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변화 아닌 변질
전통적 진리 지켜가며 세상이 교회를 닮게 해야
평생 일념 선교사역, 마지막까지 쓰임받고 싶다
이규왕 목사는 조만간 목회 일선에서 물러난다.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후임자도 일찌감치 선정돼 현재 연정을 하고 있다. 40년 목회여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말하는 이규왕 목사의 인터뷰는 오랜 사유에서 나온 묵직한 답변이었다.
은퇴를 목전에 둔 목회자의 눈에 한국교회는 성경과 교회의 순수한 본질을 지키려는 노력이나 모델이 없는 만인세속화에 큰 우려를 보였다. 그러면서 양식이 떨어져 힘들어도 종자만큼은 지켜야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어려운 때에 교회의 본질을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짧은 인터뷰가 이규왕 목사의 40년 목회를 충분히 담기에는 어림없다. 그러기에 퇴임하는 한 목사의 말이 아니라 4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목회여정에서 체득된 조언으로 받으면 좋겠다.
▲지난 목회 여정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특별히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확신하는 목회자이다. 시골 암자에 입적할 만큼 독실한 불교집안이었다. 가문의 제사를 도맡아야 하는 장손이요, 독자였기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조차 어려웠는데 목회자가 된 것은 아브라함과 같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예수를 믿고 신학의 과정을 마치고 목사로 세움을 받아 40년간 사역할 수 있었다.
총신 신대원에 입학하면서 수원제일교회 교육전도사로 사역했다. 이후 부산 괴정중앙교회 강도사, 부산 장전제일교회 담임, 수원제일교회 부목사, 통영 충은교회, 서울 강남교회, 부산 신평로교회 담임목회를 거쳤다. 결국 수원제일교회에 교육전도사, 부목사, 담임목사로 세 차례 청빙을 받아 지금까지 시무하고 있다.
돌아보면 많은 교회에서 목회했다. 장기목회를 이상적인 목회로 여기는 장로교회 목사로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처사이다. 철이 없었던 젊은 목사 때는 눈치를 보면서 한 교회에 눌러 앉아 종신목회에 연연하기 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고 또한 소신껏 사역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니 아쉬운 점도 많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여러 교회를 섬기면서 얻은 경험들이 최종 목회지인 수원제일교회가 가장 힘들었을 때 부임하여 산적했던 문제들을 수습하고 본질 회복과 더불어 안정과 성장으로 나아가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목회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사람이 있다면.
=지난 40년은 다사다난했다. 목회여정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77년 서른 살에 목사 안수를 받고 첫 단독 목회지였던 장전제일교회 개척시절이다. 모친과 어린 자녀들까지 생활해야 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었다. 불과 신대원 3년 과정이 신학의 전부였기 때문에 설교를 수없이 준비해야 하는 일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나이 먹기 전에 좀 더 목회와 신학을 배운 후에 단독 목회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장전제일교회를 사임하고 수원제일교회에 부목사로 두 번째 부임을 했다. 그때 나에게 기대를 걸었던 장전제일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상심을 하고 충격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죄송한 마음뿐이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때 그와 같은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장전제일교회도 후임 목사님들을 통해서 규모있는 교회로 성장했고, 나의 사역도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찌감치 은퇴를 준비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1947년 3월생이기 때문에 수원제일교회에서 위임받은 날을 기념하여 은퇴도 2018년 3월에 은퇴하기로 당회에 이야기 한지 벌써 1년도 더 되었다. 은퇴를 일찌감치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전임자의 퇴임과 더불어 후임자가 갑작스럽게 부임하게 되면 교회는 마치 새엄마를 맞는 아이처럼 새로운 리더십에 부조화나 부적응의 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리더십에 빨리 적응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후임자 청빙을 위해 2년 전에 청빙위원회를 조직했고, 1년 동안 기도하면서 절차를 밟아 후임자를 결정했다. 후임자는 1년 전에 부임해 전임자와 더불어 동역하면서 교회에 적응하고 기존 리더십을 분석하고 보완해 새로운 리더십을 접목하는 일종의 연정(聯政)을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와 후임자 모두 1년이라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퇴임 이후의 계획은.
