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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인류가 퍼져 가면서 나라들이 만들어 지고 발전할수록 국가간의 이해충돌이 벌어지면서 국가들끼리 뭉쳐져 대립각을 세우더니만 세계대전이 두번씩이나 벌어졌으니 그때를 소위 냉전시대라 하는 것 같은데
그 결과물로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북은 김일성이 남측은 이승만이 대표가 되어 강대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통치하던 중 우리민족은 무슨 영문도 모른채 남북한 상호간에는 비방하면서 서로를 적대시하게 된 것 같다.
강대국간의 이해로 말미암아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 김일성이 남침을 시도했으니 동족간에 살육의 전쟁이 한반도를 휩쓸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남긴 것 같다.
소련제 전차를 앞세워 남측을 공격하고 남측은 속수무책으로 밀리면서 낙동강 전투에서 UN군의 지원을 받아 반격작전으로 조금씩 북진을 했다하는데 공격과 후퇴과정에서 상호간에는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던 것 같다.
남겨두고 가면 자신들에게 해가 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한때 요긴하게 부려 먹었으면서도 혹시 상대편에 붙어 그동안의 정보를 누설시켜 해가 될줄 알았으니...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백성들도 자신도 모르게 두패로 갈라지게 되었으니 공산주의쪽에 소속된 자를 소위 빨갱이라 한 것 같고 민주주의에 속한 자는 저들이 뭐라고 불렀을까?
한민족이 어느날 갑자기 통치자의 관할에 따라 통치자가 시키는데로 조직에 순응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었으니 그들이 무슨 죄가 있었을까
생각은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인데 그로인해 무차별적으로 죽일 필요가 있겠는가
불행하게도 전쟁 와중에 놓이게 되었으니 한민족은 강대국이 심어준 내용도 모르는 개념에 의해 청군 백군처럼 싸워야만이 했으니...
여러가지로 열약한 상황에서 전쟁까지 해야만 했으니 그 때를 살아갔던 분들 얼마나 억울했을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도별으로 징집되어 총과 탄알로 무장하고 굶주림과 추위 수면부족에도 목숨바쳐 상대를 향하여 싸워야만 했으니 싸우기 싫다고 물러나면 즉결총살이라니....
강대국이 보낸 도깨비에 홀려 민족이 갈라지고 서로의 가슴에 총질을 해야만 했으니 우리민족 얼마나 불행했을까.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부모형제 잃고 산하를 헤메이다 죽어야만 했으니 무엇때문일까?
강대국에 이용당한 것 아닐까 그들의 대리전으로 희생된 것 아닐까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나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그저 만백성이 잘만 살편 되는 것인데...
제도의 흠결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고 시행과정에서 보완해 가면 되는 것인데 뭘 거기에 목숨걸고 싸워야 하는지...
민주주의라 해서 가만히 있어도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것도 아니고 공산주의라 해서 역시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것도 아닐텐데
우리민족간에 왜 목숨바쳐 싸워야만 했는지? 강대국의 대리전이라면 결국 그들에게 이용당한 것 아닐까?
강대국에서도 전쟁 전문가를 파견해서 함께 목숨바쳐 싸웠지만 궁극적으로는 각자가 속한 위정자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함 아닐까 미소 강대국의 통치자들은 무슨 이해가 있었기에 자기 백성을 죽여 가며 싸워야만 했는지....
전쟁도 날씨처럼 고기압과 저기압이 부딫히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의도하지 않았다해도 빚어지는 가 보다. 이같은 전쟁의 화마로부터 우리민족을 보호하기 위해선 강대국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우리민족 상호간이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한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해 매진함이 좋지 않겠나
뭘 그렇게 적대시하며 싸워야 할지 그렇게 싸워서 얻는 것이 무엇이길래 강대국의 이해를 만족시켜주기 위함이라면
약소국도 강대국의 이해와 상관없이 우리들끼리만이라도 정치 경제 국방 모든 면에서 자립할 수 있어야 할텐데.... 현실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강대국을 모셔 가면서 살아야만이 존립할 수 있는지?
