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연속으로 수(隨)군을 맞이한 고구려도 피폐해져 있었다.
(614년).7월 고구려왕(영양왕)은 사신을 보내 항복(?)의 뜻을 전하고, 곡사정(斛斯政)을 돌려보냈다.
곡사정은 수나라 병부시랑(국방부 차관)으로 제2차 (613년) 고구려 원정군의 수뇌였으나, 양현감이 모반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고구려로 망명했다.
이 인물은 양현감과 통모했다고 한다. 적에게 도망간 아군의 수장을 수나라 황제가 심히 미워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인물을 송환했으니 양제는 고구려의 항복에 성의가 있다며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고구려왕은 입조한다고 약속했으나 끝내 수나라에 찾아오지 않았다. 곡사정은 어차피 수나라 사람이었으니, 구워먹든 삶아먹든 고구려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양제는 실제로 곡사정을 삶아 죽이고 그것을 백관들에게 먹였다....56 - 57쪽
이야기 중국사 제4권, 진순신, 이수경 옮김,2011, (주)살림출판사
첫댓글 도병마사 강이식 장군도 망명하신 분이라면, 곡사정과 사정이 다른 점
1. 군인으로서 공적이 있고, 없고의 차이 2. 군인으로서 신분이 다르고. 3 수나라 역사에서 내용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도병마사?
병 마 원 수 또는 그냥 원 수 라고 남한보나 연원보 서문에서요
연원보에는 시조님의 손자 강행본도 당나라 사람으로 고구려를 멸했다고 되어 있어서 시조님의 고구려 귀화 즉 잉여불반이라면 손자도 고구려사람인데 고구려를 멸했다?가 말이 안되는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