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지손가락으로 하아 입김을 불어 서리가 내린 창에 글씨를 쓴다.
지워 질 때쯤 다시 하아~ 입김을 불어 다시 쓴다. 창 밖으론 나를 지나치는 시커먼 어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어느 것의 풍경도. 도로의 길도 보이지 않는다.
유리창에 뿌옇게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차가워진 손끝을 바지에 슬쩍 훔치고.
의자에 엉덩이를 쑤욱 밀어내며 힙을 의자 끝에 느슨하게 걸쳤다. 흔들리는 버스 안. 작게 나오는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익숙하게도 들었던 헨델의 ‘사랑바드가’ 귀에 들어온다. 이만큼 인간의 절망을 잘 표현한 음악이 있을까.
느슨하게 걸쳐두었던 엉덩이를 긴장시켜 의자에 바짝 붙인다. 창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유심히 바라본다.
흐릿하게 내 얼굴의 윤곽이 보인다. 옷소매를 끌어 창을 닦고 더 가까이 얼굴을 갖다댄다.
손으로 창에 비친 내 얼굴을 더듬어 간다. 이마를 지나고 눈에서 한번 머물렀다가
천천히. 천천히 코를 타고 입으로. 다시 창은 서리가 내려 내 모습을 뿌옇게 덮어버렸다.
차가워진 손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만지작거리는 수첩을 꺼내 펼친다.
늙은 냄새가 나는 누렇게 변색된 종이엔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 698-8번지 ’.
유령 같은 어둠을. 한 겨울의 얼음 같은 바람을 가르며 그곳으로 가고 있다.
녹색 철제 대문이 삐그덕 하며 열린다. 할머니는 새끼들의 저녁식사를 위해 읍내를 한바퀴 돌고 들어오셨다. 예순 넷 이라는 나이인데도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또래분식점과 동하식당을 드나드시면서 녹슨 양동이에 먹다 남은 음식찍꺼기들을 받아오신다. 뒤뚱뒤뚱 걸음을 걸으며 음식물이 담긴 구정물 양동이를 한 방울이라도 튈까 조심스럽게 마당에 내려놓으신다. 그리곤 낡아서 옆이 2cm정도 찢어진 파란 고무 슬리퍼를 벗어 문지방에 비스듬히 세워놓고 마당에 있는 마루에 철퍼덕 걸터 엉덩이를 붙이신다. 쌓아놓은 신문지 중 가장 밑에 있는 신문지를 쑤욱 빼서 익숙하게 종이부채를 만든다. 재빠르게 완성된 종이부채를 이마에 맺힌 땀이 마를 때까지 부치시고는 바쁘게 다시 일어나 낡은 고무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두꺼운 철판으로 만들어 진 드럼통에 장작과 종이부채를 넣고는 불을 붙이신다. 큰솥에 물을 다섯 바가지 붓고 양동이에 든 받아온 오물들을 다 넣는다. 그리고 물로 한번 양동이를 흔들어 헹군 후 남김없이 솥에 넣는다. 휘휘 저어주고 부채질도 해주면서 새끼들을 위해 저녁만찬을 준비하는 할머니. 나에겐 단 한번도 음식한번 만들어준 적 없는 할머니는 오늘도 여섯 마리의 도사견들을 위해 저녁요리를 한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다 끓인 오물들을 다시 양동이에 담아 큰 국자를 들고 개들에게 간다. 개들은 냄새만 맡고도 벌써 아까부터 짖기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할머니를 반기는 개들은 수북한 음식을 삽시간에 헥헥 거리며 헤치 운다.
양동이에 국자를 툭 던지고 할머니는 하루일과를 모두 마치고 난 지친 회사원처럼 방으로 들어가신다. 할머니가 들어가면 소리를 내던 철제 양동이도 소리를 멈춘다.