남북이 강대국의 전선이 되어 한민족이 상호 대립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리고 지난날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분들의 넋을 생각할때 때를 잘 못 타고 태어난 죄밖에 없는데 그분들이 꽃도 피어 보지 못한채 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오로지 강대국의 이해때문 아닐까? 국가의 위치도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는가 보다.
중립국인 스위스가 부럽구나 우리도 중립국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지 전쟁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인지...
제1차 세계 대전(1914년 7월 28일 ~ 1918년 11월 11일)
1. 원인
1) 경제적 원인
1871년부터 본격화된 국가들 사이의 산업·상업 반목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14년 독일은 유럽의 여러 나라와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당시의 독일은 영국의 경제를 따라 잡아 세계의 경제를 주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정치적 원인
제1차 세계 대전의 정치적 원인으로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민족주의였다.
민족주의는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자리잡았으나 점점 여러 가지 위험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은 대세르비아주의, 프랑스의 복수 범게르만주의었다
3) 외교적 원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세르비아 왕국도 그 동맹국들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외교적인 위기를 전쟁으로 몰고 갈 엄두는 못냈을 것이다.
세르비아에 대한 지원은 니콜라이 2세 황제가 통치하는 러시아에서 왔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서 분할한
폴란드, 우크라이나 영토를 누가 더 많이 자국의 세력권 안에 넣느냐 하는 문제로
오스트리아와 오랜 라이벌 관계에 있던 러시아는 발칸반도에서도 영토를 넓히려 하고 있었다.
또한, 흑해와 에개해를 잇는 중요한 수로인 다다넬즈 해협과 함께
전략적 요충지인 반도를 직접 통치하거나 아니면 자국의 영향권 안에 두고 싶어했다.
러시아 제국은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했을 때도 반대했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참패로 군사력이 약화된 터라 개입은 하지 못했었다.
세르비아의 편을 들어줌으로써 러시아는 전략적인 이득, 범슬라브 운동에 대한 동정, 숙적을 골탕먹이고 싶은 욕망의 충족이라는 세가지 목적을 동시에 도모할수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미 독일제국의 빌헬름 2세로 부터 비슷한 지원을 다짐받고 있었다.
독일도 러시아와 같이 동맹국 지원에 나선 동기가 단순치 않았다.
유럽의 통치자로서 자국의 무력에 대해 빌헬름 2세만큼 큰소리를 치는 군주는 없었다.
그는 독일제국이 완전히 지배하는 미텔 오이로파(중부유럽)를 꿈꾸고 있었다.
독일이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국제적인 인정을 하루 빨리 받아내고 싶은 나머지,
그는 필요하다면 외국에서의 자국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칼을 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고 있었다.
영국은 독일로부터 절박한 위협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어쨋든 빌헬름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였으며 조지 5세의 사촌이었다.
양국의 많은 귀족들은 공통된 전통과 혈연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독일이 해군력의 경쟁을 촉발하자 두려움을 갖고 대비하게 되었다.
사실, 영국은 섬나라여서 식량과 원자재 공급을
자국 선박의 해상로 확보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해상로 확보와 유지는 필수였다
2. 경과
1) 1914년
0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왕위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함.
0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
07월 30일: 러시아, 총동원령 발표. 독일, 러시아에 총동원령 취소를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함.
08월 01일: 독일, 대(對) 러시아 선전 포고.
08월 02일: 룩셈부르크가 독일 제국에 점령됨. 독일 제국은 벨기에에 영토 통과를 요구하나 거부당함.그 대신·오스만 제국 사이에 비밀 동맹 조약 조인.
08월 03일: 독일, 프랑스에 선전 포고. 독일, 슐리펜계획에 따라 벨기에로 진격.
08월 04일: 독일, 중립 국가인 벨기에에 선전 포고 후, 점령(루벵 시 학살 사건). 영국이 이에 대한 대으로 독일에 선전 포고. 미국, 중립 선언.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독일에 선전 포고.
08월 05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에 선전 포고. 독일, 벨기에의 리에주 요새를 공격. 몬테네그로,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06일: 세르비아, 독일에 선전 포고.
08월 08일: 몬테네그로, 독일에 선전 포고.
08월 10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에 선전 포고.
