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반하장
변태현
모든 삼라만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현재 있는 자리나 움직인 자리를 보면 뒷모습이 아름답다. 눈부시게 비추던 태양도 서산에 넘어갈 때는 장엄한 저녁노을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밤하늘에 별님과 달님도 온갖 사연을 모두 가슴에 품은 채 조용히 태양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깨끗하게 그 자리를 내어 준다. 별님들은 가끔 밤하늘을 쳐다보는 이에게 심심할까 바 유선을 길게 그으면서 아름다운 밤하늘을 장식하고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본인의 앉은 자리나 주변을 깨끗이 하라는 부모님의 교육을 받아왔다. 어릴 때는 대소변을 가리면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는다. 그렇게 하다가 이불에 오줌을 싸는 날이면 머리에 키를 쓰고 이웃집에 가서 소금 한 바가지와 부지깽이로 꿀밤을 한 대를 맞고 “오줌싸개 썩 물러가라.” 하시면서 쫒아 내었다. 그 창피함이 지금도 생각이 나면 피식 웃는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부모님의 훈육에는 책상이나 음식 먹은 자리 등 따라다니는 것이 “너의 자리는 늘 깨끗이 하라” 는 말씀의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이젠 아내에게 계승되어 수시로 지적을 받아야 뒤가 깨끗해 진다.
직장 다닐 때 동료직원이 상사의 지시 받아 업무 수행할 때 마다 서류를 제대로 정리 해 놓질 않아 지난 서류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욕먹는다. 그런데도 늘 업무지시를 받을 때 마다 혼이 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길을 가다보면 사람들의 뒷모습이 각양각색이다. 젊은 시절에 서울에서 교육을 받을 때 하숙 할 때다. 저녁을 같이 먹는데 한 청년이 오늘 너무 기분 나쁜 일 있었다고 투덜거렸다. 사연은 출근하고 있는데 어떤 놈이 갑자기 내게 덮쳐 키스를 하면서 “너 뒷모습이 예뻐”하고선 도망가더라는 것이다.
창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통일호를 타고 창가 넘어 주마등처럼 지나간 가로등과 여느 집 창문 너머 새어 나오는 불빛의 온기를 보면서 상념에 잠겨 있었다. 갑자기 방송에서 어린아이가 열이 심한데 누가 해열제를 구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나가는 차장을 불러 상황 설명을 듣고 그 아기의 어머니께 내게 사혈침이 있는데 할 생각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조금 있다가 차장이 와서 그 어머니가 빨리 해 달라고 하드라면서 나를 끌어 당겼다. 그곳에 가보니 아기를 발가벗겨 놓았는데 몸이 불덩이 같았다. 사혈침(瀉血鍼)이 손가락과 발가락 등에 찔러 피를 내고 나니 고무풍선처럼 금방 열이 내려가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아기엄마는 내가 가는 뒷모습에 계속 인사를 하였다.
어느 이런 봄날에 친구 모임에서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전북 무주가 만나는 삼도봉이라는 민주지산(岷周之山, 1,242m)으로 등산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삼도(三道)를 걸친 산이니까 산신제도 올리자하여 돼지머리도 준비하였다. 산이 꾀나 가팔랐다. 정상에 도착하여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 반찬과 돼지머리를 놓고 제문도 읽었다. 점심을 14시경 먹었는데 아직 산기슭에는 잔설이 남아있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평의자에 앉아 있다가 뒤로 넘어지면서 수박 깨어지듯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그 친구 눈을 뒤집어 보니 동태눈 이었다. 한 친구가 인공호흡을 시키고 집사람과 나는 사혈 침으로 손가락과 발가락 등을 피가 나도록 땄다. 조금 있으니 “휴~”하고 숨을 쉬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었던 일처럼 툴툴 털고 일어났다. 119 구조대로 하산시켰다.
재직 중에 대학생 20명과 몽골로 자원봉사를 갔다. 인천에서 밤 비행기로 수도 울란바트라에 도착했다. 출구 수속부터 한국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자기나라에 자원봉사 가는데도 음식물 등에 대한 트집으로 현지 가이드가 공항사무실에 갔어 돈으로 해결하였다. 자원봉사 할 학교는 초‧중‧고 합동으로 운영하였다.
7월 초순인데 낮에는 40도의 열기이고 밤에는 초겨울 날씨다. 물이 너무 차거워 손이 시렸다. 들판이나 산은 전부 민둥산이고 공기가 맑아 먼 곳에 있는 산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밤에는 온 하늘이 별들의 세상으로 연인에게 별을 따 줄 정도로 가까이 보였다.
통합된 학교이다 보니 운동장이 상당히 넓었다.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딩굴고 있었다. 그래서 전교생 전체가 모아 운동장 끝자락에 세워 운동장 건너편 끝까지 걸어가면서 쓰레기 줍기를 하였다. 1시간가량 하고 나니 운동장이 훨씬 깨끗하여 졌다.
어느 날 꼬마여학생이 부모님과 절뚝거리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원인을 알아보니 개에게 물려 치료도 제대로 하지 않은 체였다. 보건소에 가보니 의료품이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에게 승낙을 받고 그 꼬마아이의 다리를 사혈하였다. 아프다고 울먹이더니 검은 피떡을 빼내고 일어서보니 한결 걷는 게 나아져 걸어가는 발걸음의 뒷모습이 아주 좋아보였다.
도반(道伴)들과 티벳에 해외여행을 갔다. 고도가 높아 호흡하는데 많은 불편을 느꼈다. 해발 4천여 미터나 되는 곳에 숙소인 호텔을 정하였다. 한 할머니가 얼굴에도 핏기가 없고, 소화도 되지 않는다고 호소하여 엎드리게 하고선 등뼈를 눌러주고, 지압도 해 드렸다. 금방 혈색도 돌아오고, 여행도 잘 마쳤다. 집에 와서 쉬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갈비뼈에 금이 생겨 입원했다면서 합의보자고 하였다. 날 벼락을 맞았다.
이를 두고 보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인연이 맞질 않으면 큰 봉변을 당 할 수 있다. 우리속담에 “벼르던 애기 눈이 먼다.” 하듯 잘 하려고 벼르던 일이 낭패되기 쉽다는 말이다. 뼈저린 경험을 하였다. “당신은 늘 남에게 잘해줄려다 망신 당 한다.” 면서 연신 핀잔이다. 적반하장이 되어 씁쓰레한 나의 뒷모습이 어색할 뿐이다.(20210331)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