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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과 음식
1. 음식금기
한약을 먹으려면 이것저것 가리는 것이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음식이다. 방약합편에 나타나는 음식 금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 감초를 먹을 때는 돼지고기, 미역 다시마 김등 해산물을 가린다.
2) 반하를 먹을 때는 설탕
3) 우슬을 먹을 때는 쇠고기
4) 지황과 하수오를 먹을 때는 일체의 피가 들은 음식이나 파 마늘 무
5) 당귀를 먹을 때는 가루음식
6) 복령을 먹을 때는 신 음식을 가린다.
7) 또, 무릇 약을 먹을 때는 돼지 개고기와 기름기, 떡, 비린 음식, 삭힌 음식들을 가리고 생마늘, 생파, 무우, 과일, 미끈미끈하거나 뻑뻑한 음식은 많이 먹지 않는다.(<방약합편>)
'약방에 감초'라고 감초 안들은 약이 거의 없고, 당귀 지황 복령 등은 자주 쓰는 약인데 이들 약을 먹을 때마다 돼지고기 해물 설탕 파 마늘 무 가루음식 신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니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2. 음식을 가리는 이유
한약에 따라 음식을 가리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동양의학에는 기미론(氣味論)이 있는데 이는 한약에 차고 더운 성질(즉 氣)과 쓰고 떫고 짜고 맵고 신 맛(味)이 있어 이러한 맛과 차고 더운 성질에 따라 서로 몸에 작용하는 것이 다르다는 이론이다. 상한(傷寒 ; 몸을 차게 하여) 감기에 걸리면 폐가 차진 것이니 폐로 들어가는 매운맛과 찬 기운을 흩어버릴 수 있는 따뜻한 약 즉 신온(辛溫)한 약을 쓴다. 만약 반대로 찬(苦寒) 약을 쓰면 감기는 낳지 않고 더해진다.
음식도 본래 기미(氣味)가 있다. 예를 들어 쌀은 그 기가 따뜻하고, 보리는 차다. 돼지고기는 차고, 쇠고기는 따스며, 오이는 차고 무는 따스다. 그래서 다음(多陰)하여 몸이 찬 소음인이 보리나 돼지고기, 오이를 먹으면 더 차지게 되니까 안 좋다고 한다. 만약 속이 차서 인삼과 부자 등을 먹는 사람이 얼음과 맥주(성질이 차다), 오이나 보리를 먹으면 병이 빨리 안 낫게 되는 것이다.
약을 복용할 때, 음식을 가려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음식궁합이 있듯이 약에도 궁합이 있다는 사실이다. 새우젓에 돼지고기는 유명한 음식궁합중의 하나다. 당귀와 녹용 역시 유명한 약 궁합중의 하나다. 그리고 인삼과 쌀은 유명한 약과 음식 궁합 중의 하나다. 잘 맞는 궁합이 있으면 잘 안 맞는 짝도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잘 안 맞는 궁합이 위에서 열거한 예들이다.
3. 그대로 믿어야하나?
하지만 옛부터 전해 오는 음식과 약에 대한 궁합이론을 둘러싸고 가끔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그 이론의 정교성에 회의를 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몇 년 전 돼지파동이 일어났을 때,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돼지고기를 먹자."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었다. 이 때 일부 단체는 마치 돼지고기가 최상의 영양식품인 것처럼 각종 수치가 담긴 통계자료까지 제시하며 돼지고기 소비를 부추겼다.
특히 돼지고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제거하기 위해 강조한 사실중의 하나가 대학교수들의 입을 빌어 한약과 돼지고기를 함께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증명하기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과학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많은 표본을 선정하고,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문제가 된다는 한약을 복용시키고 주기적으로 신체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동의학적 개념인 음양한열허실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이 문제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돼지고기와 한약의 상관성에 대한 증명은 당분간 힘들 전망이다.
돼지고기는 중국사람 들의 주식에 가까운 식품이다. 중국의 소가 맛없는 물소라는 탓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더욱 좋아하기 때문에 식품시장에서 돼지고기는 소고기보다 더 비싸다.
돼지고기는 서민들이 즐겨먹는 지아오즈(餃子), 빠오즈(包子), 훈둔( )의 속을 채우는 재료다.
돼지고기 없는 천진 만두(티엔진 빠오즈)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돼지고기를 상식하는 중국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으레 중약(中藥 ; 중국에서는 한약을 중약이라고 함)을 사용한다.
중국 약방에 가면 중성약(中成藥 ; 중약으로 환이나 산, 정과 캅셀 등의 제형을 갖춘 약)이라는 것이 진열된 약의 대부분으로 양약보다 훨씬 더 많이 팔린다. 이렇게 중약을 즐겨 복용하는 중국사람들은 중약 먹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일이 없다. 중국의 병원에 일년 반 근무하면서도 한번도 돼지고기를 주의시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다만 질병의 종류에 따라 음식을 지도하는 것(신염에 단백질 음식 등)은 있다.
4. 가려야하나, 말아야하나?
만약 숙지황을 먹으면서 무를 먹으면 머리가 하얘지는 것이 사실이라면, 겨울이면 엄청나게 팔리는 쌍화탕(주성분이 숙지황이다.)을 먹고 무를 먹은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하얘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걱정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세지 않는 것을 보면 음식금기를 지켜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게 된다.
이 문제는 대체로 자신이 어느 체질인데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음식을 평생 먹지 말아야하나 먹어야 하나라는 문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여기서 제시하는 방법은 이렇다.
