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김선영
몸에 실오라기 하 나 걸치지 않은 몸
목욕탕에 가면 신분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홀딱 벗고 때를 밀고
빈부 격차를 가름할 허울 껍데기 모두 벗어 던진 체
어깨에 목에 힘 줄 필요도 없고 힘 뺄 필요도 없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사회가 주어진 곳 대중목욕탕 모두 알몸이다
처음부터 우리는 빈손 알몸으로 태어나지 않았던 가
가릴 필요도 숨길 일도 없는 아주 편안한 알몸
알몸으로 태어나서 수의 한 벌 얻어 입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무상한 인생이거늘
알몸은 뻔히 보이지만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알몸같이 볼 수 없을까 속내를 알몸 속에 감추고
진실은 어디까지인가 세상을 활보하는 허울 좋은
껍데기를 모두 벗겨 보고 싶은데
이불속에 알몸도 친구지간에 알몸도 정치판 알몸도
알 몸속 알몸을 숨기고 가식으로 물들어가는 세상
뽀얀 알몸이 보고 싶다
보리밥/김선영
밀집 거적 깔고 두레상에 둘러앉은 가난
다시는 먹지 않으려 다짐 또 다짐
시커먼 꽁보리밥
찬물에 말아 휘휘 저어 짠지 한쪽에
허기 달래던 세월
입속에서 이리 미끌 저리 미끌 자꾸 뱉어내는
어린 자식 꼭꼭 씹으면 단맛이 난다며
한번만 먹어보라 달래 보는 어머니
한 여름 지긋한 허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성인이 된 그는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지만 여전히 주변을 맴도는 그를
반길 수밖에 없네
잡풀/김선영
나는 어느 곳에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기를 쓰고 남들보다 자신을 더 키워야 했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원래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잡상인 취급을 합니다
내가 좀 다가가면 사람들은
모두들 도구를 들고 나를 위협합니다
하지만 나는 여치며 매미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새들이 부르는 노래도 부를 수 있습니다
흙내음 맡으며 별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멋진 꿈을 키우며 꿋꿋이 살아갑니다
나는 아무 곳에서나 터를 잡고 살지만
아무렇게나 살지는 않아요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순리를 거스르지 않으며
나는 새하얀 목련보다 더 맑은 영혼을 가진
내 이름은 잡풀입니다
첫댓글 주옥같은 작품 감사합니다.
특히 잡풀에 푹 빠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