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第二章 쌍심(雙心)의 기청년(奇靑年) 1 추면 흑의노파는 구슬 같은 눈물을 주루루 흘리다가 돌연 벌떡 일어나며 살기에 찬 안광을 뿌려 냈다. "아직 이 초가 남아 있다. 무음지력을 어떠한 사공으로 받아 냈는지 모르겠으나, 이번 것은 막지 못할 것이다!" 노파의 독기에 찬 말소리가 방안을 들썩이자. "하하하… 그렇게 성내 하는 모습이 우는 모습보다 한결 낫소이다." 상관안이 웃음을 터뜨리며 뒷짐을 졌다. 사실 눈앞의 흑의노파가 어떠한 신분을 갖고 있는지 알았다면 이렇게 여유 있는 행동을 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흐흐흐……!" 노파가 비둘기 주둥아리 같은 입술을 조물락거리며 괴소를 흘리다가 돌연 두 손을 한데 합 했다. 그녀의 쌍장이 찰나지간 적홍색(赤紅色)으로 물들며 신비하기까지 한 붉은 기류를 피워 올 렸다. 웅… 웅……! 벌 떼가 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노파의 몸이 붉은 기류에 감추어졌다. '대단하군. 지난번보다 훨씬 무서운 수법이 시전되겠군. 이것을 일컬어 늙은 생강일수록 맵 다는 것이 아닐까?' 상관안은 방심하지 못하고 천하제일신공이라 여겨지고 있는 흑의선인의 태극선공을 끌어올 렸다. 순간, 마음이 망망대해같이 호탕해지며 뇌리가 수정같이 맑아졌다. 태극선강은 천하의 어떠한 마공(魔功)도 막아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가지 결점을 갖고 있었다. 살기(殺氣)를 갖고는 시전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 태극선강의 유일한 결점이었다. 그 수법은 천하의 모든 것을 다 사랑하는 넓은 도량을 갖고 있어야만 시전할 수 있는 것이 고, 상대를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을 때에는 시전해 내지 못하는 실로 오묘한 수법이 었다. 상관안의 몸 주위로 백무가 서렸다. 방안이 붉은 기류와 흰 기류로 인해 미어터질 정도가 되었다. "흐흐… 도가(道家)의 현문강기(玄門 氣) 따위로 노신의 적살마기공(赤煞魔奇功)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겠다." 흑의노파는 상관안이 시전하고 있는 수법이 도가 태청신공(太淸神功) 같은 기류의 수법이라 여기는지 회심의 미소와 함께 붉은 기류를 더욱 강하게 해 상관안 쪽으로 밀어 보냈다. 상관안은 피하지 않고 우수를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백색 기류가 꿈틀거리며 붉은 기류를 향해 밀려 나갔다. 두 종류 기류가 마주치는 순간, 흑의노파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만들어졌다. 내공 대결은 내가고수일수록 피하는 종류의 싸움 방식이다. 패할 경우, 죽거나 크게 다쳐야 하는 것이 내공의 대결이기 때문이었다. '내공이라면 자신이 있다.' 흑의노파는 상관안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무공을 익혔다 해도 자신보다 팔십 년 늦게 무공 지도에 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쌍장에 십 성의 힘을 가했다. 휘잉-! 피바람이 일어나는 듯했다. 상관안의 몸이 붉은 안개에 뒤덮였다. 그러나 그의 몸 위 서려 있는 흰 기류는 붉은 기류가 강해지건 약해지건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다. 일순 둔탁한 폭음이 일어나는가 하더니 상관안의 몸을 뒤덮었던 핏빛 기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흰 기류가 다시 드러나 보였다. "어… 엇!" 흑의노파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이럴 수가? 마치 솜뭉치를 두드린 듯하다니… 바위를 박살낼 수 있는 적살마기공이 이놈이 끌어낸 흰 기류의 벽을 뚫지 못하고 봄바람이 눈을 녹이듯 살며시 사라지고 말다니…….' 그녀는 알지 못할 것이다. 상관안이 시전한 무공이 천하제일신공이라 불려지는 태극선공이 라는 것을. 흑의노파가 몸을 뒤뚱일 때, 상관안이 코와 입술로 흰 기류을 빨아들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흑의노파와 이 초를 겨루는 동안 실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듯 즐거운 표정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제 일 초가 남았소." "으으……!" 