기본적인 음식 섭취 방법을 유지하자.
음식 섭취의 바람직한 방법은 "규칙적인 시간에, 식품종류를 고루 선택하여, 적당한 양을 먹는 것"이다. 즉 "불규칙하게 먹지 말고, 편식하지 말고, 과식하지 말 것"이다. 이 중에서 편식하지 말 것이 중요하다. 음식 중에는 따뜻한 음식, 찬 음식이 있지만 고루 먹으면 중화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음식을 고루 먹으면 음식의 한성, 열성이 중화되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물론 자신의 신체가 한열 음양의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친 상태(질병이 발생한 상태)라면 음식과 약을 가려먹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 체질과 음식 항에서 상론할 것이다.
약을 먹고 나타나는 작용의 차이는 주로 개인의 음양한열 균형상태가 어떠냐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잘 된 처방이라면 그 개인의 음양상태에 따라 지어져 있기 때문에 음식 역시 개인의 음양상태에 따라 조절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본 약국에서는 약과의 금기보다는 신체상태에 따른 음식지도를 보다 더 중시하고 있다.(이훤단비)
약이 덜 달여졌다구요?
1> "아니 무슨 약을 그렇게 성의 없이 달여 주세요?"
전화를 들자 며칠 전 약을 지어간 어느 고객의 항의소리가 쏟아진다. 약이 말갛고, 묽은 것이 덜 달여 졌다는 것이다. 이를 해명하느라고 진땀을 빼고 난 뒤, 정말 성의 없이 달이지는 않았나, 약을 달이는 과정에 미흡한 부분은 없었나 다시 되 집어 보았다.
달여진 약에 대해서 항의를 듣는 일 중에 성의 없이 달였다는 항의는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약에 이물이 많다는 항의는 가끔 듣는 일이다. 할머니 한 분은 약에서 가는 모래가 많이 나왔다고 한 밤중에 집으로 전화하셔서 "약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하셨다. 한약을 잡수시다가 이런 경우를 당하면 당연히 질문을 하고, 항의를 하는 것은 고객의 권리지만, 혹시라도 이런 일로 약효와 이훤단비의 성실성에 의심을 가지실까 하여 동약의 전법(煎法 ; 약달이는 법)과 관련하여 몇 가지 사실들을 설명 드리고자 한다.
2> 동약의 일반적 전법(煎法)
동약을 복용하는 방법은 전탕(煎湯)을 해서 먹는 방법과 산(散) 또는 환(丸)을 지어먹는 방법이 있다.
이 중에 탕을 먹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고 산이나 환을 먹는 경우는 적다. 환의 경우는 특성상 이미 제제화 되어 시판되는 약들, 예를 들어 우황청심환이나 천왕보심단이 비교적 친숙한 약들이다. 이런 환이나 산은 환자가 복용하게 되기까지 이미 완전한 가공이 이루어져 조성이나 형태에 의문을 가질만한 여지가 많지 않다. 하지만 탕의 경우는 환자가 직접 달여먹는 경우도 있고, 맛이나 모양이 여러 형태를 띠기 때문에 때로 환자의 의문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한다.
우선 동약의 전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약 달이는 기구.
전통적으로 도자기, 찰흙으로 만든 도기를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왔다. 현대적인 연구를 통해서도 도자기가 열을 골고루 전달하고, 화학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쉽게 식지 않는다는 특성이 밝혀졌다.
도자기가 없을 때는 화학적으로 안정한 스테인레스 용기도 사용이 가능하다. 단 구리, 철, 주석 등으로 된 용기는 사용해서 안 된다.
이들은 그 자체가 동약으로 사용되며, 성분이 전탕 속에 녹아 들어가 몸에 맞지 않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철 등은 동약의 일정 성분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불용성의 침전물을 형성한다. 이 때문에 철용기에 달인 약은 색깔이 변하고, 깔깔한 맛이 나거나 비린 냄새를 풍긴다. 이러한 화학변화는 인체에 유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 용기는 적극 피하여야 한다.
2. 동약을 달이기 전에 물에 잠시 담가 두는 것이 좋다.
동약은 대개 식물의 근(根), 경(莖), 화(花), 엽(葉), 과실(果實)을 건조한 상태이기 때문에 세포로 이루어진 조직을 가지고 있다. 이들 세포는 건조되면서 수분을 잃고 세포벽과 도관이 응축하고, 세포액이 응고되어 세포내의 유효 성분 역시 결정이나 무정형의 침전형태로 존재한다.
이 상태에서 바로 가열하면 약물 표면의 전분이나 단백질이 응고되어 유효성분이 용출되는 것을 방해한다. 반면에 물에 담그어 두면 건조된 식물 조직이 다시 수분을 흡수하고 삼투압이 높은 관계로 세포는 계속 팽창하여 심지어 세포벽이 부서지고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달이기 전에 물에 담가 두는 것이 좋다. 온도가 25-50℃되는 미지근한 물에 30-60분 정도 담가두는 것이 적당하다. 다만 여름에 너무 오래 담가두어 약이 상하는 것은 피해야 하고, 사향이나 아교 등 물에 담그면 안 되는 약을 담글 필요는 없다. 이런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끓는 물을 부어 약을 달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3. 깨끗한 물을 사용한다.
