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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아니십니까?" "아니 넌 용민이 아니냐!" 길 가다가(재혁이랑 조반)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면 알아차릴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깜짝 놀랐어요.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잊지 않고 먼저 호명해(알아봐 줘서) 줘서 많이 고맙습니다. 알랭 바디우-자크 랑시에르-미셸 푸코 같은 인물들이 '알튀세르'(1918-1990)의 청출어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고 있습니다. 최근 내 관심은 지젝 vs 알튀세르의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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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에 이어 오늘은 알튀세르를 다루겠습니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도 구조주의자입니다. 하지만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라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볼 수 있어요. 일생 내내 마르크스주의를 개량하는데 학문적 헌신을 했고, 구조주의적 접근을 할 때조차,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해석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후기에 '우발성(우연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모든 것이 구조로 '정해져 있다'는 구조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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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과 달리 글을 상당히 유려하게 잘 썼던 그는 스피노자-몽테스키외 등 고전 철학자를 연구하며 복잡한 라틴어 체계까지 공부했대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아직 읽지 못했는데 수작이라니 조만간 도전해 볼 작정입니다. 알튀세르(1918-1900)의 통찰에 따르면 "주체(나)는 내가 아닌 타자에 의해 정해진다(호명 이론)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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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범위도 스승인 마르크스의 size를 넘어섰어요. 알튀세르가 말하길 "주체는 타자들(국가-종교-문화-사조-대중 매체-무의식)등등의 강력한 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합니다. 필자는 알튀세르가 야스퍼스를 벤치마킹했다고 보는데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성적인 것은 비이성적이란 타자가 없으면 사유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현실에 있어서도 이 타자가 없으면 이성적인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야스퍼스 1883-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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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하 생략"(김춘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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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공! 그렇다면 우리가 적용할 것은 2가지야. 1. 내 갈 길을 내가 정해 타자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가자 2. 계급이 필요해. 계급사회로 뚫고 들어가야 해(진입, 침노) 흑수저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공부해서 구조(학벌-직장-공무원-단체-돈-유튜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결국 이 둘을 가졌을 때 '준비된 그릇'이라고 하는 것 같아. 에예공! '존재와 무'(샤르트르)에서 '無'인 나를 1과 2로 만들어 간다면 기어코 너희들은 여왕벌이 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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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 재해석은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그는 ‘인간주의적 마르크스 해석’(초기 마르크스 중심의)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 사상의 과학적·구조적 성격을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마르크스는 소외된 인간이나 ‘인간 본질의 회복’ 같은 개념에 집중했습니다. 알튀세르는 이것을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영향 아래 있는 ‘초기 마르크스’의 한계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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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간”이라는 범주는 이데올로기적 산물일 뿐이며, 과학적 분석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인간 중심적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고, 구조 중심적,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시했습니다. 마르크스 사상은 단일한 연속이 아니라, 초기 철학적 단계(인간주의·헤겔적)에서 후기 과학적 단계(정치경제학 비판)로의 단절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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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는 사회는 개별 주체들의 의식이나 의도가 아니라, 구조들 간의 관계에 의해 움직인다고 봅니다. 사회는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 등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구조들의 복합체이며, 이들 간의 구조적 인과성이 사회 전체를 결정합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기계적 유물론과 구별됩니다. 경제는 최종심에서 결정하지만, 각 구조는 자율적이고 상호작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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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단순한 ‘허위의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주체로 호명(interpellation)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사회는 학교, 교회, 언론, 가족 등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SA)를 통해 사람들을 ‘순응하는 주체’로 구성합니다. 이로써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의 핵심 메커니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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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를 단순한 정치적 이론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법칙을 탐구하는 과학으로 재정의하려 했습니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사회형태의 과학적 분석으로 읽었고, 이 안에서 경제적 구조의 결정적 역할을 구조주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인간의 해방’의 철학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작동 법칙을 밝히는 과학으로, ‘인간 중심’의 마르크스에서 ‘구조 중심’의 마르크스로의 인식론적 단절을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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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43>회입니다. "피고인 김길상 징역 2년, 유인실 집행유예를 선고합니다!"