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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번째 금강경 13장
爾時에 須菩提-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當何名此經이며 我等이 云何奉持하리이꼬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是經은 名爲金剛般若波羅蜜이니
以是名字로 汝當奉持하라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佛說般若波羅蜜이
卽非般若波羅蜜일새 是名般若波羅蜜이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有所說法不아
須菩提-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如來- 無所說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이 是爲多不아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須菩提야 諸微塵은 如來說非微塵일새 是名微塵이며
如來說世界도 非世界일새 是名世界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十二相으로 見如來不아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不可以三十二相으로 得見如來니 何以故오
如來說三十二相이 卽是非相일새 是名三十二相이니이다
須菩提야 若有善男子善女人이
以恒河沙等身命으로 布施하야도
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하면 其福이 甚多하리라
* 낱자 공부
爾너 이 그 이 이 이, 時:때 시, 白:흰 백, 고백 백, 言:말씀 언, 當마땅 당, 河:물 하,
名:이름 명, 此:이 차, 經:경서 경, 我:나 아, 等:무리 등, 云:이를 운, 奉:받들 봉,
持:가질지, 名:이름 명, 爲:할 위, 金:쇠 금, 剛:굳셀 강, 般:돌 반, 일반 반, 若:같을 약
波:물결 파, 羅:그물 라, 蜜꿀 밀, 密빽빽할 밀, 以:써 이, 字:글자 자, 汝:너 여,
說:말씀 설, 卽:곧 즉, 非:아닐 비, 意:뜻 의, 如:같을 여, 來:올 래, 有:있을 유,
微작을 미, 塵티끌 진, 多:많을 다, 甚:심할 심, 諸:모두 제, 可:옳을 가, 가히 가,
相:서로 상, 모양 상, 見:볼 견, 得:얻을 득, 故:옛 고, 연고 고, 善:착할 선, 男:사내 남
女여자 여, 人:사람 인, 恒:항상 항, 河물 하, 沙:모래 사, 命:목숨 명, 布:베 포,
施:베풀 시, 復다시 부, 회복할 복, 受:받을 수, 偈:쉴 게, 게송 게, 他:다를 타,
福:복 복, 權권세 권, 방편 권, 저울 권,
* 단어공부
三十二相 ~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을 32가지로 설명한 것이다.
팔십종호(八十種好)는 미세하여 보기 어려운 것까지를 80가지로 설명한 것이다.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합쳐 상호(相好)라 한다. 부처님의 모습이며,
우리가 절에서 친견하는 불상의 형태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古人云, 如來擧身相은 爲順世間情이라 恐人生斷見하야 權且立虛言이로다
假言三十二하고 八十也空聲이니 有身非覺體요 無相乃眞形이로다 임제록 법문
* 해설
우리는 자기가 아는 것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자기가 경험한 것은 틀림없다고 우기고
보지 않은 것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한 가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 때 그 상황에서는 최선이지만
상황이 바뀌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반야 바라밀을 설하시고도
반야바라밀에 떨어지는 것을 경계하시고
고정된 상으로서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생생약동하는 진리의 모습으로 반야바라밀을 제시하셨습니다.
경을 받들어 가지고 최선을 다하되
고정된 모습의 경이 아니라
유와 무를 아우르는 전체
일시적이고 정적인 면만이 아니라 영속적이고 동적인 면을 아우르는
그래서 고정된 틀이 없는 우리의 본래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강연히 이름을 붙여 반야바라밀입니다.
이것이 법이다 라고 규정하면 바로 그 순간
죽은 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림자)
작기로는 미진이요 크기로는 세계라 한다면
미진과 세계도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게 아니고 보이지 않게 됩니다.
보이는 모습이 진체인 줄 알고 그것이 영원한 것인 줄 안다면 편견입니다.
부처님의 32상도 실상은 아니며 변하는 모습 중에 한 모습입니다.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도는 가운데 한 모습이라 알면 됩니다.
유에 마음이 머물러도 무에 마음이 머물러도 바른 것이 아닙니다.
※ 是經은 金剛般若波羅蜜
般若波羅蜜 중생 – 반야만이 극락에 간다라고 할 수 있다.
부처 – 그 상황에서 반야를 강조한 것이다.
微塵 중생 – 작은 티끌
부처 – 현 시점이 작다
三十二相 중생 – 부처님의 모습
부처 – 영원한 모습이 아니라 변하는 모습이다.