=퇴임(退任)이라는 말 그대로 일을 끝내는 것이다. 최우선적으로 교회 일에 대해 아무 미련도 두지 말고 몸과 마음을 떠나는 일이다. 그 다음은 건강이다. 두 번째 암수술을 받은 지 아직 1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건강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담아온 창조주의 섭리를 돋보이는 사진을 좀 더 잘 찍고 정리해 신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공유하고 싶다. 무엇보다 평생 일념으로 삼았던 선교 사역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다면 건강회복의 속도에 따라 여력을 집중할 것이다.
▲후임 선정을 일찌감치 마쳤다. 후임자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교회가 1년 이상 기도하고 절차를 밟아 청빙 확정된 후임 김근형 목사님은 서울 충현교회와 사랑의교회 부교역자와 개척교회 경험까지 겸비한 젊고 유능한 목회자이다.
현재 매주 함께 식사하며 교제를 나누고 있다. 대화를 통해서 친숙해져가는 가운데 무엇보다 성품이나 기질이나 비전에 있어서 서로 통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서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다.
특별히 다음세대를 이끌어 갈 신세대 목회자로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겸손한 성품, 탁월한 메시지 구성과 전달력으로 청빙 설교 후에 전교인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나의 가장 약점인 찬양 사역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까지 두루 갖춘 리더이다. 수원제일교회 부임 이후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예감하고 있다.
▲목회 이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후임목사가 3월 첫 주에 부임해 전교인들 앞에서 설교한다. 새로운 리더십을 맞이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 전반기 동안에는 나와 후임목사가 번갈아가며 설교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강단의 리더십이 점진적으로 후임에게 이양되는 것을 전교회적으로 실감하게 하기 위해서다. 올해 후반기에는 후임목사에게 모든 설교와 행정을 전담하게 하면서 교회는 후임의 새로운 리더십 적응에 집중하게 한다. 이 기간은 후임목사와 성도들이 피차 마음을 열게 하고, 후임목사에게 신뢰와 존경을 쌓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 어간 나는 10월 노회에 사임 청원과 더불어 후임목사 위임청빙을 신청하고, 공동의회를 통해 확정되면 목회이양에 따른 모든 행정적 절차를 끝내게 된다.
▲후임 청빙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잡음으로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이 급증하고 있다. 바람직한 후임목사 청빙에 대해 조언한다면.
=후임목사 청빙에 있어 많은 교회들이 잡음이 일어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분명한 원칙과 절차를 우선적으로 정하지 않고 당회가 특정인을 후임으로 성급하게 결정하기 때문에 초기 단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청빙(請聘)’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부탁하여 부름’이라는 뜻이다.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적임자가 누구인가를 잘 가려서 교회가 부임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해야 하는 절차라는 의미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가 적임자가 아니라 유능한 목회자를 선발하려고 하기 때문에 청빙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는 과오를 범하면서 여러 잡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후임자 청빙의 주체가 누가 될 것인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청빙 주체는 어디까지나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교회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하고 싶다. 후임 청빙에 온 교회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당회는 당회원, 안수집사, 남여전도회, 청년회로부터 추천받은 사람들로 청빙위원회를 조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담임목사와 당회는 모든 청빙권한을 전적으로 청빙위원회에 위임해야 한다. 중간에 보고를 받을지언정 간섭이나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청빙위원회는 먼저 임원조직과 더불어 사업계획서와 청빙 절차와 규정들을 내규로 만들어 그 원칙에 따라 후임 청빙공고를 신문과 교회 게시판과 인터넷에 공고하되 구비 서류를 3차에 걸쳐 제출케 하고 후보를 모집한다.
청빙서류는 3차에 걸쳐 합격 순으로 제출하게 하고 청빙위원회는 내규에 따라 서류를 심사한 후 6인으로 압축해 개별 면접과 더불어 청빙위원들이 직접 교회를 탐방하여 설교를 청취한 후 투표로 3명으로 압축한다.
청빙위원회는 그 결과물을 담임목사에게 보고 하면 담임목사는 서류로 검증할 수 없는 나머지 요소들을 여러 경로를 거쳐서 세밀하게 살피고, 당회에 그 결과를 설명한 후 투표로 1명을 최종 후보로 결정한다. 이후 전교인들 앞에 설교하게 하고 찬반 투표로 최종 확정해 공고한다. 이는 사실상 전교인이 참여해 결정하는 청빙절차라고 생각한다.
