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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자현-
. 수방은 저녁 아홉 시가 넘어서야 저녁상을 받았다. 옛날에는 고려장이라는 것도 있었다던데 고려장이라도 지내주면 못 이기는 척 이 구차한 인생도 끝날 것 아닌가. 그것이 훨씬 마음 편하게 있다가 숨이 끊어지는 일 일거야. 흰 뼈들이 구르는 골짜기에서 공중에선 독수리가 홰홰 땅을 정찰하겠지. 불어오는 바람에 숲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에 눈을 주다가 목숨이 남아 있을 때 산짐승이라도 나타나면 무섭겠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녀는 소름이 끼치고 더 이상은 상상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앞에 들여 온 저녁상으로 눈길이 간다.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끼니 때 상 받는 거 정말 못하겠다. 낮에 많이 흥분했던 탓인지 입맛도 별로 없는데 먹지 말고 물려버릴까? 그녀는 밥상을 바라보며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시금시금 익은 김치냄새와 소고기 찌개가 코를 자극한다. 그래도 얼른 수저에 손이 가지 않는다.
당신 정말 독한 사람이유. 어떻게 고렇게 단식을 했어. 정말 대단해. 나도 수없이 당신처럼 하려고 맘을 먹어보지만 한 끼를 굶지 못하고 이 끔찍한 나날을 보내고 있잖아요. 당신께는 너무 미안해요. 같이 굶자고 하는 사람더러 혼자 가라고 소리를 질렀으니. 난 평생 호랑이 같았던 당신만 돌아가고 나면 아이들이 평생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았던 내게는 호강을 시킬 줄 알았구랴! 참 어리석기도 하지. 당신 장례 치를 때 난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것 당신도 알지요? 쥐어짜도 눈물이 안 나는 것을 억지로 해요? 하지만 삼우제가 지나고 한 달이 못 가서 나는 끈 떨어진 호박 신세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지 뭡니까? 당신 그 뻑신 기상에 나까지 그나마 대우받고 살았던 것을 그제야 알았지 뭡니까.
큰 애가 어느 날 날 보러 와서는 그저 인사로 어머니 어떠세요? 라고 묻지 않겠수? 나도 모르게 큰 애 앞에서 통곡이 나와서 모녀가 함께 붙들고 얼마를 울었는지 몰라요. 아들 녀석이 더해 더! 며느리 년은 나 보기 싫어서 하루 저물어 왼 종일 어디 싸돌아다니다가 저녁이라고 허둥지둥 해다 디밀어. 내 핑계 대고 제 서방 저녁도 제시간에 주지 않는 게 말이 돼우. 애들은 어떻고. 내가 모를 줄 알고 있지만 어림없어. 나 모르게 푸닥거리 하려고 돈 맞추고 왔을 게야. 내가 손발 묶여서 꾸벅거리고 밥 얻어먹고 앉았지만 다 꿰뚫어 보고 있다, 이것들아!
그녀는 식판을 들어다 양다리 위에 놓고 게걸스럽게 저녁을 먹는다.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줄 알고. 열심히 먹고 살아날 거야.
어머니 뭐 하세요? 식사하시다 말고?
그새 며느리가 물을 갖고 들어온 것을 모르고 수방은 생각을 골똘히 하느라 멈추고 있었다. 허둥지둥 식사를 하며 그녀는 물 주전자를 놓고 나가는 며느리의 뒷모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올려다본다. 무다리야 무다리! 약 상자 속에 있는 칫솔을 꺼내 이를 닦은 그녀는 다시 변기를 가져다 변을 보기 시작한다. 땀이 목덜미로 줄줄 흘러내리도록 힘을 주지만 변은 콩조각처럼 나오고 탈진한 그녀는 뒤처리를 간신히 하고 자리에 눕는다.
어서 죽어야 하는 것이 맞는 거야. 정말 힘들어 못 해먹을 일이다.
상도 내가고 어서 이거 치우거라!
