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기다리는 당신을 위한 아름다운 기적! Love Actually is all around.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증오와 탐욕으로 가득찬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곳이다. 대부분은 사랑을 특별히 고귀하게 여기지도, 새롭게 느끼지도 않지만 사랑은 언제나 존재한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남편과 아내, 친구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리차드 커티스 감독> 바로 우리들 곁에 있는 사랑을 다양한 감성으로 그려낸 <러브 액츄얼리>, 크리스마스 5주전 조심스레 사랑을 시작한 10쌍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은 늘 우리들 곁에 존재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영혼을 울리는 진한 감동과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여운으로 전한다. Synopsis ..사랑이 있는 풍경, 겨울을 녹이는 따뜻한 감동 미혼의 수상(휴 그랜트) & 상큼한 비서 나탈리(마틴 맥커친)의 사랑 영국 작가 제이미(콜린 퍼스) & 포르투갈 여인 오렐리아의 사랑 남편 해리(알란 릭맨), 아내 캐런(엠마 톰슨), 그리고 또 다른 여자 미아의 사랑 회사동료 카알을 짝사랑하는 사라(로라 리니) 친구 피터의 신부 줄리엣(키라 나이틀리)을 짝사랑하는 마크(앤드류 링컨)의 사랑 새 아빠 대니얼(리암 니슨)과 11살짜리 아들 샘의 사랑 사랑을 찾아 위스콘신으로 향하는 로드리고 산토로 한물간 록스타 빌리 맥(빌 나이히)과 매니저의 사랑 까메오<가수와 미스터 빈(로완 아킨슨)> 그리고 모두의 사랑이야기... 제작노트 '로스엔젤레스에서 영화를 찍고 있을 때였어요. 공항에서 짐을 찾으려고 한시간 정도 서 있어야 했는데 정말 볼거리가 많았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따분한 얼굴로 서 있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갑자기 애정과 관심이 듬뿍 담긴 얼굴로 변하는 거예요. 바로 그 순간, 그 사람들의 표정에서 사랑하는 이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죠. 저는 바로 이런 진실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가슴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현실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친구의 신부를 짝사랑하는 마크의 크리스마스 고백(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장면) 죽마고우의 아내가 된 여자에게 도화지에 글을 쓰고 음악을 준비하고 "크리스마스잖아요. 나에게 당신은 완벽해요. 가슴이 아파도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라고 고백하는 가슴아픈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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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영화 Love Actually
크리스마스에 연인과 함께 보면 더 좋았겠지만, 친구와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보아도 좋았던 영화다.
나는 "여러 갈래의 마음(기도와 금식..)"때문에 아주 편안함으로 몰두할 수 없었지만 친구는 영국 작가와 포르투갈 여인의 사랑,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언어를 배우며 만남을 준비해온 눈높이 사랑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증오와 탐욕으로 가득찬 곳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득한 곳이며 사랑의 고귀함과 신비감을 잊고 살지만 사랑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감독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요즈음의 영화는 예전과 같은 감동이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아니 감동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 짜맞춰진 감동이 있다고나 할까.
이 영화도 많은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하나로 묶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구성을 하였을지도 모르고 화려한 배우들의 독립적인 "주역" 보장을 위한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사랑은 늘 우리들 곁에 존재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선물하고 싶었다는 제작자의 의도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이 낮고 천한 곳에 보내신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이 한편의 영화 속에 편안하고 아름답게 스미게 한 그 마음이 좋았다. 그런 사람이 있음에 좋았다. (물론 나는 물만 먹으며 온전한(?) 접대를 해야 했지만) 기도와 고마움의 나눔을 함께 하며 Love Actually를 체험(?)한 뜻 깊은 날이었다.
"Love Actually is all around."
And "God is Love".
So "God Actually is all around!!"
격월로 받아보는 책자에 [러브 액추얼리] 영화관람평이 실려있다. 참으로 감동적이어서 낑낑대며 이곳에 옮겨왔다. 나의 수고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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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 [오늘] 사람&사람 / 평광교회 권용철 집사 & 민경업 군<김주용 기자 200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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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전차(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2004년 3월)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 Realizing the Power of Your Identity in Christ
VICTORY over the DARKNESS -Neil T. Anderson >
수년 동안 쌓은 것이 하루 저녁에 무너질 수 있을지라도
그래도 계속 쌓으라.