그리고 TV를 보시다가 켜놓고 잠이 들곤 하신다. 방문을 조금 열고 할머니가 개밥 주는것을 모습을 다 지켜보고는 문을 닫는다. 할머니와는 하루에 마주칠 일이 없다. 봐도 말을 하지 않는다. 항상 할머니의 눈치를 살핀다. 밥을 먹으려다가도 할머니가 부엌에 가면 다시 방에 들어가 할머니가 일을 보고 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화장실을 가려다가도 할머니가 마당에서 일을 보시면 빼꼼히 문을 열다가도 다시 문을 닫고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다. 벌써 이렇게 할머니와 함께 있는 듯 없는 듯 살아 온지 17년째. 부모님 얼굴도 모르는 지금까지 키워주고 먹여준 것 만해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말을 걸어도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술이 머리끝까지 차서 들어오신 날이어야 나를 부른다. 그리고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날이면 술에 젖어서 들어오신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 그리고 술을 따라 주는 게 내가 할머니와 하는 유일한 의사소통이다. 평소에 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셨던 할머니는 술에 취해 들어오시면 말씀이 많아진다. 삐그덕 요란한 대문소리를 나고 다 낡은 고무 슬리퍼 질질 끄는 소리는 내며 들어오신다. 할머니의 발걸음에는 그녀만의 무언가가 묻어난다. 할머니의 질질 끄는 낡은 슬리퍼의 소리는 무거운 쇠고랑을 찬 것처럼 발걸음이 무겁게 들린다. 주전자에 술을 받아오는 날이면 흔들리는 주전자 안에서 철컥철컥 막걸리 소리와 함께 들린다. 그러면 할머니의 발걸음은 더욱 무겁게. 구슬프게 들린다. 신발을 휙 벗어던지고는 방에 투박스러운 발로 비틀비틀 들어오신다. 그리고 나선 나를 부른다. 나에게 말을 건넨다.
" 야 이 더러운 년아 나쁜 년.. 더러운 년.. "입버릇처럼 항상 그렇게 말한다. 17년 동안 할머니의 주정을 들으면서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 않았다. 왜 내가 더러운 년인지 나쁜 년인지 한번 물어 본적이 있는데 개 똥 치우던 삽으로 온 몸에 피멍이 들 때 까지 맞아서 며칠 못 일어났었던 적이 있다. 그때 이후로 나와 얘기하기 싫어하는 할머니에게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언제나 내가 물어보면 더 욕만 먹었지. 제대로 된 대화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어릴적에도 마찬가지로 나는 할머니한테 맞고 자랐다. 험악한 할머니의 인상 때문인지 어린나도 할머니가 무서웠다. 그래서 눈치보는것에 익숙하고 혼자 있는것에도 익숙하게 살아왔다. 점점 머리가 커가면서 때리는 횟수는 줄어들다 이제는 사이가 단절되어 지금은 아예 타인처럼 생활한다. 하루 이틀 지나고 익숙해진 할머니의 욕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만큼. 하루 일과라도 생각할 만큼 받아들이고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는 술을 드시면 나를 앞에 앉혀 두고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들 이야기를 하신다. 할머니의 남편을 두 분 이었다. 첫 번째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결혼하고 암으로 2년 동안의 투병 끝에 암으로 돌아가셨고 두 번째 할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두 번째 할아버지의 이름은 '이정구' 할아버지다. 할머니는 술만 드시면 정구할아버지만 욕한다. 그래서 첫 번째 할아버지 이름은 모른다. 물어볼 기회도 없었지만. 영감 염감을 애처롭게 부르며 눈물로 술잔을 채우신다. 그건 첫 번째 할아버지를 부르는 것 소리고. 두 번째 정구할아버지 이름을 부르면서는 입이 닳도록 욕만 한다. 그래서 나는 정구 할아버지 이름을 내 이름 다음으로 익숙하게 들어 알고 있다. 나한테 나쁜 년 더러운 년이라고 하는 것처럼 정구할아버지도 더러운 놈 정구라고 하면서 주문을 외우듯 욕을 한다. 대충 옆집 미자 할머니한테 들은 건데. 우리 할머니가 두 번째 재혼한 정구할아버지는 읍내에서 장사 가 꽤 잘되는 삼원보신탕집 주인이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개를 새끼쳐서 자주 읍내시장이나 보신탕집에 팔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정구할아버지와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고. 몇 년을 홀로 지내던 할머니는 8살이나 연하인 정구 할아버지의 구애 끝에 재혼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정구 할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것이 결국 탄로가 나버리게 되는 바람에. 할머니와 심한 타툼후 할아버지는 술에 가득 취해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하지 못하고 궁금한 얘기를 미자 할머니에게 자주 물어봤다. 미자 할머니께 왜 할머니가 날 싫어하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미자 할머니는 그런 얘길 우리 왜 자기한테 물어보냐고 그런 얘길 나한테 물어보냐며 그런 건 네 할미한테 직접 물어보라며 했다. 하지만 나는 미자 할머니가 술에 취해 있을때 왜 할머니가 날 싫어하냐고 묻자 미자 할머니는 " 이 에미가 죽어서 그래 이년아" 하고 종종 말씀하셨다. 가끔 술을 드신 미자할머니는 니가 무슨죄가 있냐며 내가 딱하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렇게 가버린 정구할아버지와 엄마가 원망스러운 탓일까 할머니는 그때 맺힌 한을 나한테 토하듯 다 쏟아 붓는 것 같다. 아직 건강해 보이는 노인네지만 이렇게 술을 먹고 한번씩 날 불러 욕 할 때마다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걱정스럽고 측은해 안스럽다. 