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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행 선 지 | 상세한 일정 내용 | 참고 사항 |
2020. 06.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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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
|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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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0 | 동천역 | 동천역 간이 정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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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 | 기흥휴게소 | 기흥휴게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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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 명암리 | 명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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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09:00 | 명암리 | 교우촌 및 대월 수도원 방문 | 수도자와 접촉이 불가능하면 시설및 시복되신 순교자를 위한 기도와 삶의 터전만 살피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
09:00 | 발레기 골 | 명암 교우촌 - 정삼이 골 교우촌 임도걷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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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 정삼이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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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 백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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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 13:00 | 점심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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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15:00 | 무명순교자 | 묘역 순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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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 16:00 | 공소 | 공소예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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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 18:00 | 산막 | 차와 다과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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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 |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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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 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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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
신청자. 6월 1일 현재 세베리노 포함 9명. | |||
1.김정자 아네스, 2. 김애경 벨리다, 3. 남순자 마가렛, 4. 장은기 데레사, 5. 박건순 가브리엘라, 6.유영재 마틸다, 7.김순분 프란치스카, 8. 강 로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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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자 수녀회 관상부가 있는 침묵 대월 수도원이 있는 곳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교우촌이 있던 곳이다. 이 마을은 골짜기가 매우 깊고 항시 맑은 물이 흘러 바위가 깨끗하여 명암(明岩) 이라 불렀다 한다. 또한 이 마을은 한 동네이지만 윗마을을 명심, 중간마을을 양달말, 아래마을을 동암(東岩) 말이라 부른다. 엣지명으로 발래기라 부르는 곳과 퉁점이라 부르던 곳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숨어들어 살던 곳이다. 이 골짜구니 전체를 명암리라 부르는데 양달말의 밝음을 뜻하는 밝을 명(明) 자와 동암말의 바위 암(岩) 자를 따서 명암리라 부르게 된 곳이다.
병인박해(1866 - 1873) 당시 진천 일대 교우촌이 교난을 당할 때 이곳 발래기에서도 김원중 스테파노 (金元重 ? ~1866년)와 김선화 베드로(金先化, ?-1866.10.15.)가 순교하였다. 충청도 진천 발래기에 살았던 김원중은 본래 신덕이 교우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진천 관아에서 발래기 신자들의 소문을 듣고 신자들을 박해하며 배교를 강요받았을 때, 그는 ‘천주교를 신봉하는데 어찌 배교 행위를 하겠느냐’면서 관아의 명령에 협조하지 않았던 천주교인이었다.
1866년 10월, 관아에서 출두 명령서을 보내 ‘발래기 사람들은 모두 관아에 출두하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을 들은 그는 교우들에게 말한다.“이제 들어가면 모두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 관아로 갈 것이 아니라 죽음을 달게 받을 정도로 신덕이 깊은 사람만 관아로 가자.” 하고 발래기에서 진천관아로 갔다. 진천관아에서는 이들을 가뒀다가 10월 30일 공주로 압송했는데, 그 일행이 공주 관아에서 어떠한 형벌을 받았는지는 알 려진바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두 끝까지 신앙을 증거했으며 교수형으로 순교했다는 사실이다.
김원중 스테파노 (金元重 ? ~1866년)
충청도 진천의 발래기(현 충북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살던 김원중 스테파노는 본래부터 성품이 순량하고 온후하였으며, 신덕이 교우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그의 이웃에는 사촌 김선화 베드로가 살고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진천 관아에서는 이미 발래기 신자들에 대해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명령서를 보내와 “다시는 천주교를 봉행하지 않겠다는 증거로 천주교 서적을 관아에 갖다 바치고 직접 관장 앞에서 다짐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러한 전갈을 받은 발래기 신자들은 대부분 놀랍고 두려운 나머지 관청의 분부대로 서적을 갖다 바치고, 관장 앞에 가서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이때 스테파노만은 “내가 천주교를 신봉하는데 어찌 배교 행위를 하겠느냐?”고 말하면서 서적도 갖다 바치지 않고 관아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외교인들은 물론 발래기의 신자들까지도 화가 자신들에게 미칠까 두려워 스테파노를 원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을 위해 모든 원망을 감수하였다.
1866년 10월 4일(양력 11월 10일), 관아에서는 명령서를 보내와 “발래기 사람들은 모두 관아에 출두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명령을 전해들은 스테파노는 교우들에게 “이제 들어가면 모두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모두 관아로 갈 것이 아니라 죽음을 달게 받을 정도로 신덕이 깊은 사람만 관아로 가자.”고 말하였다.
