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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새
정 혜 련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왔다. 다락방에 대해. 다락방이 있는 아파트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걸 깨달았다.
아파트에 다락방이라니, 난생 처음 보는 구조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어리벙벙했다. 오후 햇살이 두런두런 모여 앉은 다락방으로 올라서는 순간, 내가 알던 이미지가 뒤집히며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엌 옆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다락방은 아이들 놀이 공간이나 창가에 모여앉아 밤하늘을 보며 담소를 나누는 가족실로 제격일 성싶었지만 두 단어의 조합이 낯설기 짝이 없었다. 잡동사니 사이로 시꺼먼 쥐가 날카로운 앞니를 드러내고 있거나 한 집안의 비밀이 고스란히 유폐되어 있을 것 같은 음울한 공간. 내게 다락방은 그런 곳이었다. 그런 공간이 아파트 속에 들어오다니, 좀처럼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전세 계약 종료일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와 집을 보러 나온 길이었다. 미친 전세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날이 가격이 치솟아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나을 성싶기도 했다. 부동산 사무소 실장이 다락방이 있는 아파트 최상층은 매물이 나오기 바쁘게 계약이 된다며 흥정을 해보겠다고 설레발을 쳤다. 몇 집 더 구경했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족들과 상의하고 연락하겠다고 했다. 출근이나 등교에도 문제없을 위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속절없이 다락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단어의 괴리감을 좁히지 못하는 한, 아니 다락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사를 결정하긴 쉽지 않았다. 남편은 출장 중이었고 예리에게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예리가 숨어버린 것도 알았다. 그걸 안 이상, 더욱 다락방에서 비켜갈 수 없었다. 부끄러울 것도 없었고 광장에서 나를 벗을 수도 있었다. 이야기도 타이밍이 필요했다. 한번쯤 해야 할 이야기였고 그게 지금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또 다락방에 숨은 새에 대해서도. 그것이야말로 해야 할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는 곧 내 자신이었다. 나는 지금껏 그 이야기는 일절 내색하지 않고 때로 평화로운 삶이 겨운 듯 가볍게 진저리 치는 시늉을 하며 살았다. 시치미를 떼고 외면한 것도 모자라 부정하려 안간힘을 쓴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은 내게 비밀이나 금기사항 이상의 어떤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봤자 벗어나기는커녕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속수무책으로 휘둘려왔다. 내 목에는 늘 가시가 걸려 있어 제아무리 꽃이 흐드러져도 우느니만 못한 얼굴을 했을 것이다.
사실 그 이야기는 별 것 아닐 수도 있었다. 혼자 신주단지 모시듯 간직해 온 비밀을 털어놓으면 왜, 그게 뭐 어때서,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 한순간 부끄러움과 허탈함에 나동그라질지도 몰랐다. 비밀을 안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냐고,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를 토닥여주길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어렵게 털어놔줘서 고맙다는 말에 인생의 그림자가 말끔히 걷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스스로의 용기를 대견해하고 묶여있던 비밀에서 풀려나겠다고 작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예리만 끌어낼 수 있다면.
예리가 휴대전화 속에 숨어버렸다.
줄곧 목을 누르던 불안의 정체와 맞닥뜨린 나는 가슴이 들먹거리도록 한숨을 쉬었다. 물론 통과의례일 거였고 또 그래야 했다. 밤낮 휴대전화만 붙들고 있는 예리를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곳은 내 손이 닿지 않는 세계였다. 지금 예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성마르게 버튼을 눌렀다. 우선 통화부터 해야 했지만 또다시 전원이 꺼져 있다는 음성 메시지에 발을 탕탕 굴렀다. 예리를 어떻게 휴대전화에서 끌어낼지 막막했다.
집전화가 울렸다. 발신번호를 확인할 것도 없었다. 한번 울기 시작한 벨은 좀처럼 그칠 줄 모르고 그악스럽게 악을 썼다. 연신 거실을 서성이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잠깐 그걸 집어던질 듯 팔을 치켜 올렸지만 이내 기도하듯 두 손으로 감쌌다. 벨 소리에 종래 벽마다 균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마저 일었다. 휴대전화를 가진 뒤부터 예리는 집전화로 연락하는 법이 없었다. 내가 외출이 잦지 않은데도 그랬다. 남편이나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집전화가 필요치 않았지만 없애지도 못했다. 주물로 만든 시계추가 태연하게 흔들렸다. 막 정오가 넘어서고 있었다. 장식장 위 전화기를 쏘아보는데 한순간 달려들어 코드를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발끈, 일어섰다. 아침 여덟시를 시작으로 벨이 한 시간 간격으로 울렸다. 지쳐 소파에 주저앉은 나는 바른손으로 휴대전화를 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 끈적거렸다. 휴대전화 속에서 예리는 안전할까.
