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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11.12.23
"우와! 알곡이 많구나. 우와! 곡식이 좋구나. 그대는 많이도 자랐고, 제대로도 자랐고, 핀 이삭도 넉넉하구나. 나는 즐겁다네. 우리 식구들도 다 기꺼워한다네. 나는 바로 그대를 맞이하여 집으로 돌아갈 거라네. 그대도 보시게나. 돌길은 새로 닦아 반뜻도 하고 잘 고쳐서 고르기도 하지 않은가. 나무다리도 튼튼하게 잘 놓였고, 울퉁불퉁한 거라곤 아무데도 없으니, 그대는 나와 함께 집으로 가지 않으시려는가? 가는 길일랑은 두려워 마시게. 물을 만나도 다리가 있고, 뫼를 만나도 길은 이어지며, 사람을 만나도 반갑게 그대를 환영할 것이라네. 개를 만나면 개는 그대에게 다정할 것이고, 닭을 만나면 닭은 그대에게 매일 노래를 들려주려 할 것이네. 함께 가세, 그대 나와 함께 가세나. 큰 밭의 귀리, 작은 밭의 기장들이여! 손에 손을 잡고 나와 함께 가세, 가세나, 가세나 그려!"
아직도 농력 7월 중순이 되면, 윈난의 하니족哈尼族과 와족佤族을 비롯한 대부분의 종족들은 곡혼절谷(중국간자에서는 골곡과 곡식곡이 같습니다) 魂节이라 불리는 명절을 치릅니다. 이 명절을 맞아 마을 사람들은 모두 힘을 모아 마을 길을 고치고 다리를 손보며, 집집마다 마당을 청소하고 대문을 손질합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모든 집은 다음날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다음날이 바로 곡혼절이기 때문입니다. 곡혼절 날 그들은 아이들이 앞서고 노인이 뒤서는 순서에 따라 모두 밭과 들로 나가서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곡식과 함께 곡신을 마을과 집으로 모셔 들이는 즐겁고도 엄숙한 잔치를 벌입니다. 그날 저녁은 곡신에게 기도하고 얻은 첫 곡식으로 식사를 합니다. 그 뒤 날마다 그렇게 식사를 합니다.
그들에게 생명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서로 연대된 것이어서, 서로 제공하며 서로 얻어가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먹되 서로가 그 씨를 돌보아주는 방식으로 상극과 상생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우연히 아래 사진을 보다가 저 때 아침에 일어나서 멍청하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서 그날의 일기를 뒤져보니, 이렇게 메모해두고 있었는데, 좀 길어서 앞부분만 올려봅니다. 참고로 저의 집이었으면 좋겠는데 출장 중에 묵었던 숙소랍니다.
32. 2011.12.24
하니족과 와족의 곡혼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곡식에 대한 하니족의 또 다른 이야기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하나족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징포족景颇族이나 뚜롱족独龙族에게도 똑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니족은 이 이야기를 '오싸미싸'奥色密色라고 부르는데, 이는 크게 주신 것은 신이 주신 것이란 뜻입니다.
먼 옛날 큰 홍수가 지나가고 땅 위에는 아무것도 온전한 것이 없을 때, 살아남은 하니족의 선조 '꾸아어'顾米哦(또는 쑤미어)는 태양신에게 곡식의 종자를 달라고 부탁을 올렸습니다. 이에 태양신 '꺼무'는 신의 뜻을 지키며 살 것을 약속 받고서 곡물의 종자를 하니족에게 내려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곡물의 종자에게 당부했습니다. "이삭이 피거든 이삭은 소의 다리처럼 커야 하고, 그 낱알은 말의 발굽만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하니족 선조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가시 많은 고슴도치가 지나가다가 이 이야기를 의심하면서 말했습니다. "곡식이 그렇게 크면 너희들이 다 먹을 수나 있겠어? 그 곡식은 아무리 커도 이삭이 겨우 내 꼬리만이나 할까?" 그러자 곡물의 종자는 태양신의 당부를 잊어버리고 차츰 고슴도치의 말을 되뇌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고슴도치의 말만 기억에 남게 되었고, 하니족의 곡식은 정말로 커봐야 고슴도치 꼬리만하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종자는 고슴도치의 말을 듣지 못했는데, 땅에 심어지자 차츰 그 이삭과 낱알이 작아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나 평범하게 심었기 때문입니다. 태양신에게 그 뜻대로 살겠노라 맹세했지만, 그 맹세에 태양신의 당부를 듣고 온 종자를 도와야 하는 일이 포함된 것을 몰라 그냥 심기만 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 뒤로 하니족은 곡식을 심거나 거둘 때마다 옛 맹세를 되뇌이며, 곡식을 내려준 태양신 꺼무와 조상신 꾸미아를 떠올리며 부끄러운 반성의 노래를 합니다. 아울러 고슴도치의 털처럼 남을 찌르는 말을 하지 않으려 조심하며, 신의 약속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가장 큰 경계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근면하게 노동하지 않는 것도 경계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손님이 올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멀리서 오신 이여......즐겁게 드시고 편하게 쉬세요......모든 것을 편하게 하세요......저의 집 황금과 남편을 가져가더라도 신의 약속만은 의심하지 말고......나의 아내와 소를 데려가더라도 우리들 사이를 폄훼하는 말은 하지 마세요......우리들 하니는 아직도 태양신께 부끄럽답니다......"