가장 좋은 것을 준 당신을 세상이 겉어찰지라도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을 세상에 주라!
사역GBS의 새 교제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다.
같은 맥락..
요즈음 무너져 가는 나의 마음에 더욱 "가슴아픈 도전(?)"을 주는 말들..
하나님은 왜 이런 말들을 주시는 걸까?(2004. 2월 初)
내가 누구일까?
"목적이 이끄는 삶"에 빠져(?) 11월과 12월의 반을 보냈고 나머지 12월의 반부터 새해 1월의 반까지의 한달간을 거의 헤매면서(?) 보냈다.
그러다.. 걱정, 염려..하나님의 경고 사인을 받고 내 안에 평안이 없음을 깨달았다.
1월이 지나고 2월까지 .. 회복의 기로엔 후유증이 있었다.
GBS의 새로운 교재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는 "목적이 이끄는 삶"만큼 집중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구입"이 아닌 "대여"를 택했던 것부터 알 수 있듯 비중을 많이 두지 않았다.
어쩌면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받은 충격(?)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 이책을 정리하여 보았다.
제2장,생명과 죽음에 차이에선 "불의전차"를 집중 조명함으로 "영화이야기"가 된 듯도 하지만 두 권의 책(목적이 이끄는 삶,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모두에서 소개하고 있는 의미있는 영화이며 그 정도의 비중이 내게 있었던 영화였기에 상세한 논의점을 제시하였다.
다른 내용들은 나에게 인상깊었던 표현들을 서술하는 방식을 취했다.
"수년 동안 쌓은 것이 하루 저녁에 무너질 수 있을지라도 계속 쌓으라"고 책은 말한다.
이런 무너짐을 체험(?)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울었다.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라는 확신에 찬 대답은 자신이 없다.
아마 "이제 알았다"는 고백은 오랜 시일이 소요되는 숙제가 될 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래도 계속 쌓고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을 세상에 줄 작정이다.
이 책을 대여(?)해준 "나의 친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당신의 희망을 잠시 내게 주었던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한다.
에릭 리들(Eric Liddle)
- 그의 영적인 신분(선수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 자기 인식과 목적이 그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 것.
-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을 또한 나를 빠르게 달리는 사람으로 만드셨고, 나는 달릴 때 하나님의 기쁨을 느낀다." 후에 그는 "뛰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속적인 능력은 없다. 단지 능력을 오용할 뿐이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능력을 발휘해보라.<목적이 이끄는 삶/ Day 9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 것(p.99)에서 발췌>
나와 에릭 리들
내가 "에릭 리들"을 알게 된 것은 영화 <불의 전차>를 통해서다. 왠만한 스포츠 영화엔 관심을 두지 않는데 이 영화는 그냥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를 볼 때 크리스찬으로서의 영화보는 시각을 적용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 대단한 영화였다. 젊은이들의 열정, 투지, 삶을 일궈내는 모습들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아름다운 젊음"을 느꼈던 영화, 그 영화를 더욱 빛나게 했던 한 사람, 그가 바로 "에릭 리들"이었다. 아래는 내가 인터넷의 여러 사이트를 다 뒤져서 <불의 전차>를 집대성(?)한 내용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서 활화산같은 불의 전차가 마음 가득 가득차기를 바란다.
불의 전차(1981, Chariots of Fire) : <넷서핑을 통해 얻은 여러 정보를 재정리한 내용>
◈영화의 줄거리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의 금메달 리스트인 영국 육상의 영웅 해럴드 에이브라함과 에릭 리들의 불굴의 인간승리를 그린 실화.(1981년 아카데미 7개 부문 노미네이트 및 4개부문(작품상, 각본상, 의상상, 음악상) 수상작)
1919년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인 "해럴드 에이브라함"이라는 청년이 명문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한다. 해럴드는 유태인을 멸시하는 주위의 시선을 언젠가 누르고 말 것을 다짐하며 영국 대표로 곧 개최될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차지하는 꿈을 가진다. 타고난 스프린터인 그는 제8회 올림픽대회 영국대표로 선발된다. 유태인이기에 당해야 했던 천대와 멸시를 이겨내기 위해 승부에 집착하던 해럴드는 무사비니라는 육상계의 신화적 인물을 개인코치로 초빙하면서까지 투지를 불태운다.