예리에게 휴대전화를 사 준 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친구들은 다 있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마지못해 사주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달랐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인 예리는 책상에 앉아서도 휴대전화를 놓을 줄 몰랐다. 공부할 때는 휴대전화 좀 내려놓으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제 몸의 일부인 듯 식탁이나 화장실에 갈 때 뿐 아니라 잠자리에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다 휴대전화를 빼앗긴 적도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연락에 연신 죄송하다고, 잘 타이르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는데 예전 급우들이 떠올랐다. 수업 중 아이들은 선생님 눈을 피해가며 바통 터치를 하듯 쪽지를 전달했다. 나는 누군가가 등을 두드려주길 기다렸지만 끝내 아무도 내 등을 두드리지 않았다. 오지 않던 쪽지가 부러웠던 걸까. 나는 수업 시간에 조심하라고만 할 뿐 달리 나무랄 수가 없었다. 친구와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예리 휴대전화가 꺼진 건 지난밤부터였다. 더구나 허락 없이 외박까지 했다. 겨우 열다섯 살짜리가 싶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계속 통화 버튼을 누르다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휴대전화 케이스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 조바심이 나 입이 바싹 말라들었다. 겨울 방학이니 친구 집에서 하루쯤 잘 수 있다고 여기려 해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어제 함께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아파트를 보러 가고 예리는 학원에 가는 길이었다. 잔뜩 목 티를 끌어올리고 외투 위로 목도리를 감은 예리는 잘 갔다 오라고 해도 대꾸도 없이 휑하니 가버렸다.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 지났을 때도 그저 좀 늦나보다고 여겼다. 민아네서 자고 온다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둘이 단짝이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득달같이 전화를 했지만 이미 전원이 꺼져 있었다. 민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리가 반항한다는 생각에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엄마는 나한테 관심도 없지. 간혹 그런 소리를 할 때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뛰거나 짐짓 장난을 치는 여유도 보이지 못했다. 원망스럽게 쏘아보던 서늘한 눈빛이 살아나 목을 움츠렸다.
베란다 너머 아파트 단지를 내다보았다. 촘촘하게 들어 선 이십 층 건물이 블록을 쌓아올린 것처럼 보였다. 집이 집을 이고 있다는 생각에 허리가 뻐근했다. 도시를 점령한 아파트에도 집의 추억이 있을까. 결혼 후 나는 줄곧 아파트에서 살았다. 남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사는 아파트가 무슨 집이냐던 엄마도 낡은 집 팔고 편하게 살아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목이 쉰 듯 갈라지는 소리를 내던 벨이 멎자 집안에 적요가 감돌았다. 집전화로 연락하는 사람은 엄마뿐이다시피 했다. 나는 아침이면 남편과 예리를 배웅하기 바쁘게 전화기 앞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사흘이 멀다 하고 전화로 아침은 먹었는지 묻고 사위와 외손녀 안부를 살폈다. 피곤해 잠깐 눈을 붙이거나 성가셔 전화를 받지 않으면 한 시간 간격으로 벨이 울렸다. 지금은 엄마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예리가 외박을 하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는 더욱 할 수 없었다. 친정집 이사도 대수가 아니었다.
두통과 함께 어지럼증이 몰려와 소파에 드러누웠다. 예리가 정말 민아네서 잤을까. 지난밤부터 시달리던 불안에 부르르 일어나 앉았다. 혹 남자친구가 있는 건 아닐까. 솜털이 보송보송한 소녀들이 거리를 쏘다니는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려 가슴이 바짝바짝 졸아들었다. 미성년자가 나이 든 남자와 원조 교제를 하고 여중생 둘이 동반 투신 했다던 뉴스가 떠올라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방정맞은 생각에 밤새 집안을 왔다 갔다 하고 아파트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도 설마하니 내 딸이 그럴 리 없다고 다독였다. 미쳐 날뛰지 않으려면 그럴 만큼 철부지가 아니라고 믿어야 했다.
