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왕
신라 34대 효성왕과 35대 경덕왕은 32대 효소왕과 33대 성덕왕의 왕위 계승 과정과 너무나 닮았다. 효소왕과 성덕왕은 신문왕의 아들이자 형제다. 효소왕이 즉위 10년 만에 죽자 동생인 성덕왕이 왕위를 계승해 35년간 나라 살림을 돌봤다.
효성왕과 경덕왕 역시 성덕왕의 아들이면서 형제로 효성왕이 5년간의 짧은 기간 왕위에 있다가 물러나고 동생인 경덕왕이 왕위를 계승해 24년간 나라의 살림을 책임졌다.
두 형제 모두 처음에는 귀족들의 세력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성덕왕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데 성공하고, 차츰 왕권 강화를 위한 정책을 펼치려 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경덕왕도 성덕왕과 비슷한 입장이었다.
이러다 보니 효성왕도 효소왕과 같이 특별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동생에게 왕위를 넘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 가야 했다. 삼국유사 효성왕조에 효성왕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성덕왕 당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 기록에 따라 관문성 이야기와 관문성과 관련된 원원사 이야기를 새로 쓰는 삼국유사에서 재구성해 본다.
-삼국유사: 효성왕
개원 10년은 임술년(722)인데 처음으로 모화군에 관문을 지었다. 지금 모화촌은 경주의 동남쪽 경계에 속하고, 일본을 방어하는 요새이다. 둘레가 6천7백92보이고 높이가 5척이다. 일한 사람이 3만9천262명이며, 맡아서 한 이는 원진 각간이다.
개원 21년은 계유년(733)인데 당나라가 북쪽 오랑캐를 치고자 신라에 군대를 청하러 사신 604명이 왔다가 돌아갔다.
-역사: 관산성을 쌓은 722년과 당나라 사신이 다녀간 733년은 성덕왕 때이다. 성덕왕은 702년에 즉위해 737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효성왕은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다. 이복형인 태자 중경의 어머니가 폐위되고, 궁궐을 나가자 성덕왕에 이어 34대 왕으로 737년 즉위해 742년까지 5년간 왕위에 있었다.
효성왕은 김순원의 딸, 어머니의 동생인 이모와 결혼했다. 김순원 세력의 외압에 의한 강제적인 왕비 책봉이었다. 때문에 왕비에 대한 사랑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효성왕이 영종의 딸을 후궁으로 들여 사랑에 빠졌다. 그러자 왕비가 이를 질투해 후궁을 죽였다. 영종이 이를 빌미로 반란을 일으켰다.
효성왕은 외척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미리 동생을 태자에 책봉했다. 효성왕의 동생이 35대 경덕왕이다.
첫댓글 성덕왕의 아들...
큰아들이었다고 전하는 김교각......그의 행보를 다시 더듬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