꼭 선생님한테 큰 잘못해서 야단맞는 학생처럼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욕도 다 들으면서 가만히 고개 푹 숙이고 있다. 길게는 세 시간 짧게는 30분 동안 그렇게 할머니 앞에서 무릎 꿇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러면 어느새 할머니는 말이 점점 줄면서 상 옆에 푹 쓰러져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주무신다. 그러면 나는 이불을 깔아드리고 술상을 치운다. 다음날 아침이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할머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밭일을 나가신다. 그리고 또 읍내를 돌아 양동이에 개들의 저녁밥을 받아 오신다.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 오후 나는 할머니에게 줄 종이부채를 접고 있었다. 대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방문을 열었다. 우체부 아저씨가 네모난 상자를 들고 있었다.
소포가 도착했다. 할머니가 그 소포를 풀어본 후 마루위에 던져 놓았다. 나는 얼른 가서 소포를 열어보았다. 그 상자안에는 할머니의 옷과 내 옷 그리고 보라빛을 띄는
옥팬던트가 달린 목걸이 두 개가 들어있었다. 하나는 할머니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또 하나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누군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그 소포를 보고 있는 나에게서 상자를 빼앗아 개밥 끓이는 두꺼운 철판으로 만들어진 드럼통에 버렸다. 나는 할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선물이 너무 아까워서 왜버리냐고 혀까지 올라오는 말을 꾹 참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분위기로 보아 할머니는 많이 무척 화가 나 있었다. 까만 얼굴에 주름살이 쫙 펴지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개밥을 끓이려고 꼈던 목장갑을 벗어던지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날 하루종일 그 선물은 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몇일 굶은 사람눈에 맛있는 음식이 아른거리듯. 분홍색 가디건과 내이름이 새겨져 있는 목걸이는 나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초조하게 만들었다. 처음받는 목걸이 선물에 내이름이 새겨져 있는 목걸이라 미련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새벽 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드럼통으로 향했다. 맨발로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마루를 지나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살짝 드럼통에 손을 넣어 상자박스를 꺼냈다.
다행이도 소포는 태워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조리며 반짝이는 목걸이를 찾았다. 그리고 '이정해' 내이름은 확인했다. 얼른 손에 꽉 쥐었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파헤쳐놓았던 것을 처음처럼 다시 비슷하게 덮어두려고 할때, 마침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목걸이를 가지고 방으로 도망치듯 소리안나게 뛰어 들어갔다. 들어가자 말자 바로 할머니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였다.
' 아 나는 이제 죽었구나' 불을 끄고 가만히 숨을 죽이며 이불안에 숨어 있었다. 할머니방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다시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부시럭대는 소리에 빼꼼히 방문을 열었다. 마당에 할머니는 버린 소포종이를 꺼내 땅에 탁 펼쳐놓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손전등을 비추며 자주색 낡은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소포에 적혀져 있는 주소를 적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소포종이를 다시 버리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할머니의 행동에 조금도 의심이 가지 않았다. 다만 들키지 않은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꼈다. 조금 지나서 나는 불을 키고 목걸이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 이 목걸이를 누가 선물했을까...나도 소포에 써있는 주소를 확인하려고 한번 더 나가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기쁜마음에 그런 궁금증은 금새 잊어버리고 어렵게 얻은 내 보물을 까만색 양말 안에 넣었다. 양말을 세번 접고 노란 고무줄도 두번 묶은 다음 책상 서랍 깊숙히 넣었다. 그제서야 안심이 된 나는 기쁨반 떨림반으로 이불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나는 학교를 가기위해 도시락을 싸고 나갈 준비를 했다. 할머니는 밭일을 나가시고 집에 안계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드럼통안을 들여다보니 싸그리 다 타고 재만 가득 남아 있었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 믿기지 않는 반짝이는 보물을 확인하고서야 학교를 향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마음 조렸던 새벽의 시간도 잊혀져 갔다.