흑의노파가 상관안의 맑은 말소리에 부르르 떨며 뒷걸음질쳐 갔다. 그녀는 등을 벽에 기대 며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삼… 삼 초는 미뤄 두자." "미루자고?" "삼… 삼 초마저 패할 경우, 노신은 너의 종이 된다. 그…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그 맹세를 지키기 힘들 것 같다. 노… 노신은 우선 일신의 한을 풀어야 한다. 너와의 대결은 그 뒤로 미뤄야겠다." "그럼 이대로 떠나겠다는 말이오?" "그… 그렇다." 노파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하… 이대로 떠나 보낼 수는 없소. 노파가 강호로 들어갈 경우, 노파의 마공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이니까!" 상관안의 얼굴에 전과 다른 냉막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제껏 광명정대하던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차갑고 냉혹한 모습이었다. 흑의노파는 상관안의 그런 얼굴에서 공포감을 느꼈다. "너… 너는… 노신과 마찬가지 마공(魔功)을 익히고 있구나?" 흑의노파가 상관안의 눈에 떠오른 안광에 접해 놀라 외치자. "하하… 마공도 쓰기 나름이니까!" 상관안은 속일 것 없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한 사람이 선문(仙門)의 신공과 함께 마공을 겸비했다는 것은 고금(古今)에 드문 일 이다. 네… 네놈은 흡사 마음이 두 개 있는 놈 같다!" "쌍심(雙心)!" 상관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그렇다. 너… 너는 지극히 부드러운 면모와 함께 지극히 차가운 면을 함께 갖고 있다. 그… 그것은 전대미문의 괴사이다. 너… 너는 정말… 노신이 상상할 수 없는 녀석이다." "칭찬이오? 비방이오?" "둘… 둘 다다. 하여간 너같이 뛰어난 놈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 일생일대의 영광이로구 나." 흑의노파가 수심에 차 말하다가 손을 천령개 근처로 가져갔다. "뭐하려는 게요?" 상관안이 얼떨떨해 묻자. "머리통을 박살내려는 것이다." 흑의노파가 눈을 감고 말했다. "자… 자결하겠다는 것이오?" 상관안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그렇다. 노신은 패배를 인정하기도 싫고, 원수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참고 살 수도 없다. 네놈에게 잡힐 것이 분명하니, 이대로 자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 아니겠느냐?" 말하는 사이 흑의노파의 손이 자신의 천령개를 향해 힘차게 움직여 갔다. 그녀의 손이 천령개에 닿기 직전, 상관안이 소매를 흔드는가 하더니 지극히 부드러운 진기 가 일어나 그녀의 손을 꼼짝 못하게 했다. "으으……!" 흑의노파는 무형의 힘에 팔을 붙잡히게 되자 오만상을 찡그리며 팔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나 팔은 요지부동이었다. 흑의노파는 상관안에 비해 반의 반도 안 되는 내공이라는 것을 통감하며 눈물을 주루루 흘 리며 입술을 꽉 다물었다. 상관안이 그런 모습을 보고 무형진기를 회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원한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아오." "네… 네가 이 철천지한을 어찌 알겠느냐? 너는 모른다!" "짐작은 할 수 있소. 사실 나도 원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오." "정… 정말이냐?" 흑의노파가 그제서야 눈을 떴다. "그렇소." 상관안이 다부지게 말하자, 흑의노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연방 고개를 내저었다. "으음, 그런 줄은 몰랐다. 일말의 사기도 없는 네게 원한이 있다니……." 