이튿날 진천 관아에서 포졸들이 왔을 때, 발래기 신자들 중에서 김원중 스테파노를 비롯하여 10명만이 자진하여 체포되었다. 그들 일행이 관아로 들어가자 관장은 “일전에 갖다 바친 책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다. 스테파노는 책을 갖다 바친 적이 없으면서도 “저의 책이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관아에서는 즉시 그를 가두어 버렸고, 이때 신성수 회장과 그의 아우 신성순, 이성유를 제외하고는 모두 겁에 질려 배교를 다짐하였다.
진천 관아에서는 25일 동안 이들을 가두었다가 10월 30일(양력 12월 6일)에는 모두 감사가 주재하던 공주로 압송하였다. 이때 스테파노는 공주로 압송되기에 앞서 아우에게 편지를 보내, “나는 주님을 위해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으니, 너도 아무쪼록 주님을 위해 열심히 수계하여 훗날 천당에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여라.”고 당부하였다. 아울러 아내에게도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창조하신 것이오. 자녀들을 잘 보살피고, 죽으나 사나 주님의 명에 순종하다가 죽은 뒤에 천당에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합시다. 나는 공덕이 없지만 주님의 도우심만을 믿고 천당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 세상에서는 다시 나를 볼 생각을 하지 마시오.”
스테파노 일행을 인도 받은 공주 관아에서는 이들을 모두 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이후 그들이 어떠한 형벌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였으며, 1866년 12월 16일(음력 11월 10일) 함께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후 스테파노의 아우가 공주로 와서 이들 네 명의 시신을 찾아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들이 살던 마을인 수녀원 담장 안과 밖에 핀 흰꽃 야생화는 하느님께 순명한 고귀한 신앙의 빛과 같은 흰색으로 순례자의 마음을 감동의 치환시켜 준다)
김선화 베드로(金先化, ?-1866.10.15.)
진천 발래기 사람으로 1866년 10월 10일에 체포되었다. 그는 순교자 김원중 스테파노의 사촌으로, 체포되자 진천에서 청주옥으로 압송되어 갖은 고문과 심한 형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배교하지 않았다. 그는 옥에 갇힌지 5일 후인 1866년 10월 15일 청주 감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후에 김선화의 아들이 포교에게 그 부친의 안부를 물었을 때, 끝까지 천주를 배반하자 않고 심한 고문을 잘 견디다가 죽었다고 간단히 전하였다고 한다.
숲이라는 안정된 질서의 공간에 서 계시는 모습에서 인간에게 사랑으로 주셨던 당신께서 지으신 창조적인 질서, 제모습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준엄한 결심을 가져봅니다. 순교자를 위한 침묵의 관상속에서 숭고한 순교자의 정신을 이어 받는다.
언제나 말의 흔적이 없는 침묵의 공간 대월 수도원, 인기척을 느끼면 여러마리의 개들만 컹컹 짖는다.
쓰러져 가는 흙돌담과 석축과 장독대와 작약 꽃, 순교시기에도 신자들의 마당에도 피었을 것이다.
수도원으로 접근하는 길목 모습, 첩첩산중 찾아들어 옹기와 사기그릇을 굽던 곳이 바로 명암마을이다.
박해 당시 교난을 피해 東進하여 깊은 산골을 찾아 옹기와 사기그릇, 숯을 굽던 천주교 신자들은 옹기 뚜껑이나 독 바닥에 십자모양을 파 넣어 교우촌을 찾아 다니며 팔며 자신의 신분을 응근하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사용했었다.
세월이 멈춰져 있는 명암리 교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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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정자 아녜스 110차
성지 걸음여행 신청 합니다.^^♡
잊지 않으시고~~~ 늘 고맙습니다.
방배팀 박건순 가브리엘라 신청합니다
랜만에 바람이 무거운 바람을 몰고와 소나기로 숲을 적셔주는군요. 반갑습니다. ~~^&^
반갑습니다~
유영재마틸다 신청합니다
음~~ 마 - 틸 - 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
정말 오랫만입니다.
김순분프란체스카 신청합니다.~♡♡
아~~ 프란께서도 장막을 겆고 드디어~~~ 자세한 이야기는 만난서~~^&^ 반깁습니다.
반갑습니다~
강호석로사 신청합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 뵙게 되었네요/ 기다려집니다
@방배로사 로사 자매님~~ 반갑습니다. 홍천 임도 걸은 후 코로나 여파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