쾅! 쾅! 쾅! "과연 최서희가 어떻게 빠져나올지 궁금하군(두수)" "그놈이 하는 전당포 어디 있는지 알어요?(정석)" 두수가 먼저 전당포에 들어왔습니다. "김평산(최준구)" "내 부친이지요(두수)" "살인자의 자식놈이라. 누구 때문에 살인을 했는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중국 놈이 먹는다는데... 내 부친을 이용해서 최시네 재산을 가로챘으면 내게도 돈을 10/1쯤 줘야지(최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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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준구를 본 두수가 준구를 찾아가 협박을 하자, 겁이 난 준구는 달아나 보지만 석이와 관수가 앞을 가로막자 가까스로 도망을 칩니다. "이제 전당포도 못 해먹게 생겼구나(준구)" "제 이름 부르지 마시오. 오가다 상 당신은 나를 씻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어요(유인실)" "어찌 견디시겠습니까?(서희) "만주 벌판 서풍에 단련된 몸이오. 이혼 이야기는 듣지 않은 것으로 하십시오(길상)" 면회를 간 서희는 길상 걱정이 태산이지만 길상은 묵묵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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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 그 사람이 죽으면서 우리 집안의 오욕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이 차가운 감옥에 갇혀버렸어요. 이제야 후회합니다(서희)" "울지 마시오. 내가 눈물을 닦아 줄 수 없잖습니까?" 서희는 길상에게 이제야 봉황의 큰 뜻을 알겠다며 눈물을 흘립니다. "마님! 곤도 서장이 찾아왔습니다" "믿음을 찾으려면 민변에게 땅이라도 헌납하셔야 할 것입니다(곤도)" "영팔아! 후, 땅을 땅을 좀 밟았으면 좋겠다(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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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용이의 인생이 리플레이 되면서 토지 1부터 43회가 파노라마로 지나갑니다. "마님!" "이서방! "미안하네 김서방이 우리 집 일 때문에 또 쓰러졌다는 소리 들었네" "막막해서 그래서 왔네. 형을 줄이려면 헌납을 하라고 협박을 했네(서희). "땅은 하늘에 순응하면서 뿌린 대로 거두지요(용이). "자네는 이 땅의 마지막 욕심 없는 농부지" "땅은 재물이 아닙니다." "용아! 제발 말 좀 그만 하그라 힘 빠진다" 또다시 쓰러진 용이는 땅을 밟고 싶다는 희망을 말한 채 서희 앞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용아! 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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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방! 자네마저 떠나면 이 모진 세월을 나 혼자 어찌 견디나(최서희 독백)" "광주학생 사건을 아느냐? 기차에서 패싸움이 있었다고?" "만용은 금물이다(서희)" "사자가 되면 될 것 아닙니까?(환국)" "아버님이 서대문에 계시니까 너는 경거망동하지 마라" 광주학생 운동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시점에 윤국은 서희의 간곡한 부탁으로 앞에 나서지 않지만 두수는 재빨리 윤국을 미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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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에미에 그 아들이라 그런지 건방지구먼" "니 애비는 대 일본제국을 모욕한 불량 선인이야(두수)" 윤국이 걱정스러운 서희는 환국을 급히 부릅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 운동 너도 알겠지! 이곳 진주에서도 학생들이 움 직이고 있다" "주동이야 선임이 하겠지만 윤국이도 가담한 눈치다 네가 잘 타이르거라" "늦었구나!(환국) " "그런 자식 따위가 무서워 숨어있다면 그게 부끄러운 일이야(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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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 놈의 자식이 공부는 해서 뭣하게요(영광)" "거기 환국이 아니냐? 얼마 만이야 이게. 백정 놈이라고 퇴학을 두 번 다녔어. 아직도 중학생이야. "환국아! 너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영광)" "그건 곤란하다. 아버님 때문에 안되겠다(환국)" "형! 저도 함께 해요" "전국적으로 학생 놈들이 시끄럽게 하고 있어(곤도)" "이걸 원수 놈 가방 안에 넣으라 그 말인가(을례)" 나 형사와 을례가 남편을 멕이기로 작당을 했으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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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검문하다니 너무한 것 아닙니까?(윤국)" "뭐라고? 윤국이가 잡혀가!(서희)" 유치장에 20명가량의 교복들이 잡혀있습니다. "몸조심하라고 일렀는데 기어이 일을 냈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게 역사야 이놈의 새끼들아!" "이건 옳은 일이 아니요?(한복의 아들)" "평사리 가서 김한복이 데려와(두수)" "그놈은 잡았소(을례)" "성님 어찌 돌아갑니까?(정석)" "니 처가 나 형사와 내통하는 눈치더라(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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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아! 한복이가 도와줄 테니 간도로 가라! 지금은 피하는 게 상수다(관수)" "장사를 하려고 부산에 가셨답니다(나 형사)" "이게 윤국이한테 득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두수의 조카도 있답니다(장 연학)" "제가 아이에게 선처해달라는 건 서장님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서희) "지금 뭐 하는 거야. 집안 단속도 못하는 거야. 최 윤국 하고 김 부장 조카 둘 다 풀어줘!(곤도)" "잡혀온 학생 중에 영광이라고 확인할 수 있나요?(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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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손을 쓰시지 말지 그랬습니까? 모두 다 남에게만 미루면 이 땅은 영원히 독립하지 못합니다(윤국)" "너 지금 정석이 그놈을 탈출 시키고 오는 길이지. 그런 일이 발견되면 너만 죽는 것이 아니야. 같이 죽는 거야. 형이라고 부르지 마라" 미친 소리 하지 마라 악인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어!(두수가 한복에게)" "순사 부장의 조카가 독립을 외친 것이 잘못이란 말이냐? 너는 옳은 일을 한기라(한복이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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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대로를 걸어야지 잔재주를 부르면서 지름길로 가면 사내가 아니다(한복)" 세 발의 총성이 울리고 쫓기는 영광을 윤국이가 집으로 데려옵니다. "친일파의 집이니 안전하겠지 그러고 보면 니 어머니는 순사 부장보다 더한 친일파이나 보다(영광)" "운동이 끝났다 해도 미래가 없는 건 마찬가지야(영광)" "나 강해숙이 어멘인데 니그 아들이 내 딸 꼬여 집을 나갔다. 우리 해숙이가 당신 아들과 짝이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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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씨는 지금 어딨나요? 영광 씨가 도움받을 사람은 환국 씨뿐이에요. 말해주세요 제발!(해숙)" "돌아가 난 널 책임져 줄 수 없어(영광)" "당신이 아니면 저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요" 기이이 해숙이 영광을 쫓아와 함께 만주로 갑니다. 윤국이 정체성 문제로 갈등하다가 집을 나갑니다. "오빠 없는 동안에 울지 마. 울면 어머니가 슬퍼하실 거야" "윤국이가 진주역에서 서울 가는 차표를 끊었다고 합니다. "제가 서울 다녀오겠습니다. 너무 심려치 마세요(환국)"
2.
