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벡델토크 1부를 들었다.
지금껏 영화 시사회조차 가본 적이 없기에 감독들의 토크를 듣게된 건 처음이었다. 한 번 경험하고 흥미를 갖게되면 계속 하지만, 그 전에 첫 문을 열기를 두려워하는 나로서는 이런 기회를 숙제로 갖게 된 건 아주 좋았다.
토크는 일곱 연출가님들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비밀의 언덕> 이지은 감독, <LTNS> 전고운,임대형 감독, <졸업> 박경화 작가, <힘쎈여자 강남순>박미경 대표님까지
내가 본 작품은 졸업과, 힘쎈여자 시리즈 중 1 도봉순 편이었다.
이에 박경화 작가님이 너무 반갑고 신기했는데 놀랍게도 신인작가라는 점에서 그랬다. 전공도 연출이 아닐뿐더러 교육업계에 깊이 발 담구지도 않았다고 하셨다. 예능에는 "나영석 사단"이 있다면 드라마계에는 "안판석 사단" 도 아주 높게 산다. 나는 안판석 감독의 현실적이나 달콤한 세심한 로맨스적 연출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사실 졸업도 작가가 누구냐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안판석 감독의 그 무드만 보고서 보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졸업>을 보면서 연출은 믿고 보는 익숙한 연출이었는데, 그보다 더 집중되던건 대사였다. 그저 흘러가는 분위기를 끌고 가는 대사가 아니라, 그 세심한 단어선택으로 인해 상대의 심기를 건들고, 그로 인해 어떤 나비효과가 시작되는 장면들에 깊이 빠져들어 갔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주인공 서혜진(정려원)이 고등학교로 찾아가 표상섭 선생께 재시험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의 대사들은 정말 주옥 같았기 때문에, 분명히 이 교육업계에 종사한 작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니.
박미경 대표는 이에 대해 말을 거들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면 더 못쓰겠는게 있어요. 제가 그렇거든요. 리얼리티 교육업계의 글을 써볼까 싶었는데 내가 학원을 해봤다보니 못쓰겠더라고.... " 박미경 대표는 히어로물, 판타지물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기에 그 말이 더 와닿았다.
그리고 감독님들께서 입모아 하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상황에 캐릭터가 놓이는 각본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캐릭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주체의 움직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어야 한다.
배우로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아주 울림이 있었다.
벡델 주제 안의 토크에서 깊이 감명 받았던 건 <전고운> 감독과 <박미경>대표의 의 말이었다.
두 분의 말을 합쳐 듣고 해석했기에 다소 내용이 섞여있지만..
: 요즘 하도 시국이 어렵다. 힘든 시기다. 이러시는데 사실 전 항상 어렵고 항상 힘들었거든요. 그럴 때가 여자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 때였어요. 그럴 때마다 문은 열리지 않고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전고운 감독) 편성이 잘 되기 위해서는 남자 주인공을 위주로 가거나, 그 방송사에서 원하는 배우를 주연으로 따 내오면 편성을 시켜주겠다, 그런 말도 안되는 요구 때문에 감독들은 원하는 창작물을 만들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볼 게 없는 상황이 나온 것에 대해 영화계 사람들인 우리도 반성을 한다. (박미경 대표)
그래서 저는 지금 영화판이 아무리 어렵다해도, 두렵지 않다. 나는 항상 어려웠기 때문에, 그냥 계속 나아갈 것이다.
방송사들이 이 때를 기점으로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너무 멋진 말이었다. 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감독들에게 감히 가드라인과 압박을 주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상상과 창작에는 제한의 테두리가 있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상상의 그물이 무한대로 뻗어나가야 새로운 것이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배우도 새로운, 신선한 작품을 만나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에.
스케줄 상 1부가 거의 끝날 때 나온 게 아쉬웠다. 감독님들의 토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또 가고싶다.
앞으로 시사회도 자주 가봐야지 생각하게 되었다.
언급 됐던 영화인 <윤희에게>와 <비밀의 언덕>도 주말에 봐야겠다.
첫댓글 응 좋은 시간이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