엄마야말로 지병처럼 불안을 안고 살아왔다.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엄마는 내가 눈만 내리깔아도 목소리가 흔들렸다. 친구였던 옆집 미란이가 죽은 후로는 더욱 불안에 떨었다. 조금만 하교가 늦어도 골목에서 목을 늘이기 일쑤였다. 무심결에 미란이네 집을 쳐다보기라도 하면 그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말라며 손을 잡아끌었다. 그 일이 아니었으면 다락방에 자물쇠를 채우지도 않았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졸음이 몰려왔다. 전화기 앞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엄마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런데 언니는 왜 그렇게 친정집을 싫어해? 동생 목소리가 끼어들자 발끈하듯 소파에 있던 무릎 담요를 뒤집어썼다.
누가 S 못 봤어? 그 소리에 불이 일 듯 화르르 눈을 치떴다. 소파를 더듬어 휴대전화를 거머쥐었다. 그것이 예리와 나를 연결하는 유일한 끈인 듯 안타깝고 초조했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으면서도 머리는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누가 S 못 봤냐니까. 눈까풀이 덮이며 또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필름이 되감기듯 나는 한순간에 상자 곽처럼 좁고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돌아갔다. 주위에는 온갖 잡동사니와 그릇과 광주리 같은 가재도구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그 사이에 웅크린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면 지붕을 뚫을 듯 천정이 코앞까지 내려와 있었다. 내가 소인국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동시에 다락방임을 알았다. 의식이 혼몽한 가운데서도 그곳에서 빠져 나오려 몸을 버둥거렸다. 친정집을 떠나 아파트에서 살지만 내 속에는 여전히 다락방이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었다. 예리 역시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의식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리라.
다락방 바닥에 귀를 대듯 모로 돌아누웠다. 소라 주둥이보다 크게 열린 귀로 시간 저편의 부엌에서 소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걔는 대체 어디 간 거야? 잘 달군 프라이팬에 반죽 한 국자를 떠놓은 듯 지글대는 소리가 천장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명절 준비에 필요한 가재도구를 꺼내기 위해 다락방이 열린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여태 코빼기도 못 본 걸. 지난 추석에도 그러더니 대체 어딜 간 거야. 또 다른 소리가 냉큼 꼬리를 물었다. 설음식을 준비하는 숙모들의 쑥덕임이 은밀하지만 활기찼다. 종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아 슬슬 심심하던 참이기도 했다. 잡동사니 속에 웅크린 내 앞머리가 함부로 자란 잡초처럼 콧방울까지 내려와 있었다. 걔도 이제 자기 상태를 알겠지. 반편이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모르겠어. 숙모들 목소리에는 참기름을 바른 듯 반지르르 윤기가 돌았다. 얼핏 안도하는 기색도 느껴졌다. 나는 조그맣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재산은 몰라도 형제끼리도 자식 경쟁은 하는 법이라고 엄마가 그랬다. 걔가 사춘기를 무사히 넘길라나. 누군가 새치름하게 말했다.
손바닥만 한 다락방 창문 앞에 서녘 해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손을 내밀고 휘휘 저으면 물레 가득 불그스름한 실을 토해낼 것 같았다. 골목에서 아이들 함성이 와와 터지고 그때마다 귀가 곤두섰다. 앉은걸음으로 창문 가까이 다가앉았지만 온 종일 다락방에 웅크리고 있던 나는 눈을 찡그렸다. 막 동굴에서 기어 나온 듯 눈이 초점이 맞지 않아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을 알아볼 수 없었다. 창문을 연 나는 지붕 사이로 비켜드는 햇살을 만지려는 듯 손을 뻗었다. 햇살이 아니라 골목을 향한 손짓인지도 몰랐다. 동네 조무래기들과 설을 쇠러 온 사촌들이 편을 갈라 노는 소리가 골목에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슬금슬금 꼬리를 사리던 서녘 해가 그대로 스러지기 아쉬웠던지 반짝 마지막 열기를 뿜었다. 그러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채근에 달려가는 아이처럼 한순간 지붕 사이로 꼬리를 감추며 줄행랑쳤다. 고개를 빼자 창문틀에 몸이 걸렸다. 앞머리가 콧방울까지 내려온 나는 눈을 찡그린 채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을 쫓았다. 막 얼음 땡 놀이를 시작한 아이들 동작이 제각각 우스꽝스러웠다. 찬 물 한바가지 뒤집어쓴 듯 꼿꼿하게 얼어붙고 잎 진 나뭇가지처럼 팔을 치켜들거나 위태하게 한쪽 다리로 버티기도 했다. 창문틀에 턱을 괸 채 물끄러미 그 광경을 내다보았다. 미란이가 죽은 후 나는 다락방 열쇠를 찾아 온 집을 뒤지기 일쑤였다. 어디든 가야했지만 달리 갈 데가 없었다. 친척들이 모이면 더욱 그랬다. 거기는 미란이가 죽은 데라고 시뻘겋게 핏발 선 눈으로 못을 탕탕 박아도 상관없었다. 나는 다락방 창문에 끼여 날아가지 못하는 새처럼 하염없이 고개를 늘였다.