어느덧 나는 열아홉살이 되었고 할머니는 예순여섯살이 되었다. 할머니는 점점 더 수척해 지고 살이 빠지시는것 같았다. 매일매일 양동이를 들고 나가는 횟수도 줄어 2틀에 한번 3일에 한번 그러더니 일주일에 한번씩으로 되버렸고 또래분식점 아주머니 동하식당 주인아저씨가 집까지 찾아와 주거나 집에 아무도 없을때면 대문 앞에 두고 갔다. 나는 할머니를 대신해 돕고 싶었지만 내가 하겠다고 말을 꺼내기또한 무섭고 또 양동이를 들고 음식찍꺼기을 받으러 다니자니. 친구들이 볼까 창피한 마음에 쉽사리 나서질 못했다. 할머니의 까만머리는 하얀머리로 반이상이 변했고 곱슬곱슬하던 머리도 파마끼가 다 풀어져 푸석푸석해 보였다. 쭈글쭈글하던 주름살도 축쳐저 까만얼굴이 더 어둡고 무서운 인상을 주었다. 한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집의 기와지붕이 다 쓰러질 정도로 비가 내렸다. 식당의 주인들도 귀찮은지 우리집에 오물을 갖다 주지 않았다.
가만히 방에 계시던 할머니는 목장갑을 끼고 노란 우비를 걸치며 나갈 채비를 하셨다. 그리곤 양동이를 들더니 대문을 나가셨다. 그날따라 대문은 철사처럼 쏟아지는 비때문인지 낡은 철제 문이 더욱 기분나쁘게 계속 삐그덕 거렸다. 그렇게 마루에 앉아 비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천둥이 치고 하늘엔 번개가 보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할머니를 기다리기위해서 마루에 앉았다. 마루에 앉아있으면 언덕의 지름길로 할머니가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노란우비를 걸친 할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머리위엔 뚜껑덮인 파란색 플라스틱 양동이를 들고 미끌미끌한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보다못한 나는 우산을 들고 산길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우산을 쒸워주자 본척만척 나를 피해 빠르게 어설픈 걸음을 걸었다. 나는 우산을 들고 뒤에서 따라오고 할머니와 내 사이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나는 투덜투덜 걸었다. 하얀 운동화가 흙탕물에 더러워졌다. 갑자기 우산은 철사처럼 꽂히는 비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구멍이 났는지 비가 샜다. 빗줄기는 머리를 적시고 이마에서 뚝 떨어지더니 눈가에서 오래 머물다가 가슴을 타고. 옷을 적셨다. 빗물은 그렇게 내렸다. 대문에 막 발을 들여놓으려고 할때 빨간국물이 엎지러져 있는것을 보고 순간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노란할머니는 마당에 엎드린채로 쓰러져 있고 파란 플라스틱양동이는 깨져있었다. 갖가지 오물들은 비와 함께 핏물처럼 마당을 덮고 기름은 둥둥떠 있었다. 건더기들을 마당의 하수구를 막아 빗물의 수위는 점점 높아만 갔다. 할머니를 처음 안아봤다. 그리고 천근만근 무거워진 할머니의 겨드랑이를 손으로 감싸 질질 끌고 방에 눕혔다. 바로 119를 불렀고 구급대원들은 빨간 오물들을 저벅저벅 밟으며 방으로 들어와 할머니를 차에 실었다. 나도 차에 올라탔다. 할머니의 옷엔 밥풀이며 더러운 오물이 머리카락이며 얼굴이며 곳곳에 묻어 있었다. 처음 잡아보는 할머니의 손은 언제나 나를 대하듯 차가웠다. 그리고 점점 더 차가워져 갔다.