恒河沙等身命으로 布施
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
2023년 12월 19일 (화)
경계: 남편의 말
토요일 서울에서 저녁 식사 모임이 있어 어머님을 모시고 올라가게 되었다. 저녁 7시 30분이라 2시쯤 출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눈이 내려서 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좀 더 일찍 출발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점심 준비하여 먹고 있는데 시동생이 전화해서 눈이 오니 아무래도 더 일찍 출발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남편도 걱정이 되었는지 30분 앞당겨 출발하자고 한다. 나는 나만 준비하면 되니 되는대로 출발하자며 나름 서둘러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남편은 설거지는 갔다 와서 해도 되는데 하고 있다고 불평을 한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요란해졌다.
나도 나름 시간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는데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서운한 감정이 남편을 향하여 올라온다. 남편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럼 내가 속에서 화가 올라와” 하니 그걸로 화를 낸다고 타박을 한다. 경계를 당하여 경계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일어난 내 마음도 상대인 남편도 인정이 안 되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는 마음에 불편함이 그대로 남아있다.
교무의 의견
주말에 서울에서 가족 모임이 있으셨나 보네요. 마침 눈이 내려 다녀오시기가 쉽지 않으셨네요? 눈이 오는데 밤길을 운전하시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나름으로 시간을 보아가며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서두르니 마음이 불편하셨지요.
서로 이견을 조율할 때 그렇게 하면 되지 안 되지 하는 것은 평가입니다. 나를 누가 평가한다면 싫은 마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라는 말보다 나 지금 시계를 보면서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남편의 간섭이 잔소리라고 생각하면 듣기가 싫지만, 가족들을 잘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책임을 다하려는 남편이 고마울 거라 여겨집니다.
2023년 12월 19일 (화)
경계: 남편의 말
집에서 출발하여 아산쯤에 이르니 눈보라가 눈 앞을 가린다. 중부지방 눈 내림이 장난 아니게 온다. 어려운 운전 길을 생각하니 오늘 저녁 식사 행사에 대한 불만의 마음이 나온다.
“평일도 아니고 주말이니 지방에서 올라가는 거 생각해서 행사를 점심으로 해야 내려오는 길도 좀 더 편할 텐데 그런 걸 전혀 배려하지 못했네.”라고 남편에게 말하니, 점심으로 하려고 했는데 그 식당에 시간이 그 시간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럼 식당을 다른 곳으로 하면 되지 꼭 그 식당으로 해야만 했나? 하는 원망의 마음도 이어 나온다.
눈이 오는 날씨 경계를 따라 일어난 내 마음을 본다. 눈이 오지 않았다면 이런 원망의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경계임을 알아차리면 피은이고 보은이요,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것이 배은이라 했는데 그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다행히 일어난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상대의 마음도 보인다. 눈 오는 날씨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고 다만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교무의 의견
전주에서 저녁 식사를 위해 서울에 가시네요. 서울에 가족들이 살고 계시는가 봅니다. 점심과 저녁 식사 중에 한 끼를 같이 하는데 남편이 좋은 식당을 예약하셨네요. 점심은 예약이 꽉 차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셨네요. 지방에서 참석하는 것을 고려하면 점심이 좋으련만 저녁 식사라 돌아오실 일이 걱정되셨네요. 특히나 눈이 내리니 불안한 생각이 들지요?
가족 모임을 하는데 자리를 같이하는 것이 중요하지 식사메뉴는 중요한 것이 아닌데 음식이 좋은 그 식당이 점심 예약이 안 된다고 저녁 약속을 하여 어려움이 많다는 생각이 드셨네요.
사람마다 경험이 있어 각자의 생각에 좋을 성싶은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식당을 잡을 것이냐와 어느 시간에 모일 것이냐를 두고 남편은 식당에 중점을 두었고 나는 시간에 비중을 두셨네요.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는 정답이 없습니다. 틀리고 맞는 것이 아니라 나름으로 선택의 문제입니다. 마침 눈이 와서 그렇지 평상시 같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날씨를 미리 알기 어려우니 그리된 그것으로 생각하면 남편을 탓할 것은 없고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가 하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남편보고 일 추진하느라 애쓰셨는데 하늘이 덜 돕네요. 그렇게 말하면 어떨는지요?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눈이 와서 그 애씀이 드러나지 못했네요. 그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2023년 12월 19일 (화)
경계: 일어나는 마음 잘 보기
여성회 한 해의 마무리는 일일 찻집이다.
엄마 입원 중에도 시간 나는 대로 일일 찻집을 준비했고, 금요일 일일 찻집을 마무리했다. 일일 찻집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마음이 들었다. 교당이든 여성회든 일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일하는 사람들은 무슨 사정이 생겨도 잠깐이라도 들려 도와주거나, 일정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일이 우선이다. 그전까지는 그런 사람들이 불편하였다. 평삼심을 가지고 바라보기보다는 얍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그냥 무심으로 보아진다.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마음이 동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고, 정말 급한 일이니 미룰 수 없어 그럴 수 있고, 뭐든지 다 이유가 있음이 보여진다.
