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제철, 안동단호박
요즘은 제철이란 말이 무색하게 연중 과일과 채소가 시기 구분 없이 쏟아지지만, 매의 눈으로 살피고 따져보면 엄연히 존재하는 제철! 봄엔 미나리가, 겨울엔 시금치가 제 맛이듯 여름엔 단물이 줄줄 흐르는 복숭아를 껍질 벗겨 먹고 겨울엔 말캉한 홍시를 반쯤 얼려 먹어야 비로소 사계절의 맛과 향, 기운까지 놓치지 않고 제대로 먹는 셈.
아뿔싸, 딱 그맘때만 먹을 수 있는 제철과일과 채소를 놓치고 나면 후회가 산처럼 쌓입니다. 철을 놓치면 맛도 맛이지만, 가격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거든요. 지금은 단호박이 가장 맛있고 싼 제철. 안동은 모두 292농가가 133ha의 면적을 재배, 한해 2795톤의 단호박을 생산하는 단호박 산지입니다.
단호박은 100그램당 65칼로리 정도로 칼로리가 낮은 대신 베타카로틴이 많아서 시력과 감기에 좋은 건강식품이자 다이어트식품으로 관심이 뜨겁습니다. 거기에 더해 안동단호박은 과일 못지않은 당도를 자랑한다고 하니, 놓치면 후회의 담즙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 같습니다. 제철이 가기 전, 안동단호박 맛보러 지금 총각과 함께 가시죠!
안동시 와룡면은 시내를 벗어나 도산서원 방향으로
20여분
안동의 북쪽 대문을 지나 도산서원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푸른 벼가 일렁이는 조각논들이 이어집니다. 맛있는 쌀이 나는 곳으로 알려진 안동시 와룡면입니다. 쌀 외에도 안동마와 안동고구마로 이름 높은 와룡은 안동단호박의 땅이기도 합니다.
모래땅으로 마나 고구마 같은 뿌리식물이 자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와룡에서 단호박이 재배 된지도 15년. 배수가 잘 되는 모래땅은 뿌리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으로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아도 튼튼한 안동단호박을 생산할 수 있다고요. 와룡면을 비롯해 녹전면과 북후면 등 안동의 북쪽을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이 모두 안동단호박의 주 생산지. 덕분에 이곳은 지금 호박꽃이 활짝입니다.
안동시 와룡면은 단호박이 한창. 안동은 한해 2795톤의 단호박을 생산하는 단호박산지입니다
안동시 와룡면 나소리, 꼬부랑길을 한참 들어가야 하는 외진 이 곳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안동의 초기 교회들 중 하나인 방잠교회가 세워진 곳이기도 합니다. 한때 독립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했던 방잠교회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굳건히 지역사회와 함께 하고 있는데요. 유서 깊은 방잠교회의 건너편은 바로 호박꽃이 노랗게 핀 단호박밭.
100여년 전통의 안동시 와룡면 나소리, 방잠교회
산 아래 경사지를 밭으로 개간한 박승극씨의 호박밭에선 글쎄, 호박이 노지에서 그대로 자라고 있네요. 박승극씨 뿐만 아니라 와룡 햇살애단호박 수출단지 45농가는 모두 하우스 대신 노지 재배를 고집합니다. 노지에서 극성스런 여름햇살을 아낌없이 받았던 단호박은 이제 늦여름의 촉촉한 단비를 맞는 중입니다.
노지에서 햇살과 비를 맞으면 자라는 터프한 안동단호박
사납기 그지없는 여름의 햇살과 바람과 비를 100% 그대로 받는 안동단호박은 때깔에서부터 다릅니다. 녹색의 껍질이 짙다 못해 강렬합니다. 참기름을 바른 것 마냥 반들반들한 윤기는 또 어떻구요. 야성적인 햇살과 바람과 비에 단련된 안동단호박은 차돌처럼 단단합니다. 보기보다 손 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묵-직합니다. 햇살과 바람과 비의 무게려니 생각하니 자연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참기름을 바른 것 같은 안동단호박 15년째 안동단호박을 재배해 온 박승극씨
지난 7월부터 수확을 시작한 박승극씨는 이제 막 3차 수확을 마쳤습니다. 한참 몸집을 불리는 녀석들부터 조롱조롱한 어린 열매까지 단호박밭은 여전히 힘차게 생산 중으로 벌써 4차 수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굵어가는 어린 단호박
이게 다 퇴비를 아끼지 않는데다 산밭에까지 관수시설을 설치해 가뭄에도 물을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밭고랑 사이에는 부직포를 깔아 잡초의 번성을 원천적으로 막았고요. 이렇게 하면 제초제를 사용할 이유가 아예 없어진다고 합니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단호박이 자랄 수밖에 없는 완벽한 환경. 굳이 하우스 시설 없이도 노지에서 안동단호박을 재배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와룡 햇살애 단호박작목반 박승팔씨, 박승극씨, 이명호씨
키가 낮으면서도 넝쿨이 과하지 않고 호박이 쉴 새 없이 달리는 박승극씨의 단호박밭은 이웃에게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안동단호박은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많게는 7차까지도 수확을 할 수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씀풍씀풍 황금알을 낳는 황금단호박밭이네요!
수확을 마친 박승극씨의 단호박은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립니다. 보름 정도 숙성을 거치면 색도, 맛도, 달콤함도 한층 짙어집니다. 김 오르는 찜솥에 십오 분만 찌면 멋진 간식이 되지만, 농부들은 가끔 안동단호박을 과일처럼 그냥 잘라 먹습니다. 호박냄새가 없는 대신 달콤하다는 걸 아니까요. 날로 잘라본 박승극씨의 단호박은 노랗다 못해 주황빛입니다. 보름 후, 잘 숙성된 안동단호박은 아삭하고 달콤하기가 생밤과 흡사하다고요. 그런 안동단호박의 특별함은 바다 건너에까지 소문이 났습니다.
송글송글 단물이 맺힌 갓 수확한 안동단호박
벌써 16년째 일본과 홍콩에 수출되고 있는 안동단호박. 크기와 무게, 농약잔류검사까지 꼼꼼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거쳐 안동단호박이 해외로 수출되는 양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미처 알아봐 주기 전부터 이미 일본과 홍콩에서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었던 거죠.
단호박은 크기가 작을수록 맛과 달콤함이 진해지는 편인데 안동단호박은 크기가 보통 단호박과 같으면서도 그 맛에 있어서 미니단호박에 뒤지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 반해, 일본과 홍콩에서 안동단호박을 선호하는 거죠. 일본인들은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무른 품종을, 홍콩인들은 달콤하면서도 조직감이 좀 더 단단한 품종을 찾는다고 합니다.
배둘레햄이 넉넉한 총각은 당연히 부드러운 것도, 단단한 것도 모두 좋아합니다. 안동단호박이니까요.
날로 먹어도 달달한 안동단호박
아직 서리가 오려면 한참, 안동단호박을 즐기기에 충분히 좋은 시간입니다. 그냥 쪄서만 먹어도 좋지만 부드럽게 수프를 끓여도, 꺽둑꺽둑 잘라서 감자 대신 안동찜닭에 넣어도 좋은 안동단호박. 여러분의 단호박 취향은 어떠신가요?
총각의 Tip
안동단호박은 7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생산됩니다
안동단호박은 수출을 위주로 하지만 개인적인 택배주문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