진정한 하니는 아직도 약속을 믿는 이의 가슴에 살아 있을 것이니, 우리의 가슴은 조상의 무덤이 아니라 조상이 생생하게 살아 쉼 쉬는 아름다운 집이기를 기원합니다.
-사진은 하니족이 가꾼 차 밭에서 하니의 청년들과 함께 수백 년 된 차나무를 살펴보는 곰땡이의 모습입니다.
어, 여기는 서울이 아니고 강원도인데......왜
어리석은 질문인줄 압니다.. 허나
근면은 무엇입니까? 근면성실은 어느 만큼인지요? (댓글)
근면에 대한 옛 분들의 기준은 첫째, 어떤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어떤 일이 약속된 시간 안에 약속된 만큼 이루어지도록 제 역할을 하는 것이 근면이니, 각 사물과 각 일에 따라 실제 요구되는 정도를 일반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보리농사와 벼농사는 서로 다르며, 도자기를 빚어 굽는 일과 비단을 짜는 일이 또한 서로 다를 것입니다. 굳이 보편의 정도를 이야기하자면, 모든 일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 마련인데(혼자 하는 듯 보이는 일도 실상은 컨베어시스템처럼 함께 하는 게 대부분) 내 앞 사람이 하는 일을 내가 받아 뒤 사람에게 장애가 되지 않을 만큼은 해야 하는 것이 근면의 최소한도이고, 뒤 사람이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근면의 최대한도일 것입니다. 그러니 근면도 한편으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의 상대성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 열 개를 만들자 했는데, 나 때문에 모자라거나 넘쳐서 다른 이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 기준을 벗어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족이나 마을 등 함께 하고 있는 단위의 운영에 도움이 되어 그 단위가 자력을 갖추게 하는데 1/n의 기여를 하는 것이 근면의 다음 조건입니다. 즉 최소한 밥값은 하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책임져야 할 다른 누구의 밥값까지는 하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공동체가 요구하는 공동의 노동을 기피하지 말라는 것도 포함됩니다.
셋째로 이를 위한 기초노력은 비록 생산적 활동이 아닌 것으로 보여도 가장 중요한 근면의 기초가 됩니다. 즉 자기 맞춤과 타인을 사랑하는데 게으르지 않는 것 및 믿음을 주는 모습 등도 근면의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논어의 1편에 있는 "If you have strength to spare, you should spend it on the arts."(行有余力 则以学文)은 한편으로 남는 힘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즉 근면은 단순한 부지런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자기 모습을 다듬는 것까지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넷째, 이런 것을 고루 균형 있게 해 나가는 것이 또한 근면의 연장 영역입니다. 근면은 스스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지구가 자전을 하고 우주가 자기운동을 하듯, 사람도 그 모습을 닮아 가는 것아 근면입니다.
그래서 근면한 이는 24시간을 근면해야 합니다. 즉 잠을 자도 그냥 자는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을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밥을 먹어도 '먹는 것을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근면의 마지막은 늘 깨어 있는 인간이 되라는 것입니다. 自强不息,스스로 강하여 쉬임이 없는 그러나 넘치지 않는 자연의 모습을 자기 안에서 이루는 모습과 노력이 근면이니, 헛되게 하는 것이 없어야 하고, 모자람도 넘침도 없어야 하며, 늘 별들의 관계처럼 타인과 사물을 고려하면서 이뤄져야 근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더 이상은 나중에 따로 기회가 있으면......(박현 선생)
제가 여태 근면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33. 2011. 12.26
내용이 좀 페북과 어울리지 않는다 여겨서 저만 보는 비공개로 올릴까 하다가 그냥 올려보았습니다. 그냥 별 가당찮은 이야기를 다 한다 하시며, 웃고 넘겨주시길......
------쭈시朱熹선생께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셨던 우이武夷산의 아홉 계곡, 이른바 무이구곡에는 각각 쭈선생께서 붙여놓으신 노래가 있습니다. 이를 무이구곡가라고 하는데, 이것은 한편으로 각 계곡의 풍경과 그 특징을 잘 표현한 것이면서, 아울러 아홉집(九宫)에 대한 선생의 마음조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풍경의 모양새야 언제 기회가 닿아 직접 가셔 보시면 될 일인지라, 아름다운 어느 벗께서 열 그림을 늘어놓으시는데 응하여, 제 맘대로 한 구절씩 올려 봅니다.
첫 번째 노래는 구 곡 가운데 오곡五曲에 대한 노래입니다. 순서는 없지만, 제 나름대로는 있습니다. 오곡은 제 순서에서 구 궁 가운데 중궁中宫입니다.
