이나마 바로잡게 했으며, 숱한 허망 속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경향신문 백승찬 기자의 “대선 한 달 전 돌아보는 촛불의 의미 영화 ‘나의 촛불’” 보도를 살펴보면, 영화의 첫 장면은 손석희 JTBC 사장 인터뷰고, 유시민, 고 정두언, 심상정, 추미애 등 국내 유력 정치인 및 작가가 박근혜 정권 당시를 회고하고 촛불집회와 시민들의 행동에 대해 말을 보탰는데, 초반부는 박근혜 정권을 바라보며 이들이 갖고 있던 우려, 개인적 의견으로 채워져 있으며 중반부로 갈수록 일반 시민들이 출연해 촛불을 들었던 당시 소회를 전하는 형식입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의 탄핵 과정을 그리는 다큐멘터리 <나의 촛불> 영화는 박근혜 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 취임 당시 인상부터 전하는데, 영화에서 ‘특검 수사팀장’으로 소개되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아버지의 과에 해당하는 부분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좋은 부분은 닮아서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다.”고 말하고,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대통령이 되기엔 너무 소박한 사람”이라고 평하며, 고인이 된 정두언 전 의원은 “벌거숭이 임금님”에 비유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권은 차츰 시민들의 불신을 받기 시작했고, 집권 초기 소문만 돌던 ‘비선실세’에 대한 정보도 조금씩 구체화됐는데, 정유라·최서원(순실) 등의 이름에 청와대가 과민반응을 보이자 이를 오히려 수상하게 여기는 이들도 늘어났으며, 도화선은 JTBC의 ‘최서원(순실) 태블릿PC’ 보도였습니다. 손석희 당시 앵커는 방송 직전 무슨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방송 1분 전이라 아무 생각도 안 했다”고 답합니다.
영화는 진영을 넘어선 시민들의 요구에 재빨리 응답하지 못한 기성 정치권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데, 정의당만 앞장서 대통령의 탄핵을 거론했을 뿐,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야당은 청와대의 버티기와 여러 가지 정치적 제의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가 철회했던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는 이 영화에서 “똥 볼 찼다고 비난 받았다”고 돌이켰고,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대표는 “솔직히 말해서 함부로 탄핵 얘기했다가 역풍을 맞지 않을까 해서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은 “국회의원이 가장 비겁하고 졸렬했다” “야당이 소극적이어서 절망했다”고 말합니다.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더 많은 집회 참석으로 정치권을 압박했는데, 여당 새누리당에서도 결국 방법은 탄핵뿐이라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나타났고, 이혜훈 당시 의원은 “당 안 분위기가 (탄핵 찬성과 반대로) 홍해 바다처럼 갈렸다”고 회고했습니다.
국회의 탄핵 표결을 앞둔 심정에 대해 김성태 당시 의원은 “집권당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탄핵이 이뤄져도 불행이고, 이뤄지지 않아도 국민들 분노를 어떻게 수습하고 잠재울 지 (걱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는 탄핵과 촛불의 의미로 마무리되는데, “인류의 민주주의 문명사에서 특이점으로 기록될 사건”(유시민), “대의민주주의의 부족한 부분을 직접민주주의 형식으로 채웠다”(정세균),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살린 것”(하태경) 등의 언급이 나옵니다.
<나의 촛불>은 모두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과 전개를 지녔는데, 2016년 후반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던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에 맞서 일어난 촛불시위와, 그 숨 가빴던 막전막후 상황을 요약해 다룬 뉴스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띄고 있고, 공식 출연자만 40명에 달하는 영화는 '촛불혁명'을 촉발시킨 최순실-정유라 스캔들 태동부터 헌법재판소 탄핵결정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총망라함과 함께 당시 상황을 회고하는 정치인과 (시위에 실제로 참가했던) 시민들의 체험 인터뷰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촛불시위 당시 기록영상과 새롭게 촬영한 인터뷰는 차례로 교차해가며 소개되는데, 영화적 전개의 묘미를 굳이 집어넣지 않더라도 실제 사건이 워낙 극적이라는 판단이었을 터, 시작과 끝의 화두와 결산 정도를 제외하면 지독하게 시간대별, 국면별로 이야기는 강물 흐르듯 이어져나갑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꽤 의미심장한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란 인물에 대해 인터뷰 대상자들은 각자의 생각과 평가를 언급하기 시작해 평가는 대동소이한 편인데, 전반적으로 ‘대통령을 하기엔 능력도 태도도 결여된 인물’이라는 것으로 모아집니다. 그와 함께 그가 정치에 뛰어들고 대통령이 되어가는 과정이 인물현대사처럼 간단히 소개되기도 합니다.