▲두 차례 쉽지 않은 투병을 하셨다. 투병 이후 인생관 혹은 목회관에 전환이 있었나.
=투병 이전에는 건강 체질이라 자부할 만큼 누구보다 건강이 양호했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정도였다. 목회 자체가 열심히 하려고 들면 아무리 많은 시간과 체력을 투자해도 모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2009년 12월 정기건강검진에서 신장에 암세포가 발생한 것을 알게 되었다. 정밀검사 결과 암이 초기상태로 전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항암치료는 필요가 없었지만 예방적 차원에서 암의 크기와 상관없이 좌측 신장을 적출하는 대수술을 2010년 1월 19일에 받았다. 약 6개월의 요양기간을 거쳐 복귀를 하고, 5년 동안 지속적인 추적조사를 통해서 완치되었다는 판정을 받고 기뻐하며 감사했다.
건강이 매우 호전이 되어 암수술 이전의 목회일정을 그대로 소화하면서 1년이 지나서 감사한 마음으로 칠순잔치까지 했다. 이후 검진을 하는 과정에서 2016년 5월에 좌측 폐 상부에 암세포 두 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도 불과 완치 판정 1년 만에 가장 치사율이 높다는 폐암 판정을 받았을 때 매우 난감했다.
암이 재발되는 경우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신장암이 폐로 전이된 경우와 또 하나는 신종암이 발생한 경우다. 그 중에 불리한 것은 전자라는데 감사하게도 폐암은 전이가 아니었다. 암이 발생한 폐부분만 절제하여 적출하는 대수술을 2017년 7월 18일에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마쳤다. 오늘까지 지내오면서 3개월마다 추적검사를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특이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건강이 호전되어 이제는 수술 전과 같은 목회일정을 감당하고 있다.
두 번의 수술로 ‘나’라는 존재가 몸도 마음도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더욱 실감하게 됐다. 무엇을 잘하겠다는 계획이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겸손한 마음으로 남은 목회를 마무리하기로 결심하면서 마음에 평안을 찾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 번이나 암을 허락하신 섭리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건강을 자부하며 평소 무관심하게 생각했던 죽음이 항상 내 곁에서 동행할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죽음 이후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할 정결한 신부가 되도록 죄악의 찌꺼기를 회개시키고 내 영혼을 아름다운 신부로 화장시키는 미용사(코디)라는 생각에 두 번이나 암수술 한 것에 대해서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목사’와 ‘목회’, 각각을 정의한다면.
=‘인간이란?’, ‘인생이란?’ 질문이 가장 난해한 것처럼, 평생 목회를 하였지 ‘목사란?’, ‘목회란?’ 질문에 명료하게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목사나 목회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목사는 ‘예수님 때문에 사는 사람’이요, 목회는 ‘예수님만을 높이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것을 잊으면 목사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고, 아무리 성공적인 목회자라 할지라도 결말이 뻔하게 된다.
▲사회 환경과 가치관이 급변하면서, 교회 고유의 가치와 구조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체감적으로 교회 환경이 과거와 비교할 때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나.
=종교개혁 이전에는 하나님 영광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본주의 영향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까지 미쳤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편승한 문예부흥으로 인해 인간이 신을 대신하는 인본주의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대사조의 영향이 전통적인 사고나 가치관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접어들면서 진리와 규범을 고수하려는 전통교회가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계속해서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성경 중심이라는 전통적인 진리를 지켜나가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작금의 현실은 인본주의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중심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면서 사람들은 물질만능과 개인주의에 더욱 깊이 몰입되고 있다. 이 같은 시대적인 사조 속에서 교회도 변화를 외면하고 여전히 전통을 고수해야 하느냐, 아니면 변화를 인정하고 카멜레온처럼 변해야 하느냐, 아니면 교회가 변화의 주체가 되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
성경은 분명히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변화에 교회가 민감하게 빨리 변화를 시도하는 교회를 앞서가는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변화가 아닌 변질이다. 그러한 모습들이 현대교회의 강단과 예배 문화에 드러나지만 그것을 오히려 발전이나 부흥이라고 오해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철저한 이기주의시대이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의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성경의 순수한 본질을 지키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양식이 떨어져도 종자를 지켜낼 때 추위와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교회는 종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교계와 교단의 각계각층에서 가이드라인을 잡아주고 따라갈 수 있는 롤 모델이 없어지고 있다. 만인제사장이 아니라 만인세속화가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걱정스럽다.