손녀와 며느리가 들어 와 밥상과 변기를 들고 나가는 것을 보면서 탈진했던 그녀는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수방은 치마 솔기를 붙들고 대자리에서 버스를 내렸다. 예식 후 벌써 한 달이 지나 근친을 가는 중이다. 같이 내려오면 좋으련만 서방님은 공부를 다 마쳐야 한다고 북경으로 떠나버린 뒤였다. 적적할 테니 근친이나 다녀오라는 시어른의 명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겁을 잔뜩 먹고 시작하는 시집살이이지만 시어른들도 그렇고 서방님은 날카로운 대신 감정이 섬세한 사람인 것 같아 내심 안도하고 있는중이다.
한 번도 밥을 해 본 일이 없다는 시어머니, 장죽을 물고 있는 시어머니의 영상이 눈앞에 그려지자 그녀는 쿡-하고 웃음이 나왔다. 친정 어머니 영조와 어쩜 그렇게 다를 수가 있느냔 말이다. 교전비를 데리고 시집을 오셨다니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조선의 여성이라도 신분의 차이가 천차나 되는구나!
어제 먼저 전서방에게 지워 보낸 물자는 잘 도착했겠지. 시어머니께서 아랫것들을 시켜 장만하신 엿과 인절미, 사과 짝 육포 등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수방은 들판을 휘둘러 본다. 기껏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건만 너무나 큰 변화 때문일까? 여러 해가 흐른 듯 눈에 익은 산천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일본 놈들이 그렇게 수탈을 하고 또 했어도 이 산천이 이 민족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거야.
흐드러지게 피었던 진달래가 지고 이제 철쭉의 철이다. 숱한 사연들을 간직한 아름다운 골짜기, 이 골 저 골에 시선을 보낸다. 큰 언니와 엎드려 나물을 캐고 있노라면 사내 녀석처럼 나뭇가지를 꺾어 들고 겅중거리던 원술언니. 놀라기도 많이 놀라고 맞기도 정말 많이 맞았는데......진달래를 따 먹고 산두릅을 꺾으며 원술언니의 기상천외한 장난에 허리를 못 펴고 웃던 날도 많긴 많았어. 꼭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 건데. 골격으로 보나 힘을 쓰는 것으로 보나 그게 장정이지 아가씨야! 쌀 두 가마니를 진다니 그게 여자냔 말야! 못 보고 사는지 얼마가 지났다고 가슴에 조금은 보고 싶은 감정이 서리는 것을 느꼈다. 미운 정도 있다더니......수방은 입가에 떠오르는 쓴웃음을 지우며 발밑을 내려다본다.
황토빛 흙먼지가 고무신 코 위로 뽀얗다. 모내기하려면 물이 모자랄 텐데 올해는 가물려나? 아직은 비 소식이 없다. 그녀는 손가방에서 옥양목 손수건을 꺼냈다. 착착 접혀진 손수건을 탈탈 흔들어 펴고는 고무신 콧등을 탁탁 턴다. 예식 때 없어진 가죽신과 고무신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는 어디로 증발했을까. 이런 일을 두고 귀신이 곡한다고 하는 거지. 누가 장난을 쳤을까? 아아- 원술 언니라면 그런 장난을 하고도 남지. 왜 그 생각이 이제야 나지?
갑자기 벌렁거리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수방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분명히 큰 가죽가방에다 마지막에 챙기고 확인까지 했는데......아닐 거야. 샛골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찾아봐야지.
머리 위로 꾀꼬리 암수가 그들의 의상보다 더 화려한 소리로 부르고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아이들이 둥지에서 알을 꺼내는 바람에 그해 꾀꼬리 암수로부터 얼마나 당했던가. 쉬익- 소리를 내며 내리꽂히던 노란 새들의 복수! 소리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 수방의 겨드랑이에 훗훗한 오월의 땀이 번진다. 소라색 숙고사가 여물어 가는 푸른 산천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녀는 빽에서 비단으로 만들어진 작은 쥘부채를 꺼내 활활 부치며 목덜미에 바람을 넣는다.