약을 달이는 물 역시 역대 의학가 들이 중시한 바이다. 동의보감에도 동류수(東流水), 정화수(井華水), 감란수(甘瀾水), 요수( 水 ; 빗물), 천수(泉水) 등 18종의 물을 소개하고 있다. 현대에서는 음용이 가능한 수돗물, 냇물, 샘물 등이 모두 가능한 것으로 본다. 다만 오래 끓인 물이나 장기간 병 속에 방치한 물 등은 적당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4. 물의 양을 정한다.
물의 양 역시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다. 만약 물의 양이 부족하면 약 중의 유효성분이 충분히 용출(溶出)될 수 없고, 지나치게 많으면 달이는 시간이 길어져서 일부 성분이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론상 약을 달이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은 약이 흡수하는 양 더하기 전탕 중 날아가는 양 더하기 달이고 난 뒤에 남는 일정양의 물이다. 임상에서는 여기에 환자의 상태(아이들은 약을 먹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약액이 적어야 한다.), 약물의 상태(뿌리나 줄기 부분은 잎이나 꽃 부분보다 물을 많이 흡수한다.),
약의 양(약이 많다면 물을 늘려야 한다.) 등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약을 넣고 눌러서 물이 손등에 올라올 정도(약 2㎝)가 좋다.
5. 불의 세기와 약 달이는 시간
불의 세기는 약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센불을 무화(武火), 약한 불을 문화(文火)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먼저 무화로 가열하고 다음에 문화로 달이는 방법을 쓴다.
발산약(땀을 내는 마황이나 소엽을 발산약이라 부른다.)이나 방향성 약(박하 등)은 오래 달이면 유효성분이 모두 날아가기 때문에 무화로 단시간 다려내는 방법을 쓴다.
약 달이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치밀한 조직을 가진 약물, 즉 조개껍질(모려, 진주모, 석결명 등), 거북이 등 껍질(구판, 별갑 등), 화석류(용골), 광물류(자석, 종유석, 대자석, 석고, 등)는 오래 달이고, 방향성(박하, 곽향, 소엽 등), 발산성(형개, 강활, 방풍 등) 약물은 단기간 달인다.
또 음혈(陰血)을 보하는 약물, 즉 지황, 산약, 산수, 구기, 하수오, 녹용, 녹각 등은 오래 달인다.
<중약학>에서는 감기약(마황, 계지, 방풍, 소엽 등이 주로 쓰인다.)과 같은 발산제는 20분(끓는 시간), 보약 종류는 40분, 부자나 용골 모려 같은 선전(先煎) 약은 한시간, 박하나 대황같은 후하(後下) 약은 5분에서 10분 정도를 권하고 있다. 물론 이 것은 앞서 침포(浸泡)를 한 약을 기준으로 끓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6. 재탕이 필요하다.
약이 달여지면서 동약 내의 유효성분이 물 중에 용출되어 나오는데, 이미 수중의 유효성분 농도가 높다면 동약 내의 유효성분은 더 이상 물 속으로 나올 수 없다.(삼투압 평형으로 해서) 때문에 재탕, 혹은 삼탕을 하면 동약내의 유효성분을 알뜰하게 우려낼 수 있다. 최근의 한 연구에 의하면 성분에 따라 재탕, 삼탕의 경우에 오히려 초탕보다 높은 농도를 나타내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재탕, 삼탕의 경우 맛이나 향기가 초탕보다 훨씬 덜한데 이는 아무래도 초탕 때에 가장 많고 다양한 성분이 용출되기 때문이다.
7. 무거리는 꼭꼭 짜라.
약이 달여지는 동안 수중으로 용출되어 나오지 않고 세포조직안에 갇혀있는 유효성분이 압력을 가해 짜면 나오게 된다. 실험에 의해서도 짜낸 약과 그러지 않은 약 사이에 많은 농도의 차가 있었다고 한다. 이 차가 대략 원방의 삼분의 일에 해당된다고 하니 짜지 않고 탕액만 마시면 약의 삼분의 일은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겠다.
8. 약의 종류에 따라 용기에 넣는 순서가 다르다.
이상에 설명한 것과 같이 약에 따라 달이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입약(入藥)방법은 선전(先煎 ; 앞서 달임, 모려 용골 등과 독성을 없애기 위한 부자 등), 후하(後下 ; 나중에 넣음. 박하 대황 등과 같이 오래 달이면 약효가 없어지는 것), 포전(包煎 ; 천으로 싸서 달임, 선복화 처럼 인후를 자극하여 구토를 일으키는 약), 영전( 煎 ; 따로 달임, 산삼과 같이 고귀한 약재), 충복(沖服 ; 약액에 타서 먹음. 망초 죽력 꿀 등), 양화( 化 ; 녹여서 먹음, 아교 녹각교 등) 등의 구분이 있게 된다.
3>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탕(煎湯) 기계
현재 한의원이나 약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탕기는 대부분이 스테인레스로 되어 있어 일단 용기의 조건을 만족시킨다 할 수 있다. 이 기계는 시간과 물의 양은 사용자가 임의로 조작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약의 상태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 또 수동식, 혹은 전동식으로 약을 짜낼 수 있게 되어 있어 손으로 짜는 것보다 더 알뜰히 짜낼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불편하기는 하지만 선전, 후하 등 약을 시간에 다르게 넣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전기를 사용하는 전탕기는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장치가 없는데, 전력을 절약하기 위해 약한 불을 사용하게 되어 있으니 문화로 시종 달이는 셈이다. 물에 담가두는 과정은 기계의 성능과는 상관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전탕기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전탕기 하나를 사용하여 대략 하루 3제 정도를 달일 수 있다. 만약 재탕을 하게 되면 2제도 달이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한의원이나 약국이 재탕을 하지 않고 약을 버린다는 게 전탕기를 사용함으로서 생기는 낭비로 생각된다.