할머니는 차가운 빗물과 더러운 오물과 함께 결국 그렇게 차갑고 더럽게 가셨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는 할머니가 자주가는 읍내 또래분식점주인아줌마와아저씨 동하식당의 주인아저씨가 오셨고 몇 안되는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 선생님과 반장 그리고 친구 두명이 잠깐 다녀갔다. 장례식은 할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 옆집 미자 할머니의 도움으로 그렇게 끝이 났다. 이 해의 여름과 가을은 할머니를 잃은 상처로 지나갔다. 오랜만에 할머니 방에 한번 들어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들어와도 이내 한번 들어가볼까 하다가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 들어가 보지 않았다. 할머니 방에 들어가 있으면 금방이라도 주전자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낡은 파란 슬리퍼를 끄는 소리를 내면서. 욕노래를 부르면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타날 것 같았다. ㄱ자로 된 구조의 집은 끝과 끝은 각각 할머니와 내방이다 . 중간은 부엌이고 그리고 나머지는 마당이다. 할머니방의 뒷문은 개들이 있고. 내방 뒷문에는 화장실이 있다. 나는 화장실 가는것 빼고는 내방에서 부엌까지 가는것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가 드나들던 그곳이 싸늘하게 느껴져서 쉽게 가지 못했다. 그러다 나는 몇일만에 부엌을 지나 할머니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할머니가 안계시다는 것 외에 변한건 아무것도 없었다. 할머니의 옷과 물품들만 태우고 텔레비젼과 가구들은 그대로 있었다. 서랍은 열쇠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아무도 건들지 못했다. 신발장 서랍에 있는 열쇠꾸러미를 들고 나는 서랍문에 열쇠 하나하나를 끼워 맞춰보기 시작했다. 녹슨 물음표 모양의 열쇠가 딱 들어맞았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열였다.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고 천천히 서랍문을 열었다. 꾹 닫고 있는 할머니 마음의 문을 열어본 것처럼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거기엔 갖가지 영수증, 통장과 도장, 내가 접어준 종이부채. 엄마로 보이는 여자의 증명사진 그리고 중요한 것들을 항상 메모하던 할머니의 낡은 자주색 수첩과 결혼 사진이 있었다. 결혼사진은 두장이 있었다. 여자의 증명사진은 엄마였다.
죽은 엄마의 사진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죽은 엄마의 얼굴. 새삼 나는 할머니에게 억눌려 미처 엄마도 아빠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할아버지와 결혼한 사진. 그리고 정구할아버지와 재혼했을때의 결혼사진. 나는 미자할머니께서 꼭 할머니 처녀시절의 모습과 내가 많이 닮았다고 들었다. 지금 찍은 내 사진과 비교해봐도 할머니의 모습은 나와 비슷하다. 낮은 코 . 쌍꺼풀없는 작은 눈. 작은 입술 동그스름한 얼굴. 당시 정구할아버지보다 8살 위인 할머니의 모습은 그다지 나이 차이가 나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와 나 그리고 엄마의 사진 너무나 닮았다. 정구할아버지의 모습도 할머니의 어딘가와 비슷해 보인다. 작은 눈. 얇은 입술. 친할아버지는 아니지만 나는 할아버지도 닮았다. 그렇게 사진들은 팬던트 목걸이 다음으로 내 두번째 보물이 되었다. 그리고 자주색 수첩을 펼쳤다.각종 읍내의 보신탕집 전화번호가 있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할머니는 글씨를 잘 모르시는것 같았다. 맞춘법도 틀린 글씨도 있었다. 비뚤비뚤하게 빼곡히 개장사들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번호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ㄱㄴㄷㄹ.. 순서대로 정리해서 적어놓은 할머니의 습관에서 꼼꼼함을 느껴볼수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장을 펼쳤다.거기엔 '정해엄마'. 이렇게 주소가 적혀져 있었다. 순간 2년전이 떠올랐다. 내가 목걸이를 찾기 위해 나간 새벽. 할머니가 소포종이에 있는 주소를 자주색 수첩에 옮겨 적는 모습을.
