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무대(景武臺) · 청와대(靑瓦臺) 자리는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우리는 경무대 · 청와대 하면 과거 권력의 핵심 기관으로 알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관청 이름이 ‘OO대’로 끝나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어떠한 연유로 대통령의 집무실 및 관저 로 사용되는 명칭이 되었을까요.
고종은 1868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북문(北門)인 신무문(神武門) 북쪽에 넓은 공간을 확보하여 후원을 조성하고 그곳을 경무대라고 불렀습니다. 중심 전각으로 융문당(隆文堂)과 융무당(隆武堂)을 만들고 과거시험과 군대 사열, 휴식을 위한 공간 등으로 활용하였다고 해요. 원래 이곳은 오랫동안 경복궁 궁역 밖에 있으면서, 왕이 공신 및 역대 공신의 자손들로부터 천지신명 앞에서 충성을 맹서 받고 논공행상을 행하던 회맹단(會盟壇)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위 사실에서 경무대라는 명칭은 고종 때 처음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 뒤 통감부는 조선총독부가 되었고, 1926년 조선총독부를 경복궁 안에 새로 지은 청사로 옮기면서 조선총독의 관저도 경복궁의 후원이었던 경무대 부근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렇게 총독 관저가 들어서면서 후원 지역은 경복궁 영역에서 떨어져나가게 되었지요. 광복 후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이 관사로 사용하였고, 이승만 대통령도 당시 열악한 국가재정을 감안하여 집무실 겸 관저로 경무대를 그대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경무대는 1960년 4.19혁명 이후 탄생한 제2공화국의 윤보선 대통령이 독재정권을 연상시킨다고 주장하면서 1960년 12월 30일 ‘청와대’로 공식 개명되었습니다. 이 명칭은 건물에 ‘푸른 기와’를 덮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해요. 청와대란 이름은 당시 윤보선 대통령의 주장에 따라 채택됐어요. 영어 명칭인 ‘Blue House’가 미국의 White House’와 비견되는 이름이라는 것이었지요. 이 명칭은 윤보선 대통령의 변경 의지와 지시에 의한 것으로 당시 서울특별시사 편찬위원인 김영상(1917~2003)씨가 제안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대통령 집무실은 2022년 많은 논란을 겪으며 용산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제 우리들 앞에는 경무대 · 청와대 자리를 어떻게 보존 · 유지할 것인가 하는 역사적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