영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예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친정집을 떠난 지 십 오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다락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 집전화가 울렸다. 벽시계를 보자 아직 한 시간이 지나기 전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엄마는 휴대전화로 연락하는 법이 없었다. 엄마에게 따질 것처럼 팔짱을 끼고 전화기 앞으로 갔다. 내가 지금 한가하게 전화나 받고 있을 땐 줄 아냐고 쏘아붙일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전화기 액정에 동생 번호가 떠 있었다.
“언니 전화 안 받는다고 엄마 완전 초죽음이야.”
외출했다 막 들어왔다고 얼버무렸다.
“엄마 취미가 자식들한테 전화 거는 건데 어쩌겠어. 이사 의논도 하고 싶은 모양이야.”
동생이 나를 살살 구슬렸다.
“집이 낡아 외풍도 세고 수리비도 많이 든다면서 나한테 허락받아야 해? 마음대로 하라고 해.”
엄마에게 퍼붓듯 몹시 퉁명스러웠다.
“친정집 싫은 심정 이해 못하는 건 아냐. 언니 외국에 나가 사는 것도 아닌데 자주 안 온다고 엄마가 서운한 모양이더라.”
이사 가면 자주 가겠다고 했다. 그만 끊자고 하자 다음 주가 아버지 생일이라는 거였다. 엄마가 예리랑 하루 자고 갔으면 한다는데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끊자고 하자 동생이 목소리를 깔며 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목이 잠겨 예리가 속을 썩인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거실을 서성이는데 남편이 예리와 내 어깨를 감싸 안은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예리와 나는 은밀한 이야기라도 나누는 것처럼 고개를 맞대고 있었다. 목 티를 끌어올려 입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의 예리는 다소 볼이 부어 보였고 나는 카메라 렌즈를 피하듯 자세가 비스듬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곧잘 사진 좀 떼버리라고 신경질을 부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누구에게 하는 소린지 분명치 않았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어떠냐고 하면 눈을 흘겼다. 나를 눈에 집어넣을 것 같아 움찔했다. 가족사진을 떼라는 건 자신 때문만은 아닐 거였다. 예리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다. 내 앞에서 눈을 치 뜨거나 뒤집으며 달아나던 어릴 적 동네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예 시선을 피하거나 세상이 어떻게 보이냐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빤히 들여다보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앞머리를 쓸어내리며 고개를 처박았다.
다음 주가 아버지 생일인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엄마 아버지 생일은 매번 동생 전화를 통해 들이닥쳤고 일 년에 두 번 고향집으로 소환하는 통보기도 했다. 명절에는 교통이 혼잡하다는 핑계를 댔고 그때가 아니면 친정에 가지 않았다. 나는 친정집에서 멀리 도망치기 위해 다른 지방 남자를 만난 것인지도 몰랐다. 동생은 제부가 출장만 가도 엎어지면 코 닿는 친정집으로 달려갔고 명절에도 꼭 하룻밤 잔다고 했다. 낡아 빠진 집에서 잠이 오더냐고 하면 동생은 친정이 푸근하다는 거였다. 푸근하다니, 한편 부럽기도 했다. 친정집은 내게 그립기보다 피하고 싶은 기억이었다. 동생이 추억의 양지를 차지하고 있다면 음지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애초에 다락방이 없는 집이었다면 달랐을지 궁금했다. 그랬어도 나는 어떤 식으로든 다락방을 만들어 그 안으로 숨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면 잘된 일이었다. 그러면 그 안에 유폐된 기억과 미란이가 지워질까.