五曲山高雲氣深
長時煙雨暗平林
林間有客無人識
欲乃聲中萬古心
먼저 직역을 해보겠습니다.
오곡의 산은 높고 구름의 기세는 깊네/안개비 길게 내려 너른 숲도 어둡게 한다/숲에 나그네 있건만 어느 뉘 알랴/그대 소리 가운데 만고의 마음이 있으리라.
다시 멋대로 옮겨봅니다.
오곡은 중궁이라 높고도 깊어라/오르는 듯 내리는 듯 천지가 현묘하다/오랫동안 들고 났건만 이 조화를 누가 알리/한 소리 일어나려 하니 곧 태초의 마음이로다.
--五澳命重玄气满
元始妙韵天地安
万往万来难懂本
太初一声千世干
---대나무 뿌리를 도치시켜 조각한 인형인데, 머리가 너무 무겁고 입도 너무 큰데다 귀엔 구멍이 없어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어떻게 보면 남태평양 조각의 느낌이 드는군요(댓글)
네 다이족의 조각인데, 그들 것도 약간 그렇습니다. 이선생님, 틈내서 놀러 한번 오십시오......(박현 선생)
34. 2011.12.27
글씨가 세상에 나오자 오리엔트 사람들은 글씨 쓰는 도구도 개발했지만 글씨 쓰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이에 견주어 오이로파 사람들은 글씨 쓰는 방법보다 글씨 편하게 쓰는 도구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것들은 둘 다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글의 내용 때문이었지 글씨 쓰는 도구나 방법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그 결과 지금 오리엔트의 서법书法은 예술이 되었고, 오이로파의 필기구는 이른바 명품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화약이 세상에 나오자 오리엔트 사람들은 폭죽을 만드는데 큰 흥미를 보였고, 오이로파 사람들은 총을 만드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사회적 여건으로 이 차이를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오리엔트와 오이로파는 그렇게 조금씩 다른 길을 걸어왔고 그 결과 문명적 차이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권위와 부와 집단적 여흥을 가져왔고, 다른 하나는 보다 참혹한 전쟁의 모습을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오리엔트는 오이로파에 백 여 년간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무튼 차를 마실 때마다 요즘 저는 이 사실을 떠올립니다. 아울러 모든 시기는 그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과도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생각합니다. 긴 세월이 지나 역사학자들이 바라볼 때, 어느 시기는 나름대로 안정된 특징을 보여주는 시기이고, 어느 시기는 두 시기 사이의 과도기일 수 있습니다. 허나 각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특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들의 모든 시기는 과도기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이 시기에 그는 낡은 시대의 마지막 1인이 되느냐 새로운 시기의 첫1인이 되느냐를 놓고 안정과 열정 가운데 스스로 선택을 하곤 합니다. 물론 치열함을 벗어 던지면 자신은 과도기가 아니라 안정된 특징을 가진 시기에 살고 있고, 그 특징을 잘 받아들이면 된다고 여길 수 있지만 말입니다.
저는 차와 관련해서도 지금 심각한 과도기적 과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문화와 차생활에서 저는 늘 마지막1인이 아닌 첫1인이 되려 노력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오리엔트와 오이로파의 차이를 고민하면서, 백오십 여년 전 선배들이 고민해서 내놓은 동도서기东道西器라는 주제를 되뇌이고 있습니다. 차문화에 담긴 공존과 평화의 가치를 음료도구의 현대화와 잘 녹여내고 싶습니다.
동도서기와 함께 당시 중국의 선배들은 중체서용中体西用을, 일본의 선배들은 화혼양재和魂洋材를 고민했지만, 이 고민들은 제국주의의 압도적 파도에 밀려 생존과 따라 하기로 흐르고 말았더랬습니다. 우리들 후배는 그냥 항복하여 서도서기西道西器의 길을 걸으면서 오리엔트적 가치를 거세해왔던 셈입니다. 옆길로 흘러 민주주의라는 관념만 하더라도 오이로파는 왕이나 귀족을 없애거나 그들의 권리를 없애는 것으로 그 실현방법을 생각했지만, 만약 그 주체가 오리엔트였더라면 아마도 소수의 왕이나 귀족 대신 모든 사람을 왕으로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실현방법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제 차문화의 동도서기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곧 그렇게 해나가려고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이로파는 이제 와서 친환경과 문화적인 삶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것도 지극히 오이로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환경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인공적인 사물을 빼고 나면 모두가 생명이고 다 삶의 주체인데 그걸 어찌 감히 환경이라 부르겠습니까? 또 문화적이라는 말에는 그 앞에 생략된 표현이 있지 않겠습니까? 즉 문화적이라는 말은 친문화적이라는 말을 오이로파적으로 애매하게 부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오리엔트는 친환경이 아니라 친생명이고, 문화적이 아니라 친문화적이어서, 그 건너편에 반생명과 반문화적인 것을 두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핵심고리에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분야로서 차를 생각하고, 그 방법으로 차문화의 동도서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레전드를 세워가고 싶습니다.