버스는 늦은 새벽 죽변리 버스 정류장에 정지했다. 덜컹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어느새 마지막 사람이 내리고 있다. 정류장이기 보다는 작은 구멍가게로 보인다. 마을의 작은 버스 정류장으로 쓰이는 것 같다. 나는 가방에서 목도리를 찾아 둘렀다. 정류장 뒤로는 바다가 보였다. 바닷바람은 차갑게 살을 파고 들었다.
늦은 시간이라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바다낚시터라는 낚시점 앞에서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며 서있다가. 마침 지나가는 고등학생에게 주소를 보여주며 가르쳐달라고 하자
같은 동네라고 하며 운이 좋게도 금방 쉽게 찾아 왔다. 한적한 어촌이다. 까만 밤바다는 조용하고 배는 둥둥떠 있었다.
어물직판장을 지나자 하얀 불빛이 보인다. 차가워진 몸을 데우기 위해 작은 동네 슈퍼에 문을 열었다.
주인 여자는 한참 졸고 있다가 내 인기척 소리에 깜짝 놀라며 깼다. 난 호빵두개와 따뜻한 베지밀을 사서. 몇일 굶은 사람처럼 손을 한 입 두 입 베어먹는다.
그 주인여자는 나에게 말을 말한다.
" 이 동네 사시는 분 아니시죠.?" 나는 호빵이 뜨거운나머지 혀를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 있는 것을 다 삼킨 후. 엄마사진을 보여주며
"혹시 이 여자분을 아세요." 하고 묻자 주인여자는 언제 졸았냐는 듯 " 아!! 그럼 알죠. 정해 엄마네!! 이 동네 사는데 단골이라 친해요 " 하면서 억양을 한껏 높여 말했다.
"아..그럼 이 여자분 어디 사는지 아세요..?" 의심이 가는듯 내 눈을 잠시 쳐다보더니 " 음.. 이 골목에서 바로 커브를 틀면 회색 주택이 있는데,거기 살아요.
나는 한 모금 남은 베지밀을 다 마시고 주인여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슈퍼문을 열고 나와서 골목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간다. 막 커브를 틀려고 할때 한 남자가 저벅저벅 앞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여서 잠깐 벽에 기댔다. 회색주택을 보려고 고개를 내밀었다. 회색주택앞엔 한 여자가 있다. 그 남자는 웃으면 여자를 한손으로 감싸안는다.
추운 겨울 따뜻한 포옹을 한다. 사진의 모습과 거의 변함이 없다. 할머니의 얼굴과 흡사하다. 둘은 꼭 붙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떨군다. 내가 나타나서 엄마라고 부르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렸고, 행복해 보이는 그들에게 조금의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바닷바람이 더 차갑게 내 눈을 훔쳤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린다. 슈퍼에 들어가 주인여자에게 양해를 구한후 콜택시를 슈퍼 앞으로 불렀다. 곧 택시가 왔고
다리에 힘이풀려 쓰려지듯 택시에 올라탔다. 다시 돌아간다.
" 아저씨 경기도 이천이요"
"좀 비싼데요"
"돈은 걱정 마시고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5시간 정도 지나서야 집에 도착했다. 하루사이의 기막힌 여행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엄마라는 여자였다. 그럼 그 남자는 내 아빠인가. 아직 젊어 보였다. 차라리 모르고 지냈더라면 하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피곤한 몸을 누이며
흐릿한 유리창 속의 나를 생각했다. 어느정도 선명해 질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오히려 반대로 더 혼란에 빠졌다.
결론은 내가 나타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단념하고 잊고 지낸 시간이 흘러 10년이 지났다.
시청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집터를 헐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를 낸다고 하면서 전화가 걸여왔다.
보상금은 최대한 지불된다는 소리에 솔깃해서 좋다고 말했다. 최대한 집을 빨리 비워주겠다고.
우선 집을 여기저기 알아보고. 이천시에 있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집을 계약했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이집이 이젠 평평한 도로로 깎아진다고 생각하니 처음 이사를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뻥 뚤린 기분이 든다.
우선 개장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개를 싼값에 판다고 얘길 하자 여기저기서 개를 보고 사가겠다고 집으로 찾아왔다.
곧 복날이라 어느새 개 11마리는3일만에 다 팔려 나갔다. .
