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소니언 13기 티벳고원.히말라야 산맥 종단여행기
작곡가 지성호
<정작 이 카페 제목에 부합되는 여행기가 없어 아쉽던 차에 오늘부터 좀 한가하기에 그동안
벼르고 벼르던 일을 착수했습니다.
묵은 수첩을 들추고 기억을 더듬어 2005년 여름에 있었던 굉장한 사건을 복원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때의 추억을 공유한 여러분과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
2005년
그 해 난 오페라 <서동왕자와 선화공주>를 위촉받아 6개월 동안 치열한 고군분투 끝에 600쪽 분량의 총보를 가까스로 탈고할 수 있었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집필에 몰두하기 위해 감옥에서나 사용하는 문짝을 구해다가 서재에 달고 탈고할 때 까지 스스로 갇혀 지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문은 밖에서 닫아걸면 안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나올 수 없는, 때가 되면 부인이 식구 통으로 밥을 넣어주는 구조이니 영락없는 감옥인 셈이다. 이토록 창작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산고의 고통이 따른다. 내가 만든 감옥은 이외수씨의 완전한 감옥과는 다른 조금은 어설픈 구조였다. 내 작업실은 천장이 지천이 없어 2층 높이로 휑하니 높고 평수도 열 평이 넘어 난방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 생각한 것이 방안에 투표장의 기표소 같이 광목으로 천막을 만들어 그 안에 작업도구를 넣고 소형 전열기구로 난방을 하면서 작업을 했다. 가로 세로 2m 정도에 천장은 고개를 숙여야만 되는 자궁처럼 조그맣고 안온한 절대적 공간-창이 없으니 밖에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고 광목에 갇힌 감싸 주듯 부드러운 조명이 일의 집중을 도왔다. 이 속에 스스로 갇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짜내어 한 땀 한 땀 오선을 채워 넣는 고된 작업 속에서 난 언제나 이 장막을 훌훌 걷고 아득한 먼 나라로 떠나는 꿈을 꾸면서 지냈다. 어디로 떠날까. 몽고의 초원으로? 아니면 시베리아의 바이칼로? 아니면 열사의 사막으로? 그러다 우연히 주위 분의 권유로 지구의 지붕이라는 티벳 고원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어떤 여유나 호사가 아니라 너무나도 심신이 소진돼 탈출하고자 하는 절박하고 갈급한 심정에서 겨우 전날 밤에야 짐을 꾸려 허위 허위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었다. 박박 퍼 올려서 고갈된 창작의 샘에 다시 물이 고여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도 있었다.
표박(漂迫)1일
2005년 8월2일 인천공항 출발 -중국 쓰촨성 성도에서 일박
지루한 출국수속을 끝내고 무거운 짐을 부치고 보딩 게이트에 대기하면 정말 떠난다는 실감을 하게 된다. 가죽보다 더 질긴 현실과 얽히고 설킨 인연이 나를 옭아매 내가 떠나면 지구가 그 운행을 중단 할 것 같이 불안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난 떠나지 않을 수 없어, 이젠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러니 여행은 신변을 정리하는 것과 같지. 난마와 같이 엉킨 삶의 궤적에서 이탈 하는거야. 그러니 떠나는 모든 사람들은 비행기가 연신 내리고 뜨는 활주로를 바라보며 사색하는 모습이 되나보다. 그리고 그 얼굴과 어깨에는 떠도는 자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전염된다.
드디어 내가 탄 비행기가 양력을 얻기 위해 대지를 박차고 으르렁대며 내달린다. 순간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내가 뿌리를 박고 살던 대지로부터 이탈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성도공항
중국 인민 1억2천만명이 산다는 쓰촨성(四川省)의 성도(省都)인 성도(成都). 본토 발음으로는 청뚜. 인구는 1000만. 촉의 제갈공명이 구상한 계획도시이며 2000년 동안 한 번도 이름이 바뀌지 않은 도시란다. 중국은 단위가 무엇이든 크고 많다. 타임 머쉰을 타고 20년을 뒤로 온 듯 공항내부는 어두침침하고 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다. 벽면의 광고물도 소박하다 못해 촌티가 나고 제복의 근무원들도 표정이 굳어있다. 그렇다. 여기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개방과 실용을 주창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잔영이 또아리 처럼 서려있다.
쓰촨성(四川省)은 그 이름에서와 같이 양자강, 민장강, 퉈장강, 자링강의 네 강줄기가 흐르는 곳으로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2모작 지대. 그러니 가히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 불릴 정도로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천연자원 및 식량자원을 소유한 곳이다. 청뚜는 분지지대라서 태양을 보기 힘들 정도로 안개가 자주 낀다. 때문에 “쓰촨성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고사가 있을 정도라나?
오전에는 거의 매일 안개가 자욱하여 안개처럼 흰 피부의 미인이 많은 고장이란다. 그렇다고 한국의 남정내 들이여, 헛 침을 삼키진 마시라! 청뚜의 여인들은 대가 매우 쌔서 두 귀가 튼실하지 않는 한 부질없는 망상은 접으시길...
팔도라는 말이 있단다. 이는 “귀를 무서워 하는 남자”라는 뜻으로서 청뚜의 여인들은 늦잠을 실컷 자고 집안일도 개의치 않으며 마작이나 즐기다가 남자가 벌이도 시원찮고 못 마땅하면 귀를 사정없이 당긴다나 어쩐다나.....
전통적으로 여권(女權)이 신장된 여성천국이란다.
광동요리(澳菜), 호남요리(湘菜), 산동요리와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대표요리인 사천요리의 고향이라 그 진수를 맛보기를 원했으나 여행사에서 안내한 음식점들의 요리는 그다지 구미에 닿지 않았다. 특히 훠궈(火鍋)라 불리는 쓰촨성이 원조인 샤부샤부 요리는 칸막이로 나눠진 냄비에 새빨간 육수와 하얀 육수가 담겨져 있다. 빨간 육수는 매운맛, 하얀 육수는 담백한 맛이 난다. 육수가 펄펄 끓으면 여기다가 야채와 고기, 생선 등을 살짝 데쳐 소스에 찍어먹는데, 습하고 더운 지방에서 ‘이열치열’의 방편으로 사랑받는 음식이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수염과 지느러미가 그대로 달린 채 나오는 매기 비슷한 것과 미꾸라지 비슷한 것들을 어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오후에는 유비와 제갈량의 합사묘인 무후사(武侯祠)를 비롯하여 두보가 '안사의 난'을 피해 피난을 와서 시를 짓던 두보초당(杜甫草堂)을 둘러보고 저녁에는 천극(川劇)을 보러갔다.
공연장의 객석 규모는 크지만 시설과 분위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정읍이나 목포의 공연장 같이 떠들썩하고 조악하였다. 공연 내용은 순식간에 가면이 바뀌는 변검(變瞼)과 그림자 연극, 주둥이가 긴 주전자로 차를 따르는 묘기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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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신 와중에 이리 큰 또다른 작업을 시작하시다니, 우리 카페가 더깊어지고 풍요로워지겠습니다. 더 자주 들어올 재미까지 생기구요. 연재 기다리며, 매일들르겠습니다. 몸은 상하지 않으실 만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