여전히 예리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었다.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어젯밤부터 우선 통화부터 하자고, 민아 어디 아프냐고, 무슨 일 있냐고, 어서 집에 오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휴대전화를 닫고 냉장고를 열었다. 물 한 모금 제대로 먹지 못해 기운이라곤 없었다. 반찬을 꺼내고 밥을 물에 말아 한 숟가락 떴지만 목이 저릿하니 아팠다. 또 한 숟가락 뜨는데 스멀스멀 눈물이 배어났다. 예리는 가출한 게 아니었다. 단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눈물이 멎지 않았다. 다 점 때문이었다. 그까짓 게 뭐라고……. 아니었다. 그까짓 게 아니었다. 미란이의 죽음을 아는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콜타르를 이겨놓은 듯 손바닥만 한 목덜미의 점이 예리를 쥐고 흔들었다. 예리는 자라면서 하필 보이는데 이런 게 있냐고 울상을 지었고 그때마다 크면 깨끗하게 없애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침이면 거울 앞에서 교복 깃을 세우고 목을 움츠리며 왜 이렇게 낳았냐고 신경질을 부렸다. 임신해서 뭘 잘 못 먹은 게 아니냐고도 했다. 그건 그냥 점일 뿐 장애나 병이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래도 동복을 입을 때는 목 티로 가릴 수 있어 나았다. 춘추복과 하복을 입는 동안은 아침마다 달래서 등교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예리는 더운 것은 상관없으니 교복 블라우스 대신 목 티를 입을 수 있도록 학교에 허락을 받아 달라고 했다. 남편은 아무리 외모에 신경 쓸 나이지만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구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예리가 높고 견고한 벽에 갇히지 않고 무사히 사춘기를 넘기길 바랐다. 그런데도 조바심을 이기지 못해 예리를 가르치기 바빴다. 점을 가릴 때마다 당당하게 보일 줄 알아야 한다고 매번 똑같은 말로 타일렀다. 예리가 사정없이 눈을 흘겼지만 멈출 수 없었다. 샤워할 때도 때밀이 타월로 심하게 문질러 딱지가 앉았고 바디 로션을 발라주면 내 손을 뿌리치거나 발딱 일어서기도 했다. 결국 점을 이기지 못하고 숨다니, 가슴이 먹먹했다. 한숨과 함께 예리를 낳고 탯줄도 자르지 않은 핏덩이를 가슴에 안고 울던 기억이 살아났다. 분만실에서 나는 이미 훗날을 예감했던 걸까. 한순간 아득해진 의식을 가다듬고 가슴에 엎드린 아이를 보려고 상체를 드는데 점이 눈 속으로 훅 달려 들어왔다. 아이 얼굴을 받쳐 든 나는 어떻게, 어떻게 소릴 하며 울먹였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무랐지만 몸속에 고여 있던 뜨거운 것이 마그마처럼 꾸역꾸역 흘러내렸다. 다 내 탓인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점은 점일 뿐이라고 자책하지 않으려 해도 소용없었다. 더 잘 가르쳤으면 점은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었을지, 또 나를 원망하지 않았을지 궁금했다. 입에 물고 있던 찝찌름한 밥을 삼켰다.
디지털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소리에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예리를 보자 발칵, 화가 치밀었다. 등짝이라도 한 대 후려칠 것 같아 단단히 팔짱을 꼈다. 약간 피곤한 기색이지만 예리는 집 앞 가게에 다녀온 듯 태연했다. 혼자 불안 초조했던 게 머쓱한 것도 잠시, 가슴속에 고여 있던 덩어리가 터져 나왔다.
“전화 왜 껐어. 어떻게 달랑 문자만 보내고 외박을 해?”
예리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손발이 떨리며 예리를 감당하기 버거우리라는 불안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민아 지금 심각하단 말야.”
촛불이 사그라지는 것처럼 예리가 풀이 죽었다.
“전화 왜 꺼놨냐니까.”
말을 할수록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는 그것만 중요해?”
예리가 발을 탕탕 구르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기 서. 쪼끄만 게 어디 겁도 없이 외박을 해?”
“민아넨데 뭐 어때.”
“내가 언제 허락하든?”
“문자 보냈잖아.”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되는 거야?”