중요한 짐은 대충 싸고 이삿짐센타에 연락했다. 이삿짐들은 재빠르게 일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차에 이삿짐들을 실었다.
많은 추억이 깃든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마음한곳이찡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든것을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할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안좋았던 기억은 날려버려야지 다짐을 하며 이삿짐센터 차에 올라탔다. 마지막으로 뒤돌아 보는 집엔 할머니의 개밥 끓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김이 모락모락 나던 그 것을 지켜보던 나. 지금은 어느섯 35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개를 다 팔았으니 그동안 모아놓은 자금으로
조그만 장사하 할 생각이다. 행복한 상상을 하며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손실없이 이삿짐들은 새집으로 잘 옮겨졌다. 방은 세칸이다. 혼자 쓰기엔 큰 방이지만 나중에 가족이 더 늘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집을 샀다.
그리고 여러가지 서류를 정리하다 자주색 수첩이 눈에 보인다.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버린줄 알았는데....
이내 다시 주워 서랍에 넣어뒀던 것이었다. 자주색 수첩은 내 마음에 동요를 일으켰다.
다음날 아침 나는 수첩을 들고 다시 15년만에 울진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날씨가 더운 여름날이라. 찌는 듯한 더위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옆에는 한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신문지를 접으시더니
종이부채를 만들었다. 그러더니. 땀이 식을 정도로 부채질을 하셨다. 우리할머니 생각이 났다.
내 할머니도 종이부채로 줄곧 잘 부채질 하곤 했는데.나는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 할머니는 어디가세요..?"그러자 할머니는" 나는 우리 어머니 뵈러 가요..젊은처녀는 아침부터 어디를 가나''
"예..그러세요,.. 저도 저희엄마를 뵈러 가요."
그렇게 말이 끝나자 말자 할머니의 버스가 막 도착했다. 67번 버스면 예전에 살던 집 쪽인데. 할머니가 탄 버스는 멀어져갔다.
나도 버스를 타려고 막 일어났을때 할머니가 앉아있던 자리에 목걸이를 발견했다. 목걸이는 내 것과 똑같았다. 거기엔 김혜옥이라는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아..부모자식간에 인연이 이렇게도 엇갈릴수 있을까..'
나는 그 목걸이를 가방에 넣었다. 다시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10년만에 도착한 울진은 많이 변해있었다.
구멍가게만하던 버스정류장은 더 커저 있었고 바다엔 사람들도 북적됐다. 여름이라 바다는 바란물결을 반짝이며 유난히도 빛났다. 그때의
까만 어둠과 차가운 바람의 느낌과는 너무 달랐다. 어물직판장을 지나서 그 슈퍼가 보였다. 그 슈퍼에는 그 주인여자가 있었다.
여름이라 오렌지쉐이크를 아이들에게 파는 모습이 바빠보여 말을 걸이 않았다.
그리고 골목을 지나 회색주택앞으로 걸어갔다. 엄마로 보이는 여자와 길이 엇갈렸지만 혹시나 아빠라도볼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문을 열었다.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은 어름장처럼 차가웠다.
안방문이 열려져 있었다. 누군가가 이불을 펴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갓 소녀티를 벗은 여자아이가 앉아서 늙은 남자에게 밥을 떠먹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이는 나를 뒤돌아 놀래 일어나면서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딱히 말을 못했다. 어지러저 있는 방을 치우고 아이보고는 언니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나는 혹시라도 아빠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아빠의존함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민 형자 태자에요 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이씨 성이 아니다. 역시 나의 엄마는 재혼을 한것이었다.
아이도 굶었는지 조용한 방안에 꼬르륵 소리가 크케 났다. 대충 밥을 해서 먹이고 어지러진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창고에서 청소기를 꺼내려고 들어갔다. 거기엔 오래되어 빛바랜 자주색 앨범이 있었다. 앨범엔 엄마 이름이 써있었다.
엄마의 처녀시절의 모습이 있었다. 마지막장엔 필름에 가려져 있는 큰 사진 한장이 있었다.
필름들을 치우고 조심스럽게 사진을 꺼냈다. 결혼사진이다. 사진찍힌 날짜 1952년 1월 7일 김혜옥양과 이정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