중국은 전탕기가 보급되지 않아서 외래환자는 모두 자신이 직접 약을 달이고, 입원환자의 경우 병원부속 전탕실에서 약을 달여 준다. 역사가 백오십 년이 넘는 중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 중의 하나라는 구러우이위엔(鼓樓醫院)에서 실습할 때, 전약실에 가보니 의외로 지극히 후진적이었다. 가스렌지에 스테인레스 용기를 올려놓고 약을 넣는데, 약이 거반은 물위로 나와 있었다. 물론 의사들은 이러한 사실을 개탄하고 있었지만 전약실의 담당자들은 고칠 생각이 별로 없는 듯이 보였다.
뒤에 강소성중의원의 의사들이나 학교의 교수 중에 전탕기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 한국의 전탕기 회사와 연결해 주었는데, 아마 가격문제(한 대가 약 200만원, 포장기 까지 마련하면 400만원이며, 성중의원 같은 큰 의원에서 이를 사용하려면 수십 대를 매입해야 한다.)로 전탕기 수출에 성공하지는 못했었다.
4> 약에 따라 달여진 탕액도 달라진다.
자, 그러면 처음의 문제로 되돌아가서 약이 왜 덜 달여진 것처럼 되고, 모래가 나오는 일도 있는가 의문을 풀어보자.
이 문제는 주로 약재가 무엇이었는가를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약을 달이는 시간이나 가열정도는 대개 비슷하기 때문에 이 때문에 차이가 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훤단비약국에서 사용하는 전탕기는 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카운트되는데, 약에 따라 1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로 달인다. 보통은 한시간 20분 정도 달이는데, 이 시간은 앞서 <중약책>에서 권하고 있는 시간보다도 충분한 편이다. 그런데도 약이 말갛고 묽게 보이는 것은 주로 약재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氣)를 보하는 약(인삼 황기 백출 복령 오미자 등)은 달이면 말갛고, 혈을 보하는 약(지황 당귀 작약 천궁 구기자 하수오 등)은 달이면 탁하다. 앞서 항의를 했던 분은 비위기허(脾胃氣虛)로 음식이 적고 먹고 나면 소화가 잘 안 되는 분이었으므로 당연히 인삼과 백출 황기 등이 위주로 된 약이 쓰였다.
또 다른 한 분은 수습(水濕)과 음허(陰虛)가 같이 있어 먼저 온담탕(반하 백출 복령 감초 지실 죽여)을 쓰고 나중에 천왕보심단(인삼 단삼 현삼 천문동 맥문동 오미자 백자인 주사 당귀 생지황 산조인 복령 길경)을 썼다. 그랬더니 나중의 약을 드시고 나서 "이번 약은 아주 잘 달여졌데"하셨다. 아마 약이 진하면 잘 달여진 것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기(氣)는 탁하지 않다. 말간 모양의 보기약을 잡수실 때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기를 마신다고 생각하시면 좋다.
약에 모래가 나오는 것은 약재가 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아무리 씻는다고 해도 모든 석질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굴곡과 잔뿌리가 많은 황련이나 시호 같은 약에서 모래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 경우 수치과정에 세척되어 모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또 모래 모양의 약도 있다. 용골, 모려, 석결명, 자석, 대자석, 진주모 등은 달이고 나면 모래 모양의 가루가 약 중에 섞여 나온다.
그리고 모래가 섞이는 약 봉투는 맨 마지막 밑바닥의 것이 나오는 한 두 봉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약에 모래가 섞여 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진짜 모래일 경우 극히 양이 적을 것이고 많아 보일 때는 모래가 아닌 약일 것이기 때문이다.
5> 방부제와 잔류농약 문제
동약과 관련해서 자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보도가 바로 중금속, 방부제, 잔류농약 문제이다.
이런 보도를 들으면 세상에 믿을 건 하나도 없네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으셔도 좋다.
농약은 동약을 재배하는 농가에서 벌레를 방제하기 위해 뿌리고, 수입업자는 도중에 천연재료인 약재가 썩으면 안 되기에 방부제를 뿌린다.
중국을 드나들 때 한 번은 중국 쪽 동약 수출업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 얘기로는 중국 농민은 약재를 재배할 때 농약을 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않는다는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도 못한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 농민의 평균소득이 연간 200달러 였으니까 이 말이 수긍이 간다. 그들의 소득이 농약 사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니까.
아마 한국 쪽 농민이라면 농약을 쓰려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방부제 역시 자신들은 사용할 의도가 없는데, 한국측 수입업자가 요구하기 때문에 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중국 약재는 농약문제보다는 방부제 문제를 더욱 크게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중국이 경제가 발전하면서 안 쓰던 농약을 쓸지도 모르고, 상하지 말라고 방부제를 냅다 칠지도 모를 가능성은 어느 때나 있다. 그래서 복지부는 얼마 전부터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정부에서 지정하는 몇 군데의 회사에서 자체로 샘플링하여 중금속 방부제 잔류농약검사를 하고, 여기에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약재만 규정대로 만든 포장에 담아 유통시킨다는 것이다.
작년에 시행된 이 규정으로 해서 현재는 모두 이렇게 검사를 거친 약재를 쓰고 있다. 새 포장은 제약회사이름과 검사를 거쳤다는 인증이 붙어있으니 동약을 사용하시는 분은 이 포장을 확인하시고 사용하면 잔류농약 등의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 이훤단비는 물론 이러한 규정봉투에 들어 있는 약만 사용하고 있다.
