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도어가 열리면 밀려 나오는 안개
얼굴과 얼굴이 환승된다
무덤덤한 표정이 차오를수록
내릴 곳은 더 멀어진다
흔들리는 손잡이를 붙잡고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좌석을 차지한 이들은
손안에 세상을 움켜쥐고
손가락만 까닥거린다
안개는 얼굴들을 지우고
얼굴들은 시간으로 우르르 사라진다
역이 또 한 번 열리면 쏟아져 들어오는 액체성 사람들
물방울이 둥둥,
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엉겨
오늘의 안개를 내려받기해야겠다
전광판을 바라보지만
내려야 할 역이 줄줄 흘러내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 「안개역」 전문
노금선 시인은 대부분 삶에서 “시의 깊이”를 발견한다. 바쁜 일상에서 적절한 언어를 찾아 하나의 의미로 만들어내며 대상을 인식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2002년 개원해 지금까지 대전에서 실버랜드 요양원을 운영하는 시인은 1,500평의 야외정원과 하늘이 보이는 실내정원이 갖춰진 전원 속에서 병든 어르신들을 부모님처럼 모시며 살아간다.
세상에서 소외된 숱한 상처를 만나며 그 짓무른 상처를 사랑으로 감싸거나 속절없이 떠나보내는 과정은 오롯이 ‘시’로 나타난다. 어느 한때로 돌아가 그 기억의 지점에서 헤매는 치매 노인들, 시인의 일상엔 “삶과 죽음”이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한다. 물처럼 스며든 죽음이 임계치에 도달했을 때 결국 사라지는 존재들은 연민의 대상이다.
어떠한 사랑으로도 완벽이라는 일치에 도달할 수 없는 삶, 타인의 상처도 이미 자신의 몫이다. 그런 우여곡절은 자양분이 되어 “헌신과 사랑”으로 나타난다. 삶의 허무와 쓸쓸함을 끌어안고 다시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힘은 이미 사명(使命)이 된 지 오래이다.
내일을 위한 희망을 근저에 남겨두고 상처를 조율하는 노금선 시인은 여러 겹으로 얽힌 삶의 매듭을 차분히 풀어낸다. ‘삶의 비의(悲意)’에서 발화된 슬픔은 “꿋꿋한 힘”으로 작용한다. 틈틈이 시를 쓰는 일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이며 자신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일 것이다. / 마경덕 시인의 서평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