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사무엘하7장1~17절
제목 : 내가 네 집을 세우리라
다윗은 사울이 죽은 후에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온 장로들의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에 오른 후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옴기고, 블레셋과 주변국을 정복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언약궤도 처음에는 실패 하였지만 두 번째 성공하여 다윗 성으로 옴겼습니다.
다윗은 평온 때를 맞아 안정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외부의 적의 공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풍성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한 가지 계획을 세웁니다.
왕궁보다 못한 휘장 안에 있는 궤를 보며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하려는 계획입니다.
분명 하나님이 기뻐하실 그러한 결정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계획을 하나님께서는 만류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성전 건축을 못하게 하고,
오히려 다윗에게 더 큰 약속으로 응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자신이 다윗을 위해 견고한 집(왕조)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 다윗이 성전을 소망하다(1~3절)
1)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입니다(1절).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본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유명한 다윗 언약(4-17절)을 주신 때가 다윗 통치 말기임을 보여 줍니다.
즉 본절에서 가리키는 때는
(1) 다윗이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했을 때인데 여기에서 사방의 모든 대적은 블레셋(5:17-25;8:1) 뿐만 아니라 여러 이방 족속(8:2-14)을 의미하므로 그때는 분명히 다윗의 말기입니다.
(2) 또한 그때는 다윗이 백향목으로 지은 예루살렘 궁에 거했을때(2절)인데 이때는 두로의 히람 왕과 교류가 있었던 때(5:11)이므로 이러한 사실 역시 다윗의 통치 말기임을 입증해 줍니다. 5:11 주석 참조.
따라서 본장은 사실상 8장 이하의 내용보다 더 나중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본서가 연대기적으로(chronologically) 기록된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일관된 흐름을 좇아 기록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2) 왕이 나단에게 하나님의 궤가 휘장 가운데 있음을 안타깝게 여깁니다(2절).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선지자 나단. - 나단(Nathan) 선지자는 다윗과 솔로몬 양대에 걸쳐 크게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본장의 다윗언약 뿐만 아니라 밧세바와 다윗의 간음 사건,
솔로몬의 등극(登極) 등에 깊이 관여하였습니다(12:1-15;왕상1:8-30,32, 39,45).
또한 그는 성전 예배에 있어서 음악을 장려하였고(대하 29:25),
다윗과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대상 29:29;대하 9:29).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 예루살렘 정복(5:6-10) 및 주위 대적들을 모두 제압한 때에 다윗은 두로 왕 히람으로부터 뜻아니한 호의를 입었습니다.
그것은 곧 히람이 다윗을 위해 예루살렘에 백향목 궁을 지어 준 것이었습니다. 이후 다윗은 그곳에서 거처하게 되었는데 본절은 바로 이 일을 의미합니다(5:11).
휘장 가운데 있도다. - 여기에서 휘장(curtains)은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수놓은 10폭의 앙장(仰帳)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으로 성막(tabernacle) 전체를 덮었습니다(출26:1;36:8). 다윗은 이처럼 천으로 덮여 있는 성막속에 여호와외 궤가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입니다(시 69:9).
*시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3) 나단이 다윗 왕에게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라 하십니다(3절)
“[3]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본절의 나단 선지자의 말 중, 전반부는 옳았지만 후반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신다는 말은 사실이었지만(9절;5:10;삼상 16:18;18:12), 다윗이행하려 한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입니다(5, 6, 13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 나단의 이와 같은 말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한말이 아니었고 단지 자기 생각에 옳다고 느낀 바를 피력한 것에불과하였습니다(Keil, Lange).
즉, 그는 다윗의 성전 건축에 대한 소원이 곧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줄로 알고 즉흥적으로 대답했던 것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견지에서 볼 때 이러한 나단의 생각이나 말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앞장서거나 그에 협력하는 것은 성도의 당연한 본분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0:31).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나 이번경우에만은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 뿐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다윗의 제안을 거절하시다(4~7절)
1)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였습니다(4절)
“[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밤에. - 나단이 다윗의 의견에 적극 동조한 바로 그날(3절) 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의 그릇된 충언(忠言)을 즉각 시정해 주시기 위하여 이처럼 신속히 나단에게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아마도 나단은 꿈(민 12:6;왕상 3:5)이나 이상(민 12:6;단 2:19;7:2, 13) 또는 직접적인 계시(창 26:24;민 22:20;삿 6:25-27;삼상 3:1-21)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7절에서는 이것을 '묵시'(vision)로 칭하고 있습니다.