간단하게 말씀 드리지만, 저는 이에 대해 벗들께서 욕하실 만큼의 문장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미 동도서기 첫 출발의 광고까지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저는 커피의 성분 때문에 커피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때로 커피를 마시지만, 저는 커피의 생산 유통 소비 사이의 야만성에 주의를 두고 이것을 싫어합니다. 노예화되는 생산자와 탐욕스런 대형유통자 및 무감각하고 이기적인 소비자라는 구조는 반생명이고 반문화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애매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또 물이 모자라 질병 등의 고통을 받는 지역에서 커피는(아주 약간의 내추럴이 있긴 하지만) 엄청난 물을 소비해야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펄프클린이든 워시드이든 세미워시드이든 상상을 불허하는 물을 낭비해서야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것이고, 우리가 마시는 한잔의 커피는 무려 그 몇 십 배의 물을 소비해서만 나온다는 데 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커피는 또 반생명이고 반문화라고 뚜렷하게 이야기합니다. 애매하게 이야기해서 하면 좋고 안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선택과 양심의 문제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반생명, 친문화와 반문화의 대의에 바탕을 둔 엄청난 대립점이 차와 커피 사이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저는 커피를 생계로 하시는 소형유통자 및 애매한 소비자분들께서 차문화가 동도서기를 통해 그 현실적 가능성만 내놓으면 언제든지 함께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분들의 사정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 드린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면 언제든지 함께 갈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러기를 소망합니다. 당신들도 이미 형제였기에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가슴 한 켠에 담아두고 있는 떠나있는 형제들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렇게 믿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네요.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거듭 벗님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또 지나치다 여기시는 점에 대해서는 애정과 용서를 구합니다. 마뜩지 않는 세상이라 나름대로 자세히는 못 올리는 점도 아울러 살펴주시길......-아라가비 올림
--그림은 요 며칠간 제가 공부하고 있는 책인데, 아라가비는 돌대가리라는 공식을 자꾸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T_T)
3H of BDL! 저희 퍼블릭 카피인데, 지금 공개했다간 이름을 다 밝힐 순 없고......임모청영님과 이모인용님 및 정모우남님 등으로부터 남미대륙의 수만 마리 버팔로떼가 한꺼번에 저를 향해 돌진해오는 듯한 욕을 먹을 것 같은 두려움에......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이 그 몇 십 배의 물을 소비하고 탁자에 오르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댓글)
그리 쉽게 받아들여주시는 이선생님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박현 선생)
35. 2011.12.29
기다림에는 두 가지 다른 길이 있는 듯합니다. 하나는 싹이 돋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빚쟁이를 기다리고 전쟁 나간 자식이 돌아 오기를 기다리며 불이 안 번지기를 기다리고 가뭄에 비 내리기를 기다리는 길입니다. 하나는 설렘의 길이고, 하나는 초조함의 길입니다.
어느 기다림은 사람을 빛나게 하고 생기 넘치게 만들며, 어느 기다림은 사람의 빛이 꺼지고 생기가 허덕이게 만듭니다.
많은 기다림은 사실 복잡합니다. 원래부터 성격이 다른 기다림도 있지만, 벗들께서도 잘 아시는 것처럼 대개는 매우 복합적입니다. 집으로 돌아 오는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기다림에는 설렘도 있고 초조함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락이 피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기다림조차 설렘과 초조함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도박꾼의 노름에도 설렘과 초조함은 함께 할 것입니다.
초조함의 뒤편에 설렘을 잘 안배해야 세월이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희망希望이라는 말의 희希가 바로 설렘을 표현한 한자인데, 설렘이 없는 소망은 소망도 아니라는 것이겠죠. 설렘의 크기만큼 초조함을 견딜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삶에서 기다림은 늘 설렘과 초조함의 꽈배기인데,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허전할 듯 합니다. 최소한 설렘이 없는 초조함에는 견딜 마음도 견딜 능력도 없을 듯합니다.
나름의 설렘이 없으면 어디엔가 빠지기도 할 듯 합니다. 이른바 주색잡기가 다 유사 설렘을 제공하는 것이니, 더 큰 설렘이 없어 찾아 드는 늪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벗들에게는 어떤 설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설렘도 키우는 법이 있을 듯해서 더하여 벗의 설렘도 잊지 않도록 서로가 조금은 지켜줄 수 있겠다 여겨 해보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좋은 벗은 그런 설렘으로 만나는 맺음이란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설렘으로 벗을 삼아야 의리와 신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초조함으로 맺은 사이는 나그네길에서 만난 사이이거나 동사同事관계에 지나지 않으니, 동병상련을 어찌 좋은 벗이라 할까요? 그런 사이도 벗이라면 분명 벗이지만, 설렘으로 만나는 벗을 설렘으로 기다립니다.
"그대 앞에만 서만 난 왜 설레는가? 그대 등뒤에 서면 내 맘은 피어나는데......그리고 설렘이 남아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벗이요" -마침 비슷한 유행가가 길에서 들려오길래 이렇게 적고 있네요.
