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盧武鉉·63)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23일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6시40분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뒤편 봉화산을 산책하던 중 30m 높이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해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오전 9시30분쯤 운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오후 6시30분쯤 봉하마을로 운구돼 마을회관에 안치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사건 수사본부장을 맡은 이운우 경남지방경찰청장은이날 오후 공식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서거 사실을 확인하고, 사인은 두개골 골절과 늑골 골절 등 다발성 골절이라고 발표했다.
1988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권유로 13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은 같은 해 실시된‘5공 청문회’에서 정연한 논리와 날카로운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1990년 1월 3당 합당 때 김영삼 총재의 권유를 뿌리친 이후 비주류 정치인의 길을 걷다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누르고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고, 여세를 몰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8년 2월 퇴임한 뒤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사저를 짓고 머물러 온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달러의‘포괄적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09년 4월 30일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세번째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후 딸 정연(34)씨가 2007년 9월 박 전 회장의 돈 40만달러를 송금받아 미국 뉴저지주의 아파트를 사는 데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등 가족들과 측근들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면서 정신적 고통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뤄졌으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부터 29일까지 7일장으로 이뤄졌다.
영결식과 안장식은 29일 경남 김해시 소재 진영공설운동장과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에서 각각 거행되엇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전문(全文)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