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베스트셀러였던 『바보 빅터(Victor the fool)』의 공동 저자인 레이먼드 조(Raymond Joe)의 또 다른 소설 『관계의 힘』 첫 머리 프롤로그(prologue)에서 노인이 주인공에게 들려준 다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실화란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면 이들 자매의 건강하게 성장한 모습들이 나온다고들 하더만...
1995년 미국 메사추세츠 메모리얼 병원에서 잭슨 부부의 아기들인 쌍둥이 카이리와 브리엘이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두 자매는 예정일보다 12주나 일찍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몸무게가 1kg 밖에 되지 않은 미숙아였다. 게다가 동생인 브리엘은 심장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기에 의사들은 브리엘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 예상했다. 아기들이 인큐베이터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잭슨 부부는 물론 의료진들도 가슴 졸이며 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다행이 언니 카이리는 날이 갈수록 건강을 되찾아 갔지만, 동생 브리엘은 의사들의 예상대로 점점 쇠약해지더니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고 단념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미처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아기의 운명을 생각하며 잭슨 부부는 한없이 눈물을 쏟으면서 한편으론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지금까지 브리엘을 돌봐 왔던 게일이란 간호사가 카이리와 브리엘을 한 인큐베이터에 넣어서 둘이 같이 있게 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게일의 제안을 들은 의사들은 의료 규정에 어긋난다며 처음에는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게일 간호사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쌍둥이를 한 인큐베이터에 눕혀둔 해외의 사례를 들면서 애원함에 따라 결국 담당 의사와 잭슨 부부의 동의를 얻어내게 되었다.
얼마 뒤 브리엘의 몸에 연결된 기계에서 위험 신호인 요란한 경고음이 나자 게일 간호사는 재빨리 언니 카이리를 인큐베이터에서 꺼내 죽어가는 동생의 인큐베이터 속에 눕혔다. 그러자 그 작은 공간에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언니 카이리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아픈 동생을 꼭 껴안은 것이다. 작은 몸뚱이들의 포옹을 놀라운 눈으로 지켜보던 의료진도 곧 더 놀라운 일을 겪게 되는데, 자매가 포옹하고 있는 사이에 위험 수위에 있던 동생 브리엘의 혈액 내 산소 포화도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의료진은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킨 줄 알았지만, 다른 수치들도 차츰 정상으로 돌아오고 그때까지 거친 숨을 몰아쉬던 브리엘이 숨을 고르게 쉬자 자신들이 믿을 수 없는 기적의 순간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브리엘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의학의 힘이 아니라 자매라는 관계의 힘으로 말이다(한국경제신문사 간행, 『관계의 힘』 pp.10~12).
늘그막에 수도권에 올라와서 건강이나 좀 챙겨야지 함서 고교 등산 모임인 이일회(뭐 2주째 일요일에 모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지만 내가 와서 봉게 두 번째 토요일에 모이더만)의 정기 산행지인 남한산성에 갔었는데 거기서 회장인 K군을 처음 만났다. 비록 고교 시절엔 안면이 없었던 얼굴이었으나 첫 인상은 흰 머리에 깨끗한 얼굴이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은 얼른 알아보았지만, 오랜 세월 등산 모임을 이끌어 온 관록이랄까 인품은 그날 만난 몇 시간 동안 능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여기서 느꼈던 게 바로 관계의 힘이었다. 갓 태어났지만 언니가 안아주니 죽어가던 동생이 살아난 기적을 보여준 것처럼, K군은 산길을 걷는 중이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중이든 어떤 순간에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선 머리를 끄덕이거나 동조(同調)의 추임새를 넣으면서 완곡한 동의의 표시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참으로 쉽지 않은 그만의 철학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60여 년의 오랜 세월 동안 각기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생활한 그들 모두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해 준다는 게 어디 웬만한 배움이나 사유(思惟)의 결과로 체화(embodiment)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21기 우리학교 모든 동기들이 그를 진정 이일회 회장으로 인정하고 산행의 즐거움을 기꺼이 함께 누리고 있지 않을까 한다. 관계의 힘이 위대하다는 생각은 위에서 예를 든 카이리 자매의 기사회생에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지만, 자기 주장이나 의견을 한 번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호응하는 K군의 철학은 배울 점을 넘어 어쩌면 무섭기까지 한 게, 문득 돌아본 나의 삶이 모래 위에 쌓은 성맹키로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관계의 성이 아닌가 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