창 40:5-19 강해, '계시의 정의 및 종류' 참조.
2)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성전을 짖지 못하게 합니다(5절).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과 관련된 당신의 뜻을 직접 다윗에게 계시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일단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전달토록 간접적인 방법을 취하고 계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뜻과 나단 선지자의 조언(3절) 간의 불일치로 인해 다윗이 당혹치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代言)하는 사명을 지닌 선지자들의 고유
직분을 존중하셨기 때문입니다(Matthew Henry).12:1-14강해, '선지자'참조.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다윗의 성전 건축 의사를 분명히 반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17:4에서는 '너는...건축하지 말라'고 더욱 확실한 부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 이유를 대상 2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상22: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그것은 곧 다윗이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 평화를 상징하는 성전을 건축할 자로서의 적합한 이미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본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을 건축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다는 다윗의 진실한 마음을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이는 다만 아직 그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일 뿐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에 이르러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것만 보더라도 알 수있습니다(13절;대상 17:12;대하 3-6장).
3) 하나님께서 다윗의 의사를 반대하는 이유를 말합니다(6~7절)
(1) 내가 집에서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다(6절).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그 이유는 곧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고정된 곳에 계시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여기저기 다니시며 이동용(移動用) 건축물에 계셔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과거 430년 동안 종노릇하였던 애굽 땅에서 건져 내셨던 역사적인 날을 가리킵니다.
정통주의 학자들에 따르면 그 날은 B.C. 1446년경 아빕월 15일이었다고 합니다(출 12:41). 출애굽기 서론, '출애굽 연대' 참조.
집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이트'는
①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영구한 건축물(16:21;창 19:2;33:17),
②예배 장소, 또는 성전(출 23:19;왕상 6:5),
③사람이 거하여 안식하는 장소(욥 17:13;전 12:5) 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영구히 거하시며 안식하시며 경배 받으실 만한 견고한 건축물을 의미합니다.
장막과 성막. - 장막(tent)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은 '단순히 이동 할 수 있는 임시 거주지', 곧 천막을 의미합니다(삼상 17:54;대하 14:15).
반면 이와 달리 성막(tabernacl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슈칸'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놓은 장막'을 의미합니다.
즉 '미슈칸'의 동사형 '솨칸'은 본래 '자리잡다', '앉다', '휴식을 취하다', 살다'란 뜻입니다.
이렇게 볼 때 '미슈칸'의 의미는 하나님의 가견적 보좌, 곧 법궤가 자리잡고 있는 장막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출 25:9;민 1:50;시 46:5;84:2).
그러나 이와 같은 두 용어의 차이점은 본절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본절에서 중요한 것은 두 용어가 모두 이동용 거처를 가리킨다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고정된 집에 거하시지 않고 이동용 천막에 거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귀와 영광으로 가득 차신 여호와 하나님(대상 16:27;겔 39:7)께서 화려한 장소에 계시지 않고 비천한 장소에서 거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사랑하사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인간의 수준으로 낮아지신 것을 의미합니다.
(2) 내가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고 하십니다(7절)
“[7]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모든 행사를 의미합니다(Lange).
먹이라고. - 여기서 '먹인다'(라아)는 말은 본래 목자가 가축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창 37:13;민 14:33;삼상 16:11).
따라서 이 말은 주권자가 백성을 다스리거나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인도하는 사실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삼하 5:2;시 23:1;슥 10:2).
여기서도 이 말은 백성을 '통치하다', '지도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 - 학자들은 본절의 '지파'라는 말을 놓고서 서로 해석을달리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이 말에 대하여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습니다.
(1)지파를 사사로 보는 견해입니다(Bertheau, Ewald, Thenius).
이러한 사람들의 주장은 본절과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17:6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즉, 본절의 '지파'(쉬브테)라는 말이 대상 17:6에서는 '사사'(쉬프테)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본절의 '지파'는 '사사(士師)'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합니다.
