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학파에서는 몸의 기능을 상세히 분석하여 영혼 8분설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이성적 영혼에 해당하는 부분을 ‘지도적 영혼’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머리 또는 심장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영혼의 다른 부분은 5개의 감각기관(눈·귀·코·혀·촉각기관)·생식기·포네(phone) 등 7개이다. ‘지도적 부분’에는 연줄처럼 몸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경로가 열려 있다. 이 경로를 ‘기식(氣息, pneuma)’이라고 불리는 에너지가 흐르고 있어 몸의 각 부분을 활동시키고 있다. 이 기식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영혼의 여덟 번째 부분인 ‘포네’이다. ‘포네’는 소리로서의 말이며 프뉴마는 소리와 함께 몸의 밖으로 흘러나오는 영혼의 작용이다. 이것에는 원심성(遠心性)과 구심성(求心性)이라는 두 개의 흐름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아마도 들이마시는 숨과 내쉬는 숨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프뉴마는 지도적 부분에서 5개의 감각기관으로 흐르고 있다. 5관(官) 가운데 피부의 촉각은 몸의 일부에 국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에 넓게 퍼져 있다. 그러나 프뉴마의 흐름은 외부사물의 자극을 느껴서 피부의 표면까지 이른다고 생각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몸은 프뉴마가 흐르는 그릇[容器]이며, 그 흐름은 외부세계와 교류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생식기가 영혼의 일곱 번째 부분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스페르마(sperma, 종자)라고 불리며, 지도적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기식이 고환(睾丸)까지 이르고 있다. 크리요세푸스(기원전 280 무렵~)는 이 전체를 다음과 같이 종합하여 설명하고 있다. “영혼이란 우리들 인간이 타고난 기식이며 계속적으로 몸에 널리 퍼져 있으며, 생명이 정상적으로 호흡하는 한 몸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영혼의 각 부분은 유기체의 각부위에 분포되어 있다. 즉 기관(氣管, 호흡기)에 퍼져 있는 영혼의 부분은 소리, 눈에 이르는 것은 시각, 귀에 이르는 것은 청각, 코에 이르는 것은 후각, 혀에 이르는 것은 미각, 몸의 전역에 이르는 것은 촉각, 생식기에 이르는 부분-다소 다른 것과 다른 특질을 갖는다-은 스페르마티코스 로고스(logos spermatikos, 종자적 원소)이다.
현대 생리학 지식으로 해석해 보면, 여기에서 제시된 프뉴마의 경로는 신경계 또는 혈관계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스토아학파의 영혼론에서는 영혼의 여덟 번째 부분으로서 ‘포네’가 나타나 있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포네는 소리로서의 말이며 지도적 부분에서 발하여 목이나 혀 등의 발성 기관으로 흐르고 외부세계와 교류하고 있는 기식이다.
이상에서 서술한 프뉴마의 사고방식은 오히려 중국의 기(氣)에 관한 사고방식과 비슷하다. 한나라(기원전 1세기 무렵) 때 거의 확립된 동양의학의 몸에 관한 관점에서는 기(氣)라는 에너지의 흐름이 경락(經絡)이라고 부르는 네트워크를 통하여 몸 전체의 각 부분에 이르고, 피부나 호흡기를 통하여 몸의 외부(우주의 기)와 교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프뉴마에 원심성-구심성이라는 두 개의 흐름이 교체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의 흐름에도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방식이 생각되고 있다. 또한 스토아학파의 영혼론에서는 프뉴마가 모이는 지도적 부분을 머리 또는 심장 부분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것과 이어진 중요한 부분으로 생식기를 들고 있다. 이에 견주어 동양의학의 신체관과 관계가 깊은 중국의 명상법에서는 머리 부분[眉間]·가슴 부분·아랫배 부분을 삼단전(三丹田)이라고 부르는데, 기의 움직임을 명상으로 활성화하는 중심 부분으로 상정하고 있다.
스토아학파의 프뉴마나 중국의 기와 아주 비슷한 사고방식은 요가의 신체론에서도 발견된다. 요가 철학에서는 나디(nadi)라고 하는 일종의 맥관계(脈管系)가 전신에 분포되어 있으며 거기에 프라나(prana)라고 하는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고 한다. ···동·서양의 고대 의학이 심리치료법적 성격이 강한 것은 그 역사적 원류가 사원(寺院)에서 행해지던 종교적 의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는 차츰 제사의 의학과 민간의 의학이 나누어져, 후자는 감정의 병보다는 주로 몸의 질환을 치료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이 둘은 오랫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하였다.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경-375 무렵)를 시조로 하는 한 학파는 코스섬의 아스클레페이온(Asclepeion)을 본거지로 하고 있었는데, 이 사원[寺院, 의학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의 신전]의 의료는 심리치료에 뛰어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몸과 우주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되고 있었던 것일까?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고대 그리스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었던 것은 엠페도클레스(기원전493 무렵 - 433 무렵)로부터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확립된 4원소[흙(土)·물(水)·불(火)·풍(空氣)]설이다. 스토아학파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이들 4원소는 모두 로고스적인 기식(氣息)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유동성을 가진 근본 물질이며 그 전체는 증감하지 않고 모든 사물은 이것에서 나와 이것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스토아학파에서는 이 프뉴마의 흐름이 발하는 근원을 ‘로고스(logos)’ 또는 ‘신(神)’이라고 불렀다. 로고스로서 신은 자신의 일부를 소재로 4원소를 만들고 그것을 혼합하여 만물을 형성한다. 즉 프뉴마는 로고스로서의 신에서 흘러나온 움직임(활동)이며, 우주는 그 원심적-구심적인 흐름의 긴장(緊張)·교체(交替)에 따라 지배되고 있다고 한다. 우주는 그러한 영적인 기운이 가득 차 있는 범신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로고스-프뉴마의 활동에 따라 유기적인 일체를 이루고 있다. 필연적인 운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에 견주어 몸의 생식기 부분에는 종자(種子)적 로고스가 붙어 살고 있다. ··· 여기에는 프뉴마의 운동을 바탕으로 대우주의 본성과 소우주로서의 인간의 본성이 서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명상 훈련은 몸에 내재하는 종자적 로고스를 성장시켜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필연의 운명(즉 로고스로서의 신의 움직임)을 감득(感得)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윤리학과 자연학의 일체화를 나타내는 “자연에 따라 산다”는 최고선의 상태는 이것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기의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대우주와 소우주[몸]의 대응 관계를 파악한 중국의 사고방식과 잘 통하는 점이다. 『노자』에서 말하는 ‘현빈(玄牝)의 문이 생식기이며, 만물을 만들어 내는 도(道)의 움직임이 거기에 거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점은 종자적 로고스란 사고와 아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