방으로 따라 들어가 예리 팔을 낚아챘다. 손아귀에 우악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팔을 뿌리치던 예리가 얼굴을 찡그렸다.
“민아랑 같이 있어줘야 했단 말야. 말해봤자 당장 들어오라고 난리 칠 게 뻔하잖아.”
“허락안할 거라고 어떻게 단정 지어? 무슨 일인지 설명부터 했어야지.”
“나가 줘. 혼자 있고 싶어.”
예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높였다. 문자메시지 도착음이 울리자 냉큼 침대 위로 올라앉아 손가락을 움직였다. 예리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았고 하도 표정이 진지해 끼어들 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자 더욱 예리가 휴대전화 속에 숨었다는 실감이 났다. 예리가 문자메시지로 나누는 대화가 궁금했다. 나랑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입을 열긴 할까. 나는 예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고 그래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한참 만에 머리맡에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일어나보라고 하자 이불을 홱 걷었다.
“나가 줘. 피곤하단 말야.”
예리가 잔뜩 인상을 썼다. 그렇게 피곤한데 문자메시지는 어떻게 주고받았냐는 소리가 목구멍을 차고 올랐지만 애써 눌렀다. 커튼을 쳐주고 방을 나왔다.
안방으로 들어가자 삽시간에 홍수에 불어난 계곡물처럼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곧 속수무책으로 계곡 아래로 떠내려갈 것이다.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제야 민아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묻지 못한 게 생각났다. 나는 민아보다 예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해 더 불안했다. 나처럼 다락방 창문에 끼여서 날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질근 눈을 감은 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혼자 다락방에 숨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생각하는데 까무룩 잠이 들었다.
S는 대체 어딜 간 거야. 그 소리와 함께 시간의 저편으로 훌쩍 건너갔다. 다락방에는 검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어둠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숨을 쉬면 코와 입으로 검은 물이 쿨렁쿨렁 빨려들 것 같았다. 그러면 미란이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미란이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야 했다. 그래야 다락방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주문을 외듯 미란이를 되뇌며 검은 물을 들이마시고 또 들이마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콧방울까지 머리가 내려온 미란이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왜 그랬어, 왜……. 꼭 한번 물어야 할 말이었지만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 나한테 왜 아무 말 안했냐고. 못내 원망스러워 눈을 흘겼다. 미란이가 흰 이를 드러냈지만 눈까지 웃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혼자 화덕 들고 다락방 올라간다고 얼마나 힘들었니. 연탄불도 같이 피우고 화덕도 둘이 같이 들었어야지. 동네 아이들과 학교 친구들에게 사팔뜨기와 붕어라고 같이 놀림 받았는데 왜 혼자만 간 거냐구. 기어이 미란이를 한 대 때리기라도 할 듯 주먹을 그러쥐었다. 미란이는 눈이 툭 튀어나왔다고 붕어라고 놀림 당했다. 붕어 소리도 듣기 싫은데 넌 오죽하겠냐며 미란이가 내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데 너희 집에서는 왜 널 내버려 두는 거야. 가만히 있지 말고 병원에 가자고 해 봐.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삼촌 고모까지 식구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안 보이는 모양이라고 했다. S야, 사람 눈에는 영혼이 들어있대. 우리 눈에도 영혼이 들어 있을까. 우리 영혼은 어떤 모양일까. 다른 친구가 없는 미란이와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수그린 채 등하교를 했다. 방학하면 병원에 가 볼 거야.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방학이 되자 미란이가 보이지 않았고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었다. 방학이 끝날 무렵에야 미란이가 쌍까풀 수술을 한 걸 알았다. 하지만 수술로 더욱 눈이 튀어나와 보여 방에서 꼼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개학날 아침 일찌감치 골목으로 나가 미란이를 기다렸다. 문을 나서던 미란이가 황급히 앞머리를 쓸어내렸다. 학교까지 가면서도 한마디도 물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줄을 긋고 나니까 정말 붕어가 됐다고 키득거렸고 물속에 고개를 박고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다고 했다. 입 달린 동네 사람들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미란이는 일체 반응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고 늘 땅만 보고 다녔다. 전처럼 함께 등하교 했지만 미란이는 거리를 두고 걷거나 휑하니 먼저 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일요일,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미란이 엄마의 비명이 저녁 공기를 찢었고 이웃들이 숨을 멈췄다. 본능적으로 소스라친 엄마가 숟가락을 던지고 달려 나갔다. 미란이 엄마는 이미 실신한 뒤였고 이웃들은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냐며 발만 구를 뿐 누구도 선뜻 다락방으로 올라가려하지 않았다. 파랗게 질린 엄마가 입술을 앙다문 채 다락방으로 올라가 미란이를 끌고 내려왔다. 부엌방에 미란이를 눕히고 넋이 빠진 엄마가 그길로 집에 있던 화덕을 번쩍 들고 내리쳤다. 미안해, 미안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둠 속에 엎드려 있던 잡동사니와 가재도구들이 야수같이 구부리고 있던 등을 펴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시커먼 그림자가 달려들 것 같아 턱이 덜덜 떨렸다. 필사적으로 무릎을 끌어안고 등을 구부렸다.
