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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문학 기획특집 (2019, 29호) 마경덕 시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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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2020. 1. 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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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문학 기획특집 (2019, 29호)
마경덕 시인을 만나다
마경덕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신발論』『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
제2회 북한강문학상 대상 수상
현재 롯데, AK, 강남문화원 시 창작 강사
신발論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물의 입
돌멩이를 던지는 순간
둥근 입 하나 떠올랐다
파문으로 드러난 물의 입,
잔잔한 호수에 무엇이든 통째로 삼키는 거대한 식도食道가 있다
물밑에 숨은 캄캄한 물의 위장
찰나에 수면이 닫히고
가라앉은 것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물가에서 몸부림치던 울음을 지우고 태연한 호수
계곡이며 개울을 핥으며 달리다가
폭포에서 찢어진 입술을 흔적 없이 봉합하고
물은 이곳에서 표정을 완성했다
물속에 감춰진 투명한 찰과상들, 알고 보면 물은 근육질이다
무조건 주변을 끌어안는
물의 체질
그 이중성으로 부들과 갈대가 번식하고 몇 사람은 사라졌다
물의 얼굴이 햇살에 반짝인다
가끔 허우적거림으로 깊이를 일러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잔잔한 물의 표정을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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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겨울비가 다녀갔다. 은행잎이 모퉁이 정류장으로 몰려들었다. 모카커피가 간절한 시간이다. 누군가는 길을 잃고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2019년 11월 15일 마경덕 시인과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시인을 인터뷰한다는 시간은 많은 설렘을 주지만 두려움이 더 앞선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혹시나 시인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마경덕 시인은 인터뷰한 자료가 많지 않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신춘문예에 당선했다. 그녀의 시는 난해하지 않지만 신선함을 느낀다. 인터뷰장소는 수원애경백화점 6층 문화센터로 잡았다. 하루에 두 번 강의를 하신다고 한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편집위원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살짝 시 창작 강의실 유리창 밖에서 도강을 했다. 꽤 많은 수강생들이 진지하게 강의를 듣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였다. 강의가 끝나고 나오는 시인의 눈빛은 강렬했고, 가까이서서 본 체구는 작지만 당당한 모습이었다. 시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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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안녕하세요 선생님.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동네책방 누군가의 이어폰에서 브래드-if 들으며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경덕 네. 선생님들 반갑습니다. 화성문학 시인초대석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날씨가 추운데 오시느라 수고 많았어요.
김효선 아닙니다. 저희가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는 시간이 돼서 더 영광입니다. 자 그럼 이제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웃음)
이태영 지난 팔월 화성제부도바다시인학교 때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선생님의 강의 다시 듣고 싶습니다. 화성제부도바다시인학교에서의 소감은 어떠셨나요? 그리고, 다른 글 쓰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들려주세요.
마경덕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또 가보고 싶군요. 화성제부도바다시인학교는 바다와 시를 만나는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시를 쓰는 동시대의 시인들과 함께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1박2일 동안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시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신 여러분을 보며 오히려 힘을 얻었습니다. 시인의 에너지는 역시 詩에서 나오나 봅니다. 함께 하지 못한 분들은 다음 기회에 참여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으니까요.
김효선 선생님 시집『신발論』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물이 끓는 동안」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저도 찻물이 끓는 동안을 참 좋아합니다. 선생님께서 이 시를 쓰신 시절의 이야 기 어떤 특별한 인연이 숨어 있을까 생각했어요.