그래~~, 난 내가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지~~
교무의 의견
교당에서 임원을 맡아 일을 하면 겪게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여성회에서 일일 찻집을 하게 되었고 그 추진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으셨지요. 나의 말에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바로바로 도와주면 좋으련만 어렵게 말해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돕지도 않으면서 비난만 하는 사람도 있지요. 무슨 일이든지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는 일이 대의에 맞으면 다소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는 사람은 고맙지만 돕지 않은 사람은 미운 마음이 나지요. 일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으로서는 그 일이 최우선의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또 나름으로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교당 일이기에 중요하고 모든 교도가 동참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책임자의 생각입니다. 모두의 생각이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교도들이 교당을 찾는 것은 일하기 위하여 온 게 아니고 편안함과 행복을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와주면 고맙고 안 도와주면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교당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곳인데 일 때문에 미운 마음이 나고 불편해진다면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입니다. 그리고 교도들에게 부탁하는데 명령이 아니라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모두가 부처님인데 부처님께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탁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원기 108년 12월 23일 마음 일기
경계: 공부하고 있는 도반을 보면서
교당 다니는 걸 몇 년간 쉬다가 다시 교당에 찾게 되었다. 우리 자매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공심이 흔들려 다니던 교당을 모두 쉬었다. 나는 연원이 있는 교당을 가끔 다니기는 하였으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계속 손님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교당에 돌아와서 보니 나보다 늦게 입교한 교도님들은 어느새 단장이 되어 주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공부가 안되었다고
생각한 교도님이 법호도 받고 단장을 맡아 결산보고를 하는데 그동안 아주 당당해져 있었다. 순간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며 보냈나 돌아보았다.
나는 사회에서도 실력 있다고 평가받았고 팀을 맡아 잘 이끈 경험이 있기에,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교도님들이 단장 역할을 하는 것이 못마땅해 보였다. 한때 우리 자매들은 교당의 주인 노릇을 하며 열심히 다녔었다. 어르신들도 공부를 잘하는 형제들이라 칭찬하셔서 우쭐함이 있었고 교당 일에도 빠지지 않았었다. 나도 쉬지 않고 다녔더라면 법호도 받고 당연히 단장도 했을 텐데. 다른 교도들과 비교가 되니 교당에 가는 것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교당을 쉴 때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경계가 줄어드는가 했더니, 다시 교당에 드나드니 또 다른 경계가 올라온다. 어떤 자리에 있다는 상을 내고 싶어 하는 나를 알아차린다.
돌이켜 보니 나는 아만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교도님들은 교당이 문 닫을 위기에서도 생활 속에서 늘 유무념을 대조하며 심신을 연마하고 있었고 물질적 힘듦 속에서도 정신적 풍요로움을 찾으며 공부한 모습들이 보인다. 나는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서도 정신적 빈곤은 알아채지 못하고 늘 허덕이며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단장의 자리가 그저 얻은 게 아님을 깨달으며, 질투가 올라오는 마음을 돌리고 돌리면서 교당으로 가는 발걸음을 이어 가려고 나를 다독이고 있다. 오늘도 유무념 대조와 경전 사경을 하며 순간순간 내 마음의 요란함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한다.
교무의 의견
교당에 잘 다니시다가 몇 년간 쉬셨네요. 쉬시면서도 마음 한편엔 교당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한 번씩 다녀가시곤 하셨네요. 그러다가 교당에 다시 다니기 시작한 것은 숙세의 인연인가 봅니다.
교당에 다닐 때 다른 교도들을 보면 원불교에 대하여 잘 모르기도 하고 별 볼일 없이 보였는데 다시 와서 보니 법호도 받고 단장도 되고 마음공부를 하여 당당해진 모습을 보고 분심이 나셨네요. 나도 계속 다녔으면 저 사람들보다는 나을 텐데 그런 생각도 나고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지 하는 반성도 되고 그러면서 다시 공부하려는 마음을 내셨네요.
우리 중생들은 남과 비교를 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현재 사는 집에 부족함이 없어도 친구가 더 좋은 집에 산다면 부럽고 지금 나의 일에 큰 어려움이 없어도 옆 사람이 나보다 더 높이 올라 있으면 질투심도 나지요. 특히 학력이나 지혜가 나만 못한 사람이 나보다 잘 나가면 싫은 마음도 나지요. 누구나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누구나 다 평등합니다. 그런데 어느 방면에 투자했느냐에 따라서 그 방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이지요. 원래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영혼은 영원하고 육신을 비롯한 형상 있는 모든 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은 무한의 능력을 갖췄으니 방향을 잡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공부를 통하여 정신적 풍요로움 속에 낙원을 만들어 가기를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