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나의 서울고 동창들에게 - 정대섭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니 열심히 공부한 기억보다는 여행을 다녔던 여름방학들이 먼저 생각나는군.
주로 금융기관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한 나는, 고등학교 진학 후 의사가 되겠다며 생물반에 들어갔었지. 그런데 생물공부보다는 지리산, 한라산 등정을 했던 여름방학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머릿속에 생생하네.
또 고1 여름 방학 때는 여럿이 어울려 인천까지 자전거 하이킹도 했었지. 그때 효경( 서울예전 교수)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었던 일제 야마하 자전거를 탔었는데, 그게 탐이 났던 나는 돌아오는 길에 몰래 내 자전거와 바꿔 타고 오느라 호들갑을 떨어 꽤나 고생을 했었지.
방과후면 핸드볼 반 친구였던 김명수, 노기석 등과 어울려 운동장에서 땀범벅이 되도록 뛰고, 수돗가 물을 뿌리고 마시며 땀을 식혔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
아직도 내 마음은 그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네만, 벌써 고등학교 졸업 40주년이라니. 게다가 벌써들 나이 육순이 된 초로의 동창들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아니 느낄 수 없네. 그래도 이렇게 즐거이 떠올릴 학창시절이 있다는 건 행운 아니겠는가?
난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하네. 전국의 수재들만 모였던 서울중/고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 훌륭한 서울맨들과 우정을 나눴기에 나의 학창시절이 더욱 빛나게 기억되는 것 아니겠는가?
특히 서울중학교에서 서울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기쁨을 누렸던 나에겐 서울중/고에서의 6년간이 모두 소중하다네. 바로 어제처럼, 한국일보사 앞 게시판으로 달려가고 있는 16살 까까머리 소년, 정대섭이 눈앞에 선하네. 그때는 숨이 턱에 차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서울중 합격자 명단 위에 뚜렷이 적힌 내 이름을 보며 웃음이 터져 나왔었지.
어린이 잡지 새벗 뒷표지에 실렸던 합격자 명예사진이나, 어디선가 날아온 축하 전보는 서울중 합격생이 아니면 누리지 못할 기쁨이었을게야.
그것이 서울이란 이름의 학교와 맺은 인연의 시작이었지.
중학교 때는 마냥 좋아 뛰어다니고, 그러다 호랑이 선생님께 호되게 야단맞고, 그래도 돌아서면 싱글벙글이던 철부지 시절이었지. 그러나 고등학생이란 신분은, 단순한 소년의 마음을 꽤나 복잡하게 만들었었지. 별 문제 없이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대학 진학과, 미래의 진로에 대한 불안은 서울고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새벽 강가의 물안개처럼 마음 저변에서 나를 괴롭혔다네. 그래도 그 괴로움은 잊고도 남을 멋진 친구들, 그 고민을 함께 헤쳐나갔던 믿음직한 친구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많은 어려움을 함께 나눈 고마운 친구들을 바로 '서울고등학교에서 만났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네.
그래서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말마디를 보내고 싶어, 이번 기념문집 원고를 부족한대로나마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고1때는 송구선수를 했는데, 당시 서울고 송구부는 학원스포츠 본연의 순수한 아마추어여서, 준프로에 가깝게 스카우트와 재정적 지원이 큰 학교에는 못당했지만 준우승까지 차지했었다. 우리보다 몇년 선배들 시대에는 송구부가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그 전통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내가 고1때는 11인제 송구가 7인제 핸드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11인제 송구는 축구장과 축구 골대를 사용했으므로 아래 운동장에서 연습을 마친후 스탠드 버드나무 아래의 약수터에서 땀을 씻던 추억이 새롭다. 7인제 핸드볼은 잘 알다시피 실내경기였고, 서울고에는 7인제 핸드볼을 할만한 전용 체육관이 없어서 송구의 전통을 핸드볼로 이어가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기야 요즘에는 농구, 야구, 축구 등 거의 모든 학원스포츠가 엘리트 스포츠로 준프로화되어서 선수 스카우트에 막대한 돈을 퍼붓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공립학교인 서울고의 운동부가 빛나는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드물다.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순수한 아마추어 학원스포츠를 지향하는 것이 체육진흥이나 국가 경쟁력 제고라는 관점에서 보면 더 바람직할 것이지만, 세태가 그렇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고등학교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함께 활동한 시간이 많지 않아 잘 몰랐던 -물론 이름은 가끔 들어 알고 있었지만-친구들도 동기동창생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언제고 찾아보고 어려운 부탁도 하고 하니 이 아니 고맙겠는가.
내가 그동안 친구들에게 준 것 없이 도움을 받기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음에 가득하다네. 사실 내가 직장을 그만 두었던 때, 더 나은 조건의 직장으로 이직을 내정해 둔 상태였지. 그러나 뜻하지 않은 상황 변화로 인해 예정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친구들을 편치 않게 했던 걸세.
더러는 내 마음과 달리 오해했을 친구도,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친구도 있을지 모르겠네. 모두에게 이해와 관용을 부탁하겠네. 모두가 고마운 동창들이지.
특히 무슨 일이든 싫은 기색 없이 한결같이 도와주는 K, 그리고 S. 또 자신도 어려우면서 남을 배려해 주는 C. 말없이 도움을 준 또 많은 친구들, 중학교 때부터 몰려다니던 친구들, 서영회 친구들, 그 밖의 많은 친구들...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네. 늘 이런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을 방도를 생각해 봤으나, 그마저 생각처럼 쉽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다네.
동창들 간에 깊은 신뢰와 우정으로 서로를 변함 없이 챙기고 도와주려는 친구가 있음을, 그 고마운 도움을 받은 동창이 존재함을, 우리의 문집에 꼭 남기고 싶었네.
그래서 단단한 우리 동창들의 힘과 끈끈한 우정을 널리 알리고 싶었네. 나의 서울고 동창들이여, 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이 글을 부담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으리라 믿네. 아직은 이니셜로만 그 이름을 밝힌 것을 이해해 주고, 다 거론치 못했다고 섭섭해하지는 말게나.
우리 17기 동기들 모두 파이팅을 외치며, 더욱 돈독한 우정으로 건강한 앞날을 함께 하세. 서울맨 화이팅!
*댓글은 총무전용카톡방에 하지마시고 아래 댓글난에 부탁합니다.
위 글중 이니셜 K,S,C 를 끈질기게 알아내 나중에 댓글난에 공표할 예정입니다
첫댓글 KSC 김국호 서갑수 추호경
장대십 멋진 인생 잘 읽었네. 고마우이.
대섭이 글 잘 읽었네. 우정을 간직하게 해 주어서 고맙네.
K.S.C. => 혹시나?하고 기대했었는데, 역시나로 결론지었네.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세 분.....
진짜로 훌륭하신 VVVIP 친구들이십니다.
예수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송구반에서... 글을 읽다보니...갑자기 공놀이 한 번 하고 싶구나... 아니면 공놀이 구경이라도 해보자꾸나...내 전화할게... 生居鎭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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