▲저성장, 교세 및 재정 감소, 리더십 도전, 종교소비주의 등 목회적으로 어려움을 주는 요소들이 고착화되고 있다. 이런 때에 목회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목회를 해야 할까.
=지난날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회자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목회 환경은 마치 봄과 여름이 다 지나고 차가운 겨울을 앞둔 만추의 계절이 온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불경기 중에도 인기상품이 있는 것처럼 어려움 중에도 흔히 잘나가는 소수의 교회는 체감온도가 전혀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을 한국교회의 보편적 상황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럴 때 무엇보다 먼저 지난날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목회 전성기에 한국교회가 무엇을 놓쳤으며, 소홀히 했던 것이 무엇이었나를 알 수 있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과 더불어 다수의 중산층 교인들이 주를 이루고 목회자의 권위까지도 보장되었던 시절에 교회가 소중하게 여겼어야 할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수직적으로 하나님 영광 제일주의의 예배와 선교와 나눔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보다는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성장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소진해 버리지 않았나하는 후회이다. 물론 한국교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올바른 의식을 가진 소수의 목회자들이 시국의 변화와 무관하게 교회의 본질을 끝까지 지키면서 교회 부흥과 성장의 결실을 거두는 곳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경제가 부흥하고 교회가 물량적인 부흥과 성장을 할지라도 그 때문에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져야 할 것을 목회자가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선교와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중세교회가 외형적으로는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인간 제사장이 영광을 받고 성경 보다 형식적인 예전이 예배를 점령해 버림으로 회중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의 단수, 단전이라는 비상조치를 취하신 것은 당연하신 처사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되게, 예배는 예배되게 하는 본질회복에 만전을 기해야할 시점이 오늘의 한국교회라면 좀 불편해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여정에서 목회적 도전도 있었을 것이다. 진솔한 나눔을 부탁드린다.
=목회는 범선을 타고 항해를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범선은 바람을 잘 타면 순풍에 돛단배라는 말처럼 쾌속행진을 할 수 있지만, 만일 역풍을 만나게 되면 현상유지는 고사하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고 뒷걸음쳐야만 한다. 그러나 범선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바람 한 점이 없는 것과 암초를 만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목회를 하면서 겪은 도전은 마치 바람 한 점이 없는 것처럼 교회가 너무 평안하기만 했을 때 목회자가 나태하고 안일해지기 쉽다. 이러한 내부적인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 또 하나는 평소에 관계가 좋았던 사람과 아주 사소한 문제나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과 반목으로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이다. 그럴 때 담임목사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혼자서 안으로 삭여야 한다. 한 평생 거쳐 온 목회현장은 이와 같은 도전들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한 번씩 반복될 때 설령 내가 옳았다고 할지라도 똑같이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견디어 내는 것이 상책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기억에 남아 스트레스나 불면증과 같은 것들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두 차례 암수술을 거치고 은퇴를 앞둔 지금까지 사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여정을 돌이켜 보면 하나도 내 힘으로 이긴 것이 없고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이기고 참고 견디게 하셨으며, 결과적으로 유익이 되게 하셨음을 고백한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고백밖에 할 것이 없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교회가 지켜야할 가치가 있다. 목사님 입장에서 교회가 견지해야할 가치는 무엇일까.
=신구약 66권을 압축하면 십계명의 구조처럼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무엇일까.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즐거워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 예배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예배이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림으로 마감하는 예배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는 예배자가 되는 설교자가 되는 일에 고민을 해왔으나 늘 아쉬울 뿐이다.
