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의 상처
최원혜
번개, 천둥 동반해서 소낙비 내리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큰아들은 그 시절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입대 하려고 대기 중인 때이다. 나는 생활 정보신문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 퇴근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큰아들이 경찰서에 소환되어서 갔다고 작은아들이 폰으로 연락이 왔다.
밖에는 소낙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는데, 마른하늘에서 웬 날벼락인가? 무슨 영문인지 알지도 못한 체 조급함을 누르며 집으로 향하였다. 운전하여 십오 분 걸리는 퇴근길이 나에게는 천 리길을 가는듯하였다.
두근거리는 가슴 안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작은아이가 울고있다. 그아이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그아이는 너무도 놀라 오줌을 지렸다고 한다. 놀란 토끼마냥 울어서 빨간 눈이 되어 있다. 내가 “형이 왜? 어디 가고 너 혼자 울고 있노?” 하였다. “엄마, 형은 경찰 두 명에게 양팔 잡아 붙들리어 데리고 갔어요.” 하였다. 순간 나는 앞이 캄캄 하였으며, 멍한 충격 속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작은아들이 "형은 집 근처 중동 파출소에 갔다."고 한다. 파출소로 걸음을 향하였다. 경찰에게 아들이 어디 있는지, 왜 잡혀 왔는지 확인하였다. 같은 동네 여자아이 집 대문 앞에서 성폭행 미수범으로 잡혀 왔다는 것이 이유이다. 중동 파출소에서 수성경찰서로 넘겨갔다고 한다.
그때 그 시절에는 피시방이 군데군데 있을 때이다. 큰아들과 작은아들 둘은 피시방에 있었다고 한다. 아들 둘이서 ‘스타크레프트’ 게임시합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여자아이랑 경찰 둘은 게임하고 있는 큰아들 양팔을 붙잡아 데리고 갔다고 하였다.
소낙비 퍼붓듯 생긴 황당한 일에 상처받았을 아들 생각하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때로 회상하면 눈물이 난다.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 사고 소식을 정녕 내 집에서 엄청난 사건이 터질 줄은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너무도 속상하였다. 가슴 아프고 기가 차고 또 어이가 없던 때이다.
그럼에도 혹시 아들이 청소년 시절이라 나모르는 사이에 사회 밖에서의 무슨 행동을 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라는 순간적인 생각이 번쩍 머릿속을 헤 집어 놓는다. 그러나 열두 번을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 할 것이라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기대해 본다. 우리 큰 아들을 평소 생활 생활에서 보았듯 믿는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나는 믿는다.
경찰서에 가서 아들을 보는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아들이 하는 말 “엄마 저 믿지요? 저는 아니에요, 억울하다.”고 하며 울고 있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죽을 것 같은 아픔이 왔다.
“무엇 때문에 무작정 우리 아들을 데리고 왔냐?”고 따져 물었다. 그이유는 안경, 슬리퍼, 바지, 옷 등 인상착의가 범인과 너무도 흡사하여 여자가 지목하였다고 한다. 세상에 어찌 이리도 아들에게 덮어씌우는 말인가? '세상에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는구나.‘ 생각하니 슬프기도 하고, 묘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큰아들은 예의도 바르고 항상 인사성도 밝아서 성당에 보내면 내 친구들에게 칭찬받아왔던 아이다. 나는 아들로 인하여 속 썩이어 보았던 일이 거의 없다. 어릴적 엄마가 직장 나가면 가끔 동생을 잘 챙겨주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퇴근해오면 둘이서 챙겨 먹은 밥그릇도 깨끗하게 설거지해 두고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참으로 착한아들이다.
그날은 고등학교 다닐 무렵 때이다. 같은 반의 친구 중 어떤 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렇게 "밖에서 좋은 일 하였다."고 하면 나는 기특하다고 용돈을 한 푼 더 올려주기도 하였다. 지난날이 그렇게 영화처럼 다가온다.
큰아들은 안경집 단골을 정하여 사장과는 친한 관계로 알고 지냈다. 큰아들 인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증인으로 안경가게 사장, 지인인 경찰과 두 사람 모두 경찰서로 소환되어 왔다. 두 사람은 증인으로서 이야기를 잘 말씀해주었다. 그들 증인의 덕분에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같았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밤 열두 시까지 조사가 끝나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나는"만일 혐의가 벗어나면 그 여자아이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때는 생각하였다.
한 해가 다시 흐르고 악몽 같은 사건을 잊고 지내고 있을 때이다. 성당 마당에서 지인인 경찰을 만났다. 아들 일로 또보자고 한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서는 범인을 체포 하였다고 하는 소식이었다. “항소 해야지?” 라고 하였다. 큰아들과 상의해보고 연락 드리겠다고 대답하였다.
범인은 아들과 나이도 비슷하다. 참으로 희한한 우연이다. 범인은 아들이 안경 샀던 그 가게 안경을 착용하고, 프로스펙스 슬리퍼도 아들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 또한 착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소낙비 퍼붓듯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큰아들에게 나는“너무 억울하고 괘씸하고, 놀란 가슴에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다. 온가족이 충격적이었으니 항소해라.”고 하였다. 큰아들이 하는 말은 “엄마, 그 여자가 얼마나 놀랐으면 착각해서 그리하였겠어요? 봐줍시다.”고 한다. 지인인 경찰에게 그대로 이야기를 전달하였다. “아들이 참 착하네요.” 라고 하였다.
지금 돌이켜 두 아들을 생각하여보면 그러한 상처를 입고도 각자 앞가림 잘하고, 큰아들은 남매 두어 키우고 훌륭한 두 아이 아빠가 되었다. 나는 내 아들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잘살아주어 늘 고맙고, 대견하며, 뿌듯함에 가슴 한가득 스스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갑자기 퍼붓다가 멈추었던 소낙비처럼 범죄사건의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다행한 일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랬다. 마치 검은 구름에 덧 씌어 소나기는 미친 듯 퍼붓다가 그치면 언제 비가 왔느냐하듯 깨끗한 맑은 하늘로 변한다. 젊은 날 한바탕의 소동에서 맑은 날을보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하 많은 사연들이 언제 어느 때 일어날지 모르는 소나기 같은 사건들이 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무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살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나 맑은 날일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은 언제나 행복은 찾아온다. (20250407)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
수정까지 잘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