누가 S 심부름 보냈어? 다락방 아래 집안이 술렁였다. 코빼기도 안보였는데 어떻게 심부름을 보내. 나는 배를 감싸 안고 연신 입술을 사려 물었다. 숙모들은 종일 부침개를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쪘고 다락방을 가득 메운 냄새와 훈기가 속을 긁었다. 뒤틀리던 배에서 내장이 모조리 빠져나갔는지 허리가 접혔다. 허기에 지친 나머지 졸음이 몰려왔다. S야, 너 여기서 뭐해. 누군가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 놀라 눈을 뜨다 찡그렸다. 다락방이 대낮처럼 환했다. 소쿠리 가지러 왔더니 자고 있지 뭐예요. 아휴, 이 웬수. 다락방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복장을 치던 엄마가 내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다락방이 무섭지도 않아. 다락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쿵쿵 어지러웠다. 숙모들이 차례대로 목을 빼고 올라왔다. 재빨리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날개가 꺾인 나는 부끄러웠다. 날 수 없는 새에게는 세상에서 피할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왜 이렇게 복장을 뒤집어, 뒤집길. 숙모들이 뜯어말려도 엄마가 연신 내 등짝을 패고 머리를 짓찧었다. 부엌방으로 끌려 내려와서도 훌쩍거림은 잦아들듯 하다 한순간 격한 흐느낌으로 치달았다. 저녁상을 내온 숙모가 숟가락을 쥐어주었지만 콧방울까지 머리가 쏟아져 내려와 상이 보이지 않았다.
쟤 좀 어떻게 해 봐요.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그렇지 언제까지 저렇게 내버려 둘 거냐고요. 누군가 있는 대로 목청을 돋웠다. 그 소리에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뜨리며 흐느꼈다. 동네 아이들과 친구들의 놀림이 되살아나면서 미란이가 보고 싶었다. 입술을 깨물었지만 흐느낌은 멎을 줄 몰랐다.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진땀도 났다. 화장대 위 알람시계가 다섯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목이 잠겨 답답했다. 잠이 덜 깨 몽롱한데다 놀라 그럴 것이다. 거실로 나가자 낯선 번호가 찍혀 있었다. 지금쯤 엄마는 저녁 준비로 분주할 것이다. 곧 저녁 어스름이 퍼지면서 된장찌개와 생선 굽는 냄새가 오래된 집 다락방을 타고 오르리라. 저녁을 먹고 나면 엄마는 자석에 이끌리듯 앉은걸음으로 전화기 앞으로 다가앉을 것이다.
문을 열자 예리가 침대에 엎드린 채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또 휴대전화 들고 있냐고 소리가 올라갔지만 예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참 만에 고개를 든 예리가 왜 소리부터 지르냐고 항의했다. 휴대전화만 들고 있지 말고 무슨 일인지 말해보라고 다그쳤다. 예리가 민아한테 가봐야 할 것 같다며 발딱 일어났다. 가출 통보라도 받은 듯 어안이 벙벙했다.
“민아가 죽고 싶대. 병원 가야겠다는데 따라가야 할 것 같아.”