교회가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가치는 이웃 사랑 실천이다. 사도 바울은 분열하고 갈등하는 고린도 교회에게 방언과 천사의 말, 예언하는 능력, 산을 옮길 만한 믿음, 자기 몸을 불살라 주는 구제가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원어의 뜻은 무의미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오늘 도시든 농촌이든, 규모가 크든 작든 교회마다 분열과 갈등이 매우 심각한 상태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교회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순교를 불사하면서라도 지켜야 할 것은 복음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의 진정한 부흥과 끝까지 견지해야 할 가치는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수직적으로 하나님만 사랑하고 드러내는 예배와 성도들끼리 먼저 사랑하고 용서하는 아름다운 교통이 이루어지는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오늘의 교회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
▲현실적으로 교회 내부는 물론 세상조차도 교회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교회의 좌소는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 변화는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과거를 벗어버리고 늘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려 한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변화는 오히려 세상의 변화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이미 울타리를 쳐놓으셨다. 세상에서 더 이상의 변화가 필요 없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예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에게로 늘 회귀하는 것만이 교회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세상이 교회에 요구하는 변화는 하나님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교회가 되고 그러한 성도들이 될 때 세상도 교회를 신뢰하고 교회에 나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세상과 너무 똑같아져가고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가 특별히 다른 것이 없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전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교회를 비판하고 교인들을 경멸하기까지 한다.
교회의 진정한 변화는 세상의 변화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닮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추구하는 변화의 모델은 더 이상의 변화가 불필요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변화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목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설교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그 설교를 듣는 성도들도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변화가 아닐까.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한 마디로 교회와 성도들이 십계명대로 살려고 한다면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도 교회 때문에 아름답게 변화될 것이다.
▲그동안 교단을 향한 조언을 많이 하셨다. 교단에 대한 평가, 그리고 교단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하나님께서 지상에 교단이 아니라 오로지 교회만을 세우셨다. 총회는 그 교회들의 연합체로 산하 교회들이 개혁신앙을 잘 지켜나가고 이단이나 비성경적인 외세의 도전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이다. 또한 교회에 발생하는 시시비비 문제를 당회와 노회를 거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최종 치리회로 교회의 거룩성을 지켜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교단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교단 총회의 지도자는 별정직이 아니다. 산하 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인 총회에서 선출된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기구이기 때문에 교단 총회의 결정은 곧 지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여 의논하고 결정하고 집행하고 판단하는 결정을 존중하고 따르고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이 총회의 결정이나 판단에 불복하고 사회법정의 판단을 총회의 결의보다 더 우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비유로 말하면 자해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교회의 권위는 실추되고 사회적으로도 교회가 비하와 폄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회의 힘은 성경 말씀 안에서 사랑과 거룩함이 전제될 때 영향력과 파급력이 있다. 만일 교회와 교인의 숫자나 재정을 앞세운 종교집단이 되어 버리면 그때부터 교회는 세력화되면서 권력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정치적인 집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교단 발전을 위해 제안을 한다면 현재 총회기구가 너무 비대하다. 이렇게 되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단은 정치집단으로 전락하게 되며, 실권을 잡기 위한 대결은 불가피한 일이고, 금권선거와 파벌과 비리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대안으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총회 때마다 상정되는 대회제를 실시하고, 총회는 대회의 지도자들로 구성해 기능상 대외적으로 교단의 대표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최근 소설네트워크(SNS)에서 사진으로 소통을 하고 있다. 사진을 취미로 갖게 된 배경, 그리고 사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진에도 여러 장르가 있다. 사진 촬영 대상에 따라 상업적인 광고나 보도 사진, 스포츠, 풍경, 인물, 동식물, 다큐멘터리 등 장르가 다양하다. 그 가운데 선호하는 사진은 풍경이다. 그 까닭은 풍경이 곧 하나님이 지으시고, 현재도 섭리하시는 자연계시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일본에서 발간되는 사진 전문 월간지를 구독한 적이 있다. 아주 섬세하게 찍은 자연 풍경 사진이 자주 실렸는데 거기에 매료되어 자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성경이라는 특별계시 이전에 하나님이 피조물인 자연이라는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와 사랑과 아름다우심을 드러내시고, 또한 자연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의 영광을 유감없이 실시간으로 드러내고 있다.
자연은 곧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하는 계시의 현장이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아 사진으로 담고 있으며, 그것을 최근부터 SNS를 통해서 다른 사람과 나누는 소통과 일종의 전도의 장을 삼고 있다. 현재 내가 느낀 메시지를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과 성도들 1400여명 정도가 연결되어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사진 실력을 돋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작게나마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서 새벽기도를 마친 후 그 날 성경 묵상과 더불어 사진을 SNS에 자주 올리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목사가 귀중한 시간을 SNS에 허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사진만이 아니라 말씀을 나누는 장이다. 주일 설교도 때때로 올리고 있지만 사진보다 방문객이 적다.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수많은 시간들이 흘러갔지만 남는 것은 설교와 사진뿐이었다. 설교는 특별계시를 가지고 메시지를 만드는 작업이라면, 사진은 자연계시로 메시지를 준비하는 것이기에, 설교 작업이나 사진 작업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였다.