함량 미달, 결격사유가 적지 않았던 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부터가 본격적인 영화의 출발선이며, 대통령이 '비선실세'에 휘둘리고 있다는 의혹이 하나둘 실체를 드러내면서 공분한 시민들은 거리로 모이고 속속 폭로되는 황당무계한 정보들은 일파만파 파장을 가져오는데, 급격한 시국변화 속에서 정치인과 언론인, 법조인 등 우리 사회 권력을 나눠 구성하던 이들이 혼란에 휩싸인 가운데 합종연횡 하는 구도가 시간 순으로 이어지며 영화는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재연합니다.
영화 <나의 촛불> 소개
영화 <나의 촛불>은 2018년 12월~2019년 2월 주로 촬영됐고, 3.9 대선 한 달 전 인 2월 10일 개봉했는데, 2월 14일 공개된 방송인 김어준의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서 영화 연출을 맡은 주진우 전 시사인 기자와 배우 김의성이 출연해 영화 '나의 촛불'의 1분 36초 분량 예고편이 공개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한 영화에서 뭉치는데, 안철수 후보는 안 보입니다.
'나의 촛불' 측은 "2016년 겨울부터 2017년의 봄까지, 1600만 명의 국민들이 한목소리를 내던 그 때, 그 과정에서 숨어있던 놀라운 비밀들과 이제는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담아냈다"고 소개했는데, 모든 사건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직 국가대표 펜싱 선수 고영태 씨부터 현재 대선 후보인 윤석열, 그리고 손석희 전 JTBC 총괄 사장,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심상정 후보, 박지원 국가정보원 원장 등 다양한 인물들과 더불어 당시 촛불집회에 참석한 많은 촛불시민들이 등장합니다.
김의성은 "감독 여러분께 ('나의 촛불' 연출을) 문의했는데 '사정이 있다'고 하면서 피하더라. 그래서 저희 둘이 했다"고 연출을 맡게 된 배경을 설명했는데,
김의성은 박 전 대통령 관련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 수사팀장이었던 윤 후보에 대해 "(윤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죄인 건 당연하고, 촛불의 힘으로 수사했다'는 말을 한다."고 전했고, 이에 주진우도 "촛불을 막 숭배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어준은 2017년 4월 18대 대선 개표 부정 음모론을 다룬 '더 플랜'을 시작으로 같은 해 영화 '저수지 게임', 2018년 '그날, 바다', 2020년 '유령선' 등 4편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는데, 특히 '저수지 게임'은 주진우가 직접 출연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취재기를 전했고, '그 날, 바다'와 '유령선'은 모두 세월호 관련 음모론을 담았습니다.
오마이뉴스 이선필 기자는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성 면에서 저널리즘 다큐들이 갖던 추적, 탐사의 흐름은 아니고 기록 다큐멘터리로써 당시 촛불 정국을 회고하고 돌아보는 정도로 갈음할 수 있을 것이라서 조금은 독특한 위치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라면서,
이어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여러 실책들, 세월호 참사부터 국정 농단까지 한 번에 훑으려는 시도를 했는데 그 사건 각자가 갖고 있는 엄중함에 비해 따라오는 장면은 일종의 오피니언 수준의 말들로 자칫 그 무게감이 희석될 여지를 준다는 게 아쉽고, 주제 의식에 공감하면서도 당시 상황이나 사건을 보다 입체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데엔 힘이 부족하다.”라는데, 저도 공감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2월 10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의 흥행은 지난해 이후 현재까지 개봉한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상당히 좋은 성적으로 첫날 3위로 출발해 두드러져 파란을 예고했고, 주말 7위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4일 만에 2만 5천 관객을 기록하며 3만 관객에 다가섰습니다.
