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유안진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보다는 마른 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 감은 채 고즈너기 그려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 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 안에 얼굴 묻고 싶은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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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柳岸津 시인 )
1941년 10월 1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했다. 1961~1965년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재학하였다. 마산제일여자중·고등학교와 대전 호수돈여자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1970년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 1976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5, 1966, 1967년 3회에 걸쳐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달〉·
별〉·〈위로〉가 실리며 등단했고, 1970년 첫 시집 〈달하〉를 출간했다. 이향아·신달자와
함께 펴낸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1986)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