상관안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동병상린지정을 느끼며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옥과 옥이 부딪치는 듯 맑고, 솔밭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듯 청아한 소리로 말했다. "노파와 나는 비슷한 경험을 했소. 노파가 반도(叛徒)에게 모든 것을 뺏기고 십사 년을 갇혀 지냈듯, 나는 한 사람에게 철저히 배반당하고 십 년을 허송했소." "그… 그런 일이 있더냐?" "자세한 것은 말하지 않겠소만… 나의 원한도 노파의 원한 못지않다는 것을 꼭 말해 주고 싶소. 그러기에 노파가 자결하려는 것을 만류한 것이오." "무… 무슨 소리냐?" "복수를 한다는 것은 무인(武人)으로서의 도리요. 나는 노파가 한을 갖고 죽어 가는 것을 바 라지 않소. 나는 노파가 일신의 원한를 해결하기를 바라고 있소. 단, 살행하는 것은 원치 않 으나……." "흐흐… 너는 노신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걱정해 말하고 있는 것 이구나?" "그렇소." "흐흐… 천하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살아 있으나마나 한 인간이 한 종류이고,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이 다른 종류이다. 노신은 살아 있으나마나 한 인간들을 해하는 데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흥!" 상관안의 냉소성이 유난히 차가웠다. 그가 입매를 일그리며 눈빛을 번쩍거리자, 흑의노파가 공포에 질린 표정이 되어 얼른 눈길 을 돌렸다. 상관안의 냉막한 말소리가 석옥을 들썩였다. "내 앞에서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자유의 몸이 되게 해 줄 것이오. 하나 그런 맹세를 않는다면, 평생을 여기서 보낼 수밖에 없소." "두… 두 가지 모두 못한다. 노신은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할 것이다." 노신의 손이 다시 천령개 쪽으로 움직여 갔다. '하는 수 없군.' 상관안은 노파가 머리통을 부수고 죽어 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다 여기며 눈을 내리깔았다. 순간. "으음……!" 성난 호랑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같은 호흡 소리와 함께 푹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노파가 손으로 머리통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땅에 대며 탄식해 마지않는 것이었다. "너… 너무도 긴 세월이었다. 나… 나는 복수를 꿈꾸며 인간으로서 겪지 못할 어려움을 겪 었다. 그… 그리고 이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는데, 살생을 하지 말라니… 너무도 가혹하 다." 노파는 죽으려 했으나 원한을 생각하고 차마 죽지 못했던 것이다. 상관안은 그녀의 속마음을 능히 이해할 수 있었다. 상관안은 흑의노파가 울먹이는 것을 내려다보다가 한순간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떠나시오." 상관안은 한 마디 말과 함께 훌쩍 날아올라 석옥을 벗어났다. 그는 검은 제비를 방불케 하는 신법을 시전해 탄지지간 단풍림을 넘어 모습을 감추어 버렸 다. 흑의노파는 그가 사라져 간 방향을 바라보며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저 아이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늘이 나의 정성에 감동해 보낸 선동(仙童)일 것이다. 지 성이면 감천이라 하지 않았던가?" 흑의노파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석옥을 벗어났다. 악취로 가득 찬 석옥은 곧 무덤 안같이 적막해졌다. 2 춘하추동(春夏秋冬)의 변화는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봄이 왔다 가고, 여름이 돌아오고, 다시 신선한 가을이 되었다가 찬바람이 천지를 휩쓰는 겨 울이 되는 것이다. 한때 한때가 모두 영원할 듯 보이는 것이 계절의 변화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바뀌어지고 마는 것이기도 했다. 긴 긴 겨울이 거의 지나갈 때. 