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봄 햇살이 겨우내 죽은 듯 보이던 나목을 간지를 때쯤이면 교정은 새내기들로 생기가 넘쳐 난다. 더욱이 버찌로에 꽃비가 내리면 세상의 그 어떤 뛰어난 연출가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기는 어렵다. 대지에 생동감으로 생기가 넘쳐 날 때쯤이면 캠퍼스 내의 각양각색 꽃나무들은 뒤질세라 화사한 꽃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분내를 풍기며 사랑에 빠진다.
나는 40개성상을 대학의 캠퍼스에서 근무를 했다. 내가 근무했던 캠퍼스는 잘 꾸며진 공원처럼 아름다웠다. 시내 중심부는 아니어도 도심에 위치한 탓도 있었지만 아름답게 가꿔진 모습 때문에 아베크족이나 산책하는 인근 주민들로 캠퍼스는 언제나 넘쳐났다. K대학 캠퍼스는 꽃시계가 본관 앞 언덕배기에 일찌감치 터를 잡고 행락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가운데 사계절을 대표하는 거리가 일청담을 중심으로 사통팔달의 모양으로 자릴 하고 있다.
먼저 겨울 길의 모습이다. 여인네의 비단 같은 머릿결을 닮은 수양버들의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모습에서 금방이라도 그윽한 향기가 뿜어 나올 듯하다. 그곳에 눈이 내리면 불티나게 팔리는 엽서의 모델이 된다. 엽서에 사연이 담기면 사랑이 된다.
여름 길은 대학캠퍼스가 조성되기 전 부터 시내버스가 다니던 도로가 있었다. 도로 양쪽으로 아름드리 버즘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고 있다. 5층 건물만큼한 웅장하고도 하늘을 찌를 뜻한 높이에 두터운 잎이 하늘을 가려 비 한 방울 내릴 틈이 없으니 시원함은 말해서 무엇 하랴!
북문에서 캠퍼스를 남북으로 갈라 치는 은행나무 길은 어쩌면 꽃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노오란 은행잎은 색깔도 색깔이지만 鋪道 위를 가득하게 수놓은 부채 모양의 자태에 우리는 모든 마음을 내어주고 황홀감에 빠져들기 일수다.
무엇 보다 압권은 버찌로(벚나무 길)에 꽃비가 내리는 날이다. 버찌로는 일정담을 기준으로 캠퍼스를 동서로 갈라놓는다. 벚꽃나무마다 특색 있는 꽃잎은 보는 이의 눈을 더욱 아찔하게 한다. 어떤 나무는 주먹 같은 벚꽃 다발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 달아 놓은 듯하다. 그대는 K대의 예비로드로 불리는 버찌로에 꽃비가 눈처럼 내리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 살다보면 비가 눈이 되어 내리는 모습을 가끔 볼 때가 있다. 꽃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실은 누군가가 잘못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봄에 내리는 꽃잎을 보고 눈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나 보다. 꽃비 보다는 눈꽃에 가깝다. 꽃비는 어감이 좋다. 그러나 대지 위에 쌓이는 모습은 영락없이 눈의 모양이다. 캠퍼스의 겨울이야기는 늘어진 수양버들의 가녀린 모습으로는 부족하여 어쩌면 눈이 가난한 대구의 대지를 꽃눈이 채우는지도 모른다.
30개성상하고도 반 십년을 보낸 캠퍼스를 떠나야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한평생을 보낼 수 있었음을 신께 감사할 뿐이다. 함께한 동료들과 헤어진다는 설움보다도 타관 객지에 간다는 별리의 슬픔보다도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캠퍼스를 매일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와락 슬픔이 몰려 왔다. 대학 캠퍼스가 거기서 거기 아닌가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옮겨간 같은 이니셜의 k대학 캠퍼스는 영 마음에 차질 않았다. 철따라 특유의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정들었던 캠퍼스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계절마다 고은 옷으로 갈아입은 길이며 수를 놓은 듯한 아름다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계절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건만 옮겨간 대학의 캠퍼스 보다는 숙소 앞 해 저문 소양강를 바라보는 날이 늘어났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또 한 번의 계절이 바뀔 무렵 국토 남쪽에 위치한 J대학으로 발령이 났다. 남도의 아름다운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곳 이었다. 400살 넘은 홍매화가 민주화 광장을 지키고 있는 유서 깊은 캠퍼스였다. 그곳에서도 3여년의 시간을 보냈으나 홍매화가 뿌리는 꽃비를 만나지는 못했다. 이후로도 전국의 아름답다는 캠퍼스를 많이 다녀보았다. 그러나 꽃비가 내리는 정든 교정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가 없다.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거닐고 싶었던 캠퍼스여! 꽃이 비가 되어 내리는 버지찌로여!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아름다움이여! 영원히 이 마음에 좌정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