--사진은 종로차예관 3층에 그냥 이쁜 게 있길래....
36. 2011.12.31
새해에는 제대로 서서 제대로 한번 걸어봅시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진화했습니다.
우리는 감사의 생활과 희망의 생활을 하며 공존과 화해를 올 한 해에 다 완성한다 해서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진화했습니다.
우리는 어이없는 차별과 폭력을 버리고 평화와 감사함으로 산다고 해서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이 진화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절도 있게 살며 선배들의 훌륭한 가르침대로 산다고 해서 전혀 낯설지 않을 만큼 진화했습니다.
70억이 하루 아침에 대오각성 한다고 해서 불가사의가 되지 않을 만큼 우리는 충분히 진화했습니다.
올해는 더 진보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고자 한다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도 넉넉히 아름다울 만큼 진보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이미 인격화된 태양,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아름다움이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행복해지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누가 뭐래도 70억이 한꺼번에 대오각성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어도 될 만큼 충분히 진화했다고 믿습니다.
벗님들께 새해 좋은 복이 잘 드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옛 만주어로 새해 첫 달을 '아냐 뱌'라고 합니다. 아냐는 태양을 뜻하거나 태양의 길 또는 한 해를 가리킵니다. 뱌는 달입니다. 1월은 태양을 바라보는 달입니다.
어린 아이 태어나 평균 수명 오십 년인 마을에 살게 되면 그는 아마 그 정도 살게 될 것이고, 평균수명 이백 년인 마을에 살게 되면 그는 아마 또 그 정도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의심하는 것 또한 우리가 백 년 정도 사는 마을에 사는 탓이 아닐까요?
그런 마을 지금 지어가고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아 기공식에들 뫼실 겁니다.
37. 2012.01.01
젊은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남과 북의 통일에 관한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통일은 해야 한다. 그런데 통일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될까?"
지금 젊은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통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 안 하는 것이 좋을까? 통일을 왜 해야 하는 거지?"
객관적인 현실을 놓고 보자면, 민족이란 관념은 많이 희미해져서 그것만으로는 어떤 대의적 당위를 말하기 어려워진 듯합니다.
가족이 생이별한 분들의 대다수가 이미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면서 희미해진 민족적 관념의 정서적 그림자마저 거두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일의 문제는 이제 좋든 싫든 민족의 문제나 인도주의 문제에서부터 다른 차원의 문제로 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울러 이 다른 차원의 문제를 못 찾고 못 세우면, 아마 우리들의 내년 이후 몇 년은 급격한 통일이냐 영구적인 남북독립이냐의 갈림길이 될 듯싶습니다. 영구 '분단'이란 개념조차 사라지고 말겠다는 뜻입니다. 앞 세대의 당위가 반드시 뒤 세대의 당위는 아닌 것이고, 앞 세대가 이런 점을 간과하여 뒤 세대를 탓하고 나무란다고 해결될 것은 더욱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은 늘 흘러가는 역사인가 봅니다. 앞 세대가 좀 더 각성하고 좀 더 현명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단문제의 미해결이 미래시대에 대한 자기 시대의 역사적 과오라고 생각하는 것도 모든 세대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분단문제의 미해결이 왜 반드시 역사적인 죄여야 하느냐고 물어오면 아직 우리들의 대답은 고루하여 우리 시대의 정서에 갇혀있지 않을까 합니다.
민족적 당위이니 통일하자고 더 이상 밀어붙이는 것은 앞 세대의 생각이고, 생각이 다르다고 뒤 세대를 탓하면 안 됩니다. 같은 민족이면 나라도 왜 같아야 하냐고 물어오면 뭐라 하겠습니까? 이미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 타민족 사람들에겐 뭐라고 하겠습니까? 뒤 세대를 가슴 설레게 하고 마음 들뜨게 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상호주의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젊은 분들은 정치적 탐욕과 정치적 탐욕이 아닌 것을 아주 잘 구분합니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국민을 설레게 하는 것은 탐욕이 아닌 정치이고, 국민을 설레게 하지도 못하면서 뭐를 해보려고 하는 것은 탐욕이라고 말입니다. 국민을 설레게 하는 것, 그리하여 큰 반발을 무장해제시키는 것, 그것이 대의요 명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해관계로 설득하느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대의와 명분이란 이해관계의 긴 축적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지금처럼 해도 마지 못 해 부정은 안 하겠지만, 그렇게 따르는 것의 속을 못 보면 그거야말로 앞 세대의 역사적 과오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새해 첫날 임진각 망배단을 다녀왔습니다. 북한 아이들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쓴 초라한 천 조각을 걸고 기도를 올리는 한 사나이와 그가 올린 것으로 짐작되는 몇 송이 꽃을 빼고 나면, 몇 년 전 새해 첫날과는 너무나 비교되어 날씨만큼이나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망배단은 이제 묻습니다.
"이제는 대체 어찌할 것인가?"
