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정체성 문제, 나는 누구인가
글 / 안광복
지킬 박사와 하이드
지킬 박사는 인품이 뛰어나고 사회적 지위도 높았습니다. 그는 존경받는 계층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상류 사회 문화가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했어요. 점잖은 사람이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는 없는 일, 그는 연구 끝에 '하이드'라는 인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이드는 악하고 사나운, 욕망랑대로 사는 괴물 같은 자였지요. 지킬 박사는 때때로 하이드로 탈비꿈하여 마음껏 나쁜 짓을 하며 쾌락을 누립니다. 그러면서 이 모두는 하이드가 하는 짓이니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합리화
하지요. 스티븐슨의 유명한 소설 「지킬 빅사와 하이드의내용입니다.
저는 이런 지킬 박사의 모습이 익숙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태도로 사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린 사람이 나중에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머 사과하는 광경을 떠올려 보세요. 분노에 차서 믹가던 자가 마음을 추스른 뒤에 "홍분해서 그랬을 뿐 본심은 아니었다"며 번명할 때는 또 어떤가요? 우리
나라 법정에서는 '심신 미약 상태'였다는 범죄자의 변명을 받아들이고 용서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판단은 "나쁜 짓은 하이드가 했을 뿐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지킬 박사의 논리와 뭐가 다를까요? 과연 '내 안의 다른 '나'가 한 짓은 나에게 책임이 없을까요?
처벌할 수 있을까요? 정신 줄을 놓게 만드는 온
갖 유혹거리가 넘쳐 나는 현대 사회에서 이는 매
우 중요한 물음입니다.
예컨대 '광고에 휘둘려 저도 모르게 보험에 계약
했어요. '라는 항의가 법적으로도 받아들여지곤
하잖아요. 보험사는 고객이 차분하고 논리적일
때 보험의 계약 조건을 설명했다는 사실을 증명
해야 합니다. 각종 선전에 잔뜩 몸이단 상태에서
한 계약은 무효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제정신인 나'는 '홍분 상태에 있던 나'
와 다른 존재일까요? 나아가 영혼이 없을 때는 들키지만 않는다면 뭘 해도 상관없
다고 믿는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철학자들의 오랜 숙제인 '자아 정체
성(self-identity)'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민거리인 이유입니다.
지각의 다발과 범주 오류 -자아는 없다
사실 영혼이 없다는 주장은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부터 끊임없이 나왔
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흄에 따르면, 자아는 '지각의 다발
(a bundle of perceptions)'에 지나지 않아요. 무슨 말일까요?
'나'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는 먹는다', '나는 달린다', '나는 눈이 아프
다', '나는 가슴이 먹먹하다' 등 내가 하는 동작과 느끼는 감각, 나의 감정 등은 하나씩 짚어서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나' 자체에 대해 무엇을 느끼거나 말할 수 있
을까요? 전혀 없어요! 내가 하는 것, 느끼는 것 등, 나와 관련된 것들을 '지각(percept)'할 뿐 정작 '나' 자체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느끼거나 말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나는 많은 지각의 덩어리일 뿐, 나 자체는 없다는 뜻이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 20세기 철학자 라일은 내가 있다고 믿는 것은 범주 오류(categorical mistake)'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라일은 누군가에게 대학 캠퍼스를 구경시켜 주는 장면을 예로 들어요. 손님에게 여러 건물을
보여주며, 여기가 도서관이고 저기는 식당이라고 알려 줬다고 해 보세요. 교수들도 소개하고 학생들이 거니는 모습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안내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를 다 본 뒤 그런데 대학은 어디 있습니까? 보여 주세요."라고 부탁한다면 어떨까요?
'대학이라는 낱말은 구체적인 건물, 학생, 교수 등과는 달리 추상적인 말입니다.
당연히 대학 자체는 없지요. 건물과 학생, 교수 등을 합친 모두를 일컫는 말이니까요
'영혼, '자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나를 이루는 여러 요소를 통틀이 일컫는 말일 뿐, 자아 같은 것이 따로 있을 리 없지요.
사실 우리 시대에는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죽음 이후의 세계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합니다. 종교인 빼고는 이런 식으로 상대를
실득하려 했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자아는 없어도
될까요? '나'의 존재를 꼭 입증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요?
