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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강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기 - 10
<단락 1> 우리가 육체가 죽게 되면, 영혼은 땅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육체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슈아의 재림의 때에 부활하여 새로운 육체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를 성경은 예슈아의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화된다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3장 21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말씀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맛보아 성품이 변화되어진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신랑 하나님의 성품을 계속해서 배우며 영원히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1. 마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예슈아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이 땅에 있으면서, 예슈아의 영광의 형체를 보고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또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되었을 때에 땅과 하늘에 존재할 수 있게 되며, 영화로운 상태와 일상적인 상태에 모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죽으면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육체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1) 고전 15:35 (새번역) 35.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그들은 어떤 몸으로 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40.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영광과 땅에 속한 몸들의 영광이 저마다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행성 (태양, 시리우스 등)과 그렇지 않은 행성 (지구, 달, 수성, 금성 등)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육체는 빛을 발하지 못하는 행성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스스로 빛낼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가 부활하게 되어지면, 스스로 빛을 발하는 행성과 같이 빛을 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들의 영광이 다릅니다.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의 별들을 보면 밝기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주님을 사랑했으며, 어떻게 섬겼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광의 크기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활의 몸을 얻기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1) 단 12:1 (새번역)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마지막 때에 큰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되면, 미가엘 천사는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계 12:7).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중에 책에 기록된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단 12:1).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생명책에 기록될까요? 요한계시록 21장 27절에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말씀합니다. 속된 것을 행하며, 가증한 일을 행하며, 거짓말 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속된 것이란?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증한 일이란?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일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란? 거짓은 진리의 반대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생명책이란? 어린양 되신 예슈아의 피값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기록된 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단 12:2 ... 땅 속 티끌 가운데서 잠자는 사람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깨어날 것이다. 그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은 수치와 함께 영원히 모욕을 받을 것이다 3.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땅의 티클 가운데서 잠자는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입니다 (단 12:3).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뜻과 생각과 감정 가운데 적용하게 되어졌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 이들을 보면, 지혜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능력은 있는데 지혜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의 완전한 신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욥 9:4, 욥 36:5, 단 2:20, 롬 16:26-27).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지식의 영역)을 지혜롭게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세상 지혜를 가진 자에게 문제가 일어나면, 자신의 해결방안 (돈,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에게 문제가 일어나면, 먼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매달립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성격과 인물과 가정 배경이 좋은 사람이 아닌, 오히려 약하고 미련하고 가진 것 없고 천하고 멸시를 받는 이가 복음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둘째,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단 12:3). 세상은 우리에게 쉽고 편한 넓은 길로 가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넓은 길은 대중적인 세속의 길을 의미합니다. 넓은 길은 세상과 쉽게 타협할 수 있기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넓은 길 위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육체적인 소망을 위해 살아가며, 예슈아께서 요구하고 계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삶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들 (책망과 심판)을 간과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릴 생명으로 이끄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말씀합니다. 예슈아를 왕으로 영접한 이들의 삶은 처음에 제법 좋은 길, 넓은 길로 나아가다가 점점 좁아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슈아를 왕으로 영접한 처음부터 좁은 길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슈아를 믿는 순간부터 영적 전쟁에 들어가는 것이며, 그 시작은 우리의 육신의 자아와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는 내 마음에 계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슈아를 영접하였다면, 세상 이들과 함께 어울려 넓은 문, 넓은 길로 달려가는 삶을 멈추어야 합니다. 물론 세상 이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며, 기도해 주어야 하며, 5리를 가게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건네주는 삶을 살아내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예슈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게 되어졌을 때에 괴롭고, 재미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기쁨을 미리 맛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예슈아의 십자가가 아니라, 예슈아의 십자가가 없는 삶입니다. 즉, 예슈아를 영접하기 전에 취득한 세상의 가르침과 이성적인 판단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지, 하나님과 깊고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3)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제부터 우리의 관심사는 예슈아의 재림의 때에 육체가 부활하는 것을 넘어서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어떠한 강도의 영광을 누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의 삶을 만족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더 큰 영광을 얻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더 귀하고, 더 가치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 그것을 취하기로 결정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이유는 ‘더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경험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예슈아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단락 2> 2. 계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사도 요한은 예슈아의 이름을 전하다가 밧모섬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계 1:9). 이 때, 주님은 그에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오라,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라는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즉시 영의 이끌림을 받아 하늘 보좌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의 몸은 밧모섬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눈을 떴을 때에는 더 이상 감옥 안에 있지 않았며,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에스겔 37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37장 1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감옥이고, 외롭고, 힘든 고통의 시간이더라도 예슈아의 보혈로 마음과 감정과 생각을 씻고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향한 갈망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상황과 환경이 힘들다고 해서 나의 감정과 생각에 마음을 내어주기 시작하면, 어느 새 우리의 마음은 억울함과 불안함과 불평과 거절감으로 더럽혀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내 감정 사이에서 방황하는 두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1) 계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 보좌로 옮겨지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보기 시작합니다. 우리 또한 성령님께 사로잡히게 되며, 우리의 영안은 열리게 되어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눈이 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32절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땅을 거주민을 삼키는 땅으로 여깁니다. 약속의 땅을 싫어하고 믿음의 조상들의 유업을 이어가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14장 30절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말씀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10명의 정탐꾼과 같은 것을 보고 왔지만, 다른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안이 열린 사람은 눈에 보이는 환경과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1)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의 눈 앞에 닥친 문제들이나 질병, 재정적인 필요, 감정적인 문제 등에 사로잡히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릴 위해 행하기를 원하시는 엄청난 일들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싸인을 주실 때에 너무 세밀하게 들여다 보아서는 안 될 일들이 있습니다. 그저 전체적인 그림만 이해하는 게 좋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면, 겁을 먹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우리는 하늘의 신령한 것들에 시선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으로 돈을 벌고, 돈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즉, 재물에 노예가 되지 않고, 재물을 노예로 다스리는 삶 (믿음으로 사는 삶)을 훈련해야 합니다.
(2) 민 10:34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35.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그늘 한 점이 없고, 거칠고 힘든 광야에서 행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진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나타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안식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이 주는 안식은 조건이 갖춰져야 경험하는 일시적인 휴식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은 환경이 광야와 같을지라도 그 분의 영광 아래 거할 때에 우리는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안식의 히브리어 ‘샤밧’은 ‘샤바트 (멈추다, 쉬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멈춤을 두려워합니다.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더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며, 쉬는 것조차 불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참된 안식은 내 수고와 내 염려, 내 열심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멈출 때, 비로소 나를 덮으시는 하나님의 열하심과 영광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길을 만들려고 애를 쓰지 말고,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의 영광의 구름 아래로 들어가길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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