무슨 일이냐고 묻자 민아가 쌍까풀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침대를 짚으며 주저앉았다. 자기가 보기엔 괜찮은데 울고불고 난리라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병원에 가려해도 재혼한 엄마에게 연락할 수도 없고 일 귀신 아빠는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소리에 아연할 뿐이었다. 수술하던 날 병원에 데려간 고모는 여행 중이어서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눈두덩이 조금 부어 보이긴 해도 귀염성 있는 민아 얼굴을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벌써 성형수술을 하다니, 쯧쯧 혀를 찼다. 미란이 생각에 두 손을 맞잡았다. 민아는 쌍까풀을 만들어 더 예뻐지고 싶었을 것이다. 흠 없는 반듯한 외모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예리 마음도 궁금했다. 성형 수술한 민아를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궁굴렸을까. 예리는 목 티를 추켜올릴 때마다 자신을 그렇게 낳은 내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어려서부터 점만 들먹이면 의사와 상담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피부과에 데려간 적도 있었다. 여러 차례의 레이저 시술과 피부 이식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한 의사는 성장을 마친 후의 일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어려서부터 예리 손바닥만 하던 점은 지금도 그 정도였다. 나는 곧잘 으스러지도록 예리 손을 잡았다 놓곤 했다. 손과 함께 점이 성장을 멈추길 바라서였다. 또 한참 메시지를 주고받더니 오늘은 시간이 늦어 병원은 내일 아침 가기로 했지만 민아한테 잠깐 가봐야겠다고 했다. 민아한테는 나뿐이라는 거였다. 내가 미란이의 말을 알아들었거나 입을 열지 않아도 계속 말을 시켰더라면 어땠을까. 떨치지 못한 죄책감에 못내 목이 멨다. 병원은 내일 나랑 같이 가자고 했다. 민아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펄쩍 뛰면서도 이내 수굿해졌다.
“배고파.”
예리가 기운이라곤 없었다. 아침부터 냉장실에 내려놓았던 치즈 돈가스 튀길 준비를 하며 밑반찬을 꺼냈다. 돈가스에 소스를 뿌리며 예리를 불렀다. 허겁지겁 밥을 먹는 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전히 목 티를 귀 밑까지 바짝 끌어올려 입고 있었다. 그까짓 점 아무것도 아니라고 가르치거나 조바심을 낼 일이 아니다 싶었다. 예리는 휴대전화 속에 숨은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성장의 아픔을 겪는 중이라는 생각이 잃었던 식욕처럼 고물거리며 올라왔다. 밥을 떠 자리에 앉았다. 돈가스를 한 입 베어 물자 빵가루가 바싹하게 씹혔다.
“예리야, 점 말야…….”
시선을 비낀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나 안 쳐다 봐. 얘기를 하려면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봐야지.”
볼을 씰룩이며 조금 웃어보였다. 예리가 내 두려움을 아는 걸까. 오랫동안 숨어있던 다락방에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적잖이 긴장이 되었다. 사시였던 한쪽 시력은 초점을 맞추려 안간힘 쓰다 사라졌지만 교정 수술로 눈동자가 따로 놀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술 후에도 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본사에서 파견 온 남자를 만났고 그는 자신을 마주보지 않는 시선을 붙잡으려 안간힘 썼다. 결혼과 함께 다락방이 있는 고향집을 떠난 내게는 친구나 가까운 이웃이 없었다. 집안에 앉아 예리를 키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안전하다고 믿었다. 내게 집안은 또 다른 다락방이었다.
“민아한테 엄마랑 병원 같이 가자고 해봐. 알았지.”
예리가 목도리를 감으며 알겠다고 했다. 현관으로 따라 나가 등을 토닥였다. 잘 갔다 오라는 뜻보다 다른 말을 하고 싶은 것이리라. 간혹 목의 점이 예리를 흔드는 날도 있을 것이다. 예리는 조금씩 외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립 그로스나 색조 화장품도 하나둘 샀다. 등교 준비를 하고 방에서 나올 때는 입술과 뺨이 발그레하고 아이메이크업으로 눈매가 또렷한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레 두려움에 떨었다. 예리의 다락방은 나의 그것과는 달랐고 세상과의 거리를 가늠하고 날아갈 준비를 하는 둥지였다. 속속들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고립을 향해 틀어박히지 않기를 바랐다. 내려놓을 수 없는 마지막 근심을 달래 듯 나직나직 심호흡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한결 몸이 가뿐했다. 식탁을 치우려다 말고 전화기 앞으로 갔다. 엄마에게 낡고 불편한 집 팔고 이제라도 아파트에서 편하게 살아보라고 할 거였다. 다락방에서 풀려나야 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마침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내일은 바쁠 것 같았다. 병원부터 갔다 온 다음 예리 학원이 끝나는 대로 다락방이 있는 아파트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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