<나의 촛불> 아닌 <우리의 촛불>
광장으로 모여든 촛불 든 손,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목소리가 점차 커졌고, 처음엔 3만, 그다음엔 30만, 어느 틈에 100만이 되더니 이내 추산 1600만 명이 광화문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코앞까지 불어 닥친 탄핵정국, 헌정사 최초 대통령 파면. 국회는 두려웠습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총 투표수 299표.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 당리, 당적을 뛰어넘은 국회의 결단.
촛불은 혁명을 이뤄냈는데, 외신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비폭력' 시위를 주목했고, 평화로 일구어낸 혁명, 그들이 들여다본 것은 단순히 대통령 교체에 있지 않았고, 국민은 국가의 대표를 세우기도 하지만 끌어내릴 수도 있는 '주권자'라는 사실을 명백히 했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나라. 그것도 유혈 사태 하나 없는 비폭력 시위 방식으로 이뤄낸 일이라는 사실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기에 충분한 일이었던 대한민국의 2017년은 그야말로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취임 초기 국정 운영보다 그의 옷차림이 주목받았을 때도,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눈물짓던 그 날에도, 비선실세 의혹이 불거진 그때도 기대를 배반당한 국민들은 믿지 않았고, 아니 믿고 싶지 않았으며, 우리의 주권으로 세운 국가 수장의 실체, '애민정신'보다 '애먼정신'을 가졌던 아둔한 임금. 국민은 대통령을 뽑았던 그 손으로 대통령을 심판해야 했습니다.
국가적으로 다사다난했던 그 역동성을 내세운 다큐멘터리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추적한 게 아닌 말 그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부르짖으며 기꺼이 행동에 나선 촛불 시민이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4월 29일까지 연인원 1600여만 명이 참여해 평화적 수단으로 당시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린 사건은 지금도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거대한 집단체험으로 남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며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했던 그때의 기억은 지금 우리들에게 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까요.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광장에 모인 수백만의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대통령 하야”를 외쳤고 박근혜 정권의 거듭된 실정으로 인한 실망과 고통의 근절, 이른바 적폐청산의 요구가 광범위하게 표출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고, 그런 각자의 희망사항들이 당시 정권의 실정과 무책임함이 만천하에 폭로되자 용암처럼 분출해 그 추웠던 겨울을 불태운 셈입니다.
오마이뉴스 김상목 기자는 “이게 아닌데... 상상과 달랐던 영화 '나의 촛불'”기사에서 “칭찬받건 비판받건 당시 정국에서 각자의 역할과 지분을 갖고 있는 유력인사들의 인터뷰가 자연스럽게 보는 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확보해 가는 데 비해, 시민들이 등장하는 분량은 주로 시위 참여의 첫 기억이나 소소한 체험담, 주요 전환국면에서 느꼈던 소감 등으로 내용이 큰 차이 없이 획일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모양새다.” 라는 주장에 저도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습니다.
영화의 시선으로 봐도 끊임없이 주저하고 계산하기 급급하던 야당 인사들은 -그들의 당시 행보에 대한 비판적 조명이 없지 않음에도- 사실상 이 영화의 주역이자 해설자처럼 군림하는데, 자칫 작품의 기조 자체는 그들을 위한 면죄부 수여로 기울지 않는데도 그 겨울 엄동설한에 반 년 간 주말을 길바닥에서 견뎌냈던 수백만 명 시민이 공급한 화력과 버텨주는 방어력에 기대어 조삼모사 정치공학 계산을 거듭하는 데 혈안이었던 유력정당 정치인들의 행태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너무 큽니다.
반면에 박근혜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나 다양한 깃발 아래 모여 광장의 풍경을 풍부하게 만들던 단체와 그룹들은 그저 지나가는 한두 마디 언급이나 사진 몇 장, 아니면 듬성듬성 어쩌다 등장해도 지독하게 도구적으로 쓰일 뿐, 거리 곳곳에서 고유한 의제와 주장을 펼치며 시위를 조력하는 필수임무를 소화하던 집단들은 철저히 외면당해 당시 매주 집회마다 화제가 되었던 다양한 재기 넘치는 깃발들은 그저 흥밋거리로만 다뤄집니다.
