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2일(월) 광주일보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희곡 <클로저>를 영화화한 동명의 작품이 그리고 있는 사랑의 세계는 로맨틱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하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그리는 세계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며 오히려 사랑의 명분을 뒤집어쓴 가면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철저하게 파헤친다.
“안녕? 낯선 사람?”이라는 첫 대사로 시작하는 영화는 스트립댄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 신문기자 댄(주드 로), 피부과 의사 래리(클라이브 오웬), 사진작가(줄리아 로버츠) 네 사람의 복잡하게 얽힌 사랑과 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운명처럼 만나게 된 네 사람은 서로 쉽게 빠져들고 사랑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너무 쉽게 상처받고 깨어진다. 영화 속 네 사람의 사랑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겪어왔던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네 명의 배우들이 현실의 삶에서라면 쉽게 드러내지 못할 불편한 진실들을 노골적으로 까발려 놓고 관객들에 보여주기 시작하면, 우리는 비로소 냉혹하고 이기적인 사랑의 본질을 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closer)은 가장 낯선 사람(stranger)과 다르지 않다는 진실을 깨닫는 순간,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를 통해 불멸의 히트곡이 된 데미안 라이스의 좌절에 빠진 듯한 음성의 포크송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영화에서 중요한 시퀀스를 지배하는 음악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와 로시니의 오페라 ‘라체레넨톨라’의 선율들이다.
대표적인 희가극 오페라 선율을 선택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음악에 대한 내공도 실로 혀를 내두를만 하다. 사용된 곡들은 극의 내용과 아무런 위화감 없이 어울어질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오페라의 내용이 영화의 진행을 암시하거나 감독의 의도를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코지 판 투테’는 우리말로 ‘여자는 다 그래’라는 의미. 이 오페라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와 함께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 부파 가운데 한 작품이다.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에 의한 마지막 작품으로, 1790년 1월 빈에서 초연되었다.
실제 오페라는 아름다운 멜로디로는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막장의 내용을 다룬 드라마이다. 세 명의 남자가 여자의 정절과 사랑을 시험하는 내용인데 속칭 요즘말로 치면 배우자 바꾸기에 해당하는 스와핑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당시로서는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성 풍속도를 구체화 시켜 다룬 작품이라 환영받지 못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인간의 사랑과 성에 대한 솔직한 담론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거장 칼 뵘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실황이 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예리하지는 않지만 담백하면서도 가장 빈 스타일의 유려한 연주를 들려줄 줄 알았던 뵘의 모차르트 오페라 앨범들은 한번쯤은 꼭 들어봐야할 중요한 연주들이다. 최근의 앨범으로는 르네 야콥스가 콘체르토 쾰른을 이끌고 녹음한 시대악기 연주가 주목할 만 하다. 하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의 섬세하고 투명한 녹음과 어울려 최상의 사운드와 함께 상쾌하고 날렵한 해석을 들려준다.
아마도 ‘코지 판 투테’의 마지막 곡이 끝나는 순간, 영화 ‘클로저’의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스쳤던 같은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과연 그들은 행복했을까?’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