한편 스코틀랜드에서는 에릭 리들이라는 청년이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는 찬사를 달고 꿈을 키워나간다. 에릭 리들은 선교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선교사가 되기를 모든 가족들이 바란다. 그러나 에릭리들은 달리는 것도 자신에게 내려준 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에릭 역시 피나는 노력과 뛰어난 기량으로 대표선수로 선발된다.
해럴드는 인종차별과 편견에 대항하기 위해 에릭은 신의 은총에 감사하기 위해 달린다. 그리고 달리는 순간 그들은 행복하다.
선교사를 꿈꾸는 에릭은 하나님을 위해, 해럴드는 자신을 위해 올림픽에 도전하고 드디어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둘은 영국 대표로 선발되어 프랑스로 가는 배에 오른다. 올림픽 1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유력한 선수로 영국 국민의 기대를 모으고 있었던 에릭은 그의 경기가 주일에 있음을 알고 조용하고도 단호한 결정을 내린다.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그는 출전을 포기한다. 이 말은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각 신문에서는 '옹졸한 신앙인', '배신자'라는 폭언을 해댔다. 그런데 그의 이런 신앙을 높이 산 영국 공작 출신 육상선수가 자신의 목요일 400M 경기를 양보하고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은 에릭은 결국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400M의 우승자가 된다. 이로써 100M에서는 동료 해럴드가 금메달을 따냄으로써 영국에 두개의 금메달을 안겨주게 되었다.
그후 우여곡절을 겪는 두 사람. 결국 에릭은 자신의 신념대로 중국으로 건너가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다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간직한채 2차 대전 직후 일본 포로 수용소에서 순교하고, 해럴드는 뮤지컬 배우 크리그와 결혼한 후 영국 아마추어 체육협회 대변인으로, 언론인으로, 정치가로 존경받는 삶을 누리다가 1978년 세상을 떠났다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의 피나는 노력과 역경을 떨쳐내는 강인한 의지, 감격적인 올림픽 우승의 순간들을 잔잔한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감정들이 영국영화의 전통적인 기록영화적 무감동의 구도를 빌어 놀라우리만큼 순수하게 보여진다. 휴 허드슨 감독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81년 아카데미 4개부문(작품상, 각본상, 의상상, 음악상)을 수상할 정도로 그의 역량을 발휘한 작품이기도 하며 감독은 극중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기성배우들을 철저히 배제시키고 영국 로얄 세익스피어 극단의 주역배우들을 캐스팅했는데 이것이 적중하여 영화흥행에 일조하기도 했다.
또한 이 영화는 스포츠영화에서 통상적으로 볼수 있는 클라이막스의 감상주의나 멜로적인 감정처리는 지극히 절제되어 표현되어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단순한 스포츠영화로 단정지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물론 훌륭하게 촬영된 경기장면들이 자주 나오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고독하리만큼 사색적이다. 특히 아름답고 강렬한 반젤리스의 배경음악은 영화음악의 고전으로 손꼽힐 만큼 유명하다.
◈Christian의 영화보기
영화 <불의전차>는 실존했던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두 영국 육상영웅, 에릭과 해럴드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으로서 두 사람의 극적인 삶의 대비를 통하여 관객들, 특히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영화이다. 뛰어난 작품성과 영상미로 인하여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에릭 리들의 이야기는 <저는 주일에는 뛰지않습니다>(박광희著 두레마을刊) 라는 제목으로 책으로도 편찬되었다.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에릭의 선언에 대해 사람들은 '옹졸한 신앙인'이니 '배신자'운운 하며 비판하였지만 그가 금메달을 따고 귀향할 때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대접하였다. 그는 신앙도 지켰고 조국에 영광도 안겨 주었다.
에릭은 400M 경기 이후의 기자회견에서 "400M에서 제가 승리한 비결은 처음200M는 저의 최선을 다해 '빨리'달리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라는 그의 선언과 그의 행동은 그 후에 많은 이들에게 어떤 한마디 설교보다도 더 강력한 메세시가 되어 많은 이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했다.
반젤리스가 음악을 담당한 게 약간은 흠이지만 지극히 경건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좋은 영화이다. <불의 전차>가 타협을 극복한 승리를 보여 주고 있다면 롤랑 조페의 영화 <미션 : Mission>은 타협이 개인과 국가 그리고 교회까지도 오염시키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에릭의 삶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길 바란다.