1937년, 일본은 중국의 난징을 점령하고 엄청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국제구호기구들이 보고한 시신의 숫자만 20만 구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드도 일본은 난징 대학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일본의 정치가들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일본이 한 잘못을, 왜 지금의 민주 국가인
일본이 반성해야 하냐는 식의 논리를 펴곤 합니다. 과거의 일본과 지금의
일본은
엄연히 다르다는 식입니다. 글쎄요, 설득력이 있나요?
이런 부류의 주장은 소년 범죄를 다루는 법정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곤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 살인을 저질렀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멀쩡하게 잘 사는 여인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는 어려서 판단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매우 약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만약 그가 과거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별로 반성하 지 않고, 당당하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피해자의 유가족은 이를 어떻게 받아
들일까요?
페르소나, 내 인격을 이루는 가면
'페르소나 (persona)'는 고대 그리스 시대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합
니다. 조명도 마이크도 없던 시대였기에,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관객은 배우의 표정
과대사를 잘 따라가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배우들은 특정한 감정과 배역을 나
타내는 가면을 그때 그때 쓰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페르소나지요.
페로소나는 영어의 '사람됨, 인격'을 뜻하는 '퍼스넬리티(personality)'의 어원이
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 페르소나는 한 사람이 하는 여러 역할을 뜻하는 말로 쓰
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학교에서 '학생이라는 페르소나에 맞게 행동합니다. 집에서
는 아들이나 딸의 페르소나를 수행하지요. 친구를 만났을 때는 여러 페르소나를
연출하기도 하고요. 가까운 친구에게는 '거침없고 허물없는 아이'를, 잘 보이고싶
은 이성 친구에게는 '얌전하고 고상하며 착실한 아이라는 페르소나를 연기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갖게 되며, 하루에도 몇 번씩 페르소나를 바꿔 쓰며 살아가요.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이
그 사람의 인품과 분위기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학자에게는 학자다운 풍모가, 바람둥이에게는 은근히 바람기가 느껴지잖아요.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자신이 어떤 페르소나를 주로 쓰고 살아왔는지에 따라 나의 자아가
색깔을 띠게 된다는 의미겠지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지킬 박사는 결국 파멸의 길에 빠져듭니다. 하이드의
일상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지킬 박사는 점점 자주 하이드로 변신하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지킬 박사보다는
하이드가 하루를 더 많이 차지하는 인격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중에는 괴물의 인격이 너무 커져서,지킬 박사가 하이드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지요.
그대는 어떤 자아를 만들고 있습니까?
흄은 자아란 '지각의 더미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감정과 느낌, 동작 등이 나의 지각을 이루는지에 따라 '나'의 모습은 바뀌어 나갑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끊임없이 만들어 가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 자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그대가 보고 느끼고 행동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자아를 아름답고 튼튼하게 가꾼 사람은 나쁜 자극이 쏟아져도 슬기롭게 이겨 냅니다. 달고 짠 음식을 먹고픈 유혹, 거짓말을 해서라도 이익을 챙기고픈 마음 등을 잘 이겨 내지요. 반면에 욕망에 휘둘리며 욕구가 이는 대로 사는 사람은 점점 일그러진 자아를 갖게 되고요.
"무엇을 먹는지를 알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 프랑스의 음식 전문가
브리야사바랭1755-1826의 말입니다. 그대가 먹는 것. 보고 느끼는 것, 행동
하나하나가 쌓여 결국 그대의 인격을 이루겠지요. 그대는 어떤 자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자신의 과거 경력, 현재 사는 모습 등을 중심으로 그대의 '자아 정체성을 설명해 보세요.
그러나 자기를 만들어 가려면 우리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이 과연 자유로운지 그렇지 않은지
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철학 문제입니다.
다음은 김광규의 「나라는 시입니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의 물음에 답을 적어 보세요.
살펴보면
나는 /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 나의 동생의 형이고 /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니의 선생의 제자고 / 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 나의 친구의 친구고 / 나의 적의 적이고
나의 의사의 환자고 / 나의 단골 술집의 손님이고/ 나의 개의 주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중략).
과연 / 아무도 모르고 있는 / 나는 /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