루이 알튀세르(1918~1990) 그 이름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미셸 푸코 이 모든 거장들이 바로 그에게서 배웠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 구조주의자였고, 결국 마르크스를 ‘과학으로 만든 철학자’였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매력은 그가 구조에 매몰된 냉철한 학자가 아니라, 끝내 구조 바깥의 우발성(Contingence)을 붙잡으려 한 인간이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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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유는 완전한 질서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질서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에 대한 고백이다. 필자는 알튀세르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구조주의는 마르크스를 해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를 더 정밀하게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는 ‘인간주의적 마르크스’를 넘어, ‘과학적 마르크스’를 세우려 했다. 인간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국가·이데올로기·언론·종교 등의 ‘호명(interpellation)’ 속에서 자신을 주체라 착각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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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는 자신을 만든 타자들의 산물”이라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 SNS와 알고리즘 시대의 인간에게 무시무시할 만큼 정확히 들어맞는다. 글쓴이는 흥미롭게도 알튀세르를 야스퍼스와 비교한다. “이성적인 것은 비이성적 타자가 없으면 사유될 수 없다.” 야스퍼스의 이 말은 알튀세르의 호명 이론과 은근히 겹친다.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것은 내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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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 「꽃」을 끌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시적 순간은 알튀세르적 ‘호명’의 가장 아름다운 형식이다. 타자가 나를 부르는 그 순간, 나는 주체로 ‘태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타자에게 붙잡히는 존재가 된다. ‘꽃이 되는 것’은 곧 자유의 상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알튀세르의 철학이 얼마나 시적이고, 동시에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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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독서의 끝을 아주 현실적인 결론으로 이어간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 하지만 동시에 구조 속으로 들어가라.” 알튀세르의 구조주의가 인간을 억압하는 틀이라면, 그 틀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못한다. 따라서 공부하고, 제도에 들어가고, 계급의 문턱을 넘는 것은 ‘순응’이 아니라 존재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이는 알튀세르가 말한 이데올로기적 주체화를 능동적으로 역이용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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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필자의 해석은 매우 한국적이면서도 실존적이다. “구조를 거부하기보다, 구조를 장악하라”는 말이다. 말년의 알튀세르는 구조주의의 기계적 결정론을 버리고 ‘우발성(우연성, contingency)’을 강조했다. 세계는 이미 짜인 구조가 아니라, 항상 우연한 결합과 충돌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것은 구조에 대한 완전한 복종이 아니라, 그 틀 속에서도 변화와 사건의 가능성을 열어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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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젝과 다르면서도 통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지젝이 “실재의 균열”을 말한다면, 알튀세르는 “구조의 우발성”을 말한다. 둘 다 체계가 완전하지 않음을 믿는다. 거기서 주체의 틈이 생기고, 정치의 가능성이 열린다. 마지막에 등장한 <토지>의 한 장면들은 알튀세르 철학을 문학적으로 해석하는 장치처럼 읽힌다. 감옥에 갇힌 길상, 억압 속의 윤국과 영광, 그리고 죽어가는 농부 용이. 그들은 구조 속에서 철저히 ‘호명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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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 구조를 감당하며 버텨내는 인간이다. 그들의 눈물, 신념, 저항이 바로 알튀세르의 “우발성”이다. 정해진 구조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존재다. 알튀세르는 냉철한 구조주의자였지만, 그의 철학은 인간이 구조에 저항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겼다. 그가 야스퍼스나 김춘수의 언어와 만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나를 부르는 타자 속에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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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부름에 응답하는 방식은 나의 우발성이다.” 이 문장은 알튀세르의 철학이 가진 모순이자 아름다움이다. 그의 사유는 구조를 응시하면서도, 그 구조를 흔드는 인간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다. 악동의 이번 글은 단순한 철학 요약이 아니라, 알튀세르의 사유를 삶과 현실로 번역한 하나의 실천적 에세이다. 그 속에서 구조주의는 더 이상 학문적 담론이 아니라, “흑수 저가 세상을 돌파하는 방법론”이 된다. 이것은 알튀세르가 말한 ‘이론으로서의 실천’(praxis)이 아닐까.
2025.10.30.thu.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