38. 2012.01.02
양력이긴 하지만, 새해 첫날이 곧 둘 째 날로 넘어갑니다. 이리저리 생각을 더듬다 저의 기도에 쓰이는 시간 관련 용어가 문득 제 스스로 낯설게 느껴집니다. 꽤 길게 낯선 마을에 살아온 그런 느낌입니다.
제 기도에는 늘 '음과 양이 뚜렷하고 오행이 순조로워 간과 지가 바르며 사람이 타고난 성품대로 반듯하기를' 등의 시작 부분이 있는데, 몇 해 전부터는 이제 저 혼자만 쓰는 게 아닌가 하여 언뜻언뜻 낯설기도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제가 쓰는 말이 어쩌면 더 우리말의 뿌리에 가까울 듯도 한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미 사전에도 없고, 근거도 마땅치 않으며, 기껏해야 옛 만주어의 한 갈래라고 궁색한 변명이나 늘어놓아야 하니 말입니다.
'음과 양', '오행', '순조롭다', '간지', '사람', '타고난 성품' 등 몇 가지를 빼고 나면 우리말도 아닌 한자인데다, 다른 몇 가지도 일상이 아닌 기도에서는 다른 말을 쓰는지라, 기도하는 저조차도 대체 제가 어느 마을 사람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가 원래부터 한자를 써온 것은 아닌 만큼 그 이전의 우리말이려니 하고 맙니다.
참고로 읽어보세요..
'음양'-어 아, '오행'-쉰짜 버텅(바탕), '순조롭다'-무던타, '간지'-찌텅 갈강, '사람'-날가, '타고난 성품'-반지니.. 참 당황스러우시죠? 참 기도는 '날방'이라 한답니다.
어근을 풀어 우리말과 다 연결시킬 수는 있지만, 아무튼 오랫동안 소리내지 않고 기도하다가 요즘은 가끔 작게 소리를 내는 것도 잊어버릴까 하는 마음과 무관치는 않습니다. 사실 제가 고 만주어나 고 몽고에 관심을 둬온 까닭도 제 이런 사정과 깊이 관련되어 있답니다. 즉 저를 이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한한청문감韩汉清文鉴 유관 부분을 뒤적입니다.
싱거운 얘기 끝에 민망함을 덮으려고 그냥 수수께끼 하나, 혹시 '허투'라는 말과 '억수'(또는 억시니)라는 말 들어보신 분 있으신지....?
만주어로는 鬼-허투/후투, 神-언두리/언두리, 仙-언두린(언두리의 인격화된 형태)이며, 의미로는 귀-부질없는 것, 신-희망을 주는 것, 선-인격화된 희망 등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 따라 다양한 귀 신 선의 갈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아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몇 백 정도......많은데 적다고 하는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용품 용어 천 가지 이상씩은 알고 있잖아요. 같은 경우로 귀 신 선도 아마 그 정도는 알아야 상식일 텐데, 아쉽게도 배우고 들은 것이....
가끔, 망나니를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매우 비합리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이겠으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낸 제도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김구선생께서 ‘통일 한국’의 문지기가 되고자 하신다 했을 때, 문지기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구절을 바꾸려고 습관적으로 엔터 키를 눌러서 좀 잘렸네요....^^ 별 얘기는 아니지만 마무리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덧붙입니다. 이어서 하려고 했던 말은, "그리고 오늘, 두억사니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두억사니는 마을사람을 대신해서 늘 기도하는 존재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고맙습니다."입니다. (댓글)
억수로 라는 말은 경상도 방언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연원이 만주어에 관련된 것은 이제야 알았습니다(댓글)
39. 2012.01.03
머리 속에 말들이 우글거리는지라 어쩔 수 없이 아침부터 또 우리말 뿌리 타령입니다. 요 며칠간 사전 작업이 잘 안 풀려 더 이러는 것 같습니다. 다른 데도 아니고 벗님들께서만 보시는 담벼락이니 또 낙서질입니다.
'우두커니' 서 있다는 말에서 우두커니란 의태어도 사실 옛 만주어 '우두캐'와 상관이 있어 보입니다. 우두캐 또는 '두캐 언두리'라 불리는 문지키는 신처럼 그렇게 한 곳에 가만 있다는 뜻에서 이런 형용어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넌더리'가 난다는 말에서 넌더리라는 이름 씨도 만주어 '넝더리'와 상관 있어 보이는데, 넝더리는 망신芒神의 이름으로 망신은 뽑아도 뽑아도 뽑히지 않는 풀의 신입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 아무리 자료를 뒤져서 증거를 찾아가도 무슨 칼마니(부적)라도 붙여 놨는지 찾지를 못하는 복신福神 오마시마마의 근원에 답답해 하다가 담벼락에 재미없는 얘기를 휘갈겨 벗님들만 괴롭혀 놓고 사람들의 숲으로 힘차게 풍덩 뛰어들어 갑니다.