"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린도전서 9:24-25)
"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섭리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하늘나라의 신비를 알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바로 깨닫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실천'하려 할 때이다." 이 글은 하나님만을 따르기 위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의 영광과 물질적 유혹을 뿌리치고 중국선교사의 길을 택했던 에릭 리들의 글이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자 했던 한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이 영화를 감상하기 바란다.
◈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자료
데이비드 푸트넘은 한바탕의 유행성 감기를 앓는 동안 올림픽 경기의 역사를 읽으면서 이 <불의 전차>에 대한 발상을 하게 되었고, 이 영화제작을 위해 재정적인 후원을 얻는 데는 2년이 걸렸다. 아무도 1928년 올림픽의 영국 육상 선수들을 다룬 영화가 흥행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영화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에릭과 해럴드를 각각 지탱해 주고 있는 신앙의 힘이다. 이 영화가 나오자 영국과 미국의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갑자기 극장에 갈 것을 권하기 시작했다.
푸트넘의 영화는 블록 버스터의 요소가 전혀 없는 영화이다. 특수효과의 마법도 없고 잠시 짜릿하게 하는 플롯도 없으며, 물리칠 악당도 없다. 대신에 이 영화는 반젤리스의 음악이 전편에 흐르면서 관객들에게 강한 감동을 불어넣는다. 육상 선수들이 해변가를 달리는 처음 장면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잊혀진 탁월함을 추구하는 노력, 팀 안에서의 충성,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사랑하는 옛 가치관들과 우리는 만나게 된다. 그러나, <불의 전차>는 과거의 가치들에 대한 향수를 추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신념을 파헤치면서 서로를 대립시킨다.
해럴드와 에릭은 명예를 추구하는 데 있어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해럴드에게 달린다는 것의 의미는 '하나의 의무이며,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에 대한 무기이다'. 그의 명예는 개인의 명예이며, 그의 종족을 비웃는 세상으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기 위한 싸움이다. 반대로 에릭은 그의 하나님을 위해 달린다. '내가 달릴 때, 나는 그의 기쁨을 느낀다. 내가 이기는 것은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세 번째 신념은 이 두 가지 신념 모두에 대립되는 것으로, 그것은 국가적인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다. 이 영화는 에릭으로 하여금 그의 원칙에 반해서 안식일에 달리도록 하려는 캠브리지의 교수와 영국 귀족들을 통해서 그 신념이 나타나고 있다.
각각의 관점은 서로 다른 신앙을 만들어 낸다. 해럴드는 사람들의 편견에 대항해 달리는 반면, 에릭은 자기 창조주의 영광을 위해 달린다. 이 영화의 성공은 '남성적인 기독교'를 매우 드물게, 긍정적인 관점에서 그렸다는 점에 있다. 다른 많은 기독교 영화들이 실패한 이 부분에서 <불의 전차>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우선 에릭의 신앙은 영적인 동시에 육적인 통합을 이루고 있었다는 데 있다. 그는 달리는 것과 신앙의 삶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누군가 지적한 것처럼 '완벽하게 해내기만 한다면, 감자 껍질을 벗기는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나누는 실수를 하는 반면, 에릭은 자신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대문에 자신도 완전함을 추구한다.(마5:48). 그리스도인, 비그리스도인 모두 탁월함의 추구에 헌신할 수 있으나, 에릭의 경우 그것은 개인적인 영광을 추구하는 잔재들을 쓸어버린 헌신이었던 것이다.
푸트넘은 분명, 에릭을 틀에 박힌 신자로 만들 위험성을 감지했을 것이다. 물론 에릭은 다소 영웅적으로 그려지기는 했지만, 결코 자만심에 찬 경건주의자는 아니다. '안식일에는 축구를 하면 안되지'라고 그는 한 소년에게 타이르지만 바로 다음날 아침 축구 시합을 주선한다.