천만한(千萬恨) 한극재천애(恨極在天涯) 산월부지심리사(山月不知心裏事) 수풍공락안전화(水風空落眼前花) 천 갈래 만 갈래의 원한이, 하늘 끝까지 사무치는구나. 산중의 달은 마음 속의 일을 몰라주고……. 아아, 강바람이 눈앞의 꽃을 떨구는구나. 어디서부터인가 들려 오는 젊은이의 낭랑한 노랫소리가 있었다. 산서(山西) 온정운의 사(詞)가 그것이었다. "아, 이제 삼백 일이 되는구나."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감탄해 말하고 있는 흑삼서생 하나가 있었다.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며 회한에 젖은 표정을 하고 있는 청년의 나이는 뜻밖에도 아주 젊었 다. 스물하나나 둘 정도 되었을까? 그러나 그의 미간에 드리워져 있는 은근한 그늘은 세상사에 닳고닳은 사람들을 능가하고 남 음이 있는 것이었다. 검미성목(劍眉星目). 붓에 먹을 듬뿍 찍어 그려 내린다 해도 흑삼청년같이 빼어난 모습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 인중룡(人中龍)이라 불릴 만한 젊은이였다. 그는 둥그런 달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중얼중얼거리다가 한순간 등을 돌려 절벽 아래 뚫려 있는 동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대략 한 시진 후 되돌아 나왔다. 들어갈 때는 빈손이었으나 나올 때는 빈손이 아니었다. 등에 고색창연한 세 자 길이 장검(長劍)을 짊어졌고, 손에는 간단한 행낭 하나를 든 차림이 었다. 허리띠 사이 꽂혀 있는 혈적(血笛) 하나가 유난히 돋보이는 것 이외에는 아주 수수한 차림 이었다. "탕마지도(蕩魔之道)로 들어서는 것이다. 태극동부 안에서 익힌 절예로 천하를 평정하리라!" 크게 외치며 달을 쳐다보는 흑삼청년은 바로 천하제일기재 상관안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그가 글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한 탓에 몸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 해진 미서생이라 여길 것이다. 눈빛이 담담하고 몸매가 대장부치고는 약간 호리호리하기 때문이었다. 등에 메고 있는 대비신검은 호신용 정도로만 보이고, 그의 배포에는 대비신검의 검신에 선 혈을 묻힐 만한 담력이 없을 듯 여겨졌다. 손이 희고 고와 붓자루만 놀리던 손 같았고, 피부가 하얗고 깨끗해 거친 일을 한 티가 나지 않았다. 기녀(妓女)들을 희롱하며 일생을 살아 나갈 풍류남아의 모습으로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 누가 그의 심정에 들어 있는 호연지기를 알 것인가? 상관안은 자신의 앞날이 결코 평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껏 겪어 온 것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는 것도 확실했다. "나를 좌절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백 번 꺾어지는 한이 있다 해도, 뜻을 바꾸지 않으 리라." 상관안은 달을 쳐다보며 맹세하다가 몸을 끌어올렸다. 태극동부 안에서 익힌 비천유성신법을 시전하는 찰나, 몸이 뜬구름같이 가뿐해지며 곧바로 십 장을 날아올랐다. "찻-!" 상관안은 까마득히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허공에서 방향을 틀며 북방(北方)을 향해 검은 호 선 하나를 그었다. 그의 모습은 찰나지간 무형진 너머로 사라져 갔다. 3 겨울이라고는 하나 음산(陰山)엔 아직 눈이 쌓여 있었다. 음산에서도 가장 높다고 하는 낭산(狼山)의 능선은 흰 코끼리의 등가죽같이 희었고, 냉기는 한겨울의 그것이었다. 일 년을 통해 단 한 달 만이 봄이고, 나머지 달은 겨울인 낭산 깊숙한 곳이 선풍(旋風)에 휘 말리고 있었다. 눈을 이고 있던 수목들이 광풍에 휘말리며 눈가루를 날려 보내 눈보라가 몰아치는 듯한 착 각이 일어났다. 아주 쌀쌀한 날씨인지라 들짐승이라도 굴 속에 숨어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만 보이고 있을 때였다. 새벽 안개를 뚫고 낭산의 고봉(高峰)을 향해 신형을 폭사시키고 있는 흑의인 하나가 있었다. "이 근처인데… 자세한 위치를 알 수 없군. 대체 어디로 가야 천녀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 을까?" 중얼거리며 몸을 움직이는 흑의인의 얼굴은 죽립으로 가리어져 있었다. 