마경덕『신발論』은 시는 잘 모르면서도 시에 대한 열정은 차고 넘쳤던 애송이 시절에 쓴 시집입니다. 그래서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요. 찻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제게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물이 끓어오르듯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눈앞이 아득한 적도 있었지요. 지독한 가난과 그 가난으로 인한 결별의 쓰라린 상처이지요. 이 모두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 시를 읽으면 아, 이럴 때도 있었구나하고 웃고 말지요. 이런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내 시의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유일선 선생님은 2003년 세계일보에서「신발론」으로 당선되셨을 때 적지 않은 나이였다고 들었습니다. ‘시’를 언제부터 쓰겠다고 생각하셨고, 본격적으로 시작에 들어간 지 얼마 만에 등단의 관문을 넘어섰는지 궁금하고,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절망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마경덕 2003년 당시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대부분 이삼십 대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해 시 부문 당선자 중에서 제가 가장 나이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초등학생 막내딸이 엄마가 잘 할 수 있는 글을 써보라고 권해서 아이와 약속을 했지요. 이틀 후 동대문문화원에서 주최한 주부백일장에 도전했는데 마흔 중반에 처음 쓴 시가 그만 장원을 했습니다. 백일장이 계기가 되어 시를 공부한지 한 달 만에 전국백일장에서 또 큰 상을 타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시에 재미를 붙여 한 삼년 시에 미쳐 살았습니다. 신춘에 딱 한 번 도전했는데 당선소식이 왔을 때 응모한 사실조차 잊고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느냐고 되물었지요. 첨엔 모 문예지로 등단을 했는데 신춘소식을 듣고 그쪽에서 저를 제명해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저에겐 상처가 되었지만 시 한 편이 주는 기쁨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남이 쓴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신춘문예당선시집을 읽고 또 읽으며 시에 대한 신선한 감각을 익혔습니다. 시 쓰는 일이 재미있어서 낙심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시를 쓰다가 시를 버리는 분도 많은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심은 만큼 거둘 때가 오리라고 믿어요.
이태영 「오동나무 의 계산법」인상 깊고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 중에 ‘마지막 집’을 만든다는 말에 조금은 슬프고 쓸쓸한 생각도 듭니다. 시인으로서 독자들이 시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마경덕「오동나무의 계산법」은 경험에서 태어난 시입니다. 고물상 마당에 서 있는 오동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다가 어느 날 고물상이 떠올라 단숨에 실마리가 풀렸습니다. 오동나무는 해충과 벌레의 피해가 없는 장점이 있지요. 목수인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넷째 딸인 제가 옻칠한 오동나무관을 마련했습니다. 오동나무관은 평생 남의 집만 짓다 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집인 셈입니다. 독자와 시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새롭다는 것은 낯선 형식이 아닌 낯선 생각이겠지요. 누구나 알고 있는 익숙함 속에서 발견한 새로움은 친근감을 줍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것보다는 독자가 잘 아는 것 중에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것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어렵긴 하지만 독자와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김효선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신발론」이 당선되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후 문인 의 길을 걸으면서 외로운 적이 있으셨나요? 선생님은 어느 때가 많이 외로우셨는지요. 원형질은 무엇인지요?
마경덕 2003년에 등단하고서 지금까지 원고청탁은 한 번도 그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문예지의 청탁서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소위 일류라고 지칭하는 출판사나 문예지들이 거대한 문단권력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같은 해에 등단한 시인들의 이름을 유명 출판사나 문예지에서 자주 보게 될 때 부럽기도 하고 외롭다는 걸 느끼지만 남이 가진 것보다는 내가 가진 것을 헤아려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집니다. 작품을 담는 그릇(현상)보다는 작품의 본질이 더 중요하겠지요. 그 외로움의 힘으로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좋은 에너지입니다.
이태영 선생님의「슬픈 저녁」이란 시를 보고 1970년 노동운동하다 이 세상을 떠난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생각납니다. 선생님도 코피 쏟으며 밤샘 작업을 해보신적은 있으신지요.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겹게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슬픈 저녁」은 선생님의 직접 체험담으로 쓰신 글이신지요.
마경덕 네. 그렇습니다. 여고 졸업 후 아버지의 파산으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지요. 동생들이 다섯이나 있었습니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전자회사에 취직을 하고 월급이 더 많은 야근을 자청했습니다. 월급은 생활비만 빼고 전부 집으로 부쳤습니다. 젊음을 반납한 시절이었지요. 코피가 터진 적도 있었습니다. 저 보다 먼저 서울로 온 친구가 일하는 평화시장에 가본 적이 있어요. 옷을 만드는 비좁은 작업장이었어요.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로 먼지가 날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직장은 최신 건물에 환경도 대우도 좋아 일할 만 했지만 그 시절만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돕니다. 지금도 힘들게 야근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슬픈 저녁」은 그분들에게 바치는 시입니다.