08월 12일: 영국,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15일: 일본, 독일군함의 동아시아 철수와 자오저우만의 독일조차지 인도를 요구하는 최후통첩 보냄.
08월 23일: 독일, 프랑스 파리 점령. 일본, 독일에 선전 포고.
08월 25일: 일본,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26일: 독일,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러시아군 섬멸(~8월 30일).
08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벨기에에 선전 포고.
09월 03일: 프랑스 정부, 파리에서 보르도로 이동.
09월 05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간의 동맹 성립, 런던 선언 발표.
09월 06일: 프랑스의 마른강에서 프랑스의 반격, 마른강 전투 시작.
09월 11일: 독일의 프랑스 진공군, 엔강까지 후퇴. 서부 전선 교착.
09월 19일: 영국,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 상륙.
10월 09일: 앤트워프 포위에 벨기에가 독일에 점령 당함.
10월 14일: 일본, 독일령 남양 제도 점령.
10월 29일: 오트만 제국, 러시아의 오데사와 세바스토폴 포격.
11월 02일: 러시아, 오스만 제국에 선전 포고. 세르비아, 오스만 제국에 선전 포고.
11월 05일: 프랑스와 영국, 오스만 제국에 선전 포고.
11월 22일 영국, 페르시아 만 연안의 바스라 공략.
12월 08일: 영국과 독일 해군,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제도 부근에서 교전. 독일 대패.
12월 25일: 영국과 독일, 벨기에 땅에서 크리스마스 정전을 맺다.
2) 1915년
03월 18일: 영국과 프랑스, 다르다넬스 해협 포격.
04월 22일: 이페르(벨기에) 전투(~5.25)에서 독일군이 근대 이후 최초로 독가스 사용.
04월 24일: 오스만 제국이 미국을 연합군의 협력자로 인식하고 미국인에 대한 강제 추방과 사형을 집행함.
04월 25일: 갈리폴리 전투 시작. 영국-프랑스의 패배.
04월 26일: 런던 밀약, 연합국 측이 이탈리아에 참전의 대가로 남티롤 등의 제공을 약속.
05월 03일 이탈리아, 삼국동맹 조약 파기.
05월 07일: 영국 상선 루시타니아 호, 독일 잠수함에 첫 번째로 격침, 128명의 미국인 승객 사망.
05월 23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6월 03일: 산마리노,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17일: 영국 상선 아라빅 호, 독일 잠수함에 두 번째로 격침되어 2명의 미국인 승객 사망.
08월 28일: 이탈리아, 오스만 제국에 선전 포고.
09월 18일: 독일 정부, 미국 정부의 항의로 잠수함 작전의 자제 결정(아라빅서약).
10월 11일: 불가리아, 동맹국 측에 가담.
10월 19일: 러시아 제국, 불가리아에 선전 포고.
10월 14일: 불가리아,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
10월 15일: 영국과 몬테네그로, 불가리아에 선전 포고.
10월 19일: 이탈리아, 불가리아에 선전 포고. 일본, 런던 선언 가입
10월 24일: 영국의 이집트 주재 고등 판무관 맥마흔, 아랍왕국의 독립을 약속한 맥마흔서한을 메카의 칼리프 후세인 빈 알리에게 전달(후세인-맥마흔협정).
3) 1916년
01월 05일: 영국, 의무 징병법 제정.
03월 09일: 독일, 포르투갈에 선전 포고. 포르투갈, 전쟁 반대 선언.
03월 15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포르투갈에 선전 포고. 포르투갈, 전쟁 불참 선언(후에 포르투갈은 영국의 요청으로 연합국에 가담).
03월 24일: 프랑스 선박 사섹스 호, 영불해협에서 세 번째로 독일 잠수함에 격침, 미국인 승객 부상당하여 미국·독일 관계 악화. 05월 04일 독일, 잠수함작전 자제 재약속으로 미국과의 관계 수복 기도.
05월 16일 사이크스-피코 협정 최종 체결.
05월 31일 유틀란트 해전발발(~6월 1일). 영국 해군 14척 11만 톤, 독일 해군 11척 6만톤을 유실하였으나 영국은 계속 제해권을 가짐.