(2)'지파'란 말을 그대로 인정하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여기서 '어느 지파'란 다윗 이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단과 같은 지파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상과 같은 두 견해 중 우리는 어느 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인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두 견해를 다 염두에 두고 본절을 대하는 것이 보다 무난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사(士師)들 대부분이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단과 같은 지파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서론, '이스라엘의 사사들' 참조.
백향목 집. - '백향목'(cedar)은 그 당시 최고급 건축 자재이며 궁궐과 성전을 짓는데 사용되었습니다. 5:11 주석 참조.
그리고'집'(바이트)은 이미 6절에서 나온 말로 영구히 거할 수 있는 견고한 구조물을 의미합니다.
즉 다시 말하자면, 이는 곧 궁궐이나 성전 따위를 의미합니다.
3. 하나님이 다윗 가문의 왕위 보전을 약속하시다(8~17절)
1) 내가 너를 목장 곧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겠다(8절).
“[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본절에서부터 17절에 이르기까지에는 이제 그 유명한 '다윗 언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성전 건축에 대한 다윗의 가상(嘉賞)한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윗 왕조에 대한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특히 이는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임하실 메시야(Messiah)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는바(13-16절) 더욱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8-17절 강해, '다윗 언약 속에 나타난 메시야 사상' 참조.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는 아비의 양을 치던 자였음을 상기시켜 주는 말입니다(삼상 16:11).
*삼상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주권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일꾼을 의미합니다. 6:21 주석 참조.
따라서 이 말에 포함되어 있는 강한 의미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selection)입니다.
즉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양치는 목자에서 일약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겠다(9절)
“[9]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하실 때에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바 있습니다(창 12:2).
그런데 이 언약은 개인적으로 다윗의 존재와 인격 그리고 그에게 속한 후손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전존재'와 '인격'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창 25:19-26 강해, '이름짓기' 참조.
그러나 이 언약은 단지 다윗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언약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미 이스라엘의 '주권자'로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5:1-5).
따라서 이 언약은 다윗의 통치하에 있는 이스라엘이 열방들로부터 우러름을 받게 될 것이라는 거국적(擧國的)인 축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은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기간 동안 상당한 성취를 보았습니다(8장;대상 20장;대하 9장).
그러나 그 궁극적인 성취는 다윗의 먼 후손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입니다(빌 2:9-11).
3) 정착된 거주지를 줄 것이요, 해하지 못하게 하겠다(10절)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그를 심고. - 여기에서 '심고'('나타')는 본래 '나무를 심는다'는 의미입니다(창 2:8;레 19:23;사 5:2).
그런데 이 말이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해서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정착된 거주지를 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렘24:6;암 9:15).
따라서 이 말은 과거 사사 시대에 주변국가의 잦은 침략에 시달려 이리저리 쫓겨 다니던 신세에서 벗어나(삿 6:2)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완전히 한곳에 정착하여 사는 자들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대에 그들은 이 같은 평화와 안녕을 구가(謳歌)하였습니다.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 여기서 '옮기지'란 말은 그릇된 번역입니다.
왜냐하면 이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가즈'는 '옮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두려움 으로) '떨다'(신 2:25;시 4:4;사 32:11)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절의 바른 해석은 '다시는 두려움으로 떨지 않게 하며'입니다.
즉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이제 신정 국가 이스라엘은 과거 사사 시대의 혼란했던 무정부(無政府)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평화스러운 나라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11절).
4)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고 너를 위해 집을 짓겠다(11절)
“[11]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편히 쉬게 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사사시대의 일시적이고 국지적(局地的)인 평화와는 달리 다윗 시대에는 보다 영속적이고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질 진정한 평화(죄와 사망에서의 해방)를 예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눅 2:14;롬 5:1;골 1:20).
집 - 여기에 나오는 집은 앞에서 이미 언급된 집(5, 7절)과는 의미상 큰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된 집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짓고자 했던 성전을 의미하나, 여기에서의 집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지어 주실 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지으시겠다고 약속하신 집은 단순히 다윗이 거할 웅장한 건축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미 웅장한 백향목성(1,2절;5:11)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세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집은 외형상의 집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집으로 이해해야 할것입니다.
(1)성경에서 '집'이란 말은 '가족', 곧 부모나 자식이나 친족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용례가 있습니다(창 7:1;35:2;출 2:1;왕상 11:38;12:16;13:2).
