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년 전쯤 회사 출장으로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호주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를 탔었습니다. 호주 항공사인 콴타스항공에 탑승했습니다. 비행기 안에는 호주인과 필리핀인이 대부분이었고 한국인들도 여러명 있었습니다. 7시간정도 비행기를 탄 뒤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여느 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입국심사를 받고 세관검사를 받는 자리에 섰습니다. 갑자기 어떤 직원이 나서더니 필리핀인들과 한국인들은 다른 줄로 서라는 것입니다. 원래 그러는 것이구나 생각하고 그들이 지정해 준 줄에 섰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우리 줄은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답답해서 영문을 물었습니다.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짐속에 농산물이나 축산물이 있는지를 엄격하게 조사하기 위해서랍니다. 저는 농산물 축산물 이런 것 아무 것도 없다면서 일정때문에 그러니 조속한 검사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두시간정도 기다린 끝에 짐 검사가 시작됐습니다. 뭔가 새로운 기계에 짐을 올려 놓게 됐습니다. 대부분 별다른 지적 없이 통과됐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새로운 기계가 도입돼 그 테스트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자국민들에게는 불편할까봐 하지 않고 타국 특히 그들이 조금 우습게 보이는 필리핀 사람을 포함해 동양인들에게 실시한 것이랍니다. 그런 곳이 바로 호주입니다. 짐 검사 까다롭게 하기로 유명한 곳이지요.특히 외국인 그 가운데 황인종에 대해서는요. 지금은 어쩐지 모르지만. 그만큼 자국의 농산물이나 동물들의 보호에 안간힘을 쓰는 나라가 바로 호주입니다. 독특한 식물과 캥거루나 코알라 처럼 희귀한 동물들이 많이 서식을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남태평양에 덩그러니 위치해 있어 자칫 다른 지역에서 이상한 식물이나 동물이 유입될 경우 상당한 문제가 될 수 있기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런 호주가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연 현상에 의해 그렇습니다. 호주는 지금 불타고 있습니다.그것도 벌써 5개월째입니다.
호주 남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다섯 달째 지속된 산불로 2020년 1월 8일 현재 835만㏊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수백 개의 산불이 불바다를 이루고, 화염 토네이도까지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산불 연기로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이웃 뉴질랜드의 빙하는 재가 덮여 갈색이 됐습니다.
호주 한쪽에서 쉴새없이 불길이 치솟고 있으니 호주 전체가 거대한 찜통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드니 서부 팬리스 기온이 역대 최고인 섭씨 48.9도를 기록하는 등 호주 대부분 지역이 절절 끓고 돌풍까지 불면서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작년(2019년) 9월 2일 골드코스트 인근 사라바에서 시작된 산불이 빠르게 번졌고, 10월 초부터 이번 산불 사태가 본격화됐습니다. 최근 NSW(뉴사우스웨일스 New South Wales)주와 빅토리아주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산불 피해 면적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각 언론사의 취재 결과 835만 ㏊가 잿더미로 변한 것으로 비공식 집계되고 있습니다.
| 한반도 가운데 남한의 면적은 100,364㎢ 이것을 ha로 환산하면 9,943,000ha. 이것을 호주 산불 피해지역인 8,350,000ha와 비교하면 거의 남한 면적의 84%가 산불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면적이 6만ha인 것을 감안하면 서울의 139배 면적이 소실됐다 그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실로 엄청난 피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피해규모가 워낙 넓어서 우주에서도 보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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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사진으로 본 호주의 산불 모습입니다. 호주에 붉은 색이 선명하게 보입니다.위성사진으로 보니 산불의 규모를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산불로 인해 피해도 속속 집계되고 있습니다. 산불 지역 주민 10만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고, 사망자는 최소 25명, 실종자도 20명이 넘습니다. 주택 수천 채가 불에 탔습니다.
동물들의 피해는 더욱 큽니다. 캥거루와 코알라 등 야생동물 5억 마리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호주에는 쿼카, 웜뱃, 에뮤, 펭귄 등 다양한 동물이 있지만, 코알라와 캥거루는 대표적인 호주 상징물입니다. 정부 관리들은 약 30%의 코알라가 죽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코알라가 멸종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목이 탄 코알라가 긴급하게 물을 마시고 있는 절박한 장면이 지금 호주 동물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국의 특이한 동물들을 보호하려고 호주 당국이 안간힘을 썼지만 자연재해로 인해 허무하게 그들의 노력이 무너져 버리는 상황입니다.
이번 산불은 호주 관광 산업에도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주호주 미국 대사관은 자국 여행객에게 호주 남동부 해안을 벗어나라고 대피령을 내렸고, 각국 관광객들이 호주에서 발을 돌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대재난이 일어나고 있는데 관광갈 마음이 나지 않겠지요. 도우러 가지 못할 망정 관광 이것 말도 안됩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대형 산불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폭염과 가뭄, 돌풍이 주 요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본래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대륙 중 하나로 연평균 강우량이 600㎜ 미만입니다. 남반구이기 때문에 9∼11월이 봄이고, 12월∼2월이 여름인데, 작년 9월 초 봄부터 기온이 30도가 넘는 등 이상고온 현상을 보였습니다.