에릭은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측면에 서서 비판만 하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은 그리스도인 자신들의 탓이기도 한데, 에릭은 그런 그리스도인들과 구별된,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신앙을 보여 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신앙에는 항상 치루어야 할 대가가 있으며,<불의 전차>는 그것을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지 않는다. 에릭의 경우, 달리기에 대한 '세속적인' 흥미 때문에 선교의 일은 저버리고 있다고 여동생으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고, 그녀 또한 시합이 끝날 때까지 혼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해 달라는 부탁을 받음으로써, 신앙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또한 에릭은 주일날 행해지는 경기에 뛰지 않겠다는, 훨씬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생각해서 내린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에릭이 금메달과, 그가 이 경기에 참가하고자 희생한 모든 것을 그 대가로 치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쉽게 잊혀진다. 실용적인 관점을 취할 것을 요구하는 압력은, 에릭이 그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미래의 왕을 알현하게 될 때 극에 이른다. 에릭이 딱 잘라 말하진 않지만, 이 영화는 신앙이 항상 그렇게 뚜렷한 표지판이 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그려내고 있다. 어떤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오기는 했는데, 마치 그들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때 신앙의 궁극적인 시험은 돌아서지 않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대형화면에 나타나면 그들은 조연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러나 에릭 리들을 <불의 전차>의 두 주인공 중 하나로 선택함으로써, 푸트넘은 우리에게 신앙을 한층 확대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옛날 영웅들을 다루는 영화에서는 간혹 그 인물을 이상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에릭은 절대로 화를 내지 않으며, 그의 신앙에 대해서 아무런 회의를 나타내지도 않는다' 식으로... 그러나 그는 진부한 종교적인 말들만 하는 평면적 인물은 아니다. 이언 찰슨이 해내는 역할(에릭)은 견디기 어려운 압력에 맞서서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 결과, 에릭이 결승선을 들어설 때 그 승리는 관객의 가슴을 울린다. 완벽을 추구한 승리는 땀과 정직 그리고 불굴의 신앙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그 경기를 마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라고 에릭은 말한다. 신약에서 말하듯, 이 영화에서도 경기는 종종 인생의 비유로 나타나며(고전9:24,딤후4:7), <불의 전차>는 우리에게 어떻게 달리느냐의 중요성에 대해 잘 깨우쳐 주는 작품이다. 타협이 현대의 정치와 현대의 삶의 방법일지 모르나 그것이 신앙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 세상에서 성자를 만나볼 행운을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행운이 슬며시 다가왔다.
그 성자의 이름은 바로 에릭 리들이다. "
- 에릭과 함께 웨이신 수용소 있다가 훗날 대학교수가 된 랭던칼키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달리는 선교사 에릭 리들-
"에릭 잘 잤어?"
"아니 길모어 공원에서 기다리지 않고?"
"내 예상대로라면 너 며칠 간 뛸 수가 없을 거야. 어때 내 말이?"
길모어의 반대를 무시한 채 체력 단련을 한다면서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에릭은 다리가 뻣뻣해 걸을 수가 없었어요.
"미안해. 네 말이 맞았어."
"자 이제부터 내 실력을 발휘할 때가 되었군. 우선 더운 수건으로 굳은 근육을 풀어주고..."
길모어는 능숙한 솜씨로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어요.
"길모어, 사실은 네가 초보자라고 생각했거든."
" 네 생각대로 난 초보자야."
"거짓말하지마. 초보자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 수가 있니?"
길모어는 그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했어요.
"난 어렸을 때 달리기만 하면 꼴찌였어. 물론 성적도 꼴찌였고. 그래서 늘 친구들의 놀림감이었지."
그래서 그는 늘 불평을 하며 지냈는데 성경에 달란트 비유를 읽으면서 자신을 발견했다고 해요.
"그래 난 한 달란트 받은 종이구나. 불평만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땅에 묻은 악한 종이 되는 거야. 비록 한 달란트를 받았지만 두 달란트를 만드는 거야."
그 때부터 그는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애딘버러 대학에 들어오게 되었지요. 직접 선수로 뛸 수는 없어도 코치는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육상 서적을 열심히 읽었어요.
"물론 내게 코치를 부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지. 그래서 내가 선수를 찾아 나섰지. 그게 바로 너야."
"길모어!"
둘은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 드디어 육상 경기가 열렸어요.
"에릭 너무 긴장하지마. 우린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는 거야."
길모어는 위로했어요.
"처음이라 긴장되지? 마음놓고 힘껏 달려 넌 좋은 기록을 낼 거야."
같이 출전한 형도 힘을 주었어요.