이태영 저는 늦은 나이에 글을 접하게 됐는데 독자들이 시를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글을 좋아합니다. 시인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글보다 아무나 쓸 수 없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러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마경덕 시 쓰기는 세상이 모르는 나만의 떨림을 만나는 일입니다. 이렇듯 작은 파문에서 시는 시작됩니다. 시인은 작품 속의 퍼포머(performer)이고 시인이 만든 구현된 장소에서 독자는 이후에 이어질 움직임을 상상하며 문장을 이해한다고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작업을 확장해 가는지에 따라 시의 표정은 달라지겠지요. 故 황현산 평론가는 “나에게 시는 말 저편의 말을 지금 이 시간의 말속으로 끌어당기는 계기이다”라고 했습니다. 말 ‘저편’의 말은, 말 그대로 ‘저편’이기에 현재의 장소로 끌어당기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듯 시 쓰기는 남들이 쓸 수 있는 글을 쓰지 않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독자는 시인이 발견한 생각과 그 장소에 초대되어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의 주관적 체험이 모두의 체험으로 치환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감력이 높아야할 것입니다.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억지로 꾸며서 쓴 글은 감동이 없습니다. 독자는 진실 앞에 마음이 열립니다. 며칠 전 젊어서 혼자된 중년의 제자가 ‘깻잎장아찌’라는 글을 써왔는데 “깻잎장아찌는 밑장을 잡아줄 사람이 없으면 가장 서러운 반찬이다” 이런 시구(詩句)가 있었지요. 순간 한 줄의 시구에서 홀로 청춘을 보낸 여인의 일생을 다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달라붙은 깻잎반찬을 떼어내는 일은 사소한 일이지만 홀로 밥을 먹으며 애달팠을 그 시간 속으로 독자는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김효선 시는 시 너머에 대한 지향과 장르적 속성에 대한 집중이 존재한다고 들었습니다. 동시대에 문학의 멘토가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해 주시면 귀감으로 삼겠습니다.
마경덕 시인은 최소한의 이야기로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보이는 것 뒤편에 잠복한 시를 찾는 일은 “간절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간절함을 전하거나” 견딜 수 없는 간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간절해지는” 작업입니다. 결코 시가 시인의 액세서리가 되어선 안 됩니다. 어느 기자는 “좋은 문장은 절실함과 좌절의 합작품”이라고도 했습니다. 시 쓰기는 삶의 가치를 되찾으려는 진지한 작업이기에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인트로는 문장의 서두와 같습니다. 서두를 보며 우리는 예감하지요.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인지, 아닌지를. 고뇌하지 않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글에서 독자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유일선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란 어떤 존재일까요? 인류가 생기고, 문자를 사용하기 전부터 ‘시’는 인류와 함께였을 것입니다. 벽화의 그림, 고전 문학, 고대신화에서 ‘시’는 인류 문화와 문명의 근원이고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시대를 넘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현대인에게 ‘시’의 가치, 효용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마경덕 얼마 전 시집 해설에서 언급한 말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백범 김구는 “인류가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무력도 경제력도 아닌 인류의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 라고 하였습니다. 문화는 물질을 추구하는 문명과 달리 정신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시인은 밥벌이가 되지 않는 시를 왜 그토록 쓰는 것일까요. 시인이 선택한 실패는 세상이 선택한 성공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시인은 더 많이 절망하기 위해 시를 쓰는 삶의 패잔병들입니다. 그 절망이 세상의 어떤 쾌락보다 힘이 세다고 믿는 스스로 패배하기를 자청한 자들입니다. 까뮈는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있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물질은 넘쳐도 정신이 피폐한 시대, 의식체계를 전환하는 절망에 합류한 시인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까요. 시는 부정을 목표로 하는 부정이 아니라, 없음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없음의 현실을 부정하는 힘, 또는 없음에 대한 있음을 꿈꾸는 건강한 힘이라고 합니다. “문학은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문학을 함으로써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김현 평론가의 말대로 써먹을 수 없으므로, 써먹을 수 없는 힘으로 써먹는 것입니다. “시를 쓰는 힘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이소연 시인은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 이 세계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이 세계에서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꽤 괜찮은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괜찮은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시인은 시시껄렁한 흥정들과 고지서와 새로 사들인 물건들과 성형수술 같은 걱정들뿐인 세상에서 음지에서 흘리는 눈물과 비애가 주는 안도감이 시를 쓰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당당한 자신감이죠. 무엇도 창조하지 못한다는 비애의 힘으로 부재하는 능력과 존재하는 기억이 한 몸뚱이에서 녹슨 뼈처럼 삐걱대는 소리를 심원 너머 아련한 손끝의 감촉들로 받아 적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시인이 고민해야할 것들은 개인의 사소한 걱정보다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우선일 것입니다.
