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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신위의 『맥록』에 나타난 춘천의 시대상과 한시 표현
1. 신위(申緯)의 생애와 『맥록』
신위(申緯 1769-1845)의 자는 한수(漢叟), 호는 자하(紫霞)이며 본관은 평산으로 조선후기에 있어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명성이 높았다.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이 “송나라 시는 소동파가 제1이라면 우리나라 시는 신자하가 제1이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한국한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림은 이정(李楨 1578-1607) , 유덕장(柳德章 1675-1756) 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묵죽(墨竹)화가로 꼽히며, 글씨는 전통적 서법을 계승한 대가로서 추사(秋史)와 더불어 19세기 서예사의 양대 산맥으로 주목되고 있다. 청 나라 옹방강의 고증학과 문예(文藝)를 19세기 조선조의 지식인들에게 전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최근 학계에서 매우 주목되고 있다.
자하는 16세 때 이미 청 나라 왕사정(王士禎)의 「추류」라는 시를 의방(依倣)한 「추류십절구(秋柳十絶句)」로 시명을 날렸으며, 31세(1799년 정조 23)에 문과에 급제하여 초계문신으로 발탁된 이후 41세(1809년 순조 11)에 홍문관 수찬, 43세 정3품 당상관이 되었고 44세(1812년 순조12)에는 청나라에 서장관으로 다녀 온 후 병조 참지가 되었다.
45세부터 48세까지 황해도 곡산 부사를 지낸 후 승지를 비롯한 여러 직책에 임명되었다가 50세(1818년 순조 18)에 춘천 부사로 부임했으나 51세에 해직되었다. 『맥록』은 1818년 3월부터 1819년 6월까지 춘천부사로 부임하여 창작한 130여 편의 시들을 4권으로 편찬하여 춘천의 옛 지명을 따서 제목을 붙인 시집이다.
자하는 54세(1822년)부터 62세(1830년)까지 병조 참판, 대사간, 강화 유수 등 역임하면서 효명세자로부터 “양현산방(養硯山房)” 글자를 하사 받기도 했다. 그러나 강화 유수 사직한 이후 65세까지 형조 참판, 도승지, 대사간 등을 제수 받으나 논박이 일어나며 관직에 나가지 않고 자하산장 등에서 은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65세에 평산에 유배되었다가 66세(순조 34년) 풀려나 도승지에 임명되었고 67세(1835년 헌종 1년) 이후 이조 참판, 병조 참판, 대사간, 호조 참판 등 역임하다가 70세에 왕명으로 어병(御屛)을 써서 올렸으며 75세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맥록』은 「후추류(後秋柳)」에 의해 한시사적 관점에서 특히 주목되었으며, 옹방강과의 교류에 의해 습득한 서첩의 임모(臨模) 등과 같은 서예 활동에 대한 기록으로 자하의 서화 연구 및 청대 문물의 수용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춘천 부사 재임 기간 중 자하 개인의 생활을 세세히 표현한 서정 문학이자 19세기 춘천의 모습을 담아 낸 향토 문화 자료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 시집이다.
2. 자연 풍경의 묘사
춘천 관아 내의 문소각, 벽오헌 등을 중심으로 한 경관들을 여러 편의 시로 표현해 내고 있다. 「문소각소우(聞韶閣小雨)」는 가랑비가 내리는 말의 봉의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문소각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내고 있으며 「문소각수기효망(聞韶閣睡起曉望)」은 이 시는 가을 새벽 어스름 속에서 문소각으로부터 내려다 본 춘천의 새벽 풍경을 표현했는데 산과 강으로 어우러진 춘천의 아름다운 경관(景觀)과 노년을 벽지에서 근무하는 작자의 우수를 절묘하게 결합하였다. 「벽오헌상설(碧梧軒賞雪)」은 혹한에 폭설이 내린 춘천의 풍경을 읊었는데 산간 고을인 춘천의 흰 눈이 덮힌 세계를 잡된 색이 침범하지 못하는 견고한 세계, 순수하고 깨끗한 세계로 미화하고 있다.