▲그동안 사진전도 열었었는데, 사진과 관련해 은퇴 후에 계획하고 있는 것은.
=풍경 사진 작업에는 많은 체력과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이 덜 가본 곳을 찾아가서 사진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은퇴 후 최우선이 건강 회복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꾸준히 운동을 해서 체력을 회복한 다음,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미지의 자연을 찾아가서 사진에 담으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결재가 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과 앞으로 찍을 사진을 동영상으로 편집할 예정이다. 찬양을 배경음악으로 성경을 삽입하여 성도들이 가보자 못한 자연 풍경을 짬짬이 영상으로 보여줌으로 힐링이 되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우선 샘플로 파타고니아와 발칸 풍경을 각각 7~8분 정도의 길이로 편집을 해 보았다.
▲40년 여정의 목회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목회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신학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별로 지지해 주지 않았다. 목회자의 길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이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또 하나는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늘 받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학하기로 결심하였고 오늘까지 목회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크게 힘든 적이 없었다. 물론 다섯 식구가 어렵게 보내야만 했던 신학생 시절이나 개척교회 시절도 있었으나 결코 어렵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다. 몇몇 교회를 거쳐 오면서 당회 운영이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정도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 목회자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능히 견디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는 은혜로운 설교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설교 준비는 과거 헐떡거리면서 넘던 사당동 신학교 가는 언덕길보다 더 힘든 고갯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반대로 그간의 목회 여정에서 가장 보람된 것이 있으시다면.
=목회를 하면서도 늘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은 선교였다. 언젠가 중국교회가 세계 선교의 교두보를 넘어 세계 선교를 책임지게 될 선교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교회 안에 중국교회를 세우고, 더 나아가서 중국의 젊은이들을 목회자와 선교사로 만들기 위해 세계선교신학원이라는 중국인 신학교를 세워 졸업생들을 배출해 중국으로 보내는 일이 보람되다.
지금은 대학부 과정과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을 초청해 목회학석사 과정을 개설했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와 결연해 선교학석사 과정을 이수하게 해 신학과 선교를 겸비한 중국의 차세대 선교지도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또 하나 보람된 일이 있다. 80년도에 수원제일교회 부목사 시절 카이노스라는 대학부를 지도했는데, 그때 졸업생들이 지금은 목사와 사모, 대학교 교수, 장로들이 되어 지금까지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그 모임에 나를 초청해 함께 나눔의 시간을 갖고 있다.
사람을 키우고, 또 복음을 선교하는 일이고, 그 일에 내가 쓰임을 받고 있다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수원제일교회 성도들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지상의 교회가 극복해야 할 몇 차례의 위기가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고비는 리더십이 교체되는 일이다. 이는 교회만이 아니라 목사 자신도 잘 극복해야 하는 기간이다. 정년이 임박해 오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잘 준비하도록 도와주셔서 아주 은혜롭게 후임 목사님을 결정한 일에 대해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일들을 사람들을 통해서 하시는 가운데 수원제일교회 당회를 통해서 은혜롭게 진행되게 하시고, 특별히 1년 이상의 긴 기간 동안 청빙위원회의 인내와 수고와 더불어 그 결과에 대해서 전교인들이 동의하고 협조해 매우 순조롭게 후임을 결정하게 하셨다.
수원제일교회는 신학을 시작하면서 발을 디딘 후 부목사와 마지막 담임목사로 불러 주신 교회요, 나의 젊음을 드린 교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교회가 안정을 되찾고 전화위복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온 교인들이 저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그 사랑에 힘입고 행복한 목회를 해온 부러울 것이 없는 목사였다.
이제 퇴임을 앞두고 성도들에게 하고픈 말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했습니다’라는 인사와 더불어, ‘성장하며 선교하는 교회’라는 영구표어에 걸맞은 교회가 되게 하시려고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오랫동안 훈련하시고 때가 되어 후임목사님으로 보내주신 김근영 목사님을 더욱 사랑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선한 목자를 따른 양떼처럼 잘 모이고, 잘 듣고, 잘 따르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마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