손가방에 들어있는 바늘쌈지, 골무, 예쁜 불란서 자수실을 떠올리자 다시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어머니와 올캐 그리고 언년이와 최서방댁 등 아랫것들에게 줄 선물들이다. 그녀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조반을 일찍 해서 드리고 떠났는데 해를 보니 벌써 오정이 넘은 시각이다. 사막 골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 샛골로 접어들었다. 모퉁이에 사는 명돌 어멈의 눈에 띄었는지 신발을 거꾸로 신고 개울을 건너 달려오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이고 작은 아가씨, 근친 오시네. 아무것도 모르고 이렇게 오시는 거지요. 어제 전서방이 차부에서 지고 가는 것이 무엇인가 했더니 아가씨 시댁에서 보내신 것이구랴! 아이고 아가씨 불쌍도 허시지!
어언- ? 내가 불쌍타니 명돌 어멈, 그게 무슨 말이유?
아- 아니에요. 이 푼수가 터진 입이라고 말을 마구 쏟아 놓네요. 아무 소리도 안 하기로 해놓구 설라무네.
누구와 아무 소리도 안 하기로 했단 말이야?
누구긴요. 큰 아가씨 말이지요. 원술 아가씨 시집으로 가시면서 저뿐이 아니라 아랫것들 전수 입막음을 해 놨지 뭡니까?
무슨 일이 있었어? 그런데 원술 언니는 내 예식에 오지도 않았다며?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
아유, 이 정신 좀 보게. 얘기하지 않기로 떡 먹듯이 약조를 해 놓구선 제가 별 얘기를 다 하고 자빠졌네요. 아니에요. 앙 것두 아니랍니다. 아셔 봐야 더 기막히기만 할 일이지 알아서 무엇하시겠습니까.
명돌어멈의 너스레 속에서 무엇인가 잡아내려고 말끄러미 바라보던 수방은 발길을 돌렸다. 어딘지 꺼림칙한 기분이 전신을 휩싸며 없어진 저고리와 치마가 떠올랐다. 뚝 아래로 흐르는 맑은 개울물로 시선을 보내는 그녀는 점점 깊어지는 의혹을 느꼈다.
개울 옆으로 벌써 늘어진 수양버들이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린다. 조금 더 올라가자 우람한 은행나무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듯 장승처럼 서 있었다. 백오십 년이 넘었다는 이 은행나무는 그 모두를 알고 있겠지. 이 골에 드나들던 사람을, 그 세월과 역사를 모두 알고 보고도 침묵하고 있는 것이지. 누가 비밀을 만들어냈는지, 누가 말 못 할 사연의 원흉인지 다 알고 있으면서 손사레를 치는 듯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따라 그 큰 나무에 푸근히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그녀는 판판하게 정돈된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몇 발자국 떼지도 않았는데 어디서부터 알고 달려왔을까? 독구란 녀석이 뛰어와 키를 넘을 듯이 뛰며 반긴다.
독구야- 잘 있었어? 너한테는 인사도 못하고 내가 떠났구나!
늑대만한 녀석이 꼬리를 흔들다 못해 그녀 앞에 네 다리를 하늘로 뻗치고 눕는다. 유난히도 그녀를 따르던 놈이라 당연히 원술에게는 미움을 사서 뚜드려 맞고 빈번히 발로 차이던 독구다.
너한테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내가 시집을 가버렸구나! 그런데도 삐치지 않았어. 그렇게 반가워!
그녀는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쪼그리고 앉더니 누렁이의 목덜미를 열심히 긁어준다.
잘 있었어? 너도 알고 보았겠구나!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독구야? 말 좀 해 봐. 오다가 명돌 어멈을 만났는데 대체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해서 말이야. 독구야, 노인네들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잘 살아. 괜히 뱀 같은 흉한 거 쫓아다니다가 지난해처럼 물리지 말고. 그때 죽을 뻔했잖아!