06월 24일 솜 전투 시작(~11월 18일). 독일군은 30만명이 전사했으며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60만명이 전사하였다.
07월 03일 제 4 차 러·일협약 성립.
08월 27일: 루마니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28일: 이탈리아, 독일에 선전 포고
08월 30일: 오스만 제국, 루마니아 왕국에 선전 포고(단독으로 루마니아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09월 01일: 불가리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에 선전 포고.
09월 15일: 빌헬름 2세, 루마니아 왕국에 대한 선전 포고를 총리에게 요구.
09월 18일: 영국군, 솜전투에서 역사상 최초로 전차 투입
10월 16일: 프랑스, 불가리아에 선전 포고
11월 21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 카롤리 1세가 즉위하다.
12월 12일: 독일 총리 T.T.F.A. 베트만 홀베크, 동맹국 측에 강화 제안 발표
4) 1917년
01월 16일: 독일, 멕시코에 멕시코가 동맹국을 도와줄 경우, 후에 "미국에게 뺏긴 영토의 재탈환을 도와주겠다."는 내용의 치머만 전보 전달
01월 22일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승리 없는 평화 제안
02월 03일: 미국, 독일과의 국교 단절.
02월 26일: 미국 상선 라코니아 호, 네 번째로 독일 잠수함에 침몰됨.
03월 14일: 시암과 중국, 독일과의 국교 단절.
04월 06일: 미국, 독일에 선전 포고.
04월 07일: 쿠바와 파나마, 독일에 선전 포고
04월 11일: 브라질, 독일과의 국교 단절.
04월 13일: 볼리비아, 독일과의 국교 단절.
04월 16일: 블라디미르 레닌, 망명지 취리히로부터 귀국
04월 17일: 레닌, 4월 태제 발표
04월 23일: 오스만 제국, 미국과의 국교 단절.
04월 26일: 영국 총리 D. 로이드 조지, 영국 해군에게 상선 호송 실시 명령.
06월 27일: 그리스, 전 동맹국에 선전 포고.
07월 19일: 독일 국회, 평화결의안 가결함.
07월 22일: 시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8월 14일: 중화민국,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9월 21일: 코스타리카, 독일과의 국교 단절.
10월 06일: 페루, 독일과의 국교 단절.
10월 07일: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독일과의 국교 단절.
10월 26일: 브라질, 독일에 선전 포고.
11월 07일: 러시아의 러시아 혁명(10월 혁명, 11월 혁명) 발발.
11월 08일: 러시아의 레닌, 평화에 관한 포고 발표.
11월 16일 G.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에 취임. 친독파에 대한 탄압 시작.
11월 26일: 소비에트 정권, 모든 러시아군에게 정전 명령.
12월 06일: 미국,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12월 08일: 에콰도르, 독일과의 국교단절.
12월 10일: 파나마,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12월 22일: 러시아와 동맹국 측,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강화교섭 시작.
5) 1918년
01월 08일: 미국의 우드로 윌슨, 평화 14개조 발표
01월 28일: 핀란드, 러시아로부터의 독립 요구
02월 10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의 강화교 섭 중단, 소비에트 대표 L. 트로츠키가 전쟁 종결 선언 후 철수
02월 18일: 독일, 러시아에 공격 재개.
02월 23일: 소비에트 정부, 독일의 새로운 강화 조건 수락 결정.
03월 03일: 소비에트 정부, 독일 측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강화 조약을 맺음. (그러나 이 조약은 러시아의 보수파나 멘셰비키들에게 "러시아가 독일에게 항복하였다."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 때부터 1920년까지 러시아에 내전이 시작되었다.)
03월 21일: 독일군, 미햐르작에 의해 영국군에 대공세 시작. 제 2 차 솜전투 시작(~4월 5일)
04월 23일: 과테말라, 독일에 선전 포고.
05월 07일: 루마니아 왕국, 연합국 중 유일하게 동맹국에 항복(굴욕적인 부쿠레슈티 강화 조약까지 맺음).
05월 08일: 니카라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
05월 23일: 코스타리카, 독일에 선전 포고.
07월 12일: 아이티, 독일에 선전 포고.
07월 19일: 온두라스, 독일에 선전 포고.
