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8일 천안밀알선교단 예배강론
본문: 창세기 1:1-4, 7-8, 26, 3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제목: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는 무슨 뜻일까요? 쉽게 말해서 창조는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과는 무한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은 이미 존재하는 재료가 있어야만 그것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무런 재료도 없는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기적은 놀랍고 경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는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보시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을 때는 보시기에 좋았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창조되기 전인 1,2절에서 천지를 만드셨을 때와 7-8절에서 궁창을 만드셨을 때는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인 31절에서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해서 좋은 정도가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정리하면 좋은 정도가 3단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단계는 보시기에 좋다는 말이 없는 피조물, 둘째 단계는 보시기에 좋은 피조물, 셋째 단계는 보시기에 심히 좋은 피조물 이렇게 좋은 정도가 삼단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봅시다.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러한 삼단계가 나타났는지 생각해봅시다.
첫째 단계에 있는 천지는 아직 공허하고 혼돈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둘째날에 창조하신 궁창 즉 하늘은 빈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역시 아직 좋다고 표현하기가 마땅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번째 단계에 속하는 빛과 각종 피조물들은 비로소 독특하고 뚜렷한 기능과 역할을 발휘하기 때문에 비로소 보시기에 좋았다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세째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표현한 단계는 최종적으로 사람을 만드신 후의 표현입니다. 즉 사람은 보시기에 가장 좋았다고 표현할 만큼 하나님이 공들여서 만드셨고 심히 기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음의 삼단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주요한 요소가 많을수록 보시기에 좋아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란 바로 없음에서 있음을 만드신 사건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있는 존재로 살아가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녀들은 없음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있음 중심의 사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온통 없음 중심의 사고와 언어로 가득합니다.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대표적입니다. 시각장애인은 시각이 없거나 결여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청각장애인은 청각이 없거나 결여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시청각장애인은 시각과 청각을 둘다 잃어버려서 없게 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어떤 장애인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청각이 있고 후각이 있고 미각이 있고 탁월한 두뇌가 있습니다. 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이고 시청각장애인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없음 중심의 용어인 장애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공들여서 만드신 수많은 요소들을 묵살해 버리는 파괴적인 용어입니다. 이러한 용어를 자꾸 사용하면 그 사람에게는 장애를 빼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사고가 왜곡됩니다.
그래서 저는 없음 중심의 용어를 거부하고 있음 중심의 용어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청각이 밝은 사람이니 들을 청자에 밝을 명자를 써서 청명인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청각장애인은 눈이 밝은 사람이니 눈 안자에다 밝을 명자를 써서 안명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저와 같은 시청각장애인은 없는 것은 두가지이지만 있는 감각은 세가지로 더 많으니 삼관인이라고 명명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없음 중심의 용어를 넘어서 있음 중심의 용어를 다양하게 만들어서 사용하면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이 보다 성경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화되어 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언어를 적극 사용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안 주시는가라는 피해의식보다는 무엇을 주셨는가라는 은혜 의식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이 그만큼 성숙해지고 밝아지게 될 것입니다.
조현병이라는 용어가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을 대체하면서 그분들에 대한 인식이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듯이 다른 장애인들을 지칭하는 용어들도 성경적인 있음 중심의 용어로 바꾸는 것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로운 의미는 새 언어에 담아야 합니다.
세상은 약자들에게 무엇이 없다는 낙인을 계속 찍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수많은 보배들이 가득하다고 선언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이 부여하는 없음 중심의 언어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의 언어에 날마다 귀를 기울이고 그 언어들로 마음을 새롭게 해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남보다 적은 것을 가지고도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사랑하며 은혜를 누릴 수 있는 하늘나라 시민으로 성장해가게 될 것입니다.
새소식
1. 이번주 강론은 지난 19일에 천안밀알선교단에서 전한 내용입니다.
천안밀알선교단은 홍성수목사님과 여러 장애인들이 모여 장애인 선교와 말씀의 실천에 역점을 두고 활동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2. 목사님의 요청에 따라 매달 셋째주마다 천안밀알선교단에서 강론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3. 매달 네째주와 다섯째주는 제가 양으로서 돌봄을 받고 가르침을 받고 케어받아서 성장하는 주간으로 정했습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모든 날들이 돌봄을 받는 날들입니다. 4주와 5주는 그렇게 받은 은혜와 사랑을 되새김질하고 그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눔으로 더욱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합니다.
나눔의 주간으로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좋은 책과 산책과 깊은 묵상 등을 통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흡입하는 시간을 누리고자 합니다.
4. 5월에 가장 인상에 남은, 돌봄 받은 것들을 적어보겠습니다.
1) 5월 1일에는 저의 가족들이 예배에 참석을 해서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원래는 아내가 몸이 약해서 가족들이 식사를 사주겠다고 했는데 아내가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자처했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는 시댁식구들을 맞이하기 위해 며칠을 걸쳐 집안을 치우고 정리하고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장을 봐와서 요리를 준비하는 등 분주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식사할 때 작은형이 옆에서 식사를 거들어주었고 식후에는 조카 아이들과 키재기를 하는 등 모처럼 훈훈한 가족애를 맛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2) 두 차례의 아카시아꽃 향연을 즐겼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산에 아카시아가 한창이어서 향기가 형언할 수 없이 황홀했습니다.
하루는 오후에 사회봉사하는 학생과 저희 내외가 다녀왔습니다.
이틀 뒤에는 활동지원사샘과 함께 김밥과 과일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아카시아향의 끝없는 신비가 가슴 깊이 각인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3) 장동희성도님과의 나들이
지난주에 소개해드렸던 장성도님과의 나들이가 저를 더한층 성장하게 해주었습니다. 송악에 있는 저수지 부근의 힐링숲을 돌아보았고 오는 길에 도고에서 세계꽃식물원을 들려 온갖 식물들을 만나보았고 올 때는 몇가지 화분을 사와서 친구로 삼았습니다.
요즘은 그 친구들과 이따금씩 소통하는 낙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첫댓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가슴에 와 닿는 글입니다.
범죄 이전의 삶으로 회귀와 새로운 것에 대한 새 출발을 제시하는것 같아서 참 좋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던 이유는 다른 피조물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하느님 형상이 부여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범죄로 타락하기는 했지만 인간의 타락이 하느님의 형상까지 무효화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 형상을 일그러뜨리고 왜곡했을뿐 형상 자체의 본질은 손상될 수 없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