"이네스! 이네스!"
"역시 이네스야."
사람들이 앞서 달리는 이네스를 응원을 했어요. 뒤쳐져 있던 에릭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어요.
"어 저 선수는 누구야. 처음 보는 선수인데?"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래졌어요.
"에릭, 이네스를 이겼어요. 넌 정말 대단해."
길모어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말했어요. 그 날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에릭을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100m, 200, 400m에서 모두 우승했어요. 에릭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어요. 이 때 길모어는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고 에릭은 새로운 코치와 훈련을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1차 대전으로 사람들은 마음이 메말라 있었고 좌절과 실의에 차 있었어요.
"복음을 전하려고 해도 모두 술집이나 도박장에 가 있으니.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가수나 영화배우를 초청하면 어떨까요?"
"하지만 엄청난 돈을 내야 할 텐데요. 그리고 인기인 중에서는 믿음이 좋은 사람도 잘 없고요."
"그럼 신앙이 좋은 에릭 리들은 어떻겠어요."
"하지만 에릭은 올림픽 준비로 바쁘게 뛰고 있을 텐데..."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부탁을 했어요.
"예 알겠습니다. 코치와 상의해서 꼭 참석하겠습니다."
에릭은 쾌히 승낙을 했어요. 에릭 리들이 강사로 온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처음 초청을 받고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데서 '네가 나설 때가 이 때다. 내가 도울 테니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 안에 있는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중병을 앓아 6개월 동안 일어서지도 못했습니다. 모두들 앉은뱅이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부모님과 저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튼튼한 다리를 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문제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고통과 질고와 걱정 근심으로 가득한 곳이 이 세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내려놓고 쉼을 얻지 않겠습니까?"
에릭의 솔직한 말에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여기 저기서 그를 초청했어요. 에릭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에릭이 성경을 읽고 있을 때 코치가 들어왔어요.
"에릭 얼마 안 있으면 영국 선수권 대회가 열리는데 당분간 전도 활동을 중단할 수 없겠는가?"
"코치님, 제가 전도 활동을 했다고 기록이 떨어진 적이 없지 않습니까?"
"이것 좀 보게."
코치는 신문 기사를 내 놓았어요.
"전도 활동에만 전념하는 에릭 리들 영국 육상 선수권 대회에 에릭을 내보내는 것은 기차비 5파운드만 낭비하는 게 될지도....."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로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선수권 대회는 이 세 공화국이 모여서 하게 되지요.
"만약 자네가 성적이 부진하면 여론이 사정없이 공격할 거야."
"제게 육상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도입니다. 육상은 쉴 수 있어도 전도는 쉴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1923년 7월 런던 경기장에서 영국 육상 선수권 대회가 열렸어요. 100m 9초 7 영국 신기록, 200m 21초 6로 우승. 에릭은 100m 선수로 올림픽에 나가게 되었어요. 그 해 가을 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3국 친선 경기가 있었어요. 에릭은 400m 선수로 출전했어요. 에릭은 넘어지고도 우승을 하게 되었어요.
이제 신문들은 에릭을 칭찬하는 글들을 실었어요.
"에릭 올림픽 일정표가 나왔어. 100m 예선은 7월 6일 일요일 오후 3시 30분이군."
"저 코치님 죄송하지만 이번 경기에 출전할 수 없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저는 주일에는 뛸 수 없습니다."
"이건 올림픽이야. 국가를 대표하는 경기라고."
그러나 에릭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어요.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심이 깊은 척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배반자.'
언론들이 모두 에릭을 비난했어요.
"위원장님 일정은 변경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에릭을 400m 출전시킵시다."
"에릭은 100m 선수잖소?"
"하지만 지난번 보셨지 않습니까?"
"그 때 넘어지고도 우승한 일 말이오?"
이렇게 해서 에릭은 400m 선수로 올림픽에 나가게 되었어요.
드디어 1924년 7월 11일 파리 올림픽의 400m 결승이에요. 출발 신호가 울리자 에릭이 불쑥 앞으로 나왔어요.
"아니 400m를 100m처럼 달리잖아. 처음부터 저렇게 속도를 내다니! 쯧쯧"
"역시 100m 선수라 어쩔 수 없군 저러다 금방 지치지."
그런데 300m를 달려도 똑 같은 속도였어요.