「후추류 」 20수는 춘천의 가을 날 버드나무의 풍경에 50세의 노년에 느끼는 우울함과 비애를 의탁하여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한데, 장소를 특정하여 표현한 몇 몇 작품은 당시 해당 장소의 버드나무의 풍경이 주는 미학을 오늘날 우리가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제9수는 구성문의 회화나무 꽃이 떨어지는 풍경과 봄날의 버들솜이 날리는 풍경을 예찬한 것이며 제10수는 문소각 앞의 버드나무 아래로 멀리 내려다 보이는 소양강 주변 춘천 고을 전체의 풍경을 조감도처럼 묘사해 내고 있다. 제11수는 요선당의 버드나무가 바람에 휘날려 연못의 연꽃에 비치는 풍경을 시각적 이미지와 후각적 이미지, 동적 이미지와 정적 이미지를 결합하여 절묘하게 표현해 내고 있으며 제12수는 죽전포 마을의 버드나무와 주변의 산과 강이 어울린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시각적 이미지로 그려 내었는데 시,서,화 삼절이었던 자하의 시중유화(詩中有書畵)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이들 자연 풍경을 표현한 시들은 19세기 춘천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 전형처럼 유미적(唯美的)으로 창조해 낸 시들로 의의가 있다.
3. 생활 풍속의 반영
향시 과거시험을 주관하면서 감독관, 응시생과 그들의 부형 등과 주고 받은 시들에서 춘천에서 시행된 과거시험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도회시원 차운사부고관송회양주경 지렴 2수」에서는 주변 지역 관장인 회양군수, 보안역승 등이 전공을 나누어 감독관으로 맡고 부사 자신은 배제된 점, 감독관은 음주를 금하였던 풍속 등이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향시의 급제자로 선발된 인물들과 주고받은 여러 편의 시들에서 당시의 향시 급제자에 대한 인적 사항, 선발의 과정, 선발 후 서울의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과정과 결과 등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들이 여러 편 있다.
부사의 행차, 식사, 연회, 풍류, 시회(詩會) 등 춘천 관아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을 표현한 시들을 통해 당시 춘천 관아의 생활풍속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문소각구점(聞韶閣口拈)」, 「소양정내집구호(昭陽亭內集口號)」, 「칠월기망소양강범주(七月旣望昭陽江泛舟)」 등의 시는 문소각, 소양정 등에서 벌인 시회의 모습을 시로 표현하였다. 특히 「칠월기망소양강범주」는 춘천 소양강에서 뱃놀이하며 열은 시회를 소동파의 「적벽부」와 왕희지의 「난정첩」의 모임에 비유하며 장편의 고시로써 표현하였는데 춘천 관아의 역사상 최고의 시회를 표현한 시로 손꼽을 수 있을 만큼 매우 정성껏 의미 깊게 표현한 시이다. 「추야소작정두다유신품(秋夜小酌飣餖多有新品)」, 「오십생조구호 병서(五十生朝口號幷序)」, 「유월입일야우지월명달서취음(六月廿一夜雨止月明達曙醉吟)」, 「야독작소훈견민사용제석운(夜獨酌小醺遣悶四用除夕韻)」 등과 같이 작품은 춘천 부사의 음주, 생일잔치, 풍류 등을 표현하고 있어 흥미를 끈다.
「맥풍(貊風) 12장 」과 같은 작품은 당시 춘천에서 경작하던 13종의 농작물 재배의 특징을 방법, 농업 상황 등 춘천의 농촌 풍속을 기록한 향토문화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지방관장으로서 애민의식에 입각하여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민요풍이 담긴 연작 한시로 표현한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도 크다. 당시 농업과 관련된 토속어 단어를 특수한 한문 단어로 번역하여 시어로 사용하고, 농업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을 주석을 달아 설명한 것 등은 매우 특이한 한시라고 할 수 있다.
「귀리(鬼麥)」에서는 춘궁기 이후 여름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귀리 농사가 매우 중요함을 설명하면서 흉년에 귀리를 관가에 기증하고 양반의 직첩을 사는 것을 “귀보리첨지”라고 부른다는 당시 산촌의 흥미로운 현실을 기록하고 있어 귀리 재배를 중심으로 한 19세기 춘천의 생활상과 유행어를 보여준다. 「메밀(蕎麥)」은 메밀 농사의 시기와 과정 등의 풍속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19세기 춘천의 메밀 농사에 관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데 기타 몇몇 작품들에서도 메밀 재배를 정책적으로 매우 중시하였던 춘천 관아의 풍속을 보여준다.