개울 건너 논에서는 한참 모내기에 팔려있는 농부들의 소리 매김이 들려왔다. 뭔 여유가 있다고 노래가 나올까.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굶어가며 죽자고 해도 닥치는 것은 일뿐인 그들인데 노래 할 기운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그래도 저 노래는 샛골마님 댁에 소작을 붙이고 있다는 증거다. 지주의 변덕이 없고 다른 농가는 죄 소작료를 올렸건만 지지난해 큰 아드님의 사업이 번창한다고 오히려 소작료를 깎아주었던 것이다. 추수를 끝내고 화톳불을 놓은 바깥마당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던 그들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
피폐해진 고을고을이지만 그곳을 지키고 사는 사람과는 아랑곳없이 봄을 맞은 산천은 사람보다 더 신명이 나는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개을을 지키는 버드나무 때문에 수방이 잘 보이지 않으리라. 느려터지고 태평스런 어눌한 말씨들이 그녀의 귀에 아주 정겹고 새삼스럽게 들려왔다. 아아- 서울 말씨와 이렇게 느낌이 다른 것이지! 아무도 없는지 집안은 괴괴할 정도로 기척이 없다.
다들 어디 가셨지? 올캐도 보이지 않고 어른들은 다 어디 가셨어.
앞마당을 지나 열려 있는 대문으로 들어가 높은 문지방을 넘었다. 안 채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부엌을 지나 뒤곁 문을 열고 보았으나 장광만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을 뿐 아무도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돌아서자 부엌 한쪽에 까다 만 감자 통이 눈에 들어왔다. 감자수제비를 끓인 것인가? 설거지 통에는 설거지할 그릇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할머니는 마실 가셨을까? 아직 새참을 내갈 시간은 아닌데 들에 나가신 것은 아닐테고 어머니는 어딜 가셨어. 개울에? 웃우물에? 사랑채에는 누가 계신가? 안 채에서 나와 그녀는 사랑채로 건너갔다. 문을 죄 열어 보았지만 거기에도 아무도 없었다. 전서방이 부려놓은 사과 궤짝만 마루 기둥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만수향을 태우나? 수방은 냄새를 쫓기 위해 코끝에 손부채를 흔들며 바깥채로 나왔다. 그곳에는 일군들이 머무는 봉놋방과 농기구들과 연장들의 창고와 새끼를 꼬는 방 옆으로 길이 먼 방물장수들을 가끔 재워주기도 하는 골방이 하나 있다. 냄새는 그곳에서 나는 것 같았다. 참 이상도 하지. 만수향은 누가 죽었거나 제를 지낼 때 피우는 향이 아닌가.
골방의 문을 열었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방은 캄캄한 굴속이다. 몹시 어두워 처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어 놓은 채 수방은 안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걸어 들어갔다. 향불은 거기 피워져 있었다. 시야가 조금 적응이 되자 상식상 위로 까물까물 올라가는 연기가 보였다. 연기를 따라 천정을 향해 시선을 돌리던 그녀는 외마디 소리를 치며 주저앉았다.
저것은 상청 아닌가. 누가 죽었지? 그래서 아무도 없었나? 양쪽으로 흰 광목천이 장막처럼 드리워진 상청 속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저것은 흰고무신, 저것은 다홍치마 그리고 연두저고리- 그렇다면 내가 어디서 흘린 줄 모르던 그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 흉측한 허수아비의 가슴에는 거무죽죽하고도 큰 식칼이 꽂혀 있었다.
아악- 수방은 치마끈을 밟으며 밖으로 내달았다. 가슴에 식칼이 꽂힌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허수아비가 자신을 향해 내달을 것 같은 착각에 비명을 지르며 골방을 뛰쳐나왔다. 마지막 그녀의 시선에 잡힌 것은 아직도 온기가 남았는지 차려진 상식상에서 모락거리고 올라가고 있는 김서린 장면이었다. 치마허리는 풀어지고 그녀는 높은 문지방에 걸려 댓돌에 머리를 박고 넘어졌다. 어디선가 후닥닥 뛰는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에고에고 이를 어쩌나, 작은 아가씨! 아무래도 맘이 안 놓여 제가 뒤따라 오는 길 아닙니까? 애기씨, 정신 좀 차리세요. 누가 없어? 물 좀 한 사발 빨리 떠 와-! 애기씨 순애 어멈이에요. 정신 차리세요. 명돌 어멈, 애기씨도 병원으로 모셔야 하는 거 아니야!