복약방법과 시간
내킨 김에 약을 먹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전탕 약을 먹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하루 세 번, 한 번에 한 봉씩이다. 이것은 중약재 일일용량에 맞추어 만들어 저 지어진 것이다. 다만 위급한 경우 네 시간에 한 번 씩, 밤중에도 계속 복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망양(亡陽 ; 몸이 차지고, 구슬땀을 흘리며, 심장활동이 미약해지고, 설사 등이 있다.
흔히 쇼크라고 부르는 상태다.)증에는 독삼탕(獨蔘湯 ; 인삼만 달여 먹는다.), 사역탕(부자 건강 감초) 등을 쓰는데 대용량을 자주 돈복(頓服 ;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는다)한다. 대개 약은 일일 삼회 먹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달여 놓고 차대신 수시로 먹어도 좋은 약이 있다. 한 때 결명자차가 유행한 것이 한 예다.
풍한(風寒) 감기약은 먹고 나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땀이 나면 약 먹기를 그친다.
또 이들 약은 따뜻하게 먹는 것이 원칙이다. 대부분의 약은 따뜻하게 먹는다. 차게 먹을 때도 있는데 이 때는 열을 식히기 위한 목적으로 쓴다. 그리고 진한가열(眞寒假熱)에는 부자 같은 열약(熱藥)을 차겁게 먹고, 진열가한(眞熱假寒)에는 찬약을 덥게 먹는다. 또 구토가 심할 때는 미지근하면 구역질이 더해지므로 차게 먹는다.
식전에 약을 먹는 것은 약이 고농도로 위에 들어가 흡수를 좋게 한다.
특히 위장관 치료의 목적으로 쓰는 약은 식전에 먹는 것이 좋다.
또 보약은 일반적으로 식전에 먹는다. 식후에 먹으면 음식과 약이 섞여 위장에 대한 자극이 줄어든다.
따라서 자극성이 있는 약은 식후에 먹는 것이 좋다.
또 소식(消食 ; 소화) 건위(健胃)약도 식후에 먹는 것이 제대로 효과가 난다. 식간에 먹는 약은 식전에 먹는 것처럼 약이 충분히 흡수되게 한다.
특히 위장관에 작용하는 약, 구충제는 식간에 먹는다. 안정 진정약은 자기전 30분이나 1시간 전에 먹어야 효과가 충분히 발휘된다.(<중약학> 안정화 외, 인민위생출판사, 그리고 이훤단비 글)
약맛이 싱겁습니다.
1. 음식은 맛있어야하고, 약은 효과가 있어야.
지난 번의 <단비> 2호에서 약의 성상이 여러 가지로 달라지는 이유를 설명드렸지만 지금도 가끔 "약이 싱겁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못다한 부분, 약이 싱거워지는 이유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약이 싱거워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지난번에 말씀 드린대로 약재가 모두 맛이 박(薄)한 기제(氣劑)일 경우이고, 또 물론 약을 조금 넣고 물을 많이 넣었을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약이 싱겁다고 불평하시는 분들은 후자의 경우를 의심하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개업하면서 한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고객이 지불하는 액수 이상의 대가를 돌려드린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 의해 혹시 약을 먹고 불량반응이 일어나거나 약효가 미약한 경우는 무료로 재투약하고, 고객이 요구하는 경우 환불까지 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약효에 저의 모든 기량을 검증받고자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약량을 고의로 축소한다는 것은 상상한 적도 없습니다.
2. 무압력 추출기
약량을 충분히 쓰는데도 불구하고 약이 싱거워 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사용된 약재가 맛이 희박(稀薄)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 이유는 최근에 개발된 무압력추출기라는 것에 있습니다.
무압력 추출기는 약을 다리는 기구가 말 그대로 압력이 없는 상태에서 약을 다리는 것이지요.
이것은 이전의 전탕기가 압력솥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1-2Kg/㎠의 압력으로 다리던 단점을 보완한 기계입니다. 압력이 있다는 것은 약의 증기가 분출되지 않는 것이므로, 자연히 약재에 들어있는 휘발성 성분이 모두 약탕에 잔존하게 됩니다. 무압력 추출기는 증기를 계속 내보냄으로 약재의 휘발성 성분이 일부 날아가 버리게 되므로 상대적으로 약탕의 맛이 엷어지구요. 그래서 이 무압력 추출방식으로 약을 달일 때, 가끔 고객으로부터 "약이 싱겁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휘발성 성분이 날아가는 무압력 추출기를 쓰는 것은 전래(傳來)의 약달이는 방식, 즉 창호지 하나로 약탕을 덮고 약을 달이던 것과 유사한 조건을 만들려는 의도에서입니다. 무압력 추출기는 증기가 날아가지만 활짝 열려진 것은 아니고 창호지 역할을 하는 냉각순환장치가 있어서 증기의 일부는 다시 솥으로 돌려보내는 장치가 있습니다.
3. 휘발성 성분의 역할
이처럼 약재 속에 들어 있는 휘발성 성분이 잔존하는가 날아가 버리는가에 따라 약 맛이 달라지는데, 그러면 약 맛은 둘째로 하고, 과연 휘발성 성분을 제거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이 좋을까요? 무압력 추출기를 연구한 목적은 오랜 동안 검증된 옛날 방식을 가장 좋은 방식으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호지가 있어서 일부는 남기고 일부는 날아가게 하는 옛날방식을 말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정답은 '약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대답입니다. 만약 유효성분이 휘발성인 방향성 약재, 예를 들어 박하, 소엽, 강활 등 향기가 있는 약재라면 모두 날려보내서는 안 되겠지요.