09월 30일: 불가리아 왕국, 연합국에 항복.
10월 30일: 오스만 제국, 연합국에 항복.
11월 0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국에 항복. 독일 제국, 혁명이 일어남.
11월 09일: 독일 제국 카이저 빌헬름 2세가 퇴위함과 동시에 네덜란드로 망명함.
11월 11일: 독일 제국 항복. 휴전 협정과 동시에 전쟁 종료.
3. 결과
1)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선언하여 국제정치가 이념화, 도덕화하기 시작했다. 이상적 집단안전 보장정책인 국제 연맹을 통해 법률적, 도덕적 세계여론에 부응하여 평화를 구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2) 이 때부터 총력전의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특히 벨기에 왕국, 러시아 제국과 독일 제국은 식량 부족이 심각했다.
3) 이 때부터 기관총(영국), 독가스(독일 제국), 탱크(영국), 전투기(프랑스), 잠수함(독일), 곡사포(오스트리아-헝가리) 등의 신무기가 생겨 났다. 이탈리아 왕국은 세계 최초로 기관단총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4) 독일 국민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일방적 평화의 강요나 다름 없는 베르사유 조약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 조약은 아돌프 히틀러 집권과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바이마르 공화국이 외부로부터 강요된 체제라고 하여 민주 정부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갖지 못하게 하여 공화국의 생명력을 위태롭게 만든 것이나 다름 없었다.
5) 이탈리아 왕국의 좌절감과 배신감은 파시즘의 발전과 베니토 무솔리니의 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6) 미국은 초 강대국의 지위에 올랐으나,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연맹 참여를 거부하고 다시 고립주의에 빠짐으로써 강대국으로서 국제역할에 괴리를 가져왔다. 결국 경제 공황이 생겨 난다.
7) 많은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하여 다른 국가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민족자결주의로 민족주의가 상승하여 20세기 정치의 중요한 요소로 된다(인도, 조선 등에서 독립 운동 활발).
8) 일본 제국은 대체로 만족하였으며, 중화민국은 1917년에 참전(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 포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산둥 반도를 차지한 것에 불만을 품고 사인도 하지 않고 국제 회의장에서 철수한다. 이것은 5?4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9) 국제 정치라는 것이 이제는 유럽에만 힘을 기울일 수 없게 되었다. 전 세계가 국제 정치의 무대가 되었으며, 국제정치가 좁은 유럽에서 벗어나 전세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0) 전 세계 국민의 감시 속에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전 세계 지도자들이 가지게 되었다. 특히, 도덕적으로 국제평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1939년 9월 1일 ~ 1945년 8월 15일)
1. 배경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련군이 1939년 9월 18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함으로써 발발하였다고 본다
2. 경과
1) 1939년
9월 1일 - 독일, 폴란드를 침공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그 순간이다.
9월 3일 -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 선전 포고하다.
9월 17일 - 소련군, 폴란드에 침입.
9월 27일 - 독일, 바르샤바를 점령하다. 그리고, 항전에 참여한 폴란드인을 체포하다.
9월 28일 - 독일-소련 경계 설정, 우호 조약으로 폴란드 분할하다. 소련, 핀란드에 영토 통과를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11월 30일 - 소련, 핀란드에 침입하다(겨울전쟁). 연합군이 핀란드를 지원함(스웨덴은 무기를 대여했음. 그러나 다시 중립으로 회귀).
2) 1940년
3월 12일 - 겨울전쟁 종료
4월 9일 - 독일, 덴마크를 점령하고, 노르웨이 침략(베저 작전).
5월 10일 - 영국, 윈스턴 처칠 거국내각 수립.
5월 11일 - 독일, 프랑스 전역공격 개시. 베네룩스 공격 개시. 룩셈부르크 항복
5월 15일 - 네덜란드, 독일에 항복.
5월 28일 - 벨기에, 독일에 항복.
6월 4일 - 영국-프랑스군, 됭케르크 철수 작전 성공
6월 10일 - 노르웨이, 독일에 항복. 이탈리아, 프랑스에 선전 포고.
6월 14일 - 독일군, 파리 입성.
6월 22일 - 프랑스, 독일에 항복.
