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중가요를 통해 사랑을 배운다. 사랑이 와서 벅차 올랐고, 사랑이 가서 목이 미어지게 슬펐다, 이게 우리가 배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할 상대만 만나면 사랑은 완성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사랑의 '감정'은 변할 수밖에 없다. 사랑의 감정을 능동적으로 '경영'하지 않으면 결국 그 사랑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더욱더 성숙한 사랑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그 사랑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많아야 한다. (6 p)
때로 진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간단한 것이기도 하지 않던가. 단지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울 뿐이다. 자신의 성격, 체질, 과거의 경험, 현재의 상황 같은 수많은 변수가 그 진실에 가까이 가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방해를 하기도 하는 탓이다.
사랑 역시 그렇지 않을까? 결국 사랑이란 '진짜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처럼 단순한 진실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그 사랑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혼란을 느끼고 두려워하고 상처 받곤 한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인데도 말이다. (27 p)
그러나 성숙한 결혼생활은 상대의 모자란 점을 분명히 알고 세상에는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성숙한 사랑 역시 바로 나와 남이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서로를 용서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정신의학자 칼 로저스의 다음 말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환자를 만나기 전에 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한다. "나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나 자신으로 충분하다. 꼭 완벽해야 충분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와 함께 있을 수 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자기 마음속의 양가감정, 불신, 죄책감이 바로 자신의 가장 나쁜 적이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고 솔직해지면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은 서로가 완벽하지 못함을 용서하는 것임을. (31 p)
사랑은 대개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된다. 문제는 그 열정이 우리의 감정에 속한다는 데 있다. 사람의 감정 가운데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자 융은 우리의 감정이 늘 흐르는 물처럼 변화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세계가 완전히 열려지거나 닫혀진 체계가 아니라 '상대적 폐쇄체계'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41 p)
그 변하기 쉬운 인간의 감정 가운데 사랑이라고 어찌 예외일까. 만개한 꽃은 반드시 시드는 법, 그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새 타성과 나태가 끼어드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처음의 눈부심은 간 곳 없고 변형되고 풍화한 사랑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어찌 그리도 가볍고 경박할까, 한탄할 사이도 없이 두 사람 사이에는 미움과 갈등이 뒤얽혀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랑만은 어떤 경우에도 변화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사랑에 대해 갖는 가장 큰 오류의 하나가 아닐까. '사랑만으로 충분하다'는 것도 그런 그릇된 생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42 p)
성장 과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끝없이 사랑을 찾아 헤맨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정신과의 영역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이 청년처럼 포기하지 못하고 사랑의 갈구에 목말라 하는 존재가 또한 인간이다. 어린 시절의 목마른 경험이 영원히 그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만약 하나의 사랑에 안주하지 못하고 자꾸 떠돌게 된다면 자신이 사랑의 허기 상태에 놓여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48 p)
이 로맨스에 탐닉하는 사람들은 연애나 결혼에서 그런 요소가 사라지면 사랑 자체가 식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 감정이 어떤 것이지 알아보지도 않고 상대방의 탓으로 돌려 원망하고 탄식한다. 다음 순서는 물론 미련없이 로맨스가 사라진 지금의 상대를 떠나는 것이다....뜨겁게 전유하는 로맨스만을 사랑이라고 여기는 사람하고라면 연애에 빠지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일종의 중독증상이고 결국 사랑의 굶주림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언제 또다시 그런 로맨스를 찾아 떠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58 p)
자신의 사랑에 관해서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단지 사본에 불과한 것이지 알기 전에는 자유로운 사랑은 불가능하다...자신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것-그것이야말로 욕망에 대한 집착이 아니고 무엇인가....'만약에 내가 어러저러 했다면' 혹은 '내 부모가 이러저러한 사람들이었더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능력도 배경도 훌륭했다면' 하고 자기 욕망에만 집착해서 거기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상 일이든 사랑이든 집착할 수록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집착과 집념이 다른 것은 집념이 어떤 가치에 대한 신념이라면 집착은 강박증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인생에서 전진하기 위해서는 매듭을 푸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집착하는 것을 내려놓는 것도 그 한 가지 방법이다. (81 p)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해야 하고 결코 실수란 있을 수 없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은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완벽한 사랑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그들의 상처가 오죽하랴.