폭염에 예년보다 심한 가뭄이 이어지니 나무가 물을 빨아들여 땅이 더 메마르게 됩니다. 여기에 마른벼락이 칠 경우 자연발화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시속 35∼45㎞의 돌풍까지 부는 등 악재들이 겹치면서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삽시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이상고온의 원인으로는 인도양 동·서안 해수면 온도에 현격하게 오르거나 내려가면서 발생하는 '다이폴(쌍극)' 현상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인도양 동·서안 온도 차가 60년 만에 가장 뚜렷해 인도양 서쪽인 동아프리카엔 평균보다 많은 비가 내리고, 동쪽 연안의 호주는 폭염과 가뭄이 심해졌다고 기상학자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환경운동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다이폴 현상 심화를 부추겼다며 석탄 산업 축소를 요구했지만,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무모하다',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등 이유로 일축했습니다. 호주는 전 세계 석탄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석탄 산업이 바로 이번 엄청난 재해의 원인인 셈입니다. 석탄 산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던 모리슨 총리는 산불이 극성을 부리던 지난 연말 하와이로 휴가를 다녀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호주 정부는 산불이 너무 광범위해 사람의 힘으로 진화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비가 내리기 만을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불 진화보다는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는 예비군 최대 3천명에게 동원령을 내려 화마와 싸우고 있는 의용 소방대를 돕도록 배치했습니다. 불길을 피해 해안가로 달아난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함정, 항공기, 헬기 등 군 자산을 최대한 동원하고, 다른 나라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콧대 높았던 호주이지만 자연의 대공습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형국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자연 재해가 호주에 국한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물바다가 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모습입니다. 지난해 11월 53년만의 대홍수를 겪은 이탈리아의 수상 도시 베네치아는 엄청난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베네치아 주변 수위가 160cm에 달해 베네치아의 70% 안팎이 침수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산마르코 광장은 폐쇄됐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이 도시의 문화재들 보호에도 비상이 걸렸고 홍수로 침수 피해를 입은 교회만도 50곳에 이른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베네치아의 홍수는 기후변화때문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는 지구촌 곳곳에 엄청난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아니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은 지구가 참다가 참다가 이제 대역습에 나섰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입니다. 이리 깎이고 저리 패이고 원 모습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 지구가 이제 자구책으로 몸털기에 나선 것입니다. 동물들은 몸에 뭔가 많이 달라 붙어 힘들 때 몸털기를 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모양새이지요. 지구가 한번 몸을 털면 곳곳에서 대규모의 지진과 대형 산불이 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구의 자정노력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기후 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는 너무도 심각한 현실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바로 우리나라도 지금 그런 위험스런 신호앞에 놓여 있습니다.
한겨울 제주에 '초여름 더위'가 찾아오고 서울 등 내륙에는 '겨울폭우'가 내리는 등 이상기온 현상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어제 오후 1시25분쯤 제주지점(북부)에서는 23.6도의 일 최고기온이 기록됐습니다. 초여름 기온입니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일 뿐 아니라 1월 기록으로는 1923년 5월1일 제주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97년 만에 기록된 역대 최고치라고 합니다. 또한 올 겨울 내내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가 거의 없을 정도로 온화한 기온을 기록해 각 지역 '겨울축제'도 모두 비상인 상황입니다. 이례적으로 '따뜻한 겨울'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우리나라 남쪽 바다의 해수면 온도가 무려 1도나 올랐다는 보고가 나와 주목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트럼프도 시진핑도 아닌 스웨덴의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였습니다. 툰베리의 등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의 위기의식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툰베리가 2018년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라며 강하게 기성세대들을 비판했습니다. 기후 위기의 피해자인 미래 세대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맞는 말이자 가슴이 섬뜩한 표현입니다.
영국 기상청에서 기후를 연구하는 리처드 베츠 교수는 ‘지구온난화’라는 온화한 표현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지구 가열’로 부를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 지구의 평균온도와 비교해 우리가 허용할 수 있는 상승치로 과학자들이 제시한 임계온도는 섭씨 1.5도, 여기서 지구가 더 뜨거워지면 인류를 비롯한 지구 생태계 전체가 생존이 위험할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지구 생태계 전체의 생존이 걸린 너무나도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구촌은 지금 자신들 나라의 이익만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2020년 새해 벽두부터 미국과 이란은 전면전을 부르짖으며 전쟁준비에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구 환경파괴에 가장 유력한 가해자이지만 파리 기후협약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탈퇴해 버렸습니다. 지구촌 공장인 중국도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툰베리가 트럼프를 향해 눈 레이저를 쏘는 것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구 생태계의 시계는 끝을 향해 지금도 계속 초침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2020년 1월 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