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회고록 -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을 상생하는 공동체로 ⑤
청과동 옥상의 태양광 발전이 시민햇빛발전의 구상으로
1만 평의 반여농산물시장 청과동 철판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덮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를 찾았다. 예산을 들여 설치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민자 유치 등 다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당장 가시화하고 싶었다. 쉽지 않은 대형사업 인데다가 언제 인사이동이 되어 자리를 옮겨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태양광 업체와 환경운동가를 불러 넓은 지붕을 보여 주고 태양광 패널 설치를 의논했다. 그러던 중 서울의 시민단체인 ‘에너지전환’에서 시민들로부터 투자자를 공모해 상업발전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정부에서는 태양광으로 발전해 생산한 전기를 1kw당 720원에 20년 동안 매입해 주는데 사업성이 있어 서울의 경우 환경단체들이 이미 시민태양광발전소를 몇 군데 세워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련)에서도 부산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태양광 발전사업을 구상해오고 있었는데 나의 제의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혀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환경련 구자상 전 대표, 김대오, 옥성애 회원 등과 만나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서울의 시민햇빛발전 사례를 살펴보고 지자체 차원에서 이미 활발하게 태양광 보급을 확대 중인 전남·광주 지역을 방문하며 반여시민햇빛발전 사업을 구체화해 나갔다.
탄소 배출을 억제하고 전기도 생산하겠다는 반여농산물시장의 태양광 사업에 대해 시민, 환경단체, 에너지공단과 그외 관련업체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었다. 이에 힘입어 2006년 5월 21일 반여농산물시장 회의실에서 부산의 시민단체와 시의원, 상인 대표 등이 참여하여 부산시민햇빛발전 추진위원회 발족식을 개최했다. 그리고 시민들과 기업이 참여해 태양광 사업을 확대해 나가자는 결의를 하고 반여농산물시장에 200KW 규모의 태양광발전사업을 시범 실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렇지만 부산시의 반응은 냉랭했다. 당시 나의 상관이던 해양농수산국장은 농산물시장 본연의 임무인 농산물거래에 집중하지 왜 지시하지도 않은 일을 벌이느냐며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 부산시장도 국장의 왜곡된 보고를 받았는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민단체들과 어울려 태양광 발전을 밀어붙이는 나에 대한 시청 쪽의 거부감이 팽배해갔다. 설상가상으로 2006년 7월 25일자 부산일보에서 ㈜반여시민햇빛발전소가 출범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내부에서 의사결정이 되기도 전에 언론에 미리 흘렸다는 오해를 받아 괘씸죄까지 더해졌다.
부산시의 비협조에다가 환경련이 구상하던 시민들의 투자도 어려움에 처해 시민햇빛발전사업 추진은 반년 이상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중 2007년 3월 30일 원전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김모 부장이 찾아왔다. 에너지 공기업인 한수원은 RPA(Renewable Portfolio Agree-ment)사업으로 재생에너지에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면서 반여농산물시장의 옥상을 둘러보더니 반여농산물시장을 포함해 부산지역에 20MW 1600억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련에서도 한수원의 제안을 받았지만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는 환경련의 이념 때문에 한수원의 제안 수락을 망설이고 있었다.
환경련의 시민햇빛발전위원회는 ‘나투라’라는 공익법인을 만들어 시민자본을 모아 태양광 사업을 하기로 했다. 여기에 풍력발전 기자재 생산업체인 유니슨과 태양광사업을 전담할 경동건설의 자회사 등이 참여 의사를 표시했다. 결국 공기업인 한수원도 같이 참여하기로 하면서 2007년 7월 9일 부산시청에서 부산시장, 한수원 사장, 환경련 대표 3자가 부산지역의 태양광 사업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함으로써 반여농산물시장을 포함한 부산의 태양광 사업은 정당성을 인정받고 탄력을 받기에 이르렀다.
본격적인 사업 추진의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1주일 후 녹지사업소장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사실 보름쯤 전에 인사담당 국장으로부터 본청 과장으로 가야 한다는 귀띔을 받긴 했지만 내 손으로 반여시민햇빛발전소를 완성하기 위해 계속 근무하기를 희망했었는데, 승진 문턱의 본청 과장도 아니고 2년 반 전에 있었던 녹지사업소장으로 다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실망이 엄청 컸다.
(한동안의 충격에서 벗어나 녹지사업소장으로서 석대쓰레기매립지의 복토와 자연체험학습장 조성에 매진했다는 얘기는 전편의 ‘김기자의 회고록 : 석대쓰레기매립지를 파라다이스로 꿈꾸었건만’을 참조 바랍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