당위성의 횡포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신은 어러저러해야 한다는 틀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그 틀에 맞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때로 연인에게도 똑같은 것을 요구해 숨막히게 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가 어려운 타입이다. 이성을 만날 때도 내 애인이 되려면 최소한 학벌은, 집안은, 머리는, 몸부게는, 키는 하고 따지고 있으므로 쉽게 사랑이 찾아올 리가 만무하다. (87 p)
사랑의 감정은 가만두어도 처음 그대로 계속해서 샘물처럼 퐁퐁 솟아오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오류 가운데 하나이다. 한번 사랑을 느꼈으면 가만히 두어도, 어떤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사랑은 계속되리라는 헛된 희망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마 처음의 열정이 너무 감격적이어서 영원히 그것이 지속되리라는 착각에 빠져서일까. 그러나 그것은 열정이 가져다 주는 미혹일 뿐이다.
우리의 사랑은 아무리 큰 열정과 광기로 시작되었다 해도 언젠가는 풍화하고 산화하는 때가 오는 법이다. 그러므로 나태와 타성이 끼어들지 않도록 그 열정의 자리에 약속과 책임감과 함께 확신과 용기를 심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94 p)
또 다른 면에서는 자기 마음속에 숨어 있는 불안감을 잠재워 줄 수 있게 안전감과 평안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을 찾는 경향이 있다. 키 큰 남자가 키 작은 여자를 좋아하거나 키 작은 남자가 키 큰 여자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경우는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도 무의식적인 욕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을 알면 반복되는 사랑의 실패에서조차 무언가를 배우고 알게 될 것이다. (99 p)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면을 모두 갖추었기를 바란다. 보기 좋은 외모, 학벌, 재산, 유머, 학식, 지혜 등등. 그러나 뜬구름을 잡기로 마음먹지 않은 이상 그 모든 조건을 고루 다 갖춘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연애를 잘 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그리하여 그 가운데 한두 가지만 갖추어도 매력으로 받아들여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에 대해 좀더 현실적이고 제한된 것만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결혼생활에서 불행을 느낄 확률도 그만큼 적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으니까 불평할 일도 없는 것이다. (103 p)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언젠가 더 큰 실망과 더 큰 갈등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지나친 기대를 포기할 때까지 그런 실망과 갈등좌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이 바로 참된 사람이 싹트는 전환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104 p)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결코 반원의 만남이 아니다. 반원의 만남이라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 두 반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두사람의 만남은 서로 구심점을 갖는 두 원의 만남이다. 두 개의 원이 만나므로 서로 겹쳐지는 부분도 있고고 겹쳐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사랑하므로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질 수 있도록 애써야 하지만 완전한 합일은 불가능하다. 성숙한 사랑은 그것을 인정하고 그 대신 서로 최대한 노력을 할 수 있는 부분에 힘을 쏟을 줄 아는 것이다. (124 p)
세상에는 참으로 수많은 다양한 사람이 있다. 단지 한 사람과의 경험을 가지고 모든 이성을 한 범주로 몰아넣는 것은 너무 어리석다. 언제나 사랑은 그렇게 아프게 끝나는 법이라고 지레짐작하거나 과잉일반화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삶에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마음의 부정적인 사고로 인해 그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93 p)
우리의 삶이 때때로 고통스렁운 것은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이렇게 저렇게 살고자 애쓰지 않는다면 아마도 고통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자유의지가 있음으로 해서 고통스럽다는 것은 얼마나 큰 아이러니인가..."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저울질하는 존재로서의 우리의 운명은 인간이 부여받은 가장 큰 축복이자 저주이다."..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정신건강과 동의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일이다. 정신과적 증상을 앓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았거나 주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29 p)
우리 생애에서 가장 가슴 떨리는 기쁨의 시작이고 그리하여 생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다시 우리를 영원한 구원과 승화로 이끄는 것이 사랑 말고 달리 무엇이 있으랴.
사람은 누구나 평생 동안 '나는 누구인가?' 하는 화두를 붙잡고 살아가도록 운명 지워진 존재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가장 분명한 대답을 할수 있으려면 결국 '그의 사랑'에 관해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253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