7월 11일 - 프랑스에 비시 정권이 수립됨.
7월 19일 - 미국 해군대확장법 제정.
8월 1일 - 히틀러, 영국 침략 준비 명령(바다사자 작전). 영국 항공전 개시
8월 6일 - 소련이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불법 점령하다. 이는 발트 3국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간주된다.
9월 27일 - 독일, 이탈리아, 일본. 추축국에 조인.
11월 20일 - 헝가리, 삼국동맹에 가입.
12월 18일 - 히틀러, 바르바로사 작전 준비 명령.
3) 1941년
1월 6일 -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4개의 자유" 연설
3월 11일 - 미국, 랜드리스 제정.
4월 6일 - 독일, 유고슬라비아 침공
4월 17일 - 유고슬라비아, 독일에 항복.
4월 17일 - 독일, 이탈리아가 실패했던 그리스에 침공.
4월 23일 - 그리스, 독일에 항복. 독일이 크레타 섬을 탈취함.
5월 5일 - 에티오피아, 이탈리아의 불법 점령(1936~1941)으로부터 해방되다.
5월 6일: 스탈린, 인민위원회의 의장에 취임.
5월 10일 - 독일 부총통 루돌프 헤스, 영국과 화평을 추진하기 위해 영국으로 비행기를 직접 몰고 날아 가지만, 영국으로부터 전쟁 포로 취급을 당하고 체포됨.
6월 22일 - 독일, 사상최대의 원정군으로 소련을 기습공격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모스크바 공략은 추위 때문에 실패함.
8월 12일 - 미국과 영국 정상회담, 대서양 헌장 발표.
9월 24일 - 소련 등 15개국, 지지 표명.
12월 7일 - 소련, 독일에 반격. 일본, 진주만 공습.
12월 9일 - 중화민국, 독일과 이탈리아에 선전포고.
12월 11일 -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에 전쟁 선포.
12월 25일 - 일본, 영국령 홍콩 점령.
4) 1942년
1월 1일 - 연합국 26개국, 워싱턴에서 공동 선언 조인.
1월 20일 - 독일, 반제회의에서 유대인을 학살하기로 결정.
2월 15일 - 일본, 싱가포르를 점령하여 '쇼난(昭南)'으로 개명하다.
4월 18일 - 미 육군항공대, 일본 본토를 기습 · 폭격하는 이른바 둘리틀 공습을 감행.
6월 5일 - 일본,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에게 대패. 이 해전 이후, 미국은 태평양 전선에서의 주도권을 잡았다.
6월 30일 - 에르빈 롬멜 지휘 하에 독일-이탈리아군이 엘 알라메인에 도착.
8월 16일 - 미.영.소 지도자들, 모스크바 회담. 소련, 제2 전선 요구.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 (토오치 작전) 결정.
9월 13일 - 독일6군, 스탈린그라드 시내 돌입.
11월 8일 - 미-영군, 북아프리카 상륙.
11월 11일 - 독일, 비시정권하의 비점령 프랑스 지역을 점령 지역으로 편입시켜 튀론항을 제외한 프랑스 전 영토를 점령.
5) 1943년
1월 25일 - 미국과 영국,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무조건 항복 원칙' 발표.
1월 31일 -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 승리.
5월 13일 - 북아프리카의 독일-이탈리아군 항복.
6월 10일 - 코민테른 해산.
7월 3일 - 독일과 소련사이에서 쿠르스크 전투개시
7월 10일 - 미국과 영국 연합군, 시칠리아 섬 상륙.
7월 25일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무솔리니를 체포하고, 바돌리오 장군을 내각으로 삼다.
7월 23일 - 쿠르스크 에서 소련군 승리 독일군 동부전선 주도권상실
8월 24일 - 미.영 지도자들, 퀘벡 회담. 제2 전선 결정.
9월 3일 - 이탈리아, 연합국에 항복.
9월 8일 - 독일, 로마 점령.
9월 15일 - 무솔리니 구출, 파시스트 공화 정부(살로 공화국) 수립.
10월 13일 - 국왕과 바돌리오 내각, 남쪽으로 도피. 독일에 선전포고.
10월 19일 -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국 외상 회의.