4. 유물, 유적의 발굴 및 고증
문소각의 북쪽에 있던 2개의 샘물로 만들어 졌던 연못을 발굴하여 복원하고 그 과정과 복원 후의 경관을 6수의 시로 표현한 것은 유물, 유적을 발굴하고 그것을 시로 표현하는 특이한 자하의 춘천 부사 재직 시의 활동을 보여준다.
문소각에 걸렸던 시패(詩牌)의 역사적 유래에 대하여 박태보의 시와 이를 차운한 관찰사 오도일 등 8인의 명단과 창작 시기 등을 “병서(幷序)”로 기술하며 시로 표현하였으며 조양문, 수춘관, 위봉문의 글씨를 조윤형이 1788년에 쓴 것과 글씨체가 안진경(顔眞卿)의 행서체에 미불(米芾)의 서법을 참조한 필체인데 조양문이 나머지 2개와는 약간 다름을 고증하고 내용을 「송하옹 조양문방서(松下翁朝陽門牓書)」라는 시로 표현하고 있다. “문소”, “벽오”, “조양”이란 단어는 봉의산의 “봉(鳳)” 자에 맞춰 붙인 것이며 육명루, 구성문, 남덕문 등의 문루 명칭은 앞의 이러한 명칭에 맞춰 지은 것이라고 명칭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어 문소각과 주변 문루들의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한다.
청평사를 방문하여 유물, 유적을 발굴하고 그에 관한 사항을 시로 표현한 것은 19세기까지의 청평사 유물, 유적에 관한 상황을 기록한 시로서 매우 의의가 있다. 특히 이제현의 시장경비를 영지에서 발굴하여 탁본하고 역사를 고증하는 하는 내용을 시로 표현한 것은 지금은 사라진 시장경비의 당시 상황에 대한 기록으로 중요하다. 아울러 아들 명준에게 탄연이 쓴 문수원중창비를 탁본하여 탄연의 글씨를 세상에 알린 것에 대하여 자하는 아들의 주요 업적으로 매우 자부심을 가졌던 것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나옹철주장, 송파화상, 강선각 등 당시 청평사의 여러 유물들의 상태에 대한 시들도 있다.
최성대(崔成大 1691-?), 남옥(南玉 1722-1770)이란 두 시인의 묘소가 있음을 발견해 내고 남옥 미간 일관시초와 최성대의 구본 두기시집을 찾아낸 일 등도 「이시총 병서」로 기술하고 있다.
5. 거주 사족들과의 교유
최성대에 대한 관심이 커서 최성대의 후손 최덕종(崔德種)과 교유하며 시를 주고 받은 것이 몇 편 있다.
풍양 조씨 가문의 인물로 조운종(趙雲從 1783-?), 조운사(趙雲師 1753-?) 등과 교유하였는데 조운종은 당시 아사(亞使)로서 과거시험 업무를 관장하며 교유하며 시를 여러 편 주고 받았다.
조카 손자 탄생을 축하와 관련하여 시들을 주고 받은 것에서 춘천 거주 사족들과의 교유를 알 수 있는데 전주 이씨로 이응연(李膺淵 1758-?), 이회구(李繪九 1784-?) 등과의 주고 받은 시가 주목할 만하다.
남옥의 후손인 남려(南鑢)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문소각에 머물게 하며 남옥의 시집을 정리하게 한 것이 시로 표현되어 있다.
최내수(崔乃秀 1780-?)란 인물의 집을 방문하며 교유한 것도 주목된다.
6. 도로와 교통
춘천에 부임할 때와 이임할 때의 노정에서 쓴 다수의 시들은 당시 춘천 주변의 육로와 수로의 교통 상황을 보여 주는데 부임할 때의 시들에서는 초연대, 안보역, 석파령, 신연강 등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임할 때의 시들에서는 수로의 험난함에 육로의 험난함까지 이어지는 사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주과수춘종경(舟過壽春終境)」은 이러한 험한 수로로 떠나면서 궁벽한 험지에 좌천되었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해직되어 가는 자하의 괴로운 심경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재직 중 청평사를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노정을 표현한 「용화지마령모진소우(龍華至馬嶺母津小雨)」, 「모진인람역지수청천(母津仁嵐驛至水靑遷)」, 「수청지보통천(水靑至普通遷)」, 「보통지옥산포(普通至玉山浦)」 등의 시들은 청평사와 춘천 관아 사이의 도로 상황을 보여주는데 19세기 경에 존재하던 잔도와 나루터의 상황과 경관, 도로 코스 등에 대한 정보와 함께 이를 통과하는 자하의 감회가 잘 표현되어 있다.