반대로 휘발성 성분을 날려보내야만 하는 약재, 예를 들어 세신 같은 경우는 증기가 날아가도록 달여야 합니다. 만약 세신의 휘발성 성분이 잔존한다면 호흡중추를 마비시켜 심하면 사람을 죽게까지 할 수 있습니다. 또 일부 약재의 방향성 성분은 역한 냄새를 가지고 있어 비위를 거슬리게하여 토하게 하거나, 설사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처방에 세신과 같은 약이 들어있다면 날아가도록 달이고, 박하가 들어있다면 날려 보내면 안 되는데, 그러면 세신과 박하가 같이 들어가면 어떻게하나요? 이 때는 먼제 세신을 넣고 날려보내다가 나중에 박하를 넣고 잠시 달이는 식으로 해야합니다. 그리고 휘발성 성분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다른 약(유효성분이 수용성인)들은 어떤 방식이든 세신이나 박하등의 약과 함께 달이는 방법이구요.
그러므로 고객여러분께서는 혹 약이 싱겁다고 느끼시더라도 "아 이것은 휘발성성분을 제거하기 위한 무압력추출기로 달인 약이군"하고 하고 여겨 주셨으면 합니다.(이훤단비)
여기는 어디 약을 쓰나요?
1. 신토불이
자주, 고객으로부터 "여기는 어디 약을 씁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를테면 국산약재를 쓰는가 주로 중국산이 위주인 수입약재를 쓰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늘 애매하다. "한국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약도 있어서, 국내산 약재와 수입산을 함께 씁니다."라고 대답하지만 이 역시 한약의 실상을 말한 것은 아니니 그렇다.
"저희는 국산 약재만 씁니다."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국산약은 몇가지 소수만 생산되므로) 처방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뜻이니,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어디 약을 쓰는가 하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매스컴에서 요란한 신토불이, 수입산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보도에서 연유할 것이다. 실지로 수입산이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면 국산약만 쓰는 것은 과연 좋기만 할까?
문제만을 따지고 보면 약만이 아니라 식품도 마음 놓고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원하지 않는 작용 - 부작용으로 치면 병원에서 사용하는 양약은 한약보다 훨씬 더 문제가 많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식품과 약을 먹는 것은 식품중의 농약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이고, 양약은 부작용보다 치료작용이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한약 역시 이와 같은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약의 부작용도 때로는 무섭다. 여러 가지 질병, 예를 들어 고혈압 중풍 당뇨 간염 간경화가 있는 사람이 한약을 잘못 먹으면 병세가 심각하게 악화된다. 이들 병은 음양(陰陽) 정기(正氣)가 손상되고, 한열(寒熱)이 편중된 상태인데, 만약 양병(陽病 ; 고혈압 당뇨 간염 등이 모두 火와 관련이 있는 양병이다.)에 열약(熱藥 ; 인삼 녹용)을 먹으면 당연히 중양(重陽 ; 兩陽이 相搏)이 되어 사화(邪火)가 방분(放奔 ; 멋대로 날뛰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작용이 나는 것은 일부 병원 의사들의 견해처럼 모든 한약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맞지 않은 약을 먹었기 때문이다. 맞는 약만 먹으면 병원에서 좀처럼 치료하지 못하던 간염 고혈압 등이 치료된다. 그러므로 동의사의 역할이야 말로, 환자의 상태를 명확히 파악해서 증(證)에 맞는 한약을 선택하는데 있다.
2. 한약을 어떻게 선택하는가
한약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증(證 ; 오장육부의 음양한열허실)에 맞는 처방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동양의학 최고의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중경(中景)이 이법방약(理法方藥)을 동의핵심 내용으로 말했지만, 병리(病理)를 따져보고, 치법(治法)을 세우는 것도 결국 방약(方藥)을 구하기 위해서이며, 실제로 치료작용은 방약(方藥)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에 맞는 처방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방대한 양의 지식 즉 기초이론(한방생리) 진단학 동약학 방제학(이상 기초 4문) 내과 외과 부과 소아과(이상 임상 주요 4문) 또 피부과 이비인후과 안과 남성과 온병(전염병) 등에 관한 신구 서적을 섭렵한 뒤에, 다시 수년간 혹은 수십년 간의 임상경험을 통해서야 점차 환자의 상태에 근접하는 처방을 찾아 낼 수 있게된다(그래서 오래 살아야 명의가 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기서 다 말할 수도 없고, 또 주제도 아니다. 우선 증에 맞는 처방을 구성했다고 한다면, (산지가 다른)약재를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주제이다.
3. 향약의 연구
<단비> 1호에서 부여산 인삼을 금산에 옮겨 심는다든가, 금산산 인삼을 부여에 옮겨 심을 때, 다시 성장하면서 그 지방의 특성을 가지게 된다고 하였다. 이렇듯 식물은 땅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니 동일한 식물이라 할지라도 각기 자라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라는 추측은 얼마던지 가능하다.
하지만 다행히 동일한 식물이라면 산지에 따른 약효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중국인들이 서술한 중국서적의 용법(중국에서 중국약을 사용한 경험)대로 한국산 약을 사용해도 대체로 같은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동양의학에서 중국인의 서적은 한국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동의보감>도 기실 내용은 중국서적의 인용이 절대다수이다.