11월 26일 - 미국, 영국, 중국 카이로 회담. 한국 독립 결의.
11월 28일 - 미국, 영국, 소련, 테헤란 회담. 소련의 대일 참전 토의.
12월 1일 - 카이로 선언 발표.
6) 1944년
1월 20일 - 소련, 레닌그라드 해방.
5월 13일 - 독일군, 크림 반도에서 후퇴.
6월 4일 - 이탈리아 전선의 미국 및 영국군, 로마 해방.
6월 6일 - 역사상 최대의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돌입.
6월 22일 - 소련군 바그라티온 작전개시
7월 20일 - 독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발생
7월 22일 - 연합국 45개국, 브레턴우즈 협정을 맺고, IMF와 IBRD 설치.
8월 1일 - 폴란드의 바르샤바 봉기 발발
8월 19일 - 바그라티온 작전 성공, 독일 중부집단군 괴멸
8월 24일 - 루마니아, 연합군에 항복하고 동맹국의 지위를 포기함.
8월 25일 - 연합군, 파리 해방. 루마니아, 독일에 선전포고.
8월 26일 - 불가리아, 동맹국에 빠져나와 중립 선언. 훗날, 소련이 선전포고를 하자 곧바로 항복함.
9월 2일 - 핀란드, 독일과 국교 단절.
9월 9일 - 샤를 드골, 임시정부 수립. 불가리아, 조국전선정부 수립.
9월 10일 - 불가리아, 연합국으로 전환. 독일에 선전포고.
9월 19일 - 핀란드, 영국 및 소련과 휴전 협정 조인.
10월 9일 - 영국과 소련의 지도자들, 모스크바 회담. 발칸 분할에 대해 의견 일치.
10월 11일 - 헝가리의 국가원수인 미클로시 호르티가 나치 독일에 의해 감금당함.
12월 10일 - 소련군과 티토의 군대가 베오그라드를 해방.
12월 31일 - 헝가리, 독일에 선전포고.
7) 1945년
1월 17일 - 소련군, 바르샤바 해방.
2월 11일 - 미.영.소 지도자들, 얄타회담.
4월 12일 -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죽자 해리 S.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함.
4월 13일 - 소련군, 빈 해방
4월 22일 - 소련군, 베를린 돌입.
4월 28일 - 무솔리니 총살됨.
4월 30일 - 히틀러 자살. 칼 되니츠가 아돌프 히틀러의 유언에 따라 총통직을 계승함.
5월 7일 - 독일군, 서방연합군에 항복. 이 때 덴마크가 해방됨.
5월 8일 - 독일군, 소련군에 항복.
6월 23일 - 오키나와, 미군에 점령됨.
6월 26일 - 국제연합헌장 조인.
7월 17일 - 포츠담 회담.
7월 27일 - 영국에서 애틀리 내각이 성립.
8월 6일 - 미국,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
8월 8일 - 소련, 일본에 선전 포고.
8월 9일 - 미국,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
8월 12일 - 소련, 한국 동북부 도시 나진, 웅기를 점령.
8월 14일 - 소련군, 한국 동북부 도시 청진 상륙 감행 .
8월 15일 - 히로히토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다. 한국은 이 날을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다.
3. 결과
이 결과로 한국이 독립하였다.
전사자는 약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도 약 4천만 명에 달했다.
전쟁 기간 중 일본은 1937년, 중국 침략 때 난징 등에서 대학살을 감행, 겁탈과 방화를 일삼으며 수십만 난징시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1944년 여자정신대근무령을 통해 조선인, 중국인, 동남아시아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여성을 종군위안부로 동원하였으며, 독일은 ‘인종 청소’라는 이유로 수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하였다. 또한 미국은 1945년 3월 10일, 일본의 수도 도쿄와 그 주변 수도권 일대를 대규모적으로 폭격한 이른바 도쿄대공습을 감행해 15만 명을 살상했고(재일 조선인 포함), 같은 해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공격을 감행하여 약 34만 명을 살상하였으며, 영국과 미국의 공군은 드레스덴과 뮌헨 공습을 감행하여 각각 20여만 명을 살상하는 등, 전쟁의 피해는 극히 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