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8장 4절 – 11절
말세 즉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는 세상이 사나와지고 무정하며 그리고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그런 시대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도 바로 이 말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서하기 보다 원수를 갚으려 하고 남에게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즉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풍성한 것이 오늘 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곳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노아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을 당시에도 하나님의 자녀들까지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행하지 않고 단지 자기들의 기준을 따라 행하였습니다. 즉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자들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자기들의 육체가 이끄는데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이 철저하게 외면받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도 경건의 모양은 풍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은 자기들의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역할을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삶에 관여하거나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는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하나님은 가능성없는 시대 또는 바랄 것이 없는 시대라고 보시고 홍수를 통해 그런 세상을 멸하시는 심판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양은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같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은 노아시대 홍숫속에 죽어간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육체의 쾌락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소돔과 고모라는 부유했고 육체의 즐거움을 좇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무정했고 사나웠고 그리고 사랑이 무시를 받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곳에 살던 롯까지도 소돔과 고모라의 영향을 받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롯이 육체적인 쾌락을 좇는 자가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살 때는 신앙의 본질가운데 서서 사랑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았지만 부유함을 좇아간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아브라함의 삶이 증오의 대상이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하셔서 말세지말을 사는 우리에게 경계의 가르침이 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하는 자들까지도 이 세상처럼 부해지고자 노력하며 무정하고 육체적인 쾌락을 좇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나님의 심판하심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소돔과 고모라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다는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