김효선 시집『사물의 입』을 필사하다가「물의 입」 중 호수의 파문 속을 긴장감을 안고 들여다봤습니다. 신경 안 쓰면 사물은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사물의 편에 서서 시를 쓸 수 있을까요.
마경덕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 어려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외로우니 주변의 사물에게 말을 건네며 놀았지요. 사물들이 제 친구였습니다. 예전의 버릇대로 지금도 사물을 살피곤 합니다. 철을 넘기고 방 한 편에 서 있는 선풍기와 눈이 마주쳤는데 빈둥거리는 선풍기가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폭염을 밥처럼 먹으며 야근까지 하던 선풍기가 풀벌레소리가 창을 넘어오자 일거리가 끊겼다고 맥이 탁 풀린 모습입니다. 일을 두어 달 굶은 선풍기를 보고「불편한 휴식」이라는 시가 태어났습니다. 이렇듯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물을 살피며 시를 만납니다. 무엇보다 사물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유일선 선생님은 현재도 왕성하게 시를 가르치고, 시 창작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그리고 더불어 선생님의 책읽기(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물론 시 창작에 도움이 되는 목록도 살짝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경덕 2003년에 등단하고 이듬해 2004년부터 시 창작 지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첫 수업을 앞두고 설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5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에 한눈팔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늘 일정이 빽빽해서 제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은 엄두도 못 냅니다. 그저 타고난 건강에 감사할 뿐이지요. 책상 앞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리 멀지 않은 거리는 걸어 다닙니다. 한 가지 건강비결은 자연이 주는 건강한 식품을 그대로 먹는 것입니다. 맛보다는 건강을 위해 불편해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닙니다. 저에게 독서는 유일한 낙이었지요.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책을 끼고 다닌 것이 글쓰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어릴 때는 주로 동화집과 만화책을 많이 읽었는데 지금도 그 당시 만화가들 이름이 다 기억나요. 그때 상상력을 키웠나봅니다. 커서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때 만화도 다섯 권이나 그렸습니다. 다음 편을 기다려주는 학교 친구들이 애독자였지요. 어머니가 말리지 않았다면 분명 만화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계 명작전집과 한국단편소설전집이 우리 집에 있었는데 중고등학교 때 다 읽었습니다. 시를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시집을 사서 밤낮없이 읽었습니다. 그때 구입한 시집만 해도 수백 권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좋은 시가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시를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의 키가 훌쩍 자라있을 것입니다.
김효선 나타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라고 했습니다. 선생님 시는 난해 하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감각을 보여 주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으로 하여금 시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근원적인 이유가 있으신가요
마경덕 고맙습니다. 타성에 젖지 않으려고 긴장합니다. 난해하지 않고 그렇다고 단순하지도 않은 그런 유니크한 작품을 써보고 싶습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 지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지요. 누구나 읽고 알 수 있는 시를 써보고 싶습니다. 시를 쓰게 하는 힘은 제 안에 고여 있는 수많은 상처들입니다. 글쓰기는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김효선 국내 최초의 사물 시집이라고 들었어요. 글을 쓰는 문인들이 사물의 시를 쓰는데 희망이 되는『사물의 입』 2016년도에 시집을 내셨는데 다음 시집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마경덕 사물시 만으로 된 시집은 국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사물을 좋아하다보니 사물시를 즐겨 쓰게 됩니다. 습작시절에 김기택 시인의 작품 ‘멸치’를 보고 사물을 대상으로 이리 멋진 시를 쓸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 부러움이 사물시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나봅니다. 요즘은 백일장 시제도 대부분 사물이어서 관념시보다는 사물에 대해 써보라고 권하지요. 네 번 째 시집 출간은 내년쯤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김효선 선생님 제부도바다시인학교 때 뵙고 인터뷰 때 뵙습니다. 문학을 향한 가슴앓이는 보이지 않는 길을 떠나는 나그네 같아요. 이번 29호 화성문학지를 일구어 가는 화성문인협회 회원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려요
마경덕 글을 쓰는 일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지금 당장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습니다. 뿌릴 때가 있어 거둘 때가 있는 것이지요. 시가 여러분에게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김효선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한 소중한 말씀, 시간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뵙고 싶습니다.
첫댓글 수도권에 사시는분들이 늘 부러웠습니다
문학센터에 가서 직접 강의를 들을수도 있어서..
근데,
솜다리를 알게 되었죠~
인터넷 줌으로 선생님 수업을 들을수 있다니..
행운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