향약(鄕藥)이라고 불린 국산약제에 대한 연구, 즉 한국의 독자적인 본초학은 고려때 발간된 <향약고방> <향약구급방> 그리고 조선시대의 <향약채취월령> <향약집성방> 등을 통해 알아 볼 수 있다. 이렇게 향약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본래 수입만으로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국내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임상에 활용하려는 의도에 기인한다. 당시에는 수입약재가 국산약재보다 훨씬 비싸서 일반인이 사용하기에 어려웠다는 점이 <향약집성방>의 주요 출판동기다.
신토불이를 외치는 지금 국산약재가 수입약재보다 훨씬 비싼 점에 비하면 아이러니다.
4. 중국산 약재와 한국산의 비교연구
당시 중국약과 국산약재의 비교는 가격문제만이 아니었다. 세종 3년, 최윤덕과 황자후가 중국에 가서 중국약재를 다량 수집한 후 국내에 돌아와 국산약재와 비교하였다. 그 결과 향약인 단삼, 방기, 자원, 후박, 궁궁(천궁), 통초, 독활, 경삼릉이 중국약에 비해 효과가 떨어졌고, 왕불유행 단삼 자원 지각 천연자 복분자 산수유 경천 등은 이름만 같고 형태는 다른 것으로 판별되었다.(<본초학>)
이렇게 산지에 따라 형태는 같지만 약효가 다른 문제와, 이름이 같으면서 형태가 다른 (실지로 다른 약) 문제는 현재도 여전히 존재한다. 1999년 2월 대한약사회에서 주관한 지도자 교육에서 충북약대의 이경순 교수가 발표한 <한국 중국 일본의 공정한약 비교>논문에 따르면 각국 약전에 수록된 500여종의 생약중에서 서로 다른 식물은 86종에 다다른다. 그 중에 과(科 Familly)가 다른 식물이 5종으로 청대 독활 백부자 속단 필등가 삼릉이 그것이다. 조선초기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다.
과가 다르다면 이미 완전히 다른 식물이기 때문에 형태와 성분은 현격한 차이가 있게된다.
결코 동일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원칙적으로 말하면, 중국 독활은 약효를 떠나서 한국에서는 약이 아니다(전혀 다른 식물이므로. 중국독활은 미나리과의 Angelica pubescence. 한국독활은 오가피과의 Aralia cordata). 하지만 한국에서 독활을 KHP에 수록할 때 한국 독활의 효용과 용법에 대한 독자적이고도 충분한 연구 확인을 한 것이 아니어서(실은 중국 독활을 설명한 중국 서적을 근거로 하였기 때문에 CP와 효용이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다.) 무조건 한국독활만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5. 산지의 차이는 작은 문제?
이 외에도 속(屬 Genus)이 다른 것이 32종으로 강활 계혈등 고본 사상자 와릉자 왕불유행 전호 지실 천궁 구인 등이다. 이 역시 과가 다른 생약과 정도의 차이지만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종(種 Species)이 다른 약은 당귀 백출 창출 강활 강황 경분 계심 계지 고목 고본 곽향 구판 나도근 맥문동 백두구 백부근 백수오 사삼 산초 상기생 자소엽 숙지황 애엽 오가피 오령지 우슬 울금 인동 등의 49종이다.
종이 다른 정도면 대개 형태나 성분상에 큰 차이가 없으므로 동일한 약재로 인정된다. <중약학>에서도 많은 약이 "OO이나 OO" 혹은 "OO 및 동속(同屬)의 괴근(塊根)"하는 식으로 정의되어 있어 한 약이 반드시 한가지 식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종이 다른 약 중에서 한가지 언급해야 할 문제가 당귀(當歸)다. 裸국산 당귀는 Angelica sinensis, 일본산 당귀는 Angelica acutiloba로 phthalide 계의 성분이 있는 등 서로 유사성이 인정되나 한국산 당귀는 Angelica gigas로 phthalide는 없고, coumarin 계의 성분이 들어 있다.
이 때문에 한국산 당귀를 중국산 당귀와 동일하게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또 사삼은 중국산이 Adenophora tetraphila(남사삼), Glehnia littoralia(북사삼)인데 비해 한국은 KHP에 A. tetraphila의 변종(var japonica)인 잔대만을 규정하고 있는데다 한약시장에서는 더덕(Codonopsis lanceolata)이 사삼으로 유통되고 있다. 효능이 확연히 다른 것은 물론이다.
우슬은 중국에서는 간장 신장을 보하고 근골을 강하게 하는 효능이 있는 Achyranthes bidentata(회우슬), Cyathula officinalis(천우슬)과, 회우슬과 동속이기는 하지만 보간신 강근골 작용이 없는 Achyrantes longifolia(토우슬)로 구분하고 있다. 한국에서 우슬로 규정된 것은 Achyrantes japonica인데 이것은 토우슬과 가까운 식물이라 한국산 우슬을 허리다리를 튼튼히 하려는 목적으로 쓴다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과, 속, 종이 다른 약재가 혼동되고 있는 것이 한약시장이라면, 중국산이니 한국산이니 따지는 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식물에 대한 명백한 구분을 하는 것이 보다 더 시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시바삐 기원식물에 따른 약재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연구해서 한국산과 중국산의 약효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신토불이를 외치기 앞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 연구는 충분치 않다.