윈난 나시족의 우두커니를 대신 남겨두고요......(^o^)
원래 산이 많으면 언어의 연결성이 많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연결되는 것을 보면 북방 이주민족의 특성이 나타난다고 느껴지네요 ㅎㅎ(댓글)
40. 2012.01.04
늙었다는 말을 만주어로는 '삭다'라고 합니다. 어근에 담긴 뜻을 살펴보면 '밝혀주다'입니다. 그냥 나이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삶을 밝혀준다는 뜻에서 한번쯤 생각을 하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쓰는 '삭다'와는 좀 뜻이 다른 셈입니다.
우리가 좀 다르게 쓰는 '알분스럽다'의 '알분'도 만주어에서 온 말인데, 그 뜻은 '모양 값을 하다'입니다. 우리는 그냥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를 하다'로 쓰고 있는데, 원래의 뜻은 꽤 긍정적인 듯합니다.
이처럼 모양 값을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젊다'고 하는 바, 젊음은 그냥 나이가 적은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표출해내는 현상 및 특징을 지적하는 개념으로 생각해봅니다.
그러니 옛 만주어에서는 젊음과 삭음이 나이로 구별되지 않고 자신의 알분스러움을 드러내는 기능의 측면이었던 셈입니다. 기계소음이 일상화된 세상과 나의 라임오랜지나무의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삶을 바라보는 디지탈적 개념과 아날로그적 개념의 차이가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디지탈적으로 나이가 꽤 많은 나는 아날로그적으로 잘 삭고 있는가? 스스로를 잘 밝혀내어 자기 반성의 신 앞에 당당하게 설 수나 있는가?"
자기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부추름한'(만주어로는 잡것에 홀린) 바탕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의 윈난 나시족 반성의 신은 우리에게 잘 삭으라고 주문을 거는 듯합니다
30여년 전에 어떤 시험지를 채점해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관식 역사문제 답안을 일차 채점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문제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당신이 18세기 초에 태어났다고 가정하여 당신의 하루를 서술하라."
채점을 끝낼 무렵 이 답안을 일차 채점하던 저는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첫째, 답안자의 실제 성별과 그의 가상 인물의 성별이 대부분 일치했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쉽게 이해되기도 했답니다. 우리는 늘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는 말을 들으며 살지만 매우 구체적으로 역지사지하는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일상생활이라는 구체적인 가상생활을 서술하려 하자 반대편 성별의 입장에서 내놓을 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배웠습니다. 인격양성을 위한 역지사지라는 명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고, 실제 중요한 것은 아주 구체적인 측면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남의 입장을 살피는 게 공부라는 것을 말입니다.
둘째, 안 먹고 사는 인간은 없다 해도 무방할 것인데, 먹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서술한 답안자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 듬성듬성하게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배웠습니다. 숨을 몇 번 어떻게 쉬며 생각을 어떻게 굴리고 무슨 책을 얼마나 읽는가 하는 것을 기억하기보다 숟가락 질을 몇 번 어떻게 하며 젓가락이 어떤 음식을 몇 번 어떻게 집어서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을 기억하는 게 더 중요한 공부의 기초라는 것을 말입니다.
셋째, 18세기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1할 정도에 중인과 평민이 7할 정도고 그 나머지는 천민인데,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답안자의 가상인물이 다 양반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한 명의 가상인물은 소 잡는 백정이었는데, 참고로 그 답안에서 그 백정은 저항세력의 주요인물이더군요. 결국 제가 읽게 된 답안의 가상인물은 모두 나름대로 리더였습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우리는 지도자 교육이라는 서양식(?) 반 푼이 교육에 휩쓸려 쓸모 없고 허황된 공부의 늪에 빠졌던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벗님의 이야기로 말미암아 최근 다시 떠올린 것인데, 우리 사회에는 언젠가부터 리더십교육이라는 것이 있는 반면 팔로워쉽교육은 전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일 것입니다. 예전에 공부를 하고 싶다는 분들을 만나면 모두 물어보는 것이 다 허공잡이였고 구체적이고 필요한 것은 거의 물어보지 않았던 것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았다 짐작됩니다. 다 자신이 제 인생의 주인공인 것만 뼈속깊이 각인하고 있었던 것이죠. 심지어 황당하게도 다른 동물이나 우주에 대해서도 어설픈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늪에 속아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한다 하면서도 철학에 빠졌던 것이죠. 수행을 하겠다고 해놓고 먼저 깨치겠답니다 글쎄. 수행을 한다 했으면 그냥 평생 깨칠 욕심 없이 사람 노릇이나 해도 좋을 듯한데 말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가능합니까? 어린 아이에게 물어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중국산 물건 없이 한 달도 못 사는 세상에 유아독존이라뇨? 독존은 없으니 곧 나도 없다는 것일 테고, 내가 없으니 온 것도 없고 온 것이 없으니 가는 것도 없다는 게 유아독존에 담긴 또 다른 뜻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때 저는 거듭거듭 배웠습니다. 공부의 시작과 끝은 팔로워쉽이로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소학 공부하시는 분만 보면 저는 좋아서 페북일 경우 좋아요를 한 번밖에 못 붙이는 게 무척 안타깝답니다.