오른쪽 어깨 위로 삐죽 솟아나 있는 고검이 바람에 나부끼는 가운데 그의 몸이 회오리바람 이 도는 속도보다도 빨리 움직여 갔다. 시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검은 그림자가 언뜻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로 알 신묘한 경신법이었 다. 천룡보법(天龍步法). 중원 무공 중 뛰어난 것에 속하는 천룡진경 안의 보법이 흑의괴인의 발에 의해 시전되어지 는 것이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으음, 낭패군." 흑의괴인이 만학천봉을 굽어보는 위치에 서서 장탄식을 하였다. 죽립 아래로 보이는 턱의 선이 아주 매끄러운 젊은이였다. 바로 흑의선인의 전인이라는 엄청난 신분으로 강호로 나온 상관안이었다. '지난밤 낭산에 와 밤새 찾아다녔거늘, 천녀교의 소굴에서 십 개 성상을 보냈으면서도 그 위치를 찾지 못하다니…….' 상관안은 원대한 꿈을 안고 강호에 나왔으나, 나오는 순간 난관에 봉착되었다. 천녀교의 위치를 알지 못하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들어올 때는 정신을 잃는 가운데 들어갔고, 나올 때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나왔으니… 그럴 수밖에. "그들이 이 근처에 있을 텐데… 그토록 엄청난 성채를 구축해 놓은 이상, 본거지를 쉽게 떠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관안은 천녀교가 거처를 옮기지 않았으리라 여기며 다시 근처를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를 달렸을까? 상관안은 만년설로 덮인 골짜기 근처에서 인기척을 느끼게 되었다. 휙- 휙-! 나는 듯 달려오는 두 명의 홍의인이었다. 모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신법의 영활함이 상관안조차 탄복할 정도였다. "흐흐… 우리들은 이제 크게 출세할 것이네." "탑주(塔主)께서 갈망하시던 일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들에게 큰 상이 내려진다는 것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이야." "검마(劍魔)와 야귀(夜鬼)가 있는 곳을 알아 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일생일대의 행운이 아니겠는가?" 두 사람은 나는 듯이 달리다가 걸음을 멈췄다. 한 사람이 눈을 이고 있는 노송(老松)의 가지를 잡고 서서 그들이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립으로 얼굴을 가린 흑의검사(黑衣劍士) 하나였다. 흑의인이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는 산 사람이 아니고 소나무의 한 가지인 양 두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고 놀라 멈추어 서 는 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어… 엇?" "네놈은 누구냐? 어느 놈이기에 감히 금지(禁地) 안으로 들어섰느냐?" 두 명의 홍의복면인이 거의 동시에 흑의검사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몸이 떠오르고 내려서는 데도 눈발이 휘날리지 않았다. 그것으로 보아 그들의 무공이 절정 수준에 이르러 있다는 것이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드러 날 수 있으리라. 두 사람의 눈빛은 굶주린 승냥이의 눈빛같이 흉흉했다. "네놈은 누구냐?" 우측에 있는 자가 버럭 외치고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붉은 옷자락이 허공을 가르는가 하더니, 흑의검사의 오른손 완맥이 그의 손아귀 안으로 들 어왔다. "별놈 아니군. 일 초도 받아 내지 못하다니……." 홍의복면인이 너무 쉽게 이겼구나 여기며 중얼거릴 때, 청년의 손이 불덩이같이 달아올랐다. "어이쿠!" 그의 손을 잡았던 홍의복면인은 손바닥의 살이 모두 데어 벗겨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 대로 한 길 뛰어올랐다. 흑의검사는 언제 손에 진기를 주입했느냐 싶게 그 자리에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왜… 왜 그러는가? 