6. 무지한 질문
인삼은 한국과 동북삼성, 미국 등에서 재배되거나 채취된다. 여러번 신문 보도에 미국삼(중국에서는 서양삼 혹은 화기삼이라고 부른다. 화기는 삼의 포장에 그려진 미국국기가 꽃그림의 깃발같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의 약효가 한국삼에 비해 떨어진다는 식의 단순비교적인 기사를 보았다. 하지만, 실은 인삼이 기(氣)가 미온(微溫), 미(味)가 감(甘)하고 미고(微苦), 성(性) 보익(補益)비폐(脾肺), 원기를 보하고, 생진지갈(生津止渴), 안신(安神)증지(增智)하는데 비해, 미국삼은 기(氣)가 한(寒), 미(味)가 미감(微甘)에 고(苦), 성(性)은 보기(補氣)양음(養陰), 청화(淸火)생진(生津)하니 각기 그 효용이 분명히 다른 약재다.
즉, 보중익기탕이나 십전대보탕 등 원기를 보하고자 쓰는 처방에서는 반드시 한국산 인삼을 써야 하지만, 더위로 땀을 많이 흘려 입이 마르고 찬물을 찾으며 기운이 없을 때는 미국삼이 주요 약이 되는 <온열경위> 청서익기탕을 써야 한다. 이렇게 서로 용처를 달리해서 쓰는 것이 산지에 따라 단순하게 구별하는 것보다 더욱 합리적이다.
지황은 수치(修治)에 따라 생지황 건지황 숙지황으로 나눈다. 이들 역시 서로 성(性)과 기미(氣味)가 달라 용법이 다르다. 숙지황은 구증구포(九蒸九曝 ; 아홉번 쩌서 아홉번 말림)를 원칙으로 하지만, 시중에는 이증(二蒸) 정도의 숙지황이 유통되고 있다. 이 것 역시 "반드시 구증(九蒸) 숙지황을 써야된다."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각기 용법이 다르니 단순비교는 적당치 않다. 이증 숙지황은 소화가 잘 안되 포만감을 주므로 식욕이 좋은 비만환자를 치료하는데는 구증숙지황보다 이증 숙지황을 먼저 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산과 중국산이 어느 것이 좋은가하는 문제에 답하기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양의학은 수증치지(隨證治之 ; 증에 따라 약을 쓴다)가 치료효과를 좌우하니 만큼 무엇보다도 병증에 적당한 약을 골라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위에 말한 인삼의 예에서 처럼 어떤 일증을 전제하지 않는한 한국산과 중국산 중에 어느 것이 좋은가 하는 식의 단순한 평가는 불합리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7. 산지를 표시하는 이유
옛부터 약재의 이름 앞에 당(唐), 경(京), 토(土)를 붙여 불렀다. 예를 들면 당포부자, 경포부자, 토천궁 등이다. 당이라 함은 중국산을 말하고 토라함은 국내산을 말한다.
중국에서도 산지에 따라 이름을 붙인다. 앞에서 말한 천우슬의 천(川)은 사천(四川)을 뜻한다.
특히 어느 산지의 약재가 효과가 우수할 때 그 산지의 이름을 붙이는 영예를 준다. <단비> 2호
화타전에 나오는 호작(毫芍), 호국(毫菊 ; 호는 화타의 고향인 호현을 의미한다. 즉 호현에서 산출되는 국화)이 그 한 예다. 홍화는 티벳(西臧)산이 최고다. 그래서 장홍화라면 여타 홍화보다 몇배의 값이 치인다.
고려 목종 때의 문헌에도 춘천지방의 약재가 최량품이라는 기록이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산지에 따른 약재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개성이나 금산 풍기가 인삼의 주산지가 된 것도 해당 지역인삼의 약효가 우수한 것과 관계있을 것이다.
이렇듯 산지에 따라 약재의 품질 차이가 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일률적으로 모든 약재가 어느 지방것이 좋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인삼은 한국산이 좋지만, 홍화는 티벳산이 좋고, 황련은 사천산이, 패모는 절강산이 좋다.
8. 그리고 많은 문제
이렇게 약재의 약효와 관련해서 위에서 말한 기원식물의 문제, 산지의 문제 외에도 다시 재배방법, 채취시기(<단비> 2호의 "삼월 인진 사월 호(蒿)"), 수치(修治 ; 채취된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손질하는 것, 건지황 숙지황)방법이 약효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는 자연산 채취는 거의 없고, 재배가 대부분이니 만큼 예전에 쓰던 자연산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검토해야 하는 것도 동양의학의 한 숙제다. 늑대가 개가 되듯이 자연상태의 품종과 사육 품종은 왕왕 현저한 유전형질에 변화를 보이는 만큼 이 문제는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약재로서의 가치는 자연산이 반드시 낳다고 속단할 수는 없으니까 한약이 재배된 것뿐이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자신이 요구하는 목적대로 재배하는 식물의 품질을 개량해 간다.
반하와 부자는 수치를 거쳐 독성을 제거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수치방법에 따라 반하는 법반하, 청반하, 명반하 등으로 나누는데 이들 사이의 약효차이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은 숙제중의 하나다.
한약과 관련한 이런 숱한 문제는 대부분 연구환경을 갖추고 전문적으로 연구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특히 대학이나 대규모 병원에서에서 많은 인원이 장기적으로 연구해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으므로 영세한 소규모의 일반의사들이 해야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이훤단비 글)
출처 : 시골로간 꼬마산약초 원문보기▶ 글쓴이 :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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