따라서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보다도 그의 온 가정을 복되게 세우시겠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2)이 집은 또한 '나라'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근거로 16절에서 '네 집'과 '네 나라'가 서로 병행하고 있음을 들 수 있습니다.
즉 '네 집과 네 나라가 영원하리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집이 곧 다윗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우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은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시겠다는 의미입니다.
(3) 집이란 용어 속에는 '다윗의 후손들'이란 개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12, 16, 19, 26, 29절).
왜냐하면 다윗의 나라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곧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가능하기 때문입니다(Kaiser).
5)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12절).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때는 나이 30세입니다.
이후 그는 40년간 백성들을 통치한 후 서거(逝去)하였는바(5:4,5; 왕상 2:10, 11) 그때 그의 나이 70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 여기에서 '씨'(seed)이란 말을 한 가지 의미로만 해석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본래 다윗 언약의 내용은 다윗 당대와 그 후손, 그리고 영원한 세계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17절 문단 강해 참조.
따라서 '씨'의 개념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해석해야 합니다.
(1) 여기에서 '씨'는 집합적(collective)인 의미를 가집니다.
즉, 이 말은 다윗의 사후(死後)그의 뒤를 이을 모든 왕들을 집합적(集合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이 씨(seed)가 다윗 왕조를 대대로 이어나가면서 견고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씨'는 곧 다윗의 왕손(王孫)들 모두를 의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이 '씨'는 한 자손, 곧 솔로몬을 지칭합니다.
왜냐하면 첫째, 이 말은 단수(singular number)이며,
둘째, 본몬은 이 씨에 의해 성전이 건축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3절).
(3) 또한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왜냐하면 본절과 16절에서 이 '씨'에 의해 세워질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견고한 나라라고 되어 있는데, 이러한 나라를 최종적으로 세우신 이는 오직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입니다.
(눅1:31-33;행 2:29-31; 13:22, 23).
6)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13절)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집을 건축할 것이요. - 여기에서의 집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지어 줄상징적인 집(11절)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대신 이는 다윗이 그토록 건축하기를 희망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훗날 그의 아들 솔로몬 왕에 의해 비로소 건축된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합니다(대하 3-5장).
하지만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이 집은 단순히 건축물
(建築物)로서의 성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이 집은 외형적인 집과 아울러 본질적인 집, 상징적인 집까지도 함께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집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지은 집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은 여호와의 존재, 그의 영광 등을 의미합니다.
9절 주석 참조.
따라서 이 집은 여호와께서 영원히 거하시면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곳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집은
(1) 솔로몬에 의해 지어질 성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2)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영원히 드러내 주는
예수 그리스도(요1:14;2:19)와 그의 교회(요14:23;고전 6:19;엡 2:21;히3:6), 그의 영원한 나라(계 21:1-3)까지도 의미하는 것입니다(Keil).
7)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겠다(14절).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 훗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켰던 말씀입니다(히 1:5).
이로 보더라도 다윗 언약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마 1:1)에 대한 약속을 담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까지는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을 뿐입니다.
아무튼 다윗 언약의 극치인 본절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1)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다윗 왕국의 기원(起原)을 말해 줍니다.
즉,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것 같이 다윗 왕국은 하나님에 의해 탄생한 나라라는 사실을 증거해 줍니다(Lange, Kaiser).
한편 이러한 언약의 내용은 모세 언약의 장자(firstborn)개념과 일치합니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새로운 나라, 곧 제사장 나라, 거룩한 나라로 세워 온 민족 가운데 뛰어난 장자가 되게 하신것(출4:22;19:4-6)처럼, 하나님께서는 새로이 다윗 왕국을 견고한 나라로 세우신 것입니다.
(2)또한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사랑으로 연합된 관계라는 점에 주목해야 됩니다(Keil).
따라서 하나님은 비록 다윗 왕국이 범죄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사울의 왕국
처럼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고(15절;삼상 13:8-14;15:10-21) 징계로써 인도하시는 것입니다(12:7-15).
(3)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상속하고 상속받는 관계란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아버지인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기업을 물려받은 다윗 왕국은 영원토록 멸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16절).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아비가 아들에게 체벌(體罰)을 가하면서 까지 훈육하듯 하나님께서도 당신 백성들을 징계하면서까지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뜻하는 문학적 표현입니다(시89:32;잠3:12;히12:6,7).
