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사자 : Zalophus japonicus (Peters) – 강치
► 이 명 : 강치, 가제, 가지
► 외국명 : (영) Japanese sea lion, (일) Nihonashika (ニホンアシカ)
► 형 태 : 수컷의 몸길이는 190~240㎝, 체중은 360kg 정도이다. 한국 독도바다사자 박제의 수컷은 몸길이 230~250㎝, 체중은 450~560 kg 정도로 캘리포니아바다사자 수컷보다 컸다. 암컷은 몸길이 164㎝로 수컷보다 훨씬 작았다. 털이 짧고 발톱이 있는 물갈퀴가 있다.
► 설 명 : 바위나 모래 위, 또는 풀이 많은 곳에 살며 물고기, 두족류, 연체동물 등 다양한 먹이를 섭식한다. 주요 먹이는 오징어, 명태, 정어리, 연어 등이다. 천적은 상어와 범고래가 알려져 있다.탁 트인 모래밭에서 주로 번식했으나, 때로 암석 지대에서 번식할 때도 있었다. 번식기 때에는 1마리의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지만 번식기가 끝나면 흩어진다. 암컷은 새끼를 옮길 때 어린 새끼의 목을 물어 운반한다. 주위를 살피는 데 민감하고 위험을 느낄 때는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독도를 비롯한 동해 연안에 수 만 마리가 서식했으나 바다사자의 가죽을 얻기 위한 일본의 무분별하고 야만적인 남획으로 그 수가 급격히 줄었으며, 그 후로 결국 현재는 실질적으로 멸종했다. 80년대 이전부터 이미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었고, 2011년에 한국 정부는 바다사자(강치)의 멸종을 공인하였다. 친척뻘로 캘리포니아 바다사자, 갈라파고스 바다사자가 있으며, 이 중 갈라파고스 바다사자도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현재 일본 각지에 박제된 표본들이 있으며, 네덜란드 라이덴 자연사박물관에도 필리프 프란츠 폰 지볼트가 잡아간 박제가 한 점 있다. 대영박물관에서도 모피 한 점과 두개골 네 점을 소유하고 있다.
※ 18세기의 백과사전인 《화한삼재도회》에 따르면 바다사자 고기는 맛이 없으며, 호롱불을 밝히기 위한 기름을 짤 때나 썼다고 한다. 피부와 내부 장기에서 뽑아낸 기름은 한약재로 사용되었고, 눈썹과 가죽은 각기 담뱃대 소제기와 피혁 제품을 만드는 데 쓰였다. 20세기 들어서는 서커스에서 부려먹기 위해 잡아갔다.
► 분 포 : 한국(동해안), 일본 (혼슈), 쿠릴 열도, 캄차카반도 남쪽 등지에 분포한다. 바다사자의 서식지는 동해 바다, 특히 일본 열도와 한반도의 해안선 일대였다.
► 비 고 : 2003년 이전까지는 캘리포니아 바다사자의 아종으로 생각되어 학명을 Zalophus californianus japonicus라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별개의 종으로 분류되어 Zalophus japonicus라 한다. 일부 분류학자들은 여전히 바다사자를 캘리포니아바다사자의 아종으로 생각하고 있다. 바다사자, 캘리포니아바다사자, 갈라파고스바다사자는 그 서식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행동 양태의 차이점이 뚜렷하여 별개의 종으로 재분류 되었다.
► 참 고 : 옛 한국어 기록에 따르면 바다사자와 점박이물범이 동해 뿐 아니라 발해, 황해에도 살았다고 한다. 바다사자는 독도에서 많이 번식했었고 멸종 이유는 일본제국이 가죽을 얻기 위해 다케시마어렵회사의 남획으로 급격히 줄고 이후 지속된 어업과 수렵이 원인이며 결국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에 남아있는 강치를 보호하려는 데에 실패했다. 독도에는 가제바위 등 주변에 바다사자가 쉬기에 좋은 바위가 많고 난류와 한류가 뒤섞여 먹이가 풍부해 바다사자들의 주요 번식지이자 서식지였다. 그래서 ‘바다사자의 천국’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일본 어부들이 한 해에 많게는 3천~3천200 마리를 잡았으며, 이후 포획량이 줄어 연간 2천마리 1천 마리 정도 남획하다가 결국 멸종됐다고 한다. 조선사람들은 바다사자를 ‘가제’ 또는 ‘가지’로 불렀으며, 독도를 중심으로 동해에 수만 마리가 서식했다고 한다. 이들이 머물렀다는 가제바위가 독도에 남아 있다. 러일 전쟁 전후로 가죽을 얻기 위해 시작된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바다사자는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춰으며, 1974년 홋카이도에서 새끼 바다사자가 확인된 이후로 목격되지 않는다. 1905년 일본 시마네 현이 이 섬을 무단으로 편입한 이후 일본인들의 어획이 시작됐지만, 1905년 이전에 울릉도에 살던 한국인들은 1904년과 1905년에 독도에서 바다사자를 잡아 매년 가죽 800관(600엔)씩 일본에 수출한 기록이 1907년 시마네 현 다케시마 조사단의 오쿠하라 헤키운이 쓴 책 ‘죽도 및 울릉도’에 나온다. 바다사자와 물범은 일본 해안선 각지에 이시카이와(アシカ岩, 바다사자바위), 이누보사키(犬吠崎, 개 짖는 곳) 등의 관련 지명을 남겼다. 후자는 바다사자와 물범의 울음소리가 개 짖는 소리와 비슷해서 붙은 것이다. 우리말 ‘물개’의 어원도 이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