작은 아가씨, 정신을 좀 차리세요?
전서방이 들고 온 사발을 받아들고 명돌 어멈이 손가락에 물을 찍어 수방의 얼굴에 뿌린다. 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이게 무슨 난리랍니까. 왜 오늘따라 골방에 자물쇠도 채우지 않았는 모양이야?
골방에 자물쇠 채울 여가가 어딨어. 작은 아씨 마님이 또 유산을 하셔서 온 식구가 혼비백산 달구지를 끌고 읍내 차부로 나갔는데......
어른들도 모두 병원으로 쫓아가신 모양이군그래! 무엇 때문에 이 골방까지 오셨어요. 딱도 하시지. 정신이 좀 드세요? 순애 어멈 애기씨를 방으로 옮깁시다. 오뉴월이라도 여기는 추워! 몸이 따뜻해야 해!
두 사람의 아낙이 아래위에서 수방을 들어보려고 용을 쓰는데 그녀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아이고- 애기씨 눈을 뜨셨네. 착한 아가씨 물 좀 드시면 제가 차근차근 말씀해 올릴게요.
명돌 어멈이 수방의 입에 물대접을 들이민다. 목을 축인 그녀는 상체를 내리며 다시 반듯하게 눕는다.
그래 어떻게 된 사연이라고?
애기씨, 우선 방으로 들어가시자구요.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신가요?
없어, 아픈 데 없어. 이야기 다 듣고 나면 이 집을 그냥 떠나려고. 어서 죄 들어봅시다.
그녀의 표정이 결연해 보여 두 여인은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채 잠깐 말이 없다. 침묵이 힘들었는지 명돌 어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 큰 아가씨기 시킨 일이지 뭡니까. 큰 아가씨가 서울댁, 말하자면 애기씨 올캐, 작은 아씨 마님을 꼬여서 맨든 일이죠. 작은 아가씨가 복둥이라서 시집을 가면서 친정 복을 다 가져갈 거래나요. 그래서 시집을 간 것이 아니고 죽은 것으로 귀신을 속인댑디다. 아가씨, 정신이 좀 드세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맘을 굳게 먹어요. 내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 고약하고 끔찍한 일은 보도듣도 못했습니다. 아가씨 서울서 혼인식 올리는 그 시간에 맞춰 여기서는 동네가 떠나가라 큰 굿을 했지 뭡니까. 박수를 불러다 씻김굿을요. 샛골 마님께서는 영 내키지 않으셨지만 딸과 며느리가 함께 조르는 통에 모르는 척하기로 하신 모양입니다. 그깟 게 뭐 맞겠느냐고, 대범하신 거지요.
순애 어멈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예에, 큰 아가씨가 아가씨 결혼식에 가지 말고 시골집에 남아서 할 일이 있다고 하여 전 아가씨 결혼식도 못 보았습니다. 명돌 어멈과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요. 우리뿐이겠습니까? 사막골, 소샘말, 아랫말, 웃말 모퉁이 할 것 없이 결혼식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떡들을 돌려 먹어가며 울었답니다.
명돌 어멈이 소리를 죽여가며 흐느낀다. 수방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아가씨, 이제 일어나 들어갑시다. 아마도 귀신도 속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하늘이 시퍼렇게 내려다 보고 있는데요. 사람이 주는 벌 말고 천벌을 받을 거에요. 내 피붙이 잘 되는 것 그렇게 쌍심지 켜는 사람들, 그 사람들 하늘이 가만 두지 않을 거에요. 제가 살아 보니까 하늘이 다 압디다. 자라실 때도 그렇게 죽도록 시달렸건만 끝끝내 그러는군요.
언니는 언제 시집으로 갔누?
푸닥거리하고 난 다음 날 그동안 걸터듬었던 혼수하며 최서방, 전서방을 불러 마차에 바리바리 싣고 갔지요.
(다음은 마지막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