갑… 갑자기 왜 그러는가? 혹, 독충(毒蟲)에 쏘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좌측에 있던 복면인이 영문을 알지 못하고 큰소리로 물을 때, 흑의검사가 청아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리 와라." 그의 말소리에는 항거할 수 없는 잠력이 깃들여 있었다. 좌측에 서 있던 홍의복면인은 그의 말소리를 듣는 순간, 심령상의 동요를 느끼고 터벅터벅 세 걸음 걸어 청년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요… 요사한 술법을 쓰는군!"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청년의 말대로 행동했다는 데 경악하며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 등에 걸고 있는 검자루를 움켜쥐려는데, 무형의 경력이 다가왔다. 태산에 눌린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하하… 성급히 서두를 일이 아니다." 웃으며 손을 내젓는 흑삼검사는 바로 상관안이었다. 그는 손바닥에서 무형강기를 일으켜 복면인이 검을 뽑아 내지 못하게 하다가 손을 내리고 먼저보다 훨씬 차가워진 말소리로 말했다. "나는 일이 있어 낭산으로 왔다. 너희들은 낭산을 소굴로 삼고 있는 무리인 듯한데……." "그… 그렇다." 홍의인들이 거리를 좁혀 서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우리들은 혈탑사자단(血塔使者團) 중 이급검수(二級劍手)들이다." "혈탑?" 상관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혈탑의 호법고수들이라는 말이다. 우리들은 탑주의 명에 따라 천하 를 주유했고, 일을 완수하고 여기로 오는 길이다." 둘 중의 하나가 크게 외치자. "혈탑은 낭산 안에 있는 것이냐?" 상관안이 뒷짐을 지고 물었다. "어… 어리석은 놈! 혈탑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다니… 혈탑이 황산 천도봉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단 말이냐?" 홍의복면인들이 짐짓 화를 냈다. 그러면서도 덤벼들지 못하는 까닭은, 상관안이 보인 절기에 기가 꺾인 후이기 때문이었다. "혈탑이 황산에 있다면 왜 여기 왔느냐? 그리고 왜 여기가 금지이냐?" 상관안이 어린아이의 말투로 묻자. "흐흐… 강호 정세에 대해서는 통 아는 것이 없는 녀석이군. 혈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혈탑의 일급 이상 고수에 한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단 말이냐?" "그럼 너희들은 그곳에 갈 수 없겠구나?" "그… 그렇다. 하나, 혈탑사자가 된 것만 해도 무상의 영광이다. 우리들은 무상마녀(無常魔 女)님의 수족(手足)이 된 것을 일생일대의 영광으로 알고 있다." "무상마녀?" "혈탑주가 무상마녀시라는 것도 모르느냐?" "모른다. 그러나 이제 알았으니 됐다." 상관안이 뒷짐지었던 손을 풀고 두 사람을 쓸어 봤다. 담담한 눈빛이었으나 두 사람의 혼신공력을 흩트려 버리고도 남음이 있는 신령한 눈빛이었 다. '절세고수다.' 홍의인들이 눈빛에 취해 몸을 주춤일 때, 상관안이 전과 달리 지극히 차가운 소리로 말했다. 만년빙굴(萬年氷窟) 안에서 흘러나오는 듯. "혈탑이건 아니건 상관할 것은 없다. 나는 다만 너희들이 천녀교에 대해 알고 있느냐를 묻 고 싶다." 상관안이 노한 투로 묻자, 두 사람이 얼떨떨해 하며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상 관안 쪽을 바라보며 비웃어 말했다. "네놈은 광인(狂人)이로구나. 혈탑과 천녀교가 이명동체(異名同體)라는 것을 알지 못하다 니……." "강호인으로 그것을 모르는 자가 있다니… 일 년 사이 강호 팔백 개 문파를 정벌한 천녀교 가 황산에 혈탑을 세워 천녀교의 천하 군림을 천추에 기리고자 한다는 것을 모르다니……." 두 사람의 말이 상관안의 의혹을 일시에 거둬 갔다. '천녀교가 혈탑으로 화신했군. 그 미친 계집들이 사람의 피로 탑을 만들어 하늘을 뚫을 생 각이라니…….' 상관안은 과거 그들에게 속아 산 것을 기억하고 원한의 불길을 더해 갔다. 죽립을 뚫고 나오는 두 줄기 살광이 홍의인들을 겁먹게 했다. 홍의인들은 이제껏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다섯 부류로 나누어진 혈탑의 고수들 중에서 둘째 부류에 속하는 고수들이고, 천녀교 안에서의 지위는 소두목의 지위였다. 