아무 것도 이룰 것은 없고 굳이 있다면 구체적인 세상일이나 이룰 게 있을 테죠. 인생에서 정신적 성취를 이루고 생사관을 넘는다는 목표에 속아 빠지면 헛 살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안 것입니다. 성불하려 해도 모자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고 그 욕심을 버리려 해도 모자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애매한 해석을 하는 것은 더 위험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아이고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오늘도 너무 길었네요. 아무튼 그 이후 현이는 밥 먹으면 밥값 한다는 철칙과 함께, 밥값은 밥이나 밥으로 인정되는 것으로 한다는 철칙을 지키려 애쓰는 곰땡이가 되었답니다. 그 곰땡이는 불경 끝머리마다 나오는 개대환희皆大欢喜도 부처님 밥값 하셨단 확인증이라 느끼게 되었답니다. 미련한 곰땡이 주제라서 이렇게 글로 남 괴롭히는 것도 나름대로 밥값이라 여기는지 몰라요......밥 많이 먹고 나름대로 민망해하는 현이 곰땡이도 꽤 미련하답니다. 팔로워쉽 제대로 안 배우면 팔만대장경이 소학 한 구절만도 못하다고 돌아가신 아부지 곰이 일러 주신 것 같거든요....
사진은 밥값 한다는 걸 구실삼아 좋은 곳으로 호강하고 다니는 곰땡이(장강-양쯔강 상류)
일단 살짝 아프지 말고 배 많이 아프십시오. 그러면 치료하러 한번 갔다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멀지 않아 뜻 한번 모아서 연중에 치료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늘도 일본대사관 앞을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특별히 살을 비집고 파고들어 뼈를 욱신거리게 합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되신 10대 소녀들과 그분들에게서 마음을 떼지 못하는 고귀하고도 더없이 고귀한 분들께선 오늘 1003번째 수요일도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어느 분이 이름부터 고치자고 바른 말씀을 하셨다는데, 옳고도 옳은 말씀이셨습니다. 종군위안부라뇨? 그 소녀들이 언제 군을 따라 나섰답니까? 그 소녀들이 어찌 위안부였단 말입니까? 강제징용소녀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아직도 소녀들입니다. 그 분들은 아직도 나라를 찾지 못하신 식민지백성들입니다. 나라를 찾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신 분들은 또 얼마입니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지만, 그 분들에게 대한민국은 아직도 낯선 나라입니다. 국가가 먼저 그분들을 여러모로 충분히 위로하여 당신들의 눈물을 닦고 회한을 풀어 그분들께 이곳이 당신들의 조국임을 확인시켜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분들께 단 하루라도 조국의 품을 돌려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다음 국가가 나서서 그 분들이 서신 자리에 대신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들을 조국 없는 원귀로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생각할 부분이 너무나 많고 너무나 간단합니다. 촛불집회에 나서시는 마음의 조각들을 모아 그분들께 드려야 합니다. 안보의 한 조각을 모아 그분들께 돌려야 합니다. 그분들을 뒤로 두고 복지는 무슨 복지입니까? 선진화는 무슨 개 뿔나는 소리입니까? 그분들을 뒤로 두고 무슨 염치로 좌와 우이겠습니까? 이 뻔한 사실을 그대로 두고 무슨 얼굴로 정의와 진실이겠습니까?
그분들이 인정해야 조국이고 그분들이 사랑해야 모국이며 그분들이 행복해야 나라입니다. 언제까지 그분들을 식민지 백성으로 둘 수는 없습니다. 일본을 대신해 나라가 그분들을 안고, 나라는 그분들을 대신해 일본과 할 얘기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분들로 하여금 믿고 쉬게 할 수 있는 나라는 되어야 그 나라의 백성인 우리가 희망과 설렘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할 말이 적지 않으나 빙하기의 날씨에 울며 지친 그분들이 거듭 또 거듭 생각나 목이 메고 눈물이 흘러 글이 이어지질 않습니다. 한마디만 더하자면,
“그분들은 대한민국의 국모들입니다." 중국에 손문이 있다면 한국엔 김구와 이승만이 아니라 그분들이 계셔야 제 격입니다. 처음 자신을 드러내신 234분의 소녀들 가운데 이제 겨우 64분만이 우리를 보고 울고 계십니다. 그분들이 묻습니다.
"니들은 우째 구경만 하노?"
우리가 세금을 낸 곳이 나라가 아니라 화적 떼 소굴이었단 말입니까? 국익을 위해서라면 국모를 외면해도 되는 곳이었단 말입니까?
-얘기가 어지러웠다면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오직 그분들을 위해서만 기도하고 싶습니다. -아라가비 울며 절하여 벗들께 올립니다.
무지우리선생님 말씀이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돌아가 누구나 마음 놓고 울며 모든 것을 벗어놓고 누구나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지금 우리에겐 참 필요하고, 또 급한 듯합니다. 시간은 정해진 곳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누구의 잘못도 허물이 되지 않을 '뷔더'가 말입니다.
돌아가신 영혼들마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4회분은 여기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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