7. 맺음말
<원문과 번역>
1. 「문소각에서 잠에서 깨어 새벽에 바라보다(聞韶閣睡起曉望)」
“강가의 누각에서 문 닫고 깊은 밤 잠들었다가 / 절로 잠 깨어 창문 열자 북두성이 기울었네 / 안개는 옹기종기 들판에서 잠자고 / 물빛은 피어올라 난간에 걸치네 / 암자의 종소리 산골짜기에 울리고 / 봉의산에 조그만 암자가 있다 / 마을의 절구질 소리 저 아래 나지막하네 / 뱃전에 바라보이는 마침 사람 있어 / 등불 밝힌 내게 멀리서 수심을 덧보태네(江樓闔戶寢深更 自起拓窓星斗傾 雲氣聚依平野宿 練光飛上曲欄橫 菴鍾動荅山間響 鳳儀山有小佛菴 村杵敲殘地底聲 定有人從篷背望 逈添愁思此燈明)”
2. 「후추류」 제11수 <요선당 연못의 버드나무(邀仙堂池柳)
“연못가 요선당 맑은 밤 가늘고 가는 가지 / 가을 바람 받아서 푸른 창에 서늘도 하네 / 빠르게 휘도는 버들가지 천 갈래로 그림자 지고 / 어지러이 살랑이는 연꽃에 온 연못 향기롭네 (池館淸宵細細長 西風受用綠窓凉 驟回楊柳千條影 亂颭芙蓉一水香 )”
3. 「후추류」제12수 <죽전포 마을의 버들(竹田浦村柳)>
“높고 낮게 바람에 날리며 가을 풍경에 점을 찍고 / 저녁 노을 묽게 칠했네, 얕게 띠를 두른 물굽이에 / 한산하고 먼 마을 두, 세 그루 밖으로 / 다시 덧 붙였네, 뾰족한 석양의 산 하나를 / (高低搖曳點秋顔 澹沫殘霞淺帶灣 寂歷遠村三兩外 更添一角夕陽山)”
4. 「문소각에서 입으로 읊조리다(<聞韶閣口拈>)」
“사방 들판 너른 풀밭 융단처럼 푸른데 / 탁 트인 난간에 기대니 누각은 구름 속에 솟았네 / 산은 맥국을 둘러싸고 천 년 동안 있고 / 강은 소양에 이르러 두 물줄기로 나눠지네 / 오월에도 높은 곳 서늘하여 꾀꼬리 소리 시끄럽고 / 온 종일 연회에 노젓는 소리 들려 오네 / 공무의 여가에 먹을 씻어 향기가 휘장에 어리니 / 소주자사 위응물이 아니면 곧 우군장군 왕희지일세(四野平蕪綠罽紋 憑欄空濶閣侵雲 山圍貊國千年在 江至昭陽二派分 仲夏高寒鶯語澁 六時尊俎櫓聲聞 公餘浣墨香凝帳 除是蘇州卽右軍)”
5. 「맥풍(貊風) 12장」 <메밀(蕎麥)>
“절기가 중복의 허리를 지나기 시작하여 / 붉은 고추잠자리 높이 날면 저녁 그늘에 나서네
흰 꽃은 눈처럼 울타리를 에워 향기로운데 / 열매는 그 사이 50일이면 익는다네
중복, 말복의 사이를 허리라고 한다. 메밀 밭을 가는 것은 고추잠자리가 나오는 것을 보아 날을 잡는다. 덥기 때문에 저녁 때를 보아 밭을 간다.(節氣初回中伏腰 紅蜻蜓沸夕陰出 白花如雪繞籬香 實熟其間五十日 中末伏之間曰腰 耕蕎麥以蜻蜓出爲候日 炎故候夕而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