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言寺
포항을 떠나31번
국도를 따라서 죽장면을 지나다가 갑자기 맘이 변하여 왼쪽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울타리도 없는 과수원에서
보시를 한 듯 빨간 사과 몇 알이 길을 막고 있다. 길 가운데 차를 세우고 밭둑에 앉아 사과를 한입
베어 무는데 계곡의 가을이 쥐었다 펴 놓은 듯 속으로 확 들어왔다. 갈림길을 만나면 오른쪽이다. 아니 왼쪽으로 갈까? 무작정이란 말이 실감나게 길을 오르는데, 길 바닥을 발끝으로 차며 타박, 타박 비탈을 걷던 비구니 한 분이
손을 든다. 뒤 좌석에 가만히 올라앉은 스님께
“이리로 가면 어디가 나옵니까?”
룸 미러에 비친 동안(童顔)의 스님은 차창
밖에 마음이 빼앗겼는가, 아님 차는 얻어 탔지만 말은 섞고 싶지 않다는 것인가 답이 없다. ‘그래, 묻지 말자 어차피 알고 온 길도 아니고, 막히면 돌아서지···’
가을빛이 차창을 뚫고 들어와 숨 속에 박힌다. 구절초 냄새가 난다. 어릴 적 어머니는 늦가을이 되면 먼 산으로
구절초를 뜯으러 가셨다. 이불 보따리만한 구절초를 이고 오셔서는 마루에 풀어 놓으시면 쌉쌀한 냄새가
집안을 채우곤 했었다. 배앓이를 자주하는 막내아들에게 구절초 삶은 검고 쓴 물을 먹이셨다. 쓴 것도 자꾸 먹으면 친해지는가 보다. 쓴 맛이 그립다. 요즘은 봄이 되면 내가 먼저 시장에 가, 고들빼기나 씀바귀 등을
찾아 사오곤 한다.
구절초 내음과 친해질 즈음 차는 힘겹게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커다란 분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골짜기 안에 크고 넓은 곳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어깨를 톡톡 친다. 뒤
돌아보니 스님이 왼쪽을 가리킨다. 그리로 가자는 것 같았다. 나는
어쩌다 비구니 스님을 모시는 기사가 되었다. 멋진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니 낙엽송 숲이 나온다. 가을을 잡아당기는 넝쿨들이 우거진 골짜기를 돌아드니 작은 암자가 눈에 들어온다.
절벽 위에 아스라이 바람에 기대어 붙어있는. 길옆에
『無言寺』라는 작은 간판이 서있다. 순간 여기서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절에 가면 왠지 조용하고, 조용해야 하고, 천천히, 손을
합장하는 등 절 법을 따라 해야 하는 것 같아 좀 망설여지곤 했었는데 조용한 절간 마당에서 오래된 디젤 승용차의 소리가 너무 커서 미안타는 생각이
들어 얼른 차를 돌려 가려 하는데 차에서 내린 스님이 따라 오라는 손짓을 한다. 머뭇거리며 차에서 내려
보니 작은 절 입구 마당엔 국화꽃이 가득했다. 어머니는 마당 가득히 대국을 길러 가을이면 국화 향이
집안에 가득했었다. 덕분에 난 벌에 쏘이는 罰을 가을마다
겪곤 했었다. 돌계단을 걸어 좀 올라가니 호젓하고 앙증맞은 암자가 기다린다.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나타난다. 절 이름답게 강아지도
짖지 않는다.
스님은 바랑을 마루 끝에 내려놓고는 햇볕이 따뜻한 좁은
마루 끝에 대 방석을 내 민다. 작은 법당 안에는 부처님이 미소를 띠며 바라보고 계신다.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지만 중년의 비구니 스님이 권하는 자리이고 이렇게 호젓한 암자의 가을과 주변 경치가
너무 좋아서 여간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스님이 능숙하게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더니 다기茶器에 차를 넣고는 우려내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으니 감잎차 같았다. 권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가만히 스님을 바라보니 나이를 짐작 할 수가 없다. 스님 나이에 관심을 가질 이유 같은 것은 없지만 괜히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스님은 혼자 사시는 가 봅니다?"
대답이 없다. 그냥 눈을 내리 깔고
찻물만 따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스님이 손을 들어 차를 세울 때부터 지금까지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암자 이름이 『無言寺』라는 것도 그런 연유인 것인가? 그때서야
조금 아는 수화手話로 듣기는 하시느냐고 물어 보았다. 빙긋이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산 중에서 홀로 지낸다고
해결이 될까? 문 닫아 건다고 문 밖을 잊을 수 있는가? 이
무서운 산 중에서 세상을 등진 사연이 궁금해서 던지는 말들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읽었는지 스님은 일어나더니 메고 온 바랑을 풀어 법당 안에 구절초를
깔아 놓는다. 보라색 꽃잎들이 모로 눕는다. 잡풀들을 골라내는
손이 재바르다. 가을볕이 스님의 파리한 머리와 목덜미에서 반짝였다.
그래 세상살이 살만큼 살면 구태여 말이 뭐 필요하겠는가? 눈만 봐도, 뒤 태만 봐도 원하는 거,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다 아는 거, 행복을 느끼는데 필요한 말은
수 십 개도 안 된다는 것을 이 나이에는 다 아는데 세상에는 몸을 흔들어 이루는 것보다 말로 흔들어 넘어뜨리는 것이 많아 늘 상처로 사는 것을
···
스님의 뒤에 대고 어머니의 구절초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 덕에 배앓이 병을 낳게 한 그 구절초가 여기에 많은 것이 고향 같다고,
흰색 꽃과 보라색 꽃의 효험이 같은지 다른지, 환으로 달여 먹어도 좋은지, 익모초보다 좋은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혼자 떠들었다. 스님은 잠자코 듣기만 하면서 구절초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침묵이 갈 볕을 한참 붙잡고 있는 사이 몇 구절을 썼다
한 뼘 높이 구절초 꽃
쓴 내음 묻혀,
산 넘어 보낸 이 있는가?
눈 비비며
연 보라색 꽃잎에 떨군
아픈 상처가 나으리라고 믿는가
웅크린 중년(中年)이여
굽어가는 등 뒤로 풀어지는 포옹
울지 마라
생각이 가벼웠던 만큼
추억도 가벼운 거다
구절초 달인 눈물에 의지 하여
상처는 나아도 흉터는 남는 것
질기게도 늦게까지 버틴 기다림의 회복기,
이 계절이 지나고 나면
하얗게 지워지겠지
“스님, 차~, 자~알 마시고 갑니다.”
차 시동을 거는데 스님이 따라 마당으로 내려 오셨다. 창문을 열어 인사를 하려는데 스님이 뭔가를 내민다. 궁금한 눈빛을
보내니 구절초 몇 송이를 묶은 꽃사지와 함께 내민다. 구절초 달인 환이 담긴 작은 병이었다. 차에서 내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몇 푼의 돈을 건네려 하자 스님이 사양을 하며 수화手話를 하신다. 다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자기 남동생이 있었는데 어릴 적에 배앓이 병을 앓다가 죽었단다. 그 것이 가슴에 사무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죽은 남동생과 많이 닮았단다. 불쌍한 생각이 난다고, 먹고 배앓이 하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작은 인연이 큰 사연을 낳는다고 했는가.
가을볕이 죽장면 두마리(頭馬里) 골짜기에 가득히
내려온다.
(2017년 약사 신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