강호 대소문파의 장문인들이 허리를 숙여야 하는 지위가 혈탑 이급무사의 지위이지 않는가? 강호 정세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는 상관안의 눈빛이 그들을 놀라게 한다는 것은, 상관안 의 무공이 강호 어디에 가도 절정이 되는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었다. "으으……!" 상관안이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 때였다. 홍의인들이 눈치를 살피다가 한순간 기합 소리를 내며 양 소매를 힘차게 흔드는 일이 벌어 졌다. "이얏! 쓰러져라!" "혈탑의 금법(禁法)에 따라 저승으로 보내 주겠다." 우르르릉-! 네 개의 소맷자락이 펄럭이는 가운데, 소털같이 가는 독침이 검은 구름을 이루어 상관안의 상반신을 뒤덮었다. 파파팍-! 수백 수천 개의 독침(毒針) 하나하나에는 황소 열 마리를 즉사시킬 수 있는 맹독(猛毒)이 들어 있었다. 만천독침(滿天毒針). 천녀교가 자랑하는 암기술의 하나인 바, 이제껏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구명지술이다. 상관안의 몸이 독침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혈탑고수들이 암습에 성공했다 여기며 회심의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고약한 놈들!" 사자후(獅子吼)와 함께 상관안의 몸을 향해 가던 독침이 방향을 되돌려 홍의인들 쪽으로 향 해졌다. 독침이 허공을 가르는 기세는 홍의인들이 쏘아 냈을 때에 비해 십 배 빠른 속도로 되돌아갔 다. 파파팍-! "으악!" "크으으으……!" 홍의인들 중 오른쪽에 있는 자는 고슴도치가 되어 즉사하며 순간적으로 혈수(血水)로 화했 고, 왼쪽에 있는 자는 팔을 거머쥐고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케에에엑……!" 그가 사지를 버둥댈 때마다 선혈이 울컥울컥 게워져 나와 산등성이를 덮은 눈을 벌겋게 물 들였다. '너무 모진 수법을 썼군.' 상관안은 자신이 일순의 격분을 이기지 못하고 반탄진기(反彈眞氣)를 쓴 결과, 한 사람이 죽 고 한 사람이 죽기 직전이라는 데 괴로운 마음이 되어 있다가 다 죽어 가는 홍의인 쪽으로 다가갔다. "크으윽……!" 홍의인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사지를 뒤틀 때, 상관안의 손이 그의 혈도 몇 군데를 점 했다. 그의 손가락이 비파줄을 퉁기듯 가볍게 움직여진 후, 홍의인이 고통에 찬 비명 소리를 중단 하고 그를 올려다봤다. "너… 너는 누구냐?" 그의 입술 사이에서 힘없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알 것 없다. 모르는 채 저승으로 가도록 해라!" 상관안은 퉁명스레 말한 후, 홍의인의 머리 위에 손을 댔다. 그리고 진기를 주입하자 홍의인 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빛깔이 아주 고운 붉은빛으로 되어 가며 그의 호흡 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 나를 구하다니?" 홍의인은 상관안이 태도를 바꿔 자신의 상세를 치료하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대로 누워 잔다면… 한 시진 후 건강한 몸이 되어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상관안이 부드럽게 말하며 그의 혼혈을 점하려 했다. 그들에게 반탄지기를 쳐낼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잠… 잠깐!" 홍의인이 한 손을 휘저으며 급박히 말했다. "왜?" 상관안이 혈도를 점하려던 손길을 멈췄다. "너… 너는 혹시… 신비의 항마령주(降魔令主)가 아니냐? 항마령주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강 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홍의인이 씹어 뱉는 듯 말했다. "항마령주라니… 금시초문이다!" 상관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음, 항마구검(降魔九劍)을 이끌고 암약해 천녀교를 뒤흔드는 항마령주를 모른단 말이냐?" "모른다. 