한편 하나님께서 다윗의 범과(犯過)한 자손들에게 가하셨던 징계의 손길은 열왕기 군데군데에 언급되어 있습니다(왕상11:14-40;왕하 9:27).
8)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15,16절).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
메시야 왕국을 예표하고 있는 다윗 왕국은 사울 왕조처럼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몰락하는 불완전한 나라(15절)가 아니며,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존속되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임을 약속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영원히 견고하리라. -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국은 다윗과 솔로몬 사후(死後) 남북 왕국으로 분열되었으며(왕상 12장) 급기야는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으로 말미암아 남북 왕국이 모두 멸망하기에 이르렀습니다(왕하 25장).
따라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영원한 나라는 보다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나라를 의미함을 알 수 있는데 곧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메시야 왕국입니다(마12:28). 8-17절 강해, '다윗 언약 속에 나타난 메시야 사상' 참조.
9)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합니다(17절).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계시.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존'은 밤에 무의식 상태로 꾸
는 꿈(할롬)과는 다른 것을 가리킵니다.
즉 구약 성경의 용례를 살펴보면, 이 말은 대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1)깨어있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주시하는 계시적(啓示的) 사건을 의미합니다(단 1:17;8:1, 2, 13;삼상 3:1).
따라서 이 용어는 선지자가 기도 중에 보는 특별한 계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단 9:21).
(2)하나님의 말씀, 또는 교훈을 의미합니다(시89:19;잠29:18;합2:2;나1:1).
이상에 의거할 때 나단이 받은 이 계시는 그가 밤새 깨어 있는 상태에서 주시하여 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Keil, Lange).
창 40:5-19 강해, '계시의 정의 및 종류' 참조.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공고한 날에도 은혜를 베프시지만 형통의 날에도 은혜를 베프십니다.
14절에 보면 구체적으로 이런 약속을 주십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자손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형통의 날에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온의 때를 주십니다.
다윗과 같이 근심 걱정 없는 때를 허락 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 우리와 친밀해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 제목이나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주님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형통한 때에 우리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입니다.
내가 진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형통할 때 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형통할 때에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귀히 보시고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것이 아닌 다윗 왕조를 하나님께서 세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힘든일과 상황이 변화가 필요한 때가 있으십니까?
그것 이전에 주님을 더욱 원한다고, 그럼에도 주님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다윗을 견고히 세우신 은혜가 동일하게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내게 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에 참된 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을 만류하십니다(4~7절)
출애굽에서 다윗 시대까지 하나님은 한 번도 백향목 거처를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자기 백성이 안식할 처소에 더 큰 관심을 두셨습니다(10절).
하나님은 성전이라는 공간 안에 갇힐 수 없는 자유로우신 분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진심 어린 신앙이지 건물의 화려한 외양이 아닙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그것으로 우리 신앙을 대신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참 경외와 경건을 잃는다면 가장 종교적인 곳이 가장 세속적인 곳으로 전략할 수 있습니다.
2) 다윗의 소원에 더 큰 약속으로 응답하십니다(8~13절).
무명의 목동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이제 다윗의 이름을 열방 중에 높이시고 변함없는 보호와 은총으로 그를 위해 견고한 집(왕조)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자를 존귀하게 하십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이 놀라운 은혜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3) 다윗의 왕위를 이을 후손이 죄를 범하면, 징계하되 은총을 거두진 않겠다고 하십니다(14~17절).
은혜는 죄를 묵인하는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진노 중에도 궁휼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6절)과 다윗 왕조의 출범이 은혜의 역사라면 그 나라의 운명도 유능한 왕이나 정치 조직이 아닌,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나와 우리 공동체의 미래 역시 주님의 신실하신 은총에 달려 있음을 믿고 나갑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대외적으로 안정기를 맞은 다윗은 언약궤를 안치할 성전 건축을 계획하고 나단에게 동의를 구합니다(1~3절).
지금 누리는 평화와 번영이 자신의 탁월한 통치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더 큰 목적인 성전건축을 위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풍요와 안정 그 자체가 목적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구할 것도 다윗 시대의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에 참된 왕이 되시는 게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