"아니 더 빨라지고 있잖아!"
에릭은 400m를 똑 같은 속도로 달려 47초6으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어요.
"도대체 당신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옵니까?"
"예 처음200m는 최선을 다해 달렸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올림픽 영웅 에릭 리들의 아버지는 중국 선교사였고 에릭도 중국 선교사로 열정을 보냈답니다.
하나님과 재물(마 6:19~24)
1981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불의 전차들(Chariots of Fire)"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것은 실제 인물인 헤롤드 에이브라함과 1902년 중국 천진에서 태어난 영국 선교사의 아들이었던 에릭 리델의 삶을 영화화한 것이다. 100m 경주에서 그들의 경쟁자는 없었다. 19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영국 내에서 먼저 경기가 벌어지는데, 에릭 리델이 승리를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100m 예선 경기가 주일날로 정해지게 되었다. 그러자 에릭 리델은 그 경기를 포기하고, 그러자 모든 영국 언론이 야유를 보냈다. 영국 황태자가 직접 찾아가서 설득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 때 에릭 리델은 이렇게 말한다. "국왕도 국가도 모두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저도 국가와 국민들을 사랑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결국 올림픽 100m에서는 에릭리델이 빠진 상황에서 헤롤드 에이브라함이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
100m 경기는 끝났지만, 에릭 리델을 향한 야유는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는 단거리 전문인 그에게 400m 경기에 나가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당신이 정말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하며, 또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주일날이어서 못뛰는 거라면, 평일에 경기가 있는 400m를 뛰어 보라." [100(One-hundred) Years of Olympic Glory]라는 올림픽 기록영화를 보면 1924년 파리올림픽 당시 400미터 경주의 제일 왼쪽에서 고개를 하늘로 쳐든 채 달리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00m 전문인 사람이 400m 경기에 참가하니까, 우승 가망성이 없다고 보고 3,4번 레인을 주지 않고 맨 왼쪽 레인에서 경기를 진행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에릭 리델은 남자 400m 부문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한다.
고개를 하늘로 쳐든 채 무작정 앞으로 달리는 에릭 리델의 독특한 자세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는데, 그의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한 신문에는 이렇게 머리글이 실렸다. "에릭 리델,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달렸다."
이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던져주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영화화된 부분도 바로 여기까지이다. 그러나 에릭 리델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끝까지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한가지가 더 있다. 1924년 올림픽을 통해 그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지만, 그 명예를 다 버려 둔 채 바로 그 다음해인 1925년 선교사의 신분으로 다시 중극을 향해 출발하는 배에 오른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고,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진 애를 쓰다가 1945년 중국의 한 포로 수용소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그 곳에 함께 있던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에릭 리델은 그 수용소 안에서도 부모와 함께 잡혀온 어린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준 선생님이었다고 한다.(김두식 변호사 글 모음 가운데, "용기를 주는 영화 두 편 이야기"참고 - 동생의 2002년 M.Div. 학위논문 "산상수훈에 대한 고찰(마6:33~34)")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에릭 리들은 영국대표로서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 경기의 금매달 후보였다. 그러나 100 m 경기 일정이 발표되었는데 첫 예선일자가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였다. 그는 그 일정표를 보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뜁니다." 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다. 그의 그런 결정은 그의 주일 성수를 위한 자기 희생적 결정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에릭 리들의 100 m 출전 포기를 들은 영국 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척 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 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100 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 6일 주일에는 스콧츠 커크(Scats kirk) 장로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하였다. 그 날 에릭 리들은 경기장에 나가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100m 경기에서는 영국의 헤롤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기록은 에릭 리들보다 약간 뒤졌었다. 에릭 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하나님은 에릭 리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200 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 m 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400 m 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였다. 예선에서만도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 같은선수들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후보로 각광을 받았었다. 드디어 결승의 날이 왔다. 에릭 리들은 신들린 사람처럼 첫 코너를 돌았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 고 불안함을 표현하였다. 에릭 리들은 임바흐, 피치 등 우승후보를 제치고 47초 6이라는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쪽지가 응답되었던 것이다. <In the old book it says, "He who honours me-I will honour" Best wishes always> <구약에 이런 글이 있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 최선의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 그는 처음 400 m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처음 200 m 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 m 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은 자기를 위한 날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설교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 박광희의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