그런 사람이 있었더냐?" "그… 그는 천녀교의 최고 강적이다. 혈… 혈탑의 고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현재 항마령 의 고수들뿐이다." "나와는 상관없다. 나는 사적인 원한이 있어 천녀교를 찾는 것이다. 천녀교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해 줄 수 있느냐?" "그… 그것은 어려운 부탁이다. 하… 하나, 말해 주겠다. 네놈이 안으로 들어가 죽기를 바라 고 있는 탓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칠 리 가면 협곡을 볼 수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 한 동굴 하나를 보게 될 것이다. 천녀교 총단(總團)은 그 안에 있다." "천녀제도 그 안에 있느냐?" 상관안의 눈빛이 섬전처럼 타올랐다. 홍의무사는 눈빛에 접하는 순간, 심령이 얼어붙는 충격을 느껴야 했다. '지… 지독한 놈! 이러한 놈이 강호에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홍의무사는 눈빛을 마주하기 두려운 듯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태… 태상교주(太上敎主)님이 어디 계신지 아는 사람은 단 한 분, 혈탑주(血塔主)뿐이시다. 태… 태상교주가 총단 안에 계시는지, 아니 계시는지는 나도 모르고 있다." "천녀제가 태상교주냐?" "그… 그렇다. 그… 그분은 중원무성을 죽인 후 천하제일인이 되셨고, 그 후 대권을 탑주에 게 전수하셨다." "……." "천하의 모든 일은 현재 탑주 손에 좌지우지 되고 있다." "탑주라는 무상마녀는 누구며, 어디 있느냐?" "그… 그것도 비밀이다. 나는 그 비밀을 알 수 있는 지위가 되지 못한다. 말해 주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 천녀교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밀 투성이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금 강호가 혈탑천하가 분명했으나, 그들의 수 와 세력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내가 살아 있고, 그들이 살아 있는 한 만나게 되겠지.' 상관안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다가 최후로 한 가지를 물어 봤다. "너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오는 길이냐?" "우… 우리 혈탑고수들은 한 가지 밀명을 받았다. 그… 그것은 하북쌍마(河北雙魔)의 종적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나… 나와… 네 손에 죽은 장소삼(張小三)은 그 임무를 완성하고 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총단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북쌍마!" 상관안의 검미가 위로 쳐들려졌다. '하북쌍마는 북천검사(北天劍士)를 죽인 거마들이다. 그들이 살아 있단 말인가?' 북천검사는 그가 의형으로 여기고 있는 이능운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들이 살았다면 의당 상관안의 손 아래 처단이 돼야 한다. 상관안은 천녀교가 그들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나 심상치 않은 이유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너희들이 하고 있는 짓은 모두 내 손에 결판날 것이다. 너희들이 하는 일을 모두 망가뜨릴 것이다. 천하기재를 삼천 일 간 우롱한 것을 천 배 만 배 보상해 줄 것이다.' 상관안은 천녀교가 일 년 사이 천하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알고 살기 를 돋우게 되었다. 그것은 흑의선인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는 살기를 흩트릴 수 없었다. '천녀교가 세웠다는 혈탑을… 천녀교 무리들의 더러운 피로 축축이 젖게 할 것이다.' 상관안은 속으로 외치다가 홍의인의 혈도를 점했다. "흑!" 홍의인이 답답한 숨소리를 내고 정신을 잃음과 동시에 상관안이 흑선을 그으며 북쪽으로 날 아올랐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