영화는 2019년에 만들어졌고 그때만 해도 2022년 현재의 상황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테니 사람들의 기대치(?)에 비해 정작 영화 속 역할은 미미한 편으로, ① 몇 번의 아름다운 '감성폭발' 평화시위 감동 재현과 ② '제0공화국' 부류처럼 권력 내부와 주변 인사들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유형의 정치비사가 기계적으로 혼합된 이야기로 기억에 남을 결과물로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몇 군데 영화제에서 공개된바 이미 2017년에 소개된 적이 있다는데, 퇴진행동의 핵심 무대였던 광화문 광장에서 매주 진행된 퇴진공동행동 전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던 영상 활동가 기록 팀은 자신들이 촬영한 거대한 영상 아카이브 기록을 활용해 개별 작가들의 시선과 주제를 담는 2차 가공을 진행했고, 그 결과물이 10편의 단편 다큐멘터리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광장>(아래 광장)이라는 기획이랍니다.
해당 작품이 가진 함의는 <나의 촛불>과는 상이한 특성이 많은데, 탄핵된 박근혜 정권과는 다른 세상을 열망하는 당시의 기대와 함께 쉽게 해결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과 성찰을 담아 공동창작자들은 여러 주제와 분야별로 어울리는 화두를 선정해 소개했고, 지하철 여성 청소노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위 현장과 뒷정리 풍경, 박근혜 대통령을 특정 동물로 비하하던 풍조 속에서 대두된 동물복지와 권리 논란, 정권은 바뀌었지만 철회되지 않고 이어지는 사드배치, 거리에서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기폭제 역할을 담당했지만 주변부로 밀려나야 했던 미성년자 청소년, 성소수자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이 본 작품에선 주류로 설명됩니다.
동일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음에도 <광장>의 접근법이 차이나 영화 <나의 촛불>에서 소외된 다양한 변방의 목소리가 해당 작품에서 부각되었고,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다루지만 <광장>은 그 무수한 인파 속에서도 다양한 얼굴과 면면을 수소문하며 각자의 속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를 끈질기게 이어나가고 87년 세대가 앞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례와 '당대' 시위와의 경험을 비교 고찰하는 일화도 포함되는 등 지금 다시 봐도 흥미를 끌만한 도전적 시도가 넘쳐났던 작업입니다.
<광장>은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다시 소환될 필요가 차고 넘치고, 이외에 <나의 촛불>에서 스쳐 지나가버린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선과 그들의 눈으로 본 당시 시위국면은 지난해 개봉했지만 묻힌 주현숙 감독의 독립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 등에서 풍성하게 보충 가능하기도 합니다.
결국 2016-2017 박근혜 정권 퇴진운동, 우리가 '촛불', 혹은 '촛불시위', 거창하게는 '촛불혁명'이라 부르곤 하는 역사적 대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 역사의 차원으로 넘기기보다는 현재적 의의를 정립하는 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화두로, 몇 편의 작품들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가진 <나의 촛불>이 드러낸 영화 속 시대정신에 대한 판단과 중심이 관련 소재를 공유하는 타 작업과 상이하기 때문에 결정적 차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빼먹지 않고 언급하듯 세월호 침몰과 그 대응과정의 난맥상, 국정교과서 논란과 블랙리스트 파동, 친 기업 행보와 사회양극화 방치 등 숱한 실정으로 인한 사회적 분노의 폭발이 저변에 무수히 도화선처럼 드러나고 있었기에 적절한 계기가 마련되자 활화산처럼 쏟아져 나온 것이지만, 영화가 취하는 정세인식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하의 정권과 그 비호세력 vs 민주시민 전체의 구도로, 시민들은 건전한 상식선을 회복하기 위해 ('이게 나라냐?' 구호처럼) 한마음으로 일어섰습니다.
사람들은 유난히도 춥던 그해 겨울 굳건히 광장에서 함께 했고, 그들이 버틴 덕분에 갈팡질팡하던 야당이 어렵게 의견을 모아 단합할 수 있었는데, 그와 반대로 혼란에 빠진 집권여당의 균열과 이반을 더해 2016-2017 정권퇴진운동은 온 세계에 자랑할 만한 평화시위로 정권 탄핵에 성공하